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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제주해녀와 삶(8)] 보말, 소라, 오분작 노는 바다는 다르다

 제주해녀가 세계를 품었다. 유네스코에 의해 당당히 ‘제주해녀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제주와 대한민국의 쾌거다. 하지만 해녀는 아직도 우리의 시선에선 그저 물질이나 하며 생계를 꾸린 제주의 독특한 전통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엄연히 삶이 있고, 애환이 깃든 가족·가정사가 있으며 저승길 문턱을 오가며 가슴에 파묻은 눈물이 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심연의 바다에서 제주사(史)를 일궈온 해녀의 삶, 그리고 그 인생사 이야기들을 연속기획연재 형식으로 허정옥 교수가 풀어낸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서귀포 법환해녀학교 과정을 마치고 그의 어머니가 해왔던 해녀의 삶을 오롯이 되살리고자 스스로도 물에 뛰어들고 있다. / 편집자 주

 

어머니는 대포(大浦:큰개)마을의 상군잠수였다. 대포는 사시사철 으르렁대는 주상절리로 유명해서, ‘제주 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는 시의 전형이 된 곳이다. 주상절리를 대포사람들은 ‘지삿개’ 또는 ‘인건이 기정’이라 불렀다.

 

지삿개 주변은 대포사람들이 경작하는 논과 밭의 절반 정도가 펼쳐져 있었다. 유난히 평평하고 드넓어서 너배기(너븐밭: 넓은 밭)라 불렸다. 그 옆이 배린내(별이 내리는 냇가) 마을이었다. 어머니의 조카인 제이가 시집가서 물질하며 살고 있었다. 제이 언니는 가끔 우리 밭에 와서 김도 매주고 시께(제사)가 끝나면 떡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제이가 너무 착하고 부지런해서 ‘다른 사람 대신에 과부가 되었다’며 한숨을 지었다.

 

어머니는 너배기에서 밭일을 하다가 물때가 되면 지삿개로 내달렸다. 그곳은 수심이 깊고 설덕(절벽)이 많아서 물질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바로 그 설덕에서 몸을 던진 어머니는 집어삼킬 듯 달려드는 파도를 등에 업고 검푸른 바다 속으로 하염없이 들어갔다. 평균 1∼2분의 작업 시간이 간을 졸일 만큼 질기고도 길었다. ‘칠성판을 등에다 지고, 혼백상자를 머리에 이고, 가슴팍에 두렁박 차고서’ 하는 게 물질이 아닌가. 드디어 태왁이 움찔거리고, 물 밖으로 나온 어머니가 ‘호오∼이, 호잇’ 하고 숨비소리를 토해내면, 기다리던 나도 같이 참았던 숨을 ‘휴우∼우’ 하고 내뱉었다. 그렇게 해녀를 배우던 대포바다는 상군을 그리던 내 어린 시절, 꿈의 무대였다.

 

 

어머니는 가장 깊은 바다로 맨 먼저 나가서 제일 나중에야 들어왔다. 유달리 큰 어머니의 태왁이 기우뚱 거리며 성창(축항)으로 올라오면, 망실이가 찢어져라 비어져 나오려는 소라들을 검붉은 문어발들이 사력을 다해 감쌌다. 어머니는 하루라도 문어를 못 잡을 때가 없었고, 소라들은 한결같이 색깔이 시벌건 문둥구제기들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깊은 바다에서 몇 년을 버티다 잡혀온 녀석들이 분명했다. 대포마을회가 출간한 ‘큰갯마을’에는 ‘1971년도 잠수회장, 김성춘’으로 어머니의 잠수이력이 기록되어 있다. 어머니는 대포 일등 가는 상군잠수였다. 상군은 보통 12발, 20미터가 넘는 깊이까지 들어가 숨빈다. 그럼에도 항상 ‘1등은 못해도 2등은 했다’고 말하는 건 순전히 어머니의 겸손한 표현방식이다.

 

나는 큰갯물 포구에서 헤엄을 배웠다.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의 해순이처럼 어머니를 따라 바위 그늘과 모래밭에서 바닷바람에 그슬리고 갯냄새에 절어서 해녀가 되어 갔다. ‘좀녀 아긴 사을이민 골체에 눅져뒁 물질혼다(해녀 아기는 사흘이면 삼태기에 눕혀두고 물질한다)’는 속담처럼, 해녀의 딸들은 바다가 요람이다.

 

골체에서 기어 나와 자갈밭을 뒹굴다가, 물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 헤엄을 익힌다. 처음에는 성창 주변을 맴돌며 개구리헤엄을 치다가 열심히 팔다리를 휘저으면서 조금씩 먼 곳을 향해 지경을 넓혀간다. 수영 솜씨가 평영에 가까운 안정감을 얻게 되면 지칠 때는 배영으로 바다에 눕기도 하면서 바다와 친숙해진다.

 

사내아이들은 보통 ‘갯바위까지 누가 먼저 헤엄쳐서 갔다 오나’를 내기하면서 낚시를 배우고, 계집아이들은 ‘누가 먼저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가서 돌멩이를 주워오나’를 다투면서 물질을 익힌다. 물질의 요령은 힘차게 두 발로 물을 차면서 머리를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쳐 넣어 다리가 하늘로 뻗쳐 올라가게 한 다음, 두 팔로 물살을 가르면서 동시에 두 다리를 힘차게 휘저어서 목표물을 향해 바닥으로 돌진해 들어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직수(수직강하)도 어렵고 연습 도중에 물도 먹게 되지만, 돌멩이를 주워보고 해초도 뜯어 올리다 보면, 어느새 보말을 잡게 된다.

 

열 한 두 살이 되면 태왁을 짚고서 조쿠제기(상품성이 없는 작은 소라), 바르(오분작), 문어 등을 잡는 아기좀수로 발전한다. 상군들이 특별히 배려해서 정해준 아기바당은 비교적 물이 얕고 바위로 둘러싸여 있어서 파도나 조류에 안전한 편이다. 게다가 손으로 뒤집기 쉬운 돌들과 작은 바위에 해초가 많아서 보말과 조쿠제기, 오분작 등이 풍성하다. 15∼16세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소라나 미역, 전복을 채취해서 소득을 올리는 곳물질을 하게 된다.

 

드디어 하군, 중군, 상군으로 계층 지어진 잠수조직의 일원이 되어 사다리를 떠받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17∼18세가 되면 원정물질을 나갈 정도로 기량이 좋아져서 열두 발 깊이가 넘는 상군바다로도 나가게 된다. 물론 잠수하는 바다나 수확하는 정도에 따라 하군이나 중군에 머무르기도 하고, 여름철이나 성게철, 미역철 등 일정 시기에만 물질을 하는 고망좀수가 되기도 한다. 대체로 17세부터 35세까지 물질의 절정을 이루고, 50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후로 기량이 하강곡선을 그리다가 70이 넘으면 할망좀수가 되어 다시 수심이 낮은 할망바당으로 회귀한다. 상군으로 이름을 날리다가 할망바당으로 돌아온 할망해녀들 중에는 스스로를 ‘돌파리’라고 낮춰 부르는 이들도 있다. 비교적 오랜 기간 물질을 해왔고, 나이도 제법 들었지만 기량이 부족해 얕은 물에서 작업하는 해녀를 ‘돌파리잠수’라고 불러서다. 또한 이제 막 물질을 배우기 시작한 애기좀수나 나이든 신출내기, 기량이 서툰 해녀들을 통틀어 ‘족은 좀수’라고 하지만, 면전에 대놓고 부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초등학교 5학년쯤 되었을 때, 어머니는 내게도 태왁을 만들어 주셨다. 밀가루 포대에 감물을 들여서 소중이도 만들고, 큰 수경도 사주셨다. 드디어 물질도구를 제대로 갖춘 정식해녀가 된 것이다. 두 살 터울인 언니와 함께 짝을 이루어 대포바다를 누볐다. 언니와 세트 플레이로 신바람 나게 숨비질을 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몸은 애기바당을 벗어나 어른들의 숨비소리에 더 가까이 가 있었다. 우리는 다른 애들처럼 보말을 잡지 않았다. 적어도 하군들 마냥 소라, 오분작, 문어를 쫓아다녔다.

 

보말은 보말대로 소라는 소라대로 노는 바당이 다르다. 오분작 바당이 따로 있고, 문어도 사는 습성이 색다르다. 문어는 아무리 크고 거센 놈이라도 더벅(머리)을 잡아 뒤집어서 바닷물에 몇 차례 매질만 하면 맥없이 늘어진다. 요즘은 호미처럼 생긴 호멩이(골각지)로 급소를 찍어서 조래기(작은 망사리)에 담으면 그만이다.

 

 

물질도 타고 나는 법이라, 한 번 가르쳐 주면 그대로 따라하는 재주가 해녀의 딸들에게는 있었다. 조쿠제기(자잘한 소라)가 섞이긴 했지만 우리는 제법 망실이가 불룩하게 소라를 잡았다. 대부분 부드럽게 씹히고 식감이 쫄깃한 쌀구제기(껍질에 뿔모양의 쌀이 뾰족하니 박힌 소라)들이었다. 새끼전복이라도 잡은 날에는 물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껍질을 두드리며 얘기를 걸었다. “벗 촞이라, 벗 촞이라(친구 찾아라, 친구 찾아라).” 그러면 옆에 있던 언니가, “소도리 호라게, 소도리 호라게(고자질 하여라, 고자질 하여라)”라며 거들곤 하였다.

 

지나가던 해녀들이 ‘여긴 상군 나신게’라고 아는 체를 할 정도로 전복은 그 당시에도 잡기가 어려운 물건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 신바람이 나서 태왁을 짚고 노래를 불렀다. ‘이여싸나 이여싸나, 구젱기랑 잡거들랑 닷섬만 잡게호곡(소라랑 잡거들랑 닷섬만 잡게 하고) 전복이랑 잡거들랑 여든섬만 잡게홉서(전복이랑 잡거들랑 여든섬만 잡게 하오).’ 어른들의 해녀노래를 부르노라면, 우리 몸도 어느새 아기바당을 벗어나 하군좀수들이 물질하는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바다에 갔다 온 날은 나란히 누워서 그날의 물질성과를 도란도란 분석하였다. 천장이 우리들의 작전 지도였다. ‘오늘은 제비낭개에서 허탕을 치고 큰엿도에서 소라를 많이 잡았으니, 내일은 당압개에서 코지 일대를 누비면서 바릇(오분자기)을 잡아보자’는 식으로 말이다. 운이 좋아 문어를 잡은 날은 어머니로부터 칭찬도 들었다. “아이고, 소망 일었구나. 혼물끼 댕기당 보민 호루장군은 혼다(한 물끼 다니다 보면 하루 장군은 한다).”는 말이 어깨를 으쓱거리게 하였다.

 

우리는 큰갯물을 중심으로 해서 하루는 동쪽으로 펼쳐져 있는 제비낭개·큰엿도·베튼개 바다를 훑고, 다음날에는 서쪽으로 대시비개·당압개·연디밋디·자장코지를 누볐다. 바다에 갔다 온 날은 일찍 잠이 들었고, 가끔은 꿈속에서 침떡(시루떡)을 보기도 하였다. 팥고물을 묻힌 침떡은 모양과 색깔이 전복과 비슷해서 해녀들에겐 전복을 잡을 수 있는 길조였다.

 

너무 먹고 싶어서 입맛을 다시는데, 무엇이 쑥 입으로 들어와서 깨고 보면 꿈이었다. 언니의 발이 내 얼굴을 차는 바람에, 꿈에서나마 떡을 못 얻어먹은 입가에 침만 흘러내렸다. 해녀들은 물질 나가기 전날 밤에 쇠똥이나 말똥 꿈을 꾸면 전복을 많이 캘 수 있다고 여겼는데, 잠자는 중에도 배가 고픈 우리는 늘 먹는 꿈을 꾸었다. 물질은 아기좀수에게도 힘들고 고단한 일이었다.

 

다만 우리는 지삿개 바당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금지시킨 곳이라서 감히 넘보지도 못했지만 바닷물이 깊어서 무섭기도 하였다. 그곳은 대체로 파도가 소리쳐 우는 소리를 내면서 검푸른 물결이 일렁거렸다. 언젠가 어머니는 주상절리에 몰려든 관광객들에게 대포 마을 친척이 밀감 파는 광경을 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인건이 기정(낭떠러지)도 유명해지니 사람이 덕을 보는구나.’라고.

 

어머니는 주상절리를 인건이 기정이라 불렀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어느 날 어머니는 ‘죽어야지’ 작심을 하고 기정으로 갔단다. 파도가 유난히 서럽게 울부짖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더 거세게 솟구쳤다. 마치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 같았다. 치마로 커다란 돌덩이를 싸안고 막 바닷물로 뛰어들려는데, 어디선가 ‘9남매!’ 하는 소리가 급하게 들려왔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곳에서 들려오는 그 음성은 너무도 크고 분명했다. 어머니에게 ‘죽을 결심으로 살아보라’는 것 같아서 발걸음을 돌려 다시 눈물겨운 삶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늘 어머니를 지켜주는 누군가의 따사로운 눈길을 의식하면서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선 눈망울이 베롱베롱한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다시 태왁을 짚고 주상절리로 나갔다. 물질은 칠성판을 등에 지고 혼백상자를 머리에 이고 저승길에서 벌어서는 이승으로 돌아와 살아가는 생활수단이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그 바다는 자식에게 대물리고 싶지 않은 아픔의 장소인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어머니만 간직하고픈 제 3의 장소인지도.<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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