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들도 엄격한 계급이 있다. 숨의 길이와 잠수 깊이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보통 해녀들은 잠수시간이 보통 1분 이내지만 상군 해녀는 2분 이상 숨을 참고 15m 깊이 이상까지도 내려간다. 이들 상군 중에서 덕망이 높고 기량이 특출한 해녀는 대상군이라 부른다(대상군은 명예직이라 할 수 있다). 중군은 8~10m, 하군은 5~7m 깊이 바다가 일터다. 60대 하군 해녀가 나이를 무기 삼아 40대 상군 해녀의 말을 무시하는 경우는 없다. 허락 없이 1㎝라도 먼저 바다에 들어가면 벌을 받는다. 혹여 금채기를 지키지 않고 바다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수확 해산물도 상군의 지시에 따라 나누어진다. 김옥순 해녀는 지금도 ‘할망 바당’에서 물질한다. 여기저기 아프다가도 물속에 들어가면 온갖 근심이 사라지고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이제는 다치고 아픈 데가 생겨 바다에 못 나오는 해녀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평대리에는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87세 고령 해녀도 있다. 제주 해녀는 해양 채집을 통해 경제 활동을 해온 제주 여성들로, 바다 밭의 제한된 공간에서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기술의 상·중·하에 관계없이 생산과 판매 분배를 공동으로 하는 공동체적 특성을 기반으로 한다. 형식적으로는 능력 위주 계급이지만 이들 관계에는 평등과 약자를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이 스며 있다. 수확물을 나눌 땐 몸이 아파 물질을 나오지 못한 해녀 몫도 남겨둔다. 나이 든 해녀가 숨이 짧아지고 체력이 떨어져 하군이 되면 수심이 얕은 ‘할망 바당’으로 간다. 다른 해녀는 이곳에 들어가지 않는다. ‘할망(할머니)’이 손자에게 줄 용돈이라도 벌게 해주려는 속 깊은 배려다. 또 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거나 다소 힘들게 작업하는 고령 해녀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상군 해녀들은 자신이 잡은 전복이나 소라를 물속에서 남모르게 망사리에 건네주거나, 혹은 특정한 공간을 지정해 작업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게석’이란 이런 행위를 말하며 ‘할망 바당’이란 이런 공간을 의미한다. 지금도 제주도 전통오일장에는 ‘할망 바당’에서 유래한 ‘할망 장터’가 있다. 제주시 전통 오일시장 입구에 있는 ‘할망 장터’에서는 ‘우영 밭’에서 키운 채소나 과일, 들에서 캐온 산나물 들을 좌판에 놓고 판다. 일종의 제주판 ‘공유경제’라 할 수 있다. ‘할망 바당’과 함께 '애기 바당’도 있다. 본격적인 물질에 나가기 전, 어린 소녀들이 잠수를 배우는 가장 얕은 바다가 ‘애기 바당’이다. 그곳에서 어린 해안마을 소녀들이 물질을 배우고 익힌다. 아직은 바다가 서툰 아기 해녀나 오랜 세월을 입은 고단한 몸을 이끌고 바다에 나선 '할망' 해녀 망사리의 한 줌씩 잡은 해산물을 나눠주는 '게석' 문화는 잠수 중 수시로 안부를 확인하고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수눌음’ 전통으로 이어졌다. 이게 바로 제주 해녀의 공동체 문화라 할 수 있다. ‘불턱’은 해녀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는 제주 해녀만의 해방구이다.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작업 중 휴식하는 장소다. 둥글게 돌담을 에워싼 형태로 가운데 불을 피워 바닷물로 젖은 몸을 덥혔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 해녀들은 여기서 파도와 수온, 채취할 해산물, 잠수 영역 등을 논의해 정했다. 잠수 기술을 전수하는 장소이고, 또 회의를 진행해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공동작업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하기도 한다. 1년에 2~3번 하는 바다 청소 ‘갯딱기’하는 날도 이곳에서 정했다. 학자들은 이를 해녀들의 ‘불턱 민주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또 해녀들은 마을 일부 어장을 ‘학교 바당’으로 정해 그곳에서 나오는 소득을 아이들 교육을 위해 사용하기도 했고 ‘이장 바당’을 만들어 그곳 바다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마을 일에 수고하는 이장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지금도 제주도 마을 곳곳과 학교에는 해녀송덕비가 있다(특히 온평리). 평대리 바닷가에서 만난 해녀 경력 61년 차 김옥순 해녀는 지난 해녀 생활을 이렇게 회고했다.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군대 갔다 돌아온 남편과 4녀 1남 낳고 고마운 ‘바당’ 물질 덕에 자식들 다 대학까지 공부시켰으며, 이제는 다 결혼하여(그중 딸 둘은 서울에서 살고 있고) 손주까지 대가족을 이루고 잘살고 있으니, 이제는 죽어 조상 전 가더라도 그리 못했다는 소린 안 듣겠나? 게다가 딸 넷 낳은 끝에 노심초사 얻은 아들이 제주시에 있는 방송국에 근무하고 있으니 어디 가서도 ‘그차락(그다지)’ 기는 안 죽고 살고 있다.” 요즘 제주 해녀의 직업과 소득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걱정하고 우려하는 소리가 있다. 하지만 해녀 문화와 해녀공동체로 관심을 돌린다면, 사정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오히려 정체성 위기의 시대, 듬직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 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제주 지역 학교 급식실에서 24년간 근무하다 폐암에 걸린 영양사에게 산업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영양사에 대해 폐암 산재를 인정한 첫 판결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단독 문지용 판사는 최근 제주 지역 학교에서 근무한 영양사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1997년부터 제주지역 학교에서 영양사로 일하다 2022년 폐암 진단을 받고, 2023년 3월 폐암 수술을 받았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영양사의 주 업무는 조리가 아니므로 발암물질인 '조리 흄'(fume)에 대한 노출 수준이 높지 않다"며 불승인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실제 근무 환경을 근거로 산재 가능성을 인정했다. 문 판사는 "조리 인력 부족이나 실무사 경험 부족으로 A씨가 직접 조리 업무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영양사 본연의 업무 외에 하루 최소 2~4시간은 조리에 참여했고, 보호 장구 착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조리 흄에 장기간 노출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코로나19 이전에는 마스크 같은 보호 장비 없이 조리를 했고, 일부 학교는 전처리실·세척실·조리실이 구분되지 않았으며 영양사실 역시 환기 구조상 조리실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호흡기내과 전문의의 "영양사라도 조리사와 동일하게 튀김·볶음 조리 업무에 장기간 관여했다면 조리 흄에 노출됐다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판결에 반영됐다. 이번 판결은 조리사뿐 아니라 영양사도 조리 흄 노출 위험군에 포함될 수 있음을 법원이 인정한 첫 사례다. 향후 학교 급식실 영양사의 산업재해 인정 범위 확대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도내 한 호텔이 관광숙박업 등급을 받지 않은 채 3성급 호텔처럼 홍보·영업을 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허위광고로 인한 소비자 피해 우려가 제기됐다. 제보자 A씨는 "제주시 소재 B호텔이 실제로는 3성 등급을 취득하지 않았음에도 프런트 뒤편에 '3성 마크'를 걸어놓고 관광객을 받아왔다"고 19일 주장했다. 3성급 호텔은 관광진흥법상 ▲레스토랑이나 조식 운영 ▲깔끔한 객실과 기본 어메니티 ▲최소한의 호텔 서비스 제공 기준 등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호텔 내부에는 조식당이 운영되지 않았고, 1층 편의점 자리에도 테이블 몇 개만 놓여 있었다. 소방안전관리자 현황판도 부실하게 관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관리자 이름과 연락처는 표기돼 있었으나 선임일자는 공란으로 비워져 법령상 요구사항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것이다. 제주관광불편신고센터는 이에 대해 "현장을 방문해 허위로 게시된 3성 마크를 관광객들이 볼 수 없도록 조치하도록 요구했다"며 "관련 내용을 제주시청에 전달해 행정처분을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제주시청 관계자는 "해당 호텔은 2023년까지 3성 등급을 유지했으나 이후 재심사를 받지 않았다"며 "수차례 등급 심사를 요청했지만 호텔 측이 응하지 않아 행정처분을 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호텔업 등 관광숙박업소는 법정 절차를 거쳐 등급을 받아야 한다. 허위 표시·광고로 소비자를 기만할 경우 과태료 및 행정처분 대상이 된다. 제주도내 호텔업계 관계자는 "등급 없는 숙박업소가 별을 달고 영업하면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관광신뢰를 위해 관리·감독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도가 2026년 제주에서 열리는 제107회 전국체육대회와 제46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의 성공 개최를 위해 4470명 규모의 전국(장애인)체전 서포터스를 모집한다. 모집 인원 4470명은 탐라국 개국 추정년도(2337년)와 전국체전 개최년도(2026년), 개최 회차(107회)를 더한 숫자로 상징성을 부여했다. 서포터스는 디지털콘텐츠팀, 지속가능그린팀, 정책홍보팀 등 3개 분야로 운영된다. 응원뿐 아니라 준비 단계부터 홍보와 참여 분위기 확산을 주도하는 핵심 주체로 활동한다. 디지털콘텐츠팀은 사회관계망(SNS) 등을 통해 대회 소식을 전하고, 지속가능그린팀은 쓰담달리기(플로깅)와 자전거 타기 등 친환경 활동으로 지속 가능한 체전을 이끈다. 정책홍보팀은 축제·행사와 연계해 찾아가는 홍보를 담당한다. 도는 특히 제주도교육청, 동호회와 협업을 강화해 학생과 생활체육인 참여를 확대할 계획이다. 1차 모집은 다음달 30일까지 진행된다. 내년 8월 30일까지 상시 모집을 이어가 최종 4470명 이상을 확보할 계획이다. 초등학생 이상 도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신청은 큐알(QR) 코드로 접속하거나 전국체전기획단에 방문해서 하면 된다. 선발된 서포터스에게는 자원봉사 시간 부여, 체전 행사 참여 기회 제공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특히 1차 참여자에게는 '제106회 부산 전국체전 대회기 인수행사' 활동비도 지원된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시 한 고등학교에서 남학생이 여자 화장실에 숨어 들어가 여학생을 불법 촬영하다 현장에서 붙잡혔다. 제주경찰청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제주시내 고교 재학생 A군을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20일 밝혔다. A군은 지난 19일 오후 제주시 한 고등학교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여학생을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이상한 낌새를 느낀 피해 학생이 학교 측에 알렸고 교사가 현장에서 A군을 붙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임의 제출받은 A군의 휴대전화를 확보해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범행 동기와 추가 피해 여부를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도교육청은 19일 도교육청 직원을 사칭해 물품납품 업체를 대상으로 물품을 구매하겠다고 속여 가짜 업체의 계좌로 현금을 받고 사라지는 사기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주의를 당부했다. 지난 16일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공공기관 사칭 물품대리구매 사기당하신 분 있으신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내용은 제주도교육청 공무원을 사칭한 사람이 전화로 물품을 구해달라고 하며 대리 구매를 유도해 물품 구매 대금 1400만원을 사기당했다는 것이다. 해당 글을 올린 이는 "은행에 금융사기 신고를 해도 대금거래 간의 개인 사기라 보이스피싱으로 들어가지 않아서 계좌 지급정지도 안 된다고 했고, 지금 사기꾼이랑 연락은 되는데 경찰서에서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사기꾼은 피해업체에 전화해 특정 물품을 구매하려는데 가격이 저렴한 자신이 아는 B업체로부터 직접 구매할 수 없으니 B업체에 대금을 먼저 입금하면 B업체로부터 물품을 받은 뒤 대금을 입금해 주겠다며 B업체 계좌로 입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교육청은 지난 15일 제주시의 한 사무용 가구 판매점 주인이 지인인 도교육청 직원에게 공무원증과 명함, '제주교육감' 직인이 찍힌 총무과 발신의 공문을 보내와서 신분 및 공문 내용이 맞는지 알려달라고 요청해 모두가 가짜임을 확인해줬다고 밝혔다. 사기꾼은 해당 가구점으로 전화해 1개당 100만원 정도 하는 책상 16개를 구매하려고 하는데 다른 업체에서 가격을 너무 높게 부른다며 대신 구매해 납품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구점 주인은 사기꾼이 소개한 업체에서 해당 책상을 사서 납품을 진행하려다가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도교육청을 통해 확인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 만약 사기꾼이 소개한 업체로 물품 대금을 송금했다면 1600여만원의 피해를 볼 뻔했다. 이들 사례에서 사기꾼은 위조한 공무원증과 명함, 공문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이메일 등으로 보내며 믿음을 사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교육청은 이에 따라 유사한 피해가 더 발생하지 않도록 본청 및 도내 교육기관 누리집에 '교육청 직원 사칭 피해 예방 안내' 팝업창을 이날부터 게시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의 과거와 오늘을 조명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제주 곳곳의 발자취입니다. 21세기인 지금과 1970.80년대의 풍경이 대조됩니다. 그동안 제주는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제주도청의 기록자료를 매주 1~2회에 걸쳐 여러분들에게 선보입니다./ 편집자 주
제주 고·양·부 삼성사재단이 창립 100년을 넘어선 지금 사상 최대 규모의 세금 부담을 안고 있다. 사적 제134호 '삼성혈'을 보존·관리하는 이 재단은 올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합쳐 약 50억원을 납부해야 한다. 내년에는 60억원을 넘길 전망이다. 이 중 종부세만 46억원 규모다. 운영 재원은 연간 약 2억원의 관람료와 10억원가량의 부동산 임대 수익이 전부다. 재단은 지난해부터 토지를 매각해 세금을 충당했지만 "조선시대 국왕이 하사한 위토를 계속 팔 수는 없다"는 내부 공감대가 강하다. 재단 관계자들은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5년 안에 자산의 상당 부분이 소진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드러낸다. ◆ 종중 불인정에서 시작된 세금 부담 = 삼성사재단의 세금 구조 변화는 2013년부터 본격화됐다. 이전까지 재단은 종중 소유 토지로 분류돼 분리과세를 적용받았다. 분리과세 토지는 세율이 0.07%로 낮고 종부세도 부과되지 않는다. 이 제도 덕분에 연간 재산세 부담은 5000만원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3년 제주시는 재단을 종중이 아닌 비영리사업자로 분류했다. 비영리사업자 소유 토지에는 세율 0.2%가 적용된다. 재단은 곧바로 종중 인정을 위한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9년 대법원은 "재단은 자연발생적 혈연 공동체가 아니며 재산도 고씨·양씨·부씨 전체가 아닌 재단 소유"라는 이유로 최종 기각했다. 이 판결로 재산세는 2014년 1억원을 넘겼고, 2019년에는 3억1000만원대로 올랐다. 재단 내부에서는 "단체 설립의 역사와 제례·문화재 보존 역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판단"이라는 불만이 남아 있다. 종중 불인정은 이후 과세 방식 전환과 세율 상승의 출발점이 됐다. ◆ 2020년 지방세법 시행령 개정의 직격탄 = 2020년 지방세법 시행령 개정은 재단에 사실상 '2차 충격'을 안겼다. 개정 전까지 비영리사업자가 소유한 토지는 교육사업에 직접 사용되지 않더라도 분리과세를 적용받았다. 그러나 개정 이후 교육 목적 토지만 분리과세로 남고, 나머지는 모두 종합합산과세 대상으로 전환됐다. 이 변화는 세 부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종합합산과세 대상 토지는 0.25~0.5%의 재산세율이 적용된다. 여기에 종부세까지 더해진다. 재단의 종부세는 2015년 107만원에서 2022년 10억원을 넘어섰고, 2023년 24억원, 지난해 36억원, 올해 예상액은 46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2022년부터 내년까지 5년간 분리과세 대상 토지의 20%씩 종합합산과세로 전환하는 유예 조치를 두었지만 재단 입장에서는 매년 세금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악순환이다. 재단은 "삼성혈과 부속 토지는 역사문화 보존 목적의 자산임에도 일반 상업용 부동산과 동일하게 과세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령상 비영리법인 토지의 사용 목적에 따라 과세 구분이 달라지는 현 구조에서는 설득력이 제한된다. ◆ 특별법 개정안 발의…행안부는 '난색' = 세 부담 완화를 위한 정치권 움직임은 올해 들어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서귀포시)은 지난달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지방세법 제106조 제1항 제3호 아목에서 대통령령으로 위임된 분리과세 대상 토지 기준을 도의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특례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위 의원은 "특별자치의 취지를 살리려면 지역의 역사성과 특수성을 반영한 지방세 과세 기준이 필요하다"며 "제주가 공익 목적의 토지에 대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지역 실정에 맞는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갖추겠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이 개정안에 대해 "재산세는 사용·수익 여부와 관계없이 보유 재산의 담세력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세목"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또 "제주특별법 개정 없이도 지방세특례제한법 제4조에 따라 조례로 과세 대상을 조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굳이 특별법 개정이 필요 없다"는 의미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논쟁이 예상된다. 도 역시 특정 비영리사업자만을 대상으로 한 조례 개정은 형평성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도는 형평성 문제를 우려한다. 특정 비영리사업자만 조례로 세 부담을 줄이면 유사 단체나 다른 비영리법인에서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제주도 관계자는 "삼성혈의 역사성과 상징성은 인정하지만 특정 단체만 혜택을 주면 공정성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문화재 보존 지원과 세제 혜택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재단은 "삼성혈은 단순한 종교·종중 시설이 아니라 탐라국 건국 신화를 품은 국가 지정 사적"이라며 특례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이어 "세금을 내기 위해 토지를 팔면 결국 문화재 보존 기반 자체가 약화된다"며 "관람료와 임대 수익만으로는 세금을 감당할 수 없는 구조인데 이런 부담이 계속되면 유지·관리 인력조차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이미 '소유자·관리단체 및 관련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는 법적 절차가 마련돼 있다"며 "이 원리는 과세 정책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국가 지정 문화재를 관리하는 법인의 과세 기준을 정할 때는 단순한 형평성 논의를 넘어 문화재의 가치와 사회적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 국회 심사와 남은 쟁점은? =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개정안 논의가 예정돼 있지만 행안부의 부정적 입장과 도의 신중론이 변수다. 개정안이 무산될 경우 도가 조례를 통해 분리과세 범위를 조정하는 방안이 유일한 출구가 될 수 있지만 정치적 부담과 형평성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이번 사안은 한 재단의 세금 감면 여부를 넘어 비영리·문화재 보존단체의 세 부담 형평성과 특별법·지방세법·지방세특례제한법의 관계, 문화재 보존과 재정 자립의 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문화재 보호를 명분으로 한 과세 완화가 부동산 보유 특혜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 국내 한 대형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는 "현행 지방세법 제106조와 지방세특례제한법 제4조에 따르면 분리과세 대상 토지 기준은 대통령령에서 정하도록 돼 있다"며 "제주특별법 개정이든 조례 개정이든 선택은 입법 과정의 문제지만 무엇보다 법령상 기준을 명확히 하고 해석의 여지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해석과 적용이 기관마다 달라지면 동일한 유형의 비영리법인이라도 세 부담이 달라지는 불합리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국가 지정 문화재를 관리하는 법인의 토지라 하더라도 현행법상 사용 목적과 과세 구분이 맞지 않으면 일반 상업용 부동산과 동일하게 과세된다. 과세 정책은 형평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화재의 공익적 가치와 사회적 기여도를 함께 고려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과 제도적 안정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 고·양·부 삼성사재단 = 제주의 시조신이 땅에서 솟아났다는 신화의 무대인 삼성혈(사적 134호)의 유지·관리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한국기록원의 삼성혈 인증서에는 ‘제주시 이도1동 1313번지의 삼성혈(三姓穴)은 BC2373년에 양(梁)·고(高)·부(夫)의 삼을나 삼신인(三神人)이 탄생(誕生)한 삼개(三個)의 구멍(穴)’으로 명시돼 있다. 삼성사재단의 원래 명칭은 '삼성시조(始祖)제사재단'이었다. 1921년 고·양·부 3성의 대표가 '삼성시조제사재단'이라는 법인체를 만들어, 그해 인가를 받았다. 1927년 특별 연고삼림(산림을 옛날부터 이용한 주민에게 넘겨주기 위해 1926년 제정공포)으로 삼성시조제사재단에서 제주도의 삼성사를 관리하게 됐다. 1962년 12월 10일 삼성시조제사재단에서 현재의 '고·양·부 삼성사재단'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매년 3차에 걸쳐 진행되는 제사로는 4월 10일 춘기대제, 10월 10일 추기대제, 12월 10일 건시대제가 있다. 재단은 삼성혈을 관리하고 삼성혈 인근에 삼성회관을 건립, 회의실과 삼성의 도종친회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다. 1981년부터 삼성(고·양·부) 후손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다.
수십 명의 세입자로부터 20억원이 넘는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다세대 주택 건물주 부자(父子)가 검찰에 넘겨졌다. 제주경찰청은 사기 혐의로 40대 건물주 A씨를 구속 송치하고, 공범인 아버지 70대 B씨를 불구속 송치했다고 19일 밝혔다. A씨와 B씨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서귀포시 일대 다세대 주택 세입자 28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21억원 상당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충분한 자본 없이 다세대 주택 4채를 신축한 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세입자들이 낸 전세보증금을 개인 채무 변제와 생활비 등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피해 세입자들이 지난 2월 A씨 가족을 사기 혐의로 집단 고소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피해액은 모두 21억원에 달한다. 개인이 입은 최대 피해액은 1억9000만원으로 조사됐다. 현재 대부분의 피해는 복구되지 않은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전세사기는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 범죄로 엄정히 수사해 대응할 방침"이라며 "전세계약 시 반드시 등기부등본과 선순위 권리관계를 확인해 보증금 반환에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광복절 연휴 기간 예상치를 웃돈 22만명이 제주를 찾았다. 국제선 증편과 크루즈 입항으로 외국인 수요가 회복세를 보였고, 해수욕장은 단순 휴양지를 넘어 체험형 관광의 무대로 변모했다. 18일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제주 입도 관광객은 약 22만명으로 당초 전망치(21만6000명)를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도 4%가량 증가했다. 날짜별 입도객은 ▲13일 4만3534명 ▲14일 5만127명 ▲15일 4만8657명 ▲16일 4만2431명 ▲17일 약 3만7000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국내선 공급석은 21만5000석, 국제선은 3만석으로 지난해보다 확대됐다. 일본·중국·대만·싱가포르 등 8개국을 연결하는 국제선 운항 편수는 162편으로 지난해보다 23편 늘었다. 크루즈선 3척이 외국인 관광객 7000여명을 실어 나르며 하늘길과 바닷길 모두 활기를 띠었다. 상반기 부진했던 내국인 관광도 반등세를 보였다. 글로벌 OTA 트립닷컴에 따르면 올여름 제주행 항공권 예약은 지난해보다 29% 늘었고, 렌터카 예약은 138% 급증했다. 도는 이번 반등세를 추석까지 이어가기 위해 '가성비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이달 말까지 22개 음식점에서 갈치요리를 최대 30% 할인하고, 오는 25일부터 31일까지는 303개 숙박업소가 참여하는 대규모 숙박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 또 다음 달부터는 QR코드 기반의 디지털 관광증을 전면 시행해 음식·숙박·체험 등 통합 할인·결제를 지원한다. 올해 추석 연휴는 개천절(10월 3일)부터 한글날(10월 9일)까지 이어지는 7일 일정으로 10일(금)을 휴무로 활용하면 최장 열흘의 황금연휴가 된다. 도는 항공사 협업 할인과 '제주여행주간', 디지털 관광증 시행 등을 통해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 수요를 공략할 방침이다. 제주도관광협회 관계자는 "광복절 연휴가 회복의 신호탄이었다면 추석은 이 흐름을 굳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기존 관광 상품을 넘어 체험형 프로그램과 지역 축제를 연계한 차별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4·3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기념해 창작 뮤지컬 '동백꽃 피는 날'이 다음달 13, 14일 이틀간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창작 뮤지컬 '동백꽃 피는 날'은 4·3 당시 군에 의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제주시 조천읍 북촌 마을을 배경으로 주인공 '분임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주 출신 작곡가 김경택이 작곡과 음악감독을 맡고, 김재한 연출과 협력해 2021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에 선정됐다. 뮤지컬은 2022년과 2023년 2년 연속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됐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는 41회 장기공연으로 관객을 맞았다. 2023년에는 경기아트센터와 서울 국립정동극장 무대에도 올랐다. 이번 공연은 제주도 문화예술진흥원과 제주4·3평화재단이 4·3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공동 기획했다. 또 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해 대극장 로비에서는 4·3기록물이 전시되며 4·3유족 증언 영상도 상영된다. 공연 예매는 문화예술진흥원 예매시스템(www.eticketjeju.co.kr)을 통해 오는 20일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관람료는 1층 1만5000원, 2층 1만원이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족, 국가유공자, 장애인, 65세 이상 노인은 공연료를 50% 감면 받을 수 있다. 문화사랑회원은 30% 공연료가 감면된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시 건입동, 산지천 물결이 바다로 흘러드는 자리. 형형색색의 방호벽이 늘어선 곳에 검은빛의 비석 하나가 단단히 서 있습니다. "산지축항 공사 때 암석을 운반하기 위해 광차(鑛車)를 운행했던 곳이다." 2020년 3월 건입동 주민자치위원회가 기존 표석을 철거하고 새로 세운 이 비석은 일제강점기 산지항 매립과 방파제 축조에 동원된 '광차(도록고)'의 역사를 증언합니다. 광차는 금산언덕 절개지나 토목 공사 현장에서 채석한 돌과 흙을 실어 나르던 무동력 궤도차로입니다. 사람 손에 밀리거나 끌려 움직였습니다. 그 레일은 부두와 내륙을 연결하며 자원 수탈의 동맥이자 섬 사람들의 땀과 노동이 깃든 길이었습니다. 1929년 일본인 야마모토 마사토시가 김녕에서 한림까지 55.5㎞ 철로를 부설하며 '제주도 순환궤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본래 계획은 섬을 한 바퀴 도는 193.1㎞ 순환 철도였지만 일부 구간만 개통됐습니다. 지금은 '광차'로 불리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도록고(トロッコ)'라 했습니다. 트럭의 일본어 명칭은 궤간 610㎜ 협궤 위를 달리는 무동력 궤도차를 뜻했습니다. 동력기관 없이 오르막은 인부가 밀고, 내리막은 중력에 의지했습니다. 자갈 없이 목재 침목 위에 레일만 얹은 단선 철로 위를 달리는 모습은 '근대화'보다는 '착취'에 가까웠습니다. 제주시 관덕정을 기점으로 동쪽 김녕, 서쪽 협제까지 이어진 노선 중 김녕 구간은 주로 사람을, 옹포리~한림항 1㎞ 구간은 제빙·통조림공장의 얼음을, 애월항에서는 방파제 공사용 돌을 날랐습니다. 옹포리 구간에서는 전남에서 건너온 노동자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 인부로 일하며 광차를 밀었고, 당시 10여대 이상이 상시 운행됐습니다. 어린이들이 장난삼아 타거나 등하굣길에 인부들에게 얻어 타는 경우도 있었지만 김녕 구간은 일본인 부유층과 고관들만 이용 가능한 '특권 교통수단'이었습니다. 평지에서는 사람 뛰는 속도였으나 내리막길에서는 아찔할 만큼 빨랐다고 전해집니다. 구조적 위험, 잦은 사고, 유지비 부담으로 1931년 9월 개통 2년 만에 전 구간 운행이 중단됐지만 광복 전까지 일본군의 진지와 항만 공사 현장에서 운반 수단으로 계속 쓰였습니다. 광차가 닿았던 건입포·산지항 일대에서는 1926년부터 대규모 항만 공사가 벌어졌습니다. 성담을 허물어 나온 돌과 사라봉 남측 금산언덕의 현무암 암반을 절개해 광차궤도로 부두 매립지로 실어 나르며 방파제를 축조했습니다. 1928년 2차 확장, 1935년 3차 확장을 거치며 오늘날의 서부두·동부두 형태가 갖춰졌습니다. 이와 함께 건입포 역시 중요한 물류 거점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건입포는 예부터 육지와 제주를 잇는 해상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1933년 대한통운 제주화금소가 들어서며 정기 화물 운송 체계가 확립됐습니다. '시보레' 트럭 1대가 정기 운송을 맡았고, 인근에는 해군경비부와 해군헌병대가 주둔했습니다. 이는 건입포가 단순한 어항이 아니라 군사와 물류가 결합된 거점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육상에서는 광차가 화물과 인력을 항만까지 실어 날랐고, 해상에서는 건입포·산지항이 일본 본토와 연결된 정기 항로로 이어졌습니다. 두 시설은 하나의 흐름 속에서 맞물리며 제주를 자원·인력 수탈 네트워크의 출발지로 만들었습니다. 항 주변에는 어시장·세관·선박회사·제재소·통조림공장·전분공장·조선소 등이 들어섰고, 일본인 거류민촌과 신사가 세워져 항만은 일본인의 생활·문화권으로 재편됐습니다. 산지항과 건입포는 '지방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제주산 자원과 인력을 대규모로 반출하는 전진기지로 기능했습니다. 1923년 일제는 제주~오사카 정기 항로를 개설해 제주를 해상 교통망 속에 본격 편입시켰습니다. '제1군대환'(669톤)과 '제2군대환'(919톤) 같은 노후 여객선이 약 20년간 수십만 명을 실어 날랐고, 1934년 한 해 도항자만 5만명에 달했습니다. 이 항로의 첫 관문이 산지항이었으며 그 부두를 완성한 것은 바로 광차가 운반한 암석과 토석이었습니다. 운임 체계는 제주 전역 어느 포구에서 승선하든 오사카까지 3엔 균일제가 적용됐습니다. 먼바다에 정박한 대형 선박에서 종선(나룻배)으로 사람과 화물을 부두로 실어 날랐습니다. 그러나 이 배편은 단순한 여객·화물 이동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도록고와 항만 공사로 구축된 식민지형 운송 인프라의 최종 종착지이자 육상과 해상을 잇는 동일한 수탈 시스템의 두 축이 맞물려 완성된 길이었습니다. '출가물질'과 '출가노동'은 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공동체 구조를 약화시켰습니다. 결국 제주 경제를 일본 중심의 산업·유통 구조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결국 광차에서 산지항, 그리고 오사카로 이어진 이 노선은 교통의 편리함이 아니라 인력과 자원을 외부로 빼내는 거대한 수탈의 통로였습니다. 철로 위에는 기관차 대신 사람의 손과 발이, 항만의 부두 위에는 지역 발전 대신 일본 본토로 향하는 물류와 인력이 있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제주인은 단순한 이용자가 아니라 '노동 그 자체'였고, 편리함과 번영이라는 말 뒤에는 공동체 해체와 고향을 등지는 이별이 자리했습니다. 광복 80년이 지난 지금 철길과 궤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도로와 매립지가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증언과 구술, 옛 신문과 사진 속 기록은 여전히 '근대화'라는 포장 뒤에 숨은 식민지의 얼굴을 드러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역사는 오늘날 제주에서 논의되는 도심 트램 도입 논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환경 친화적 교통수단'이라는 이름 아래 90여 년 전 도심을 달렸던 광차궤도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당시의 궤도는 일제의 침략과 수탈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 선로 위를 달리던 광차는 제주 안에서 머무르지 않고, 제주 밖 일제 식민지 지배의 중심부로 향했습니다. 지금 다시 선로를 놓으려는 움직임 속에서 과거와 다른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운영 구조와 이익 배분, 그리고 지역 사회의 주도권이 반드시 제주 안에 있어야 합니다. 90년 전 철로 위를 달린 '광차'가 남긴 교훈을 우리는 되새겨야 합니다. 잠깐만요!! 오늘 우리가 다시 놓으려는 그 선로,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향하고 있나요?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 <잠깐만요!!>는 <제이누리>만이 아닌 여러분의 생각도 전하는 코너입니다. 한 컷 또는 여러 컷의 사진에 담긴 스토리와 생각해볼 여지를 사연으로 담아 보내주십시오. 저희가 공유의 장을 마련하겠습니다. 보낼 곳은 제이누리 대표메일(jnuri@jnuri.net)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