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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제주해녀와 삶(14)] 영원한 어머니, 제주바다

 제주해녀가 세계를 품었다. 유네스코에 의해 당당히 ‘제주해녀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제주와 대한민국의 쾌거다. 하지만 해녀는 아직도 우리의 시선에선 그저 물질이나 하며 생계를 꾸린 제주의 독특한 전통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엄연히 삶이 있고, 애환이 깃든 가족·가정사가 있으며 저승길 문턱을 오가며 가슴에 파묻은 눈물이 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심연의 바다에서 제주사(史)를 일궈온 해녀의 삶, 그리고 그 인생사 이야기들을 연속기획연재 형식으로 허정옥 교수가 풀어낸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서귀포 법환해녀학교 과정을 마치고 그의 어머니가 해왔던 해녀의 삶을 오롯이 되살리고자 스스로도 물에 뛰어들고 있다. / 편집자 주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어머니는 내게도 물질을 금하였다. ‘해녀는 사람이 할 게 못 된다’는 게 이유였다. 이따금 물질 중에 사고사를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게 바다라서, 상군으로 소문난 어머니의 사촌은 얼굴만 한 암전복을 떼다가 숨이 다 해 죽었다. 해녀들은 그녀가 ‘물숨을 먹었다’고 하였다.

 

조카 제이는 숨비질을 하다가 발이 그물에 걸려서 죽었다. 그처럼 위험한 중노동을 어머니는 딸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했다. 동네 사람들은 ‘똘 셋이민 혼 해에 밭 혼 파니썩 산다(딸 셋이면 일 년에 밭 하나씩 산다)’면서 딸 많은 어머니를 부러워하였다.

 

그 당시엔 딸을 낳으면 “아고, 착허다. 좀녀 났져!” 하며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오죽하면 속담에 ‘똘 나민 도새기 잡앙 잔치허곡, 아들 나민 조름 팍 찬다(딸 낳으면 돼지 잡아 잔치하고, 아들 낳으면 엉덩이를 팍 찬다)’는 말이 있었으랴. 그러나 정작 어머니는 딸들이 17살이 되어 제라진 해녀가 될 만하면, 물질을 금지시켰다.

 

 

대신에 아침이면 밭으로 나가 일하다 학교로 가고, 수업이 끝나면 밭으로 돌아와 일하도록 하였다. 그렇게라도 해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기를, 그리고 도시로 가서 따박따박(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며 몸과 맘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아가길 원했다.

 

어머니의 소망처럼 딸들은 모두 육지로 나가서 월급쟁이가 되었다. 나 또한 대도시로 가서 취직을 하였다. 어려서 배운 물질 탓인지 도시에서도 여름에는 바닷가를 맴돌면서 수영하기를 좋아했다. 하기야 해녀출신이 여름에도 수영장에서 퐁당거리는 건 스스로도 웃기는 코미디였다.

 

뉴스에서는 수십만 인파가 몰려서 난리법석이라는 해운대에서도 실제로는 동과 서를 가로지르며 헤엄치는 게 가능했다. 사람들은 주로 백사장에 몰려서 버글거렸고, 드러누워 있거나 물장구를 치면서 놀았다. 실제로 헤엄을 치는 사람들은 그다지 없었다. 조금만 백사장을 벗어나면 얼마든지 어렸을 적 제주바다를 누비던 개구리헤엄을 마음껏 칠 수가 있었다.

 

수영장과 달리 바다에서는 팔다리를 좌우로 뻗으면서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참개구리처럼, 아니 ‘느리게 빠르게(슬로우 퀵퀵)’ 유영하다가 어느 순간 물 위로 점프하며 신바람을 일으키는 돌고래마냥, 얼마든지 거칠고 야성적인 수영이 가능하였다. 물론 수영장에서는 남들처럼 세련된 평영(平泳), 폼 나는 자유형(自由型), 그리고 우아한 배영(背泳)으로 그럴싸하게 폼을 잡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뜸하다 싶으면 얼른 개구리(와영: 蛙泳)로 돌아가 파도를 넘나들 듯 제멋대로 헤엄쳤다. 나비처럼 날아가는 접영(蝶泳)을 하다가도 불쑥 수영장 바닥으로 잠수해 들어가서 바닥을 헤집으며 물질을 하였다. 이름 하여 ‘수영장의 외로운 해녀’라고나 할까.

 

이러한 습성은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의 해순이 마냥 서울에서는 이따금 한강을 바다로 보이게 만들었다. 갯마을을 떠나 산골로 시집간 해순이가 수수밭에 가면 수숫대가 미역발 같고, 콩밭에 가면 콩밭이 바다로 보였듯이 말이다.

 

소설이 말하는 내용을 다시 풀어쓰자면, ⌜물질로 잔뼈가 굵은 해순이에게 산골은 물을 떠난 고기마냥 견딜 수 없는 사지(死地)였다. 오뉴월 콩밭에 들어서면 깝북 숨이 막히고, 바랭이풀을 한골 뜯고 나면 손아귀에 맥이 탁 풀려서 주저앉게 되는 곳. 그럴 때마다 살아내려고 몸을 일으키면 눈앞에 훤히 바다가 틔어 온다. ‘물소중이를 입고 태왁을 집고서 저 바다로 첨벙 뛰어들었으면… ’ 하는 갈망이 솟구친다.

 

그토록 못 견디게 바다를 그리워하던 해순이 눈에, 갑자기 수숫대가 미역발 같고, 콩밭이 온통 바다로 펼쳐진다. 아, 바다. 내가 놀던 바다밭인가? 숨이 멎을 것 같은 반가움에 다시 눈을 치 떠본다. 아∼아, 바다는 사라지고, 또 다시 수수밭이다. 어느 날은 드디어 호미를 내던지고 산비탈로 올라간다. 바다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서다. 그런데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 기를 쓰고 미친 듯이 산꼭대기로 기어오른다.

 

그래도 바다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그녀는 몸을 정반대로 돌린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삼십 리 산길을 내달리기 시작한다. 갯마을을 향하여, 바다를 향해서. 드디어 저만치 바다가 보인다. 아, 바다, 꿈에도 그리던 바다다. 단숨에 그 바다로 달려가서 가슴 가득히 숨을 들이킨다. 오래간만에 맡아보는, 그렇게도 그립던 갯냄새다.⌝

 

바로 그 해순이처럼 내게도 서울 생활은 좀처럼 친숙해질 수 없는 외지였다.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했다. 거미줄처럼 복잡한 지하철, 하늘을 가리는 마천루, 먼지를 휘날리는 자동차, 복잡한 명동거리와 휘황찬란한 강남도 그런대로 견딜 만 하였다.

 

그런데 행사장 앞에 줄지어 서서 여러 사람들과 친밀하게 악수하는 일은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직장이 경영대학원이다 보니, 유명호텔에서 하는 기업인행사가 참으로 많았다. 만면에 웃음을 짓고서 반갑게 악수를 하면, 열 명 중 한 둘이 의아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내 손이 문제였다.

 

어렸을 적 동네 친구들과 바릇잡이를 가면, 유독 산옥이의 촐구덕(보말 등을 잡아서 넣는 작은 대바구니)이 재빨리 차오르는 것이었다. 넌지시 살펴보니, 그 친구의 손이 워낙에 크고 튼실했다. 한 번에 잡아내는 분량이 우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옳거니 하고, 그때부터 나는 손가락을 잡아 늘리기 시작했다. 밥을 먹거나 김을 매거나 글을 쓸 때를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손가락을 뻗으며 힘을 주었다. 길을 걸을 때, 교실에 앉아서, 심지어 예배당에서도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한 손가락운동이 효력을 발한 건지, 아니면 일찍부터 시작한 밭일과 물질로 손의 성장이 뒷심을 발휘한 것인지, 내 손은 현저히 커지고 두터워졌다.

 

어쩌면 도시의 보통 남자들보다 더 악력이 센 내 오른손이 서울살이의 불편한 현상에 반역을 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분에 넘치게 차려입고서 한껏 우아한 자태로 아름답게 웃는 일이, 애초부터 나에게는 어색한 배역이었다.

 

사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돌, 바람처럼 대자연에 익숙한 제주여자다. 고려 말에 서울을 떠나 제주로 입도해 들어온 지 600년, 그 선조의 DNA가 뼛속까지 녹아 있는 원산지 제주인이다. 서울과는 태생적으로 인연이 빗겨간 전형적인 섬사람이다. 서울이란 도시는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숨 막히고 불안스런 타인들의 공간이다.

 

 

하지만 정말로 서울이 힘든 건, 난생 처음으로 바다가 없는 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질감과 메마름이었다. 되돌아보면 나는, 바다 냄새가 물씬한 포구마을에서 태어나, 3일 만에 바다에 누워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늘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와 함께 놀고, 먹고, 잤으니, 한 번도 바다 곁을 떠나본 적이 없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물을 떠난 고등어처럼 서울은 내가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한강이 바다로 보이기 시작했다. 시나브로 심신의 병이 깊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서울을 떠나 제주로 끌려오고 말았다. ‘니영 곹이 혼 1년만 살아 봥 죽어지민 원이 어시키여(너와 같이 1년만 살아보고 죽을 수 있다면 원이 없겠구나)’ 하고 매달리는 구십세 어머니가 닻이었다. 늘 남의 옷을 입은 것 같던 허울 좋은 직업도 벗어버렸다.

 

어머니 덕택이었다. 그리고 고향 바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밑둥처럼 언제나 손을 흔들며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나의 자리. 그 때문이기도 하였다. 내가 영원히 기대고 싶은 그 바다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달려들었다. 바다의 품에 안겨서 가슴이 터지도록 숨을 크게 들이켰다. 아, 갯내음! 그렇게도 그립던 내 어머니의 바당밭이다. 물질이 서럽게도 그리웠던 차, “호오이, 호∼이” 하고 숨비소리 한 번 속 시원하게 내질러 본다.

 

어쩌면 해녀의 딸들에게 바다는 영원한 어머니다. 고난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면,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어머니만큼만 살아간다면 이 정도 고난쯤이야 두려울 게 무엇이랴. ‘이여도 싸나 이여도 싸나’를 목청껏 외치다 보면 태산 같은 파도, 쯔나미 같은 물결도 거칠 것 없이 넘으리라. ‘이여도 싸나 이여도 싸나, 몸짱으로 집을 삼앙, 눗고개랑 어멍을 삼앙, 요 바당에 날 살아시민, 어느 바당 걸릴웨시랴(이여싸나 이여싸나, 모자반 덩이로 집을 삼고, 놀(큰 파도) 고개는 어머니를 삼아서, 요 바다에 내 산다면, 어느 바다인들 걸릴 리 있으랴).’는 어머니의 노래처럼.

 

그래, 혼백상지 등에다 지곡, 가심앞이 두렁박 차곡, 혼손에 빗창을 줴곡, 혼손에 호미를 줴곡, 혼질두질 수지픈 물속((혼백상자 등에다 지고, 가슴 앞에 테왁을 차고, 한 손에 빗창을 쥐고, 한 손에 낫을 쥐고, 한 길 두 길 깊은 물속을 허위적 허위적 들어가다 보면 소라, 전복, 해삼, 문어, 무엇인들 걸리지 않겠나?

 

바로 이 열 길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와서 내지르는 숨비소리는 그저 나오는 게 아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숨이 다 끊어져서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소리, 죽을 것처럼 힘이 들어서 ‘아이고, 어머니!’를 외쳐 부르는 비명 같은 거다. 물질하러 들어갈 때는 온 몸 가득 호흡을 불어넣기 위해 몸속의 남은 숨을 내뱉는 소리, 다시 있는 힘껏 숨을 들이쉬면서 죽음을 향해 몸을 던지며 지르는 절규 같은 거다. “호오이, 호오잇” 하고 숨비소리를 내지르면서 목숨 걸고 물질해서 우리를 살리신 거다.

 

‘보름이랑 밥으로 먹곡, 구름으로 똥을 싸곡, 물절이랑 집안을 삼앙, 한강 바당 집을 삼앙, 이 업을 호라호곡, 이내몸이 탄생호든가. 이여싸나 이여도싸나(바람일랑 밥으로 먹고, 구름으로 똥을 싸고, 물결이란 집안을 삼아, 한강 바다 집을 삼아, 이 업을 하라 하고, 이 내 몸이 탄생했던가. 이여싸나 이여도싸나).’ 하는 노래를 부르며 숨비소릴 삼키신 거다.

 

그러지 않고서야 숨이 끊어지는 그 고통을 날마다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으랴. ‘아명호믄 못사느냐, 썰물이 이시민 밀물도 이신다. 살당보민 다 살아진다(아무려면 못살겠느냐. 썰물이 있으면 밀물도 있단다. 살다보면 다 살아진다)’는 게 해녀정신이 아니던가?

 

이제는 어머니, 그 마음처럼 담대하게 인생을 살고 싶다. 해녀, 그 이름처럼 치열하게 세파를 견뎌내고자! ‘호이 호오잇’ 숨비소리 내지르면서 인생의 바다를 넉넉히 헤엄치리라.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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