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사랑하는 제주도내·외 독자 여러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제이누리 발행·편집인 양성철입니다.
제주를 여는 창!제이누리는 이제 창간 20여일에 불과한 신생아입니다. 산고 끝에 창간을 알리고, 또 제대로 된 콘텐츠를 보여드리고자 애썼습니다. 보시기에 성에 차지 않으실 겁니다. 멋들어진 내용과 솜씨를 선보여야 했으나 아직 그러지 못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저 갓 태어난 신생아가 어찌 뛸 수 있겠는가란 정도로 당분간 좀 더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사실 오늘은 독자님들에게 좀 더 다가서는 마음을 전하려 합니다.
창간사에서 큰 줄기는 말씀드렸습니다만 제이누리가 가려는 길이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이제쯤 말씀을 드려야 될 걸로 보고 시작하려 합니다.
좀 생뚱맞은 얘기로 운을 띄우겠습니다.
1990년대 초 중앙의 모 일간지 짜투리 칼럼란엔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독일의 취업논리를 빗댄 표현입니다. 취업면접 때 첫 질문을 말합니다. 우선 독일의 경우 취업면접장에서의 첫 질문은 “이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랍니다. 미국은 좀 달리 “이 일을 해본 경험이 있습니까?”라고 하더군요. 경험·경력을 중시하는 미국의 풍토와 가능성과 열정을 보는 독일의 직장문화를 지칭하는 것이겠죠.
헌데 한국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 칼럼을 쓴 이의 표현대로라면 면접장에서의 첫 질문이 “부모님은 뭐하세요?”라고 묻는게 한국의 취업풍경이라는 것이죠. 개인의 경력·능력·열의보다도 소위 ‘빽’으로 불리는 배경은 물론 부모의 후광효과에 기대야만 취업문도 열리는 세태를 비판·풍자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그마치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물론 한국사회는 이제 그 정도는 넘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보단 더 세련되게, 그래도 기본절차는 지키면서, 나름 정확한 비교의 기준을 정해놓고, 취업탈락자가 납득할 수 있는 논리를 들이대는 게 우리의 기업·기관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기업이라기 보단 가족경영체와 같은 곳에선 그러지 못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우리 제주를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이건 아닌데..."라며 부끄러워 하거나 “비록 내 친·인척, 평소 가까운 사람이지만 능력 있는 사람을 더 존중해야 제주가 발전하는 거야”라고 욕심을 버리던 때가 오히려 과거가 돼 버렸습니다. 제주의 청년세대들 다수가 고위직 공무원과 정치실력자 등 이름하여 ‘빽’이 있어야만 취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빽’ 때문에 자신이 취업에서 낙방한 걸 알게 되면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력·능력을 더 쌓기 보다 그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칙보다 반칙을 더 눈 여겨 보고 있습니다.
엄연히 제주엔 ‘궨당문화’가 존재합니다. 종문의 발전을 꾀한다는 것은 좋지만 이게 사회적 파벌로 흐르기도 합니다. 매번 선거 때마다 보여지는 현상이지만 제주엔 어떤 후보가 나오면 특정지역에선 몰표현상이 벌어집니다. 대다수의 선택이 깡그리 무시되고, 특정지역의 단결력이 선거결과를 좌지우지 하기도 합니다. 지역정치판에서 벌어지는 특정 학교 동문들의 단합은 오히려 순수(?)하게 보이는 기현상도 나타납니다.
이젠 그게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결과가 나옵니다. 오히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당합니다. 혈연·학연·지연의 고리를 갖고 모두를 편으로 나누고, 개인의 생각은 모두 깡그리 무시됩니다. 어느 지역, 어느 학교, 어느 혈연 관계에 있으면 “그 사람은 무조건 누구의 편”으로 매도 당합니다. 한마디로 낙인을 찍는 것이죠.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점령군’이 들어오고, 패배한 진영과 연관이 있는 인사들은 가차 없이 처단을 당합니다. 공무원의 경우 인사좌천을 당하거나 갖은 방법으로 퇴임압력을 당하기도 합니다. 물론 괜히 줄을 잘못 선 사업체는 밉보이기 일쑤고, 아예 제주에서 기업활동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상황으로 내몰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런 처지에 놓여 “못 살겠다. 제주를 떠나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여럿 본 적이 있습니다.
더욱이 선거가 끝나면 이번엔 어느 쪽 인사들이 대거 득세할 테고, 이득을 챙길 것이다란 예측이 나옵니다. 문제는 기가 막히게 그 예측대로 제주사회가 흘러간다는 점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게 당연하다는 분위기로 우리 제주사회가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패배한 그룹이 체념하는 게 상식이 돼 가고 있습니다.
이러면 우리 제주의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내편, 네편 싸움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실제로 그러고 있습니다. 우리 청년층이 일자리를 얻으려면 줄을 대야 되고,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영락없이 선거승리 진영의 유력인사로 귀착됩니다. 한마디로 권력을 틀어쥐면 기업·단체 가릴 것 없이 제주사회 전 부문의 질서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권력을 쥔 세력의 철학이 중요한 것이고, 공익마인드가 필요한 것이고, 미래를 보는 혜안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시대를 책임지라는 유권자의 선택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불편한 소리를 들을 지라도 공익과 미래를 위해 측근의 이익을 멀리 하고, 인재와 능력을 따져야 지도그룹의 권위를 인정받게 됩니다. 그걸 지금 제주사회의 지도자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 사회를 모두 편으로 나눠 끊임없이 분열하고, 갈등만이 계속된다면 제주가 도대체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한번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답은 쉬운 곳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divide and rule.” 정치학에서 나오는 용어입니다. 분할통치라고 번역합니다. 지배권력은 언제나 이 방법을 즐깁니다. 서로 갈등하고 분열됐을 때 지배권력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극대화됩니다. 우리 제주와 같은 경우엔 여기에 하나 더 보태 외부·외지세력이 그 갈등의 시기를 빌어 조용히 이익을 챙깁니다. 주변을 잘 보시면 우리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있는 틈을 타 무언가를 챙기는 일부 인사·그룹이 보일 겁니다. 어부지리가 바로 이런 겁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우리의 풍토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를 부정할 분이 많으면 좋겠습니다만 제주의 경우 아마추어가 프로를 평가하는 사회의 성격이 짙습니다. 마치 초등학생이 대학생이 내놓은 결과물에 대해 학점을 매기는 방식이죠. 사회적 저변 확대란 긍정평가로 뒤바뀔 수도 있지만 솔직히 이리 흘러가다 보니 우리 제주사회의 수준은 나아지는 방향이 아닌 퇴보하는 방향으로 흘러간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추어는 프로의 진실을 몰라봤고, 초등생은 대학생의 발전가능성을 볼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21세기 한국사회 안에 있는 제주도인데 이 지경일 정도인지는 몰랐다”며 혀를 내두르는 제주밖 인사들이 많습니다. 사실 이런 말은 제주 밖에 사는 제주출신들의 입에서 더 나옵니다. “창피하다”고까지 얘기합니다.
그 결과가 우리 제주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습니다. 어른들의 싸움이 아니라 아이들 수준의 싸움, 갈등이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민간 부문이 아니라 공공부문에서 이를 더 조장하거나 직접 이런 수준의 갈등에 개입합니다. 아주 유치한 수준으로 일을 벌입니다. 화합과 통합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무한 갈등과 원심적 균열을 더 양산합니다.
그 과정에서 양심적인 공무원, 소외된 이웃, 정의로운 분들은 오히려 이 유치한 전장터로 내몰려 이용만 당하거나 희생양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바르게 살고, 주변 이웃들과 화합하면서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그나마 시금석이 되고자 하는 도민들은 차가운 방구석으로 내몰리고, 몰상식·몰염치의 얼굴을 한 단순 모리배들이 활개치고, 득세하고 다닙니다. 황당한 현실인데, 그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의 미래인 자녀·손주들에게 이런 난장판 문화를 유산으로 넘겨줘야 할까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가 아직도 오지 않았는가요?
첫 인사치곤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저 제이누리가 품고 있는 생각은 일단 이 정도란 말씀을 드리고자 인사를 대신해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번 서신에선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추운 겨울입니다. 기상개황을 보니 그래도 올 겨울은 지난해보다 좀 따뜻할 거랍니다. 그래도 겨울은 더 깊어질 테고, 그러면 봄은 더 가까이 다가오겠죠.
언제나 댁내 두루 평안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