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산신제가 또 논란이다. 원희룡 제주지사의 참석 여부다.
개인의 종교적 선택과 도지사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벌어지는 딜레마다.
하지만 반복되는 논란을 접고 차제에 도지사의 역할론에 대한 명백한 한계를 인정하고, 이쯤에서 한라산신제에 도지사가 참여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라산신제 봉행위원회는 12일 오전 10시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 제단에서 도민의 무사안녕과 제주의 발전을 기원하기 위한 한라산신제를 지낸다.
이날 산신제에 원 지사는 참석은 하되 초헌관의 역할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박정하 정무부지사가 초헌관 역할을 맡는다. 지난해 10월 '전국체전 성공기원 한라산신제'에 참석만 하고 초헌관을 맡지 않은 데 이은 두번째 유사사례다.
도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종교적 부분이 있으면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며 사실을 확인했다. 원 지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도시자로서 당연히 참여해야 하는 행사임에도 이를 무시한다는 비판이 다시 나오고 있다.
조례에도 규정된 도지사의 초헌관 당연직 조항에 따라 조례 위반이라는 주장도 함께 제기된다. "제주의 대표적 문화축제를 종교적 이유로 무시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2012년 제정된 제주도 한라산신제 봉행위원회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5조에는 "초헌관은 도지사를 당연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도내 기독교 세력의 집단적 반발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반대로 개인의 종교적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밖에 원 지사 대신 부지사가 초헌관 대행을 맡는다고 하여 이를 조례 위반으로 볼 수는 없다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도지사의 행사 참석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도 관계자는 "종교적 성격이 강한 행사에 '도지사를 당연직으로 한다'는 규정은 종교적 입장이 다를 경우 성격이 맞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다"며 "행사 참석의 방식을 바꾸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조례로 규정돼 있고 도민의 무사안녕과 도의 발전을 축원하는 행사인 만큼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반면 도지사가 축사를 하는 등의 다른 방식을 선택해 종교적 갈등의 요소를 줄이자는 입장이다.
도는 또 "앞으로도 수차례 진행하는 다양한 제례의식이 있는 만큼 내부적으로 방법을 충분히 논의해 보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원 지사는 두차례에 걸쳐 제주의 대표적 유교제례 행사에 초헌관 집전을 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지난해 10월 '전국체전 성공기원 한라산신제'에서 초헌관을 집전하겠다고 언론에 밝혔다가 산신제 당일 박정하 정무부지사가 이를 대행한 바 있고, 지난해 12월 탐라국 고양부 삼성(三姓) 시조를 모시는 건시대제(乾始大祭)에서도 초헌관을 맡기로 했다가 박 부지사가 대행했다.
이미 도지사의 초헌관 집전은 민선 1기 지사를 거친 신구범 전 지사 시절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지사가 관음사에서 열리던 불교제례 행사와 삼성혈 내 탐라국 시조대제에 초헌관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 논란이 빚어졌다.
신 전 지사는 그러나 “종교인이자 개인자격으로 참석한 것이 아니라 엄연히 제주를 대표하는 도지사 자격으로 참석한 것으로 문제될 게 없다”며 초헌관으로 나서 논란을 잠재웠다.
한라산신제는 일제시대 민속문화 말살정책으로 봉행이 중지된 후 지난 2009년 부활했다. 지난 2012년에는 관련 조례가 제정되면서 행사 주관이 제주도로 격상됐다. 2010년 당시 김태환 지사가 초헌관을 지냈고, 2012년 조례가 통과된 이후 2014년 당시 우근민 지사가 초헌관을 집전했다. 2011년과 2013년엔 행정부지사가 초헌관을 맡았다. [제이누리=이재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