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사회에서 보스(boss)는 부하직원들에게 '가라(go)‼'고 일방적으로 명령한다. 반면에 진정한 리더(leader)는 동료들에게 '같이 가자(let us go)'고 협조를 구한다. 보스는 듣는 귀가 없고 리더는 있다. 보스는 협박이 주요수단이고 리더는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차이가 크다.
카리스마(Charisma)가 있는 리더는 자신감과 정당성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으며, 자신감과 신념은 부하들의 신뢰감을 높이게 된다고 한다. '신의 은총(gift of grace)' 이라는 뜻이 있다.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은 선천적으로 타고 났거나 아니면 후천적으로 습득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비하면 조배죽들의 통치방식은 보스가 지시하듯 부하 직원들에게 '가라(go)'가 아니라 '해라(do)' 한다. 김철수는 그들로부터 리더의 자세 혹은 더 나아가서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의 자질을 찾는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다가도 남는다. 그렇다고 보스의 기질이라도 있는지 찾을 이유도 없다. 조배죽은 조배죽일 뿐이다.
총독은 떠나갔지만 조배죽들은 차별받지 않고 공평하게 대우를 받았다. 김철수는 그들이 권세를 유지하는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못마땅하다. 이 자들은 지금은 천사의 모습으로 행세하고 있지만 다시 세상이 바뀌면 어떻게 돌변할지 후환이 두렵다. 그렇지만 김철수의 관심사는 그들의 프로빈스를 잘 이끌어 나가는지 지켜보고 평가를 해 보겠다는 것이다.
파레토의 법칙
‘파레토의 법칙(Pareto's Principle)’은 80대 20 법칙(80/20 Rule)으로 불린다. 원래는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전체 토지의 80%를 가진다.'는 부의 분배에 대한 개념이지만 다른 많은 분야에서 적용된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20%의 직원이 전체 일의 80%를 한다.'는 식이다.
우영동(瀀鸋罿)은 지도자가 바뀌어졌음에도 자신의 위치는 변함이 없이 탄탄하다. 그는 자신의 권한으로 새롭게 행정의 수요를 창출하는 능력은 없다. 단지 사무실 내에서 자료를 취합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런데 우영동이 소속된 첫 번째 팀에 자료를 요구할 게 없다. 이어서 두 번째 팀에게 자료를 요구하면 “없다‼”는 짧은 답변이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팀에게 자료를 득달같이 요구한다.
“자료 내란 말야‼”
“예‼ 알았습니다‼”
나이어린 우영동의 위압적인 태도가 고약하다 싶었지만 김철수는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조용히 지낼 생각이다. 김철수는 우영동보다 나이가 서너살 위이고 그보다 경력이 많다. 그런데도 지난 6년 동안 그들의 전성기에는 나이가 윗사람들에게 반말을 예사로 써 왔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속이 느글느글 거리며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수많은 순간을 인내하면서 지나왔다. 그런데도 수모를 겪으면서 많이 익숙해졌다.
세 번째 팀에 소속된 김철수가 억지로 만들어 낸 A4 종이 두 장을 제출했다. 그런데 재탕 삼탕 써먹던 고리타분한 자료다. 우영동은 자기 입맛대로 짜 맞추다가 다시 추가로 자료를 요구한다. 계속 자료에 자료를 요구한다. 다음 주도 마찬가지고 그 다음 주도 계속 이어진다. 그의 일과다.
김철수가 과(課) 하나를 먹여 살리는 꼴이다. 전체 과 3개 팀 소속 직원들이 10여명이면 김철수가 만들어 준 종이 두 장 덕분에 나머지 9명이 편안하고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김철수는 10% 정도인데 파레토의 법칙이 말하는 20%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우영동의 옆에 앉은 우생미(吁鼪菋)의 입에서 “씨~잇‼” “씨~잇‼” 하는 앙칼진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자신에게도 자료를 따로 주지 않았다는 불만이다. 일본어를 잘 한다고 한다. 그런데 '싯(shit)‼'은 '오물(汚物)'이란 씽욕을 의미한다. 자신의 입으로 오물을 토해내면서 사무실을 오염시키는 중이다. 외국어는 욕부터 먼저 배운다고 하니 영어를 공부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주변에 내뱉어서는 안 될 소리이다.
김철수의 상급자 노릇을 하려 드는 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욕구불만이 팽배해진 자들까지 모두 상전으로 받들어 모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뭉' 조배죽
조배죽들은 예전같이 '뭉'쓰고 있으면 세월은 가고 또 다른 기회를 맞을 수 있다. 그들은 지나간 총독의 재임시절이 너무도 그립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것은 원하던 바이다.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면 되었으니 책임을 질 일도 없고 골치 아플 일도 따로 없다.
'뭉쓰다‼'는 방언으로 제일 편안한 직장에서 잘 어울리는 표현이기도 하다. 중요한 일이라도 뭉개버리면 그만이다. 김철수는 우영동에게 자료를 제출하기 전에 상급자인 우동찬(又粡饡)에게 자세하게 두 장짜리 보고서를 설명 중이다.
첫 번째 페이지를 보고할 때까지는 토를 달거나 활자체를 바꾸라는 지시를 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두 번째 페이지를 설명하려 하였으나 반응이 없다. 김철수는 우동찬의 눈치를 살폈다. “듣고 계신가요?” 조심스럽게 지시를 기다렸으나 답변이 없다. 잠시 후 우동찬은 길게 하품을 하더니 눈을 감고 졸아 버렸다. 그러다가 “알아서 해라‼”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더니 이내 눈을 감고 낮잠에 빠져 버렸다.
우동찬이 간단한 내용으로 구성된 두 장짜리 보고서를 이해하였는지 의심스러웠다. 문제는 고위간부의 질문에 우동찬이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심하게 꾸지람을 받은 모양이다.
우동찬은 “왜 허락도 없이 자료가 나가느냐?”며 거꾸로 김철수를 다그쳤다. “잘못 했습니다.”라고 했지만 마주앉은 점심 식사가 껄끄럽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최근에는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객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