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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음험(?)한 기운에 사로잡힌 궤변과 억지에 누가 굴복하랴

우선 진실추구의 ‘정론’을 펼치고 있는 <제주의 소리>에 경의를 표한다. 팍팍한 지역사회 현실에서 꾸준히 할 말을 다하고자 애쓰는 노력이 가상하기도 하거니와 구성원들의 열정이 돋보여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그저 공치사나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언론으로서 제 몫을 다하는 <제주의 소리>에 대해 경쟁언론으로서가 아니라 동료언론으로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박수를 치고 싶어서다. 사실 힘든 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제주에서 언론이 ‘제왕적 권력’과 ‘제왕의 시장’을 상대로 맞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스라이 잊혀질 뻔 했던 10여년 전 일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6개월 전 칼럼에서 살짝 언급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런지라 이 참에 아예 소상히 밝히고자 한다.

 

과거 중앙언론사에 재직하며 제주도청을 출입하던 기자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13년 전인 2000년 초 사건이 있었다. 그 때 역시 지금의 도지사가 지사로 재임하던 시절이다.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를 기초로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산 하나를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개발사업이 승인된 것이다. 이젠 환경단체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꽤 알려진 ‘겹분화구’(double volcano) 구조의 이중화산체인 송악산이다.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업의 문제와 외자유치의 허구성을 지적한 기사를 쏟아냈다. 전국의 환경단체가 나섰고 대한지질학회가 문제를 지적, 결국 사업승인 취소를 요구하는 법정 소송으로까지 번져 사업이 중단될 것처럼 보였다. 그해 환경의 날(6월5일) 제주지방법원 재판부는 도지사의 ‘사업승인 효력정지’라는 선물을 제주도민들에게 선사했다.

 

하지만 그 기사로 인해 당시 지역일간지 기자였던 <제주의 소리> 데스크와 환경단체, 그리고 필자는 제주도청 인터넷 게시판에서 엄청난 모욕과 명예훼손을 당했다. 당시 ‘사이버 여론조작 사건’으로 알려진 일이다. 얼굴을 가린 채 익명으로 올린 글들은 철저히 야비한 언사를 쏟아냈다. 수백 건이 단 열흘 동안 제주도청 인터넷 게시판을 가득 메웠다.

 

비방의 도가 지나치다고 판단,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범인을 찾았다. 하지만 넋을 잃고 말았다. 범인 중 한 명은 제주도의 간부 공무원이었다. 그는 형사처벌을 받았고, 후일 환경단체와 언론사 기자들에게 민사상 손해배상금까지 물었다. 덕택에 그 배상금을 환경단체에 환경보호기금으로 쾌척할 수 있는 행운(?)도 얻었다. 그가 바로 우 지사의 총애를 받아 서귀포시장으로 임명된 한동주 전 서귀포 시장이다.

 

 

며칠 전에 더 어이 없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한동주 전 시장이 13년 전 그렇게 열심히 도청 부서장 자리에 앉아 밤늦도록 인터넷 공간에서 언론사 기자와 환경단체를 향한 비방의 댓글과 게시물을 올릴 때를 기억하는 부하직원이 있다. 그가 최근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이제서야 말합니다. 그때 저보고 기자님을, 환경단체를 비방하는 글을 익명으로 올리라고 지시했습니다. 전 그런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부터 전 그에게 찍힌 신세나 다름 없었습니다. 밤 늦게 일하는 줄 알고 그의 책상 너머를 바라보면 그가 혼자 키득거리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욕지거리를 해대는 게 재미있다는 얼굴 표정이었습니다.”

 

두 손을 다 들었다. 솔직히 더 이상 논평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이 정도면 정상이 아니란 생각이 들 뿐 상대할 생각도 없다.

 

세월이 흘렀고, 비록 그로부터 사과의 말은 듣지 못했지만 사법처리가 마무리 된 사안이기에 잊으려 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서귀포시장에 임명하는 걸 보고 “이건 아닌데···”란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런 그가 지난 11월29일 재경 서귀고 동문회에서 했다는 발언보도를 보고 경악했다.

 

그건 서귀포시장의 발언이 아니다. 공무원이 아닌 특정 고교 동문회 회장이라 하더라도 공식행사 축사를 빌어 그런 식의 ‘거래’설을 말하거나 “우리 동문이 뭉쳐야 공무원 승진시키고, 사업계약 하나 더 딴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록 그런 발언을 한다손 치더라도 그건 술자리 뒷담화 자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제주사회에 음험하게 자리 잡았던 특정인의 권력욕과 그 권력을 둘러싼 거래의 비리, 그 비리와 연계된 각종 선거판 작태, 더불어 제주사회를 주눅 들게 만드는 특정 패거리들의 연줄꿰기 ‘심증’이 한 사람의 육성으로 인해 ‘확증’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육성을 증거로 만들어 세상에 알린 <제주의 소리> 보도는 그래서 혼탁한 제주사회를 다시 맑게 만들 수 있는 청량제다. 다시 세상에 빛을 비추는 횃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쟁 언론으로서 그런 특종을 놓친 게 가슴을 칠 정도로 아프다.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었기에 <제주의 소리> 보도에 대한 반향이 큰 것 만큼 <제이누리>로선 부러움이 크다.

 

한 전 시장은 13년 전에도 남달랐다. 송악산 개발사업의 주무부서였던 투자진흥관이었던 그는 비판적인 언론기사를 프린트 하고 밑줄을 그어가며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겠다”는 둥, “소송을 걸겠다”는 둥 으름장을 놨다. 그가 그 시절 내세운 반박 논리는 사실 이 자리에서 살필 필요도 없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다. “마음껏 해보라”고 한 뒤 언론·환경단체 등은 그와 지리한 소송을 벌였다. 그리고 1·2·3심 모두 완승을 거뒀다. 오히려 그가 명예훼손의 가해자인게 명백히 확인돼 언론과 환경단체에 손해배상금을 문 것이다. 29페이지에 이르는 고법과 대법의 판결문 내용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그가 <제주의 소리>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우 지사의 지지를 유도하는 발언을 한 적도 없는데 언론이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발언이 육성 그대로 녹음·녹취됐고, 음성파일이 공개됐으며, 발언내용이 녹취록으로 세상에 낱낱이 공개됐는데도 그는 그렇게 당당하다.

 

어찌하여 이런 이가 서귀포시장으로 임명됐을까? 어찌하여 이런 이가 그 이전 제주도의 관광정책을 총괄하는 문화관광스포츠국장이 됐을까? 그를 그 자리에 앉힌 인사권자의 눈과 귀엔 도대체 무엇이 보였을까?

 

가슴 팍에 안고 가야 할 우리 제주도민, 우리 제주도의 역사가 그 인사권자의 시야에 들어오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한동주 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 자괴감과 모욕, 분노로 고개를 못들고 있는 제주도민·서귀포시민, 그리고 서귀고 동문들의 가슴 속 생채기는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저간의 사정은 모두 제껴두고 오로지 '내면의 거래'만 있었던 건 아닌지 한 전 시장의 진술이 신빙성 있게 다가온다

 

그리 생각해보니 한 전 시장이 이번엔 꽤나 큰 일을 한 것 같다. 우리 제주사회에서 도려내야 할 곪디 곪은 종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 드러난 종기를 덮으려는 한  공직자의 처연한 ‘물타기’와 ‘궤변’마저 선명하게 부각했기 때문이다.

 

<제주의 소리>가 16일 "진실은 10억원으로 막을 싸구려가 아니다"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거기에다 덧붙여 제주의 중층적 권력구조의 문제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준 한 전 시장이 이젠 솔직히 고맙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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