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뭉게구름 하늘 벗 삼아 훨훨 날으리라 “여행 다녀와. 이 아들이 보내줄게. 받을 땐 적은 줄만 알았는데 모아놓으니 꽤 많더라. 여기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이 무려 사백만 원이나 돼.”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 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이 빵빵한 이내 통장을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드릴 게 있네 오늘 밤 문득 드릴 게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이 빵빵한 이내 통장을 “다녀와. 지난번처럼 카메라 메고, 이번엔 외국은 어때? 아빤 오십 평생을 북반구에서만 살아봤잖아? 남반구쪽으로... 호주나 뉴질랜드나, 고갱의 타히티나... 골라 골라. 지금 놓치면 손해! 아, 지중해 가고 싶다고 했지? 지중해로 가라, 아빠야. 이 돈이면 모자랄라나? 한 달 아니면 두 달, 푹 쉬고 와! 모자라는 돈은 그 동안 다른 아르바이트하면서 보내줄게. 놀면 뭐해. 앞으로 이년 동안 군대 가서 지긋지긋하게 시간 죽이기 할 텐데.” 지친 어깰 돌아서 내려오는 달빛을 본다 별빛 같은 네온에 깊은 밤을 깨워보지만 죽음보다 더
22. 내 마음의 보석상자 그럼 아빠와 러브샷은 어때 말레이시아에 세노이족이 살았단다. 이들은 꿈을 현실생활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데, 밤새 누구와 다툰 꿈을 꿨다면 그에게 가서 선물을 주며 화해를 했고, 또 꿈에 누군가를 때렸다면 그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세노이족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꿈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사냥을 나갔다가 맹수에게 쫓겨 도망치는 꿈을 꾼 아이에게는 사냥법을 일러주면서 실제로 맹수와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꿈을 통해 알려줬다. 그들의 교육법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꿈에 나타나 사랑을 나눴다면 꿈에서 깨어나 현실세계로 돌아와서 그 사람에게 고맙다며 선물을 하는 것은 그들의 자연스러운 풍습이고 관습이 되었다. 이러니 이들 세노이족은 폭력이 없었고 정신병이 있을 리 없었다. 물론 스트레스도 없었다. 이들을 ‘꿈의 부족’이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카페의 땅 주인이 나간 뒤 내게 ‘꿈의 부족’을 들려줬다. 땅 주인의 발길이 잦아졌고 어느 날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그의 아들을 데리고 왔다. 계약에 없던 월세를 내놓으라는 것과 여기에 덧붙여 계약금을 내놓으라는 새 조건을 앞세웠다. 그가 제시한
21. 이등병의 편지 편지 한 장에 담긴 우리 가슴 훈련소가 아닌 육지로 넘어가는 날, 떠나는 아버지와 작별인사를 했다. “여기에 묶여 밖을 나가보지 않은지 정말 오래 됐지? 몇 년 만의 외출인데 이틀은 너무 짧은가? 더 줘?” 나는 아버지에게 대단한 선심을 쓰듯 아버지의 외출을 허락했다. 아버지는 추방이라고 했다. 한 달 뒤쯤 입대하는 승철이와 여행을 떠나려 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좋은 곳을 놔두고 멀리 갈 필요가 있냐고 했고 이래서 더 좋은 곳,「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입대하는 승철이를 환송해주기로 했다. ‘우리끼리만’으로 합의되면서 아버지에겐 여행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쫓겨나는 거지, 이게 휴가냐?” 아버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매일 쉬는 거와 같았지만, 즐기는 것도 한참 하니 직장 같아지긴 했어. 매너리즘이라고 하니? 의례이즘? 그래, 아빠, 이틀 푹 쉬고 와도 되겠지?” 카메라를 챙기고 있었다. “친구, 동행할 친구 없어? 여자친구!” “이거 있잖아. 속 썩이길 하
20. Vincent 이제 당신이 내게 말하려던 <시래기를 맛나게 활용하는 법> 1. 시래기국 만들기 =물+시래기+국멸치+다시마 3쪽+무 반절을 채 썰어 넣기. 다음, 푹 끓인 후 조선된장을 넣고 1분 정도 더 익힌 후 기분 좋은 마음으로 드시면 됩니다. 2. 시래기밥 만들기 =씻은 쌀 위에 얹어서 고슬고슬하게 밥하기 다 된 시래기밥에 고추장 풀어 드세요. 옆 사람 쓰러지지 않나 조심하고요. 3. 생선조림 =시래기를 냄비에 깔고 그 위에 생선 얹고 양념장 부어 뭉근히 익힘. 둘이 먹을 때 조심하세요. 혼자 먹으면 더 위험하겠지요? 둘이 먹다가 혼자 죽어도 모를 그 맛이 시래기에 담겨 있답니다. 4. 시래기 보관법 =냉동보관하면 1년 동안 꺼내 먹을 수 있음. 냉장이 아니라 꼭 냉동입니다. 두고두고 맛나게 우려먹기. 미국의 타샤 튜더 할머니처럼 사는 부부도「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의 단골손님이다. 아내는 타샤처럼 화가며, 남편은 농부다. 또한 아내는 농부며 남편은 화가다. 함께 30여 년을 살다보니 직업도 섞였다. 이들이 밭에서 직접 거둬들인 거라며 시래기와 무를 놓고 갔다. 살뜰한 레서피도 담겨있었다. 30여 년 전, 그림만 그리며 살던 40대
19. 너에게 난, 나에게 넌 근데 정말로 재밌긴 했을까 “우리 과 MT를 여기서 하려고 하는데 이틀 임대가 가능한지요?” 가끔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에 들리는 단짝 사내들이 있다. 제주시 쪽에 있는 전문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전공하고 있는 신출내기 대학생 4명이 바로 그들이었다. 내 또래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 학생들에게 동성애자들 같다는 농담을 했었다. 그만큼 친해 보였다는 얘기인데 지나친 농담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상당히 특이했다. 고향은 다 달랐다. 인천, 오산, 천안, 청주 등지에서 온 소위 집 떠나온 유학생들이었다. 다르다는 점이 이들을 같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래인 내가 봐도 이 친구들은 참으로 절친해 보였다. 하지만 매번 올 때마다 주문하는 노래는 각기 다 달랐다. 트로트에서 서양팝송에 이르기까지 형일이는 모르는 노래가 없었고, 규남이는 신세대 노래를 즐겨 찾았다. 아버지가 듣도 보도 못한 노래를 어떤 재주로 불러줄 수 있겠는가. 재현이는 제 외모처럼 조용하고 얌전한, 보기엔 내숭 같은 노래를, 동훈이는 모든 노래를 다 좋아하지만 형일이처럼 수준급 매니아는 아니고 따라 부를 정도의 분위기맨이었
18.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이제 아버진 울보가 아니다 아버지는 이제 거의 울지 않는다. 그전엔 드라마를 보다가도 눈물 흘리던 모습을 자주 보았더랬는데 이제는 거의 눈물보기가 힘들다. TV보다가도 조용하다 싶어 돌아보면 여지없이 아버지의 볼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집에 TV를 없앤 이유도 그 중 하나였다. 아버지의 눈물을 말리기 위해. “군대 가는 날 울지 않으려면 미리 연습해둬야지.” 이러면서 헤헤 웃는다. 울기도 웃기도 잘 하는 아버지가 울음은 걸러내고 웃기만 하면 좋겠다.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에 혼자 들리곤 하는 여교수가 있다. 40대 초반의 꽤 품위 있어 보이는 미모의 중년여인인데 꼭 양주 한 잔에 물을 섞어 마시면서 전혀 어울리지 않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언제나 신청한다. 아버지가 이 노래를 처음엔 심수봉처럼 트로트답도록 청승맞게 불렀다. 가능한 천천히, 충분히 늘어지게, 역시 심수봉이듯 비음을 섞어서 코 막힌 코맹맹이처럼 부르면 되었다.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눈 앞에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보내주는 사람은 말이 없는데 떠나가는 남자가
17.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항상 새로운 후회 후회 후회 문을 채 열기도 전에 손님이 찾아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문을 열어놓은 지 꽤 오래 되었는데도 손님이 들지 않는 날도 있다. 아버지는 그대로 놔두면 되는 손쉬운 CD 플레이어 대신 LP판을 30~40분마다 손수 바꿔가며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고, 나는 책을 읽든가 손님용 테이블에 엎드려 졸면서 문 열리는 소리를 기다린다.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캐논’이나 ‘하늘로’ 또는 ‘월광’과 같은 피아노곡은 더 졸게 만들곤 하는데, 이럴 땐 기연가미연가한 세상에서 헤매기도 한다. “아빠, 오늘 밤 길에서 밤샐 거야? 정말 길에서 노숙할 거냐고? 농담이었지?” 아버지는 캔 맥주와 주전부리들이 담긴 비닐봉투를 들어보였다. “정말이지 않고. 그러려고 사 놓은 거잖아, 이거!”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가 꿈처럼 졸음 속에서 가물가물 피어났다. 그 때 아버지와 나는 일본의 해변 도시, 니가타에 있었더랬다. 여름이었지만 바닷가 바람은 차가웠다. 밤이었다. 깜깜한 바다는 낮에 보던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16. Don't forget to remember 너희 요놈들 감히 날 무시해 장소와 시간이「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에 묶인 관계로 나는 친구들을 여기서 만나곤 한다. “정말 아버지 맞냐?” 한 친구는 자기 아버지와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 잘 하고 있지?’ 라든가, 조금 더 관심을 갖는다면, ‘군대는 언제 가니? 신검은 받았느냐?’ 고작 이 정도의 대화, 일방적인 질문밖에 없었던 아버지와의 서먹한 관계의 존재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아버지도 내가 어렸을 땐 정말 나랑 많이 놀아주셨는데...” 또 한 친구는 아버지와의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있었다. “아버지들이 불쌍해.” 친구의 아버지를 통해 나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너희 아버지야 높은 자리에서 할 일이 아직 많으시지만, 보다시피 우리 아버지는 잘리고 달리 하실 일이 없으니까 저러고 계시는 거지.” 나는 솔직한 내 속을 털어놓으며 한편 친구들을 위로했다. “밖에서 너희들을 만나지 못하고 여기서나 봐야 하니, 나는 아버지 때문에 갇혀 있
15. 모두가 사랑이예요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 손님이 들기 전에 청소 등 손님맞이를 일찍 끝내 놓고 난 날은 종종 마당으로 나와 기타를 연습하는 때도 있다. 그리고 노래도 부를라치면 느티나무로 새들이 모여든다. 비록 가까이로 내려오지는 않지만 느티나무 위 가지에 앉아 그들도 지저귀곤 하는데, 음악이란 것은 사람이고 짐승이고 자연을 따로 구분 짓지 않는가 보다. 새들이 어쩜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소릴 내는 사람을 자기와 같은 새인 줄로 알고. 휘파람새의 휘파람 소리를 따라 불러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또 휘파람으로 화답해온다. 이런 것이다. ‘노래하고 있으면 새들이 모여든단다’ 아버지한테 말로만 들을 때는 아무리 하늘같은 아버지의 말이라 해도 믿겨지지 않았지만 실제로 기타와 노래 소리에 모여 드는 것을 보니 나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이렇게 새들에게 노래모이를 나눠주며 마당에서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 승합차 한 대가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교회차였다. 목사와 한 아주머니가 내렸다. 이웃동네의 교회에서 나왔다며 자기 교회에 나와 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들은 전도 중이었다. 기타를 안고 있는 아버지 대신 내가 교회를
14. 일기 나는 그 아침 밉지만은 않아 ‘아, 아, 음~~음, 디, 비 마이너, 이 마이너, 이 마이너 세븐, 에이 세븐, 다시 디이’ 손님이 다 빠진 늦은 밤, 아니다, 이른 새벽, 나는 귀가를 서두르고 있는데 아버지는 기타를 잡고 게으름을 피운다. 내일 부를 노래를 준비하고 있나 싶어, “집에 안 가?” 냅다 소리를 질렀더니, 들어 볼래 한다. 들을 건지 안 들을 건지 내 의사가 전달되기도 전에 이미 기타와 노래가 동시에 울려왔다. 아버지의 임의생각은 빛의 속도 초속 30만 km보다 빠르다. 생각과 동시에 말이 나오고 이내 행동으로 옮겨진다. 손님이 없어서인지 정말이지 아련히, 아득하게 카페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차피, 포기하고 가운데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혼자라서 공간은 썰렁했지만 공기는 전혀 그 반대였다. 마치 아버지가 나를 안아줄 때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감촉도 아버지의 임의생각만큼이나 빠르다. 아버지는 가없이 조용하게, 더없이 얌전하게, 한없이 구슬프게 내 귀에 속삭이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아버지 무릎을 베개 삼아 내 머리를 얹고 누워 귀로 아버지의 손길이 전해 왔던 그 간지러움
13.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봄비 내리면 생각나는 사람 카페가 쉬는 날, 할머니를 뵈러 가는 길에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도 하게 되었다. 서울에 살 때 종종 오르던 북한산도 다녀왔다. 살던 집은 구기동으로 북한산 아래 동네고, 나는 이 높은 산을 뒷동산이듯 즐겨 오르내리곤 했었다. 산에 접어든지 불과 30여 분, 퉁퉁한 배를 열어놓고 하늘 향에 두 팔 벌려 누워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널찍한 바위에 덥석 앉아, 올라왔던 길을 내려다보면 방금 온 길 뒤로 서울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언제 보아도 서울은 정말 무지 크다. 산 초입에서 산 김밥을 꺼내 우린 입에 넣었다. 아버지와 자주 앉았다 가곤 하던 우리의 바위-이래서 우리끼리는 부자바위라고 불렀다-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며 집게손가락으로 지도를 그려나간다. 우리가 앉은 오른쪽(서쪽)으로 김포공항이 보이고, 비행기를 타고 있듯 밑으로 한참 손가락을 상상으로 짚어 가면 한반도 땅 아래 조각처럼 떨어져 있는,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카페로도 간다. 왼쪽으로 손가락만 옮기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시는 하남시도 다녀올 수가 있다. 남산은 물론, 관악산, 청계산, 한라산도 손가락 하나로 다 그릴 수 있는 곳, 북한산의
12. Time time oh good good time in my heart in your heart 처음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손님들이 많다. 덥수룩한 수염에 등 뒤에 짊어진 일반 배낭과는 다른 아주 큰 가방-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낚시가방이었다-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냄새도 그 기억에 보탰다. 비릿한 생선 냄새와 땀에 전 냄새가 뒤섞인, 절로 코로 손이 가게 만들만큼 지독했다. 그는 낚시꾼이었다. 커피를 마셨고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기 금연인가요?” 그가 아버지에게 물었다.「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카페는 금연을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담배 피우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상관없지만...... 아니 피워도 괜찮습니다.” 담배가 더 낫겠다 싶어 황급히 대답했다. 그가 몰고 온 비릿한 냄새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다른 냄새로라도 씻어내야 했다. “노래도 하는군요?” 그가 들어온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미안하다며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고 밖 화장실로 나가면서 들고 왔던 낚시가방을 집었다. 가는가 했더니 마당에 두기 위해서였다.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