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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돈 룩 업(8) 반지성주의로 물드는 미국 사회
한국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아 ... 무지의 힘이 지성의 힘 압도해
유식하면 햄릿처럼 우유부단 ... 무식하면 돈키호테처럼 단호할까
정치인 선동에 호도당하는 이유 ... 반지성주의 무식함·멍청함일 뿐

영화 속 재시 올린(Jasie Orelean)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의 백악관 비서실장(조나 힐 분)은 그녀의 아들 제이슨 올린(Jason Orlean)이다. 백악관 비서실장이 손님들에게 찻잔 나르는 직책이 아닌 다음에야 조금 덜떨어진 자기 아들 앉혀도 좋을 만한 자리는 아니다.

 

 

자신의 아들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재시 올린 대통령의 인사(人事) 만행은 끝이 없다. 자신과 친분이 두텁고 정치 후원금을 가장 많이 내는 의사 출신 조슬린(Jocelyn)을 나사(NASA) 국장(헤티엔 박 분)으로 앉혀두고 있다. 자신의 내연남인 시골 촌뜨기 경찰서장을 느닷없이 대법원장에 임명하면서 올린 대통령의 엽기 인사가 완성된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까짓 행정경험, 법률적 지식, 우주항공 지식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다. 거의 사명감을 갖고 이성과 지성에 ‘빅 엿’ 먹이는 대통령이다. 이쯤 되면 지성무용주의도 아니고 가히 반(反)지성주의라고 할 만하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약이다.

애덤 매케이 감독이 이 망조(亡兆)가 든 반지성적 대통령에게 하필이면 ‘올린(Orelean)’이라는 흔치 않은 이름을 부여한 이유가 있을 듯하다. ‘Orelean’은 프랑스 지명 ‘오를레앙(Orléans)’에서 따온 이름이다.

본래 프랑스 식민지였던 미국 지명 ‘뉴올리언스(New Orleans)’가 그렇다. 오를레앙이라는 이름은 잔 다르크(Jeanne d’Arc)라는 이름 앞에 항상 따라다니는 ‘오를레앙의 처녀’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졌던 ‘백년전쟁(1337~1453년)’에서 전투의 기본을 배운 바도 경험한 바도 없는 17살 철부지 농사꾼 처녀는 어느날 신의 계시를 받고 위대한 사령관으로 돌변해 오를레앙을 영국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그 말도 안 되는 승리로 결국 잔 다르크가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한다. 온갖 기적을 동반한 잔 다르크의 승리가 경험이나 과학과 지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녀만이 저지를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기적의 이름 오를레앙을 이름으로 부여받은 올린 대통령도 경험이나 과학, 이성, 지성 따위는 마녀처럼 코웃음 쳐버린다. 혹시 매케이 감독이 올린 대통령을 마녀로 부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올린 대통령의 극단적인 반지성주의는 6개월 후 혜성이 충돌할 것이란 과학자들의 일치된 경고를 접하고도 요지부동이다. 매케이 감독은 아마 놀랍도록 무지막지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저격하기 위해 올린이라는 마녀 같은 여자 대통령을 만들어낸 듯하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를 꼬집는 과학자들의 일치된 경고에도 그것을 ‘가짜뉴스’라고 뭉개버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무척이나 닮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캘리포니아주 천연자원 장관 웨이드 크로풋(Wade Crowfoot)과 나눈 대화록은 반지성주의의 주옥같은 결정체다.

트럼프 : “두고 보면 알게 될 거다. 지금 지구는 점점 식어가고 있다.”
크로풋 : “과학자들이 대통령님에게 동의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트럼프 : “글쎄… 과학자들이 뭘 알아야 말이지….”  


이 ‘전설적인’ 대화 후에 바싹 말라버린 캘리포니아 산림은 미증유의 대형 산불로 잿더미가 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2019년 겨울에 트럼프는 “2020년 봄이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무지성, 반지성적인 마귀 같은 예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매케이 감독이 우화처럼 보여주는 영화 속 올린 대통령의 실사판인 트럼프 현상은 돌발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실은 미국의 비옥한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라는 토양의 산물이다.

미국 역사에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주는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는 광기에 가까웠던 미국판 ‘빨갱이 색출 소동’이었던 매카시즘(McCart hysm·1947~1953년)을 목도하고 1963년 그의 대표 학술 업적인 「미국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를 집필한다. 

그는 풍요와 민주주의의 확대는 교육의 접근성을 높였지만 그것이 교육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일갈한다. ‘(그쯤은) 나도 안다’는 모두의 생각은 소수가 이룩한 탁월한 지적 성취를 존중하기는커녕 적개심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반지성주의는 인문학을 초토화하고, 그렇게 무너진 인문학은 반지성주의에 양분을 제공한다. 반지성적인 올린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도 그렇게 지성을 거부하고 ‘혜성충돌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허구와 거짓에 안주하려 든다.

반지성주의라고 하면 무언가 지성의 한계와 부족함을 파악해서 지성을 반대하는 무척 지성적인 사상처럼 읽힐 수도 있겠지만 반지성적으로 거칠게 말하면 그냥 ‘무식함과 멍청함’일 뿐이다. 어려운 공부를 하고 복잡하게 고민을 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차별금지’를 곧 민주주의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나의 무지도 차별받지 않고 너의 지성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논리도 확장하는 모양이다. 현실에서 무지의 힘은 차별받기는커녕 오히려 지성의 힘을 압도한다. 지식을 통한 확신은 어렵지만 무지를 통한 확신은 쉽다.

유식하면 햄릿처럼 우유부단해지기 쉽지만 무식하면 돈키호테처럼 용감하고 단호해진다. 2021년 트럼프의 선동 한마디에 곧바로 몰려나와 국회의사당을 점령해버렸던 그들의 무시무시한 힘은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지에서 나오는 듯하다.

굳이 골치 아프게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반지성주의를 찾아 읽을 필요도 없다. 공자가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책을 이미 오래전에 한줄로 요약해 놓았기 때문이다. “호신불호학기폐야적(好信不好學其蔽也賊, 그저 믿기만 좋아하고 공부하기는 싫어하는 자들이 나라를 망친다·「논어」).” 

올린 대통령은 미국사회에 불만이 많은 매케이라는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고, ‘트럼프 현상’도 미국이라는 이상한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면 다행이겠다. 그런데 왠지 ‘과학적’이라는 의대정원 문제, 독립과 건국을 둘러싼 역사논쟁을 보노라면 지금 우리네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해서 마음 편치 못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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