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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중의 [프로빈셜 홀(Provincial Hall)(13)] 국제자유도시 주역 꿈꾸던 조배죽

 

섬축제가 끝난 후 김철수는 시간을 되돌려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는지 확인해 보았다. 시간대별로 벌어진 사건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 보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벌어지지 말아야 되는 사건들이 자주 벌어졌었다. 그때마다 우상오와 프로빈스 간부 들은 기획사를 비호하였다. 축제 시작 일주일을 앞둔 시점에 공연무대가 공연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경악하였다. 설계도면을 대조하니 사람이 올라설 수 없는 정도로 무대 면적이 반으로 줄었다. 기획사에 따졌으나 “우상오에게 허락받았다.”며 시큰둥했었다.

 

김철수는 우상오를 급히 찾아 이 사실을 따져 물었다.

 

“공연무대 면적을 반으로 줄이도록 허락했나요?”

 

“경 했저게(그랬다)‼”

 

“공연을 못하도록 만들어 버린 이유가 뭡니까?”

 

“기획사가 하자고 해서‼ 하자는 데로 허라게(해라)‼” 우상오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축제를 시작하지도 못할 비상상황이란 것을 모릅니까?”며 손이 부들부들 거렸다.

 

기획사에 공연일정표를 요구한지가 한 달이 넘어가는데 행사 일주일 전까지도 작성이 안되었다. 여러 번 독촉하였으나 “무사 경 기획사를 못살게 허염서(왜 기획사를 못살게 구느냐?)”며 우상오와 프로빈스 간부들이 또다시 나섰다. 이 자들은 공연일정표를 작성하지 못하면 섬축제를 시작도 못하는 대혼란이 벌어지는데도 판단을 못하는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망연자실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들의 방해를 무릅쓰고 행사본부가 날밤을 새워 공연무대를 새로 만들고 공연일정표를 만들어 겨우 준비를 마쳐 시작을 할 수 있었다. 행사를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주저앉을 뻔 했던 대형 사건이다. 행사를 시작도 못했다면 김철수는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 쓸 수 있는 위급한 사태였다. 기획사가 저질러 놓은 일을 뒤치다꺼리 하면서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해 가며 때웠다.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면서 분통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섬축제 실패의 첫 단추는 기획사 선정이 잘못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프로빈스의 간부들이 그 의혹을 덮기 위하여 실패로 몰아가 행사본부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방해공작이라는 심증을 굳혔다. 그토록 못마땅했다면 애초부터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렇게 조배죽들은 섬축제를 팽개치며 동시에 국제자유도시를 꿈꾸고 있었다.

 

홍콩은 글로벌 시티(Global City)

 

우성후(嚘胜鮜)는 외국어 자격과 능력이 전혀 없었는데도 총독의 은혜를 입어 미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말이 안 되는 특혜를 받았다. 자신은 유학이라 한다. 다녀 온 후에는 일상이 바뀌었다. 감귤이라 해도 될 것을 “어렌∼쥐이 아닌가요?”라 하기도 하고, 컴퓨터라고 해도 될 것을 “커뮤∼러어”라고 해외 다녀온 티를 내서 주변 사람들의 속이 느글느글 거렸다.

 

그러다가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사람과 물자와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국제자유도시의 주역이 되겠다며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이너...내쏴날 푸리이 쒸리이(International Free City)‼”라고 폼을 잡으며 얇은 입술과 혓바닥을 억지로 꺾어 돌렸다. 우성후는 홍콩을 연상하면 가슴이 벅찼다. 영화에서 보았던 번쩍번쩍 빛나는 휘황찬란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렸다. 그러나 과거 청나라가 아편전쟁에 패한 대가로 제국주의 자본에 국가의 주권과 통치권을 침탈당한 역사는 알지 못했다.

 

우성후는 김철수에게 자신은 조배죽이라는 점을 과시하러 찾아 온 듯 했다. 김철수는 프로빈스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한직에서 조배죽들의 눈치나 보아가며 숨을 죽여 연명하면서 일기나 쓰는 신세이다. 귀양살이가 따로 없다. 우성후는 천길 벼랑 끝에 홀로 서있는 김철수를 무너트릴 심산이었다. 가끔 이런 조배죽들이 김철수를 찾아와 속을 긁어 놓았다. 허세인지 아니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권세를 부리는 듯하다.

 

그러나 “홍콩과 싱가포르는 국제자유도시라고 하지 않는다‼”는 김철수의 반응에 우성후는 단단히 삐졌다. “총독이 추진하는 사업에 토를 달암져게(다네)? 그러니까 그 모양이지‼”라며 나무랐다. 김철수는 “너 마음대로 생각해라‼”라고 튕겨 버렸다. 길게 설명하여 이해시킬 필요도 없다. 어차피 조배죽들을 상대하는 것은 답답할 노릇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글로벌 시티(Global City)” 혹은 “월드 시티(World City)”라 하며 “국제적 대도시” 혹은 “세계 도시”라고 한다. 뉴욕과 런던, 파리와 동경에 이어서 홍콩과 싱가포르와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를 말한다.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이다. 이 대도시에는 수많은 다국적 기업의 본부와 국제 법률, 국제 금융회사들이 자리를 잡아 전세계 경제를 실질적으로 좌지우지 하는 역량을 갖추어 대외적으로 경쟁력이 매우 높다는 특징이 있다. 매년 평가하여 경쟁력 순위가 매겨지고 서울은 13위다.

 

자유도시(Free City)는 오래된 낡은 개념

 

자유도시는 오래 전 유럽에서 정치적 격변기에 영토분쟁이나 종교분쟁이 있었던 일부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던 낡은 개념이다. 그러나 그 지역에 대한 국가의 주권과 통치권을 다른 세력에게 맡겨버리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에는 상업용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크라쿠프 자유도시(Free City of Cracow, Krakow)는 주변 국가와의 분쟁과 내란이 발생하자 엄정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오스트리아, 프러시아와 러시아 등 주변 3국 공동의 통치아래 있었다. 제1차 대전 후에는 독일과 폴란드의 영토분쟁으로 설립된 단지히 자유도시(Free City of Danzig)가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국제연맹의 중재로 중립지대가 되었고 독일이나 폴란드의 국가 주권과 통치권은 인정받지 못하였다. 주민은 대부분이 독일인이었으나 패전으로 그 땅을 떠나고, 이후 제2차 대전으로 독일의 침략을 받았고 현재에는 폴란드의 영토다.

 

제2차 대전 후에는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의 영토분쟁으로 설립된 트리에스테 자유지역(Free Territory of Trieste)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국제연합의 관리 하에서 다국적군 사령관이 통치를 하였던 지역이다. 그 이전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 시대에는 독일의 일부 도시가 종교적인 이유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 직접 통치를 맡겨버린 자유제국도시(Free Empire City)가 있었다.

 

외자를 유치하여 대규모 리조트를 한다던 자칭 외자유치전문가 우영태가 국제자유도시를 해야 한다고 떠벌이던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이 자의 농간에....?” 의심스러웠다.

 

누구든지 자신의 이름을 자기 마음대로 지어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조상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온 위대한 대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김철수는 조배죽들이 어떻게 어디로 프로빈스를 끌고 가려는지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최근에는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객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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