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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머리영등굿, 해녀문화 등 제주문화 세계문화유산으로 존중받는 상황서 적절치 않은 발언"

 

오영훈 제주지사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한라산신제 집전 거부를 일본의 신사참배 거부에 빗댄 것을 두고 "제주인의 자존감을 훼손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오 지사는 7일 오전 9시 출입기자단과 간담회에서 원 장관의 최근 발언에 대해 이같은 의견을 내놨다.

 

앞서 원 장관은 지난 4일 후임 장관 내정자가 발표된 후 정치활동 재개 첫 행선지로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보수 기독교 집회를 찾았다.

 

원 장관은 이날 자신의 신앙을 강조하면서 제주도지사 시절 한라산신제 제관을 거부한 사례를 내놨다.

 

탐라국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라산신제는 도민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로 천연기념물 제160호인 곰솔 군락지에 있는 산천단 제단에서 봉행된다.

 

고려 후기인 1253년(고종 40년) 국가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제례로 발전했고 1703년(숙종 29년) 제주목사 이형상의 건의에 따라 국가의 공식 제례로 채택됐다.

 

원칙적으로는 제주지사가 초헌관을, 제주도의회에서 아헌관을, 한라산신제 봉행위원장이 종헌관을 맡아 전통 유교 방식으로 치러진다.

 

원 장관은 제주지사 재임 당시인 2014년부터 2021년까지 7년간 종교적 이유로 한라산신제 초헌관 역할을 맡지 않아 부지사가 대신했다.

 

원 장관은 이와 관련해 "2014년 제주도지사로 취임하면서 큰 시험이 닥쳤다. 제주도의회 조례로 한라산신제를 제주도지사가 제관이 돼서 도복을 다 입고 제사를 직접 지내도록 하는 법이 있었다"면서 "제가 이기풍 선교사가 세운 교회 장로의 둘째 아들이다. 몰래 살짝 어떻게 모면하려고 해도 전국에 방송이 되는 것이라 너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래서 장로님들한테 여쭤봤다. '그것은 신앙이 아닌 문화다. 제주도민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게 좋다'는 분도 계셨고, '안 그래도 제주도가 미신과 우상이 많은 곳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원 장로의 둘째 아들이 교회에서 밀어줘서 도지사가 됐는데 맨 앞부터 쓰러지면 어떡하느냐'고 하신 분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일제시대 때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신사 참배가 '국가의 행사지 신앙과 관계없다'는 말이 있었다. 당시 (신사참배 거부로) 주기철 목사님께서 순교를 하셨다"면서 "산신제 절하는 것을 생각해보니 '도지사 안 하고 말지 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민들이 '도지사 그만하라' 그러면 도지사 그만할 각오를 했다"고 강조했다. 


오 지사는 원 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제가 직접 본 게 아니라 확인을 해봐야된다"면서도 "제주의 문화는 세계적으로 존중과 인정을 받고 있다. 특히 칠머리영등굿, 제주해녀문화 등 제주가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존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 장관을 향해 "제주인의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한라산신제 = 탐라국에서 비롯된 한라산신제는 탐라국이 해체되는 고려 숙종 10년(1105)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한라산신제 장소는 제사를 지내는 데 온갖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라산 정상 북벽이었다. 고려 고종 40년(1253) 10월 무신(戊申)에 국내 명산과 탐라의 신(神)에게 각각 제민(濟民)의 호를 내리고 춘추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올리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한라산신제는 일 년에 봄과 가을 두 차례 제사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태종 18년(1418) 4월 11일 신묘(辛卯)에 예조에서 제주의 문선왕 석전제 의식과 함께 한라산제를 지냈다. 한라산제는 전라도 나주 금성산의 예에 따라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성종 원년(1470)에는 이약동(李約東, 1416~1493) 제주목사(濟州牧使)가 한라산신제 장소를 한라산 정상에서 산천단(山川壇)으로 옮겨 거행하였다. 봄과 가을로 한라산 정상에서 제사를 거행할 때마다 제사를 올리러 간 제주도민들 가운데 얼어 죽는 폐단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선조 34년(1601)에는 청음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선조의 명을 받아 한라산신제를 거행하였다.

 

 

 

숙종 29년(1703)에는 이형상(李衡祥, 1653~1733) 제주목사의 치계를 바탕으로 한라산신제를 의논하였는데, 치계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오례의』를 살펴보니 주현(州縣)에서는 사직 문선왕 포제(酺祭), 여제(厲祭), 영제(禜祭)만 제사한다 했습니다. 주현에서 풍운뇌우의 제사를 하지 않는 것은 장계에 얘기한 대로입니다.” 성종 5년(1474)에는 『오례의(五禮儀)』를 찬성(纂成)하며 한라산신제가 사전에 기록도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며, 더욱이 명산대천에 제사하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니 지금이라도 사전에 등록하고 치악산·계룡산의 제례와 축문식에 따라 정월·이월·칠월에 제사토록 하였다. 그러나 한라산신제는 사전에 등록되지 않았지만 계속 거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1908년 한라산신제는 일제에 의해 폐지되었다. 광복 이후 산천단 마을 주민에 의해 부활돼 유지돼 오다 2009년부터 아라동 차원에서 한라산신제를 계승해 봉행하고 있다.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 안에는 1964년 1월 31일에 ‘천연기념물 제160호’로 지정된 곰솔(黑松)나무와 함께 그 부근의 지명이 되어 불리는 산천단이 있다. 이곳에는 한라산신제의 제단이 있다. 산천단은 한라산신제 외에도 산천제, 포신제(酺神祭), 기우제 등 오랜 시대에 걸친 제사 터로 알려져 있다. 한라산신고선비(漢拏山神古墠碑), 이약동 목사 한라산신단 기적비(紀蹟碑) 등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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