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어두운 세력들이 전국의 지방정치를 장악해 온갖 이권개입과 탐욕으로 얼룩지는 가운데 제왕적 권력을 장악한 프로빈스의 총독(Governor)과 그 추종 세력들의 행태를 담고 있다. 그들은 조배죽 혹은 십상시(十常侍) 무리들이다.
주인공 김철수는 가상인물이다. 프로빈스에 장기간 근무하면서 그들의 집중공격으로 무려 20여년간 수천길 벼랑 끝, 한 순간을 버티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할 위치에 서 있었다. 주인공의 육체는 이미 완전히 부서져 버려 하루살이처럼 연명하면서도 희미하게 남은 정신에 의지하며 떼거지로 무지막지하게 덤벼드는 조배죽과 십상시들을 상대로 그냥 그렇게 버티는 수밖에 없던 신세였다.
1대 100, 승산 없는 싸움, 김철수는 최후의 결사항전을 준비한다. 주인공과 프로빈스의 운명이 걸려 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사건들은 실제와 같이 묘사되어 있으나 모두 픽션이다. [편집자 주]
완장의 등장
프로빈스에서 도지사는 모든 것을 장악한 제왕적 도지사라고 한다. 그러나 이를 훨씬 능가하는 황제 혹은 총독(Governor)이 등장하면서 '조배죽이 조배죽에 의한 조배죽을 위한 지방통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이 총독은 예전에 프로빈스의 책임자로 있다가 가벼운 손버릇과 무책임한 발언으로 쫓겨난 적이 있는데도 선거로 다시 선택을 받았다. 유력한 경쟁자였던 후보자는 '돈 봉투'를 뿌리다가 언론에 노출되어 전국적으로 지탄을 받으며 추락하고 있었다. 같은 정당의 다른 군소 후보자들도 지리멸렬하게 무너져 갔다. 새롭게 선출된 총독은 억세게도 운이 따랐다.
김철수가 한직으로 밀려나 있을 때 우족탕(寓足糖)이 찾아왔다. 우족탕은 선거에서 한 몫을 크게 하였다고 무용담을 털어 놓으며 '뻥뻥' 거렸다. 우족탕은 선거에서 총독이 유력한 경쟁자에게 밀리자 제3의 후보자를 설득하여 후보자 등록을 지연 시켰다 한다.
무용담을 이어갔다. “자네는 지난번 선거 때 해외에 있어 부난 잘 모를거라.....내가 말이지 제3의 후보자에게 ‘뭉’을 써서 투표용지 인쇄가 된 후에 후보자 등록을 취소하도록 압력을 넣었지....그러면 유력한 경쟁자의 표를 분산시켜서....총독이 절대 유리 했었지....”
우족탕이 말하는 무용담이 '뻥'인지는 몰라도 결과는 그렇게 되었다. 유력한 경쟁자는 제3의 후보자에게 분산시킨 표의 차이 정도로 패배를 맛보게 되고 총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철수는 우족탕에게 “자네가 제3의 후보자에게 압력을 넣어서 후보자 등록을 지연시켰다고?....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이 XX놈아.....그래서 총독에게 유리하게 선거를 이끌었다고?......나에게 일부러 찾아와서 대놓고 자랑하는 이유가 뭔가?” 라고 따지듯이 물었으나 우족탕은 능글거렸다.
우족탕은 한편으로는 '두고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하는 일이 없어서 심심하니까 만만한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총독의 측근 실세라는 점을 은근히 과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전 도지사 당시에 유학을 간 것이 못마땅하여 '툭'하고 건드려 볼 심산인 것 같았다.
김철수는 “큰 보상을 받았겠네?...이제 곧 큰 벼슬자리 해 먹겠네?”라고 비꼬아 물었다. 우족탕은 “뭐....좀....” 하면서 애매하게 대답하면서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입맛을 돋우었다. 뜯어 먹다버린 족발을 빨아 먹은 듯 입에서 썩은 냄새가 풍겼다.
김철수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에는 양치질이라도 해서 다녀라...XX야‼”라고 소리를 질러 쫓아 보내 버렸다.
조배죽 완장
오래 전에는 김철수가 한직으로 밀려나 있던 시기에 우결손(雨抉潠)이 찾아 왔다. 우결손은 지난 번 선거에서 있었던 일을 자랑스럽게 털어 놓았다. “공설 운동장 유세에서 관광버스를 수십대 동원해서 전 지역에서 사람들을 데려 왔는데....나도 관광버스 한 대를 전세내서 친척들 50명을 데려 왔수다....그 정도는 해야 허여 마씸”
김철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뭐라?....그게 말썽이 나서 무거운 책임을 진 사람이 따로 있는데 자네도 그걸 했다는 건가?....그리도 자랑스러운가?....나도 버스를 대절해서 사람들을 데려와야 헌다고? 그렇게 해서 공무원 하라는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우결손은 든든한 총독이 있으니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듯 했다. “지금 도지사는 독불 장군이고....예....컨벤션센터나 물 장사도 마음에 안 들어 마씸....형님한테 해외유학 보내는 특혜도 주고 말이지....기분 나빠 마씸....그래서 나는 이런 도지사를 지지할 수 어서 마씸”
김철수는 할 말을 잃었다. 스스로 선거법에 중대한 위반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떠벌리는 이 무식함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김철수는 “이런 말을 하러 일부러 찾아 왔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나 우결손은 김철수를 물고 늘어졌다. “형님....처신 잘 헙서(해야 합니다)....명단에 올리쿠다(올리겠다)”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 봅써 마는....기독교 신자나 전 도지사의 학교 동문이나 반대파 들은....다....솎아 내 불거라 마씸....”
우결손의 말은 이른바 '반대파'로 김철수의 이름을 살생부에 올리겠다고 협박하기 위하여 찾아 온 것이었다. 해당되는 이유는 단 하나 전지사 당시에 해외유학을 갔다는 점이다.
불쾌하기 짝이 없어서 주먹을 날리고 싶은 충동으로 손이 부들부들 거렸다. 우결손은 김철수보다 10살이나 어리다. 그러나 일부러 찾아와서 선거 공적을 자랑 삼아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것처럼 기고만장하면서 “완장”이나 다름없는 말과 행동으로 거만을 떨었다.
'완장'은 일제 강점기나 한국 전쟁 또는 군사 독재시대에 앞잡이들의 팔에 채워줬던 특권이다. 근본적으로 무식하고 성격이 포악한 자들이 “완장”을 차게 되고 가벼운 말과 행동, 손가락질 하나로 날아가는 새를 떨어 트릴만큼 권세를 부렸다. 거들먹거리다가 심심하면 만만한 사람을 일부러 찾아가 괜히 시비를 걸고 싶어 한다.
김철수는 “협박하는 건가?....명단에 올리던지 말던지....꺼져라”고 소리를 질러 넣고 일어서 버렸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이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어느 영화에서처럼 “완장 잘 간수하시라”라고 비꼬아 주고 싶었다.
이 자들은 제 정신이 든 자라면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하질 말던지 아니면 가벼운 입을 놀리지 말아야 했다. 그렇게 철이 없거나 무지몽매한 자들을 중심으로 조배죽의 씨앗이 자라났다.
프로빈스의 모든 권력은 그들의 손아귀에 놓여 있었고 이미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프로빈스에는 '전 지사파' 또는 '반대파'의 명단을 적은 살생부가 나돌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 명단에 있는 자들은 늦은 가을에 낙엽이 지듯 사라져 갔다. 사표를 내고 떠나거나 한직으로 밀려나서 얼굴 표정이 어두워진 공무원들이 눈에 띄게 많아 졌다.
김철수는 '내 이름도 살생부에 올랐겠거니....조만간 사표를 내라는 압박이 들어 오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두렵기도 하였지만 그져 버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집에 가서도 내색을 할 수가 없었지만 여러 날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설쳐야 했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최근에는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객원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