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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돈 룩 업(7)
기업인 주장 추종한 영화 속 대통령 ... 혜성 쪼개기 실패하자 지구 탈출
美 대통령 좌우명이 주는 시사점 ... 트루먼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권한 있지만 책임 안지는 정치인들 ... 역대 한국 대통령 책임 완수했나

미국의 마지막 대통령이 되는 올린(Orleen)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은 지구로 돌진해오는 거대 혜성 ‘디비아스키’를 향해 미국의 최신, 최고의 핵미사일 수십기를 동시에 발사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물론 이 장면은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모든 미국인과 전 세계인이 환호한다. 

 

 

“디비아스키’ 넌 이제 ‘디졌다.” 거대 혜성으로 향하는 핵미사일을 바라본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수십기의 핵미사일이 육안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 핵미사일들이 슬금슬금 방향을 돌려 지구로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지켜보던 모두가 웅성거린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디비아스키 혜성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자마자 백악관 지하벙커에 마련한 ‘워 룸(war room)’에 세계최대 테크(Tech) 기업 배쉬(BASH)사의 피터 이셔웰(Peter Isherwell) 회장이 자기 회사 사무실처럼 나타나 올린 대통령을 턱짓으로 불러 옆방으로 데려간다.

이셔웰 회장은 올린 대통령에게는 최대 정치자금 후원자이다. 이를테면, 올린 대통령에게 상왕上王이자 저승사자다. 이셔웰 회장은 자기 회사 기술진의 보고에 따르면 디비아스키 혜성이 32조 달러 가치의 거대한 희토류 덩어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당장 핵미사일의 방향을 돌려 혜성파괴를 중단할 것을 대통령에게 ‘지시’한다.

그 대신 배쉬사가 보유한 최첨단 기술로 혜성을 잘게 쪼개 지구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희토류를 획득하겠다고 설명한다. 결국 디비아스키 혜성에 좌표 찍고 돌격하던 핵미사일들은 어리둥절해서 돌아온다. 

그러나 이셔웰 회장의 혜성 쪼개서 재활용하기 프로젝트도 실패한다. 올린 대통령과 이셔웰 회장은 곧바로 나란히 손잡고 미국 최고 부자들 2000명과 함께 비밀리에 마련해 둔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탈출한다. 책임감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들이 지구를 떠나자마자 디비아스키는 지구에 정시 도착한다. 지구는 끝장난다.

지구종말을 피하지 못한 올린 대통령이 이셔웰 회장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자신은 억울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가당치 않다. 한국전쟁의 실질적 주연으로 우리와도 인연이 많은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의 좌우명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 Here)’였다.

트루먼은 그 좌우명을 명패에 새겨 임기 내내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놓아뒀다. 그 명패 뒷면에는 ’나는 미주리주 출신이다. (증거를) 내놓아라(I'm from Missouri, Show m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트루먼은 미주리주 출신이고 미국에서 미주리 사람들은 의심 많기로 소문난 사람들이다. 결국 ‘나는 미주리주 출신이다. (증거를) 내놓아라’는 내용의 명패는 대통령인 자신에게 어떠한 정보를 보고하거나 정책을 제안하려면 우선 자신에게 그것이 옳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 보이라는 압박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인 자신은 증명된 정보나 제안만 채택하고, 그렇게 내린 결정에는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다. 트루먼 대통령의 이 좌우명은 그 이후 많은 미국 대통령들에게 ‘훈시’처럼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셔웰 회장의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제안을 받아들인 모든 책임은 올린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의 신경을 긁어대는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피그만(Bay of Pigs) 침공 작전’을 실행하지만 어이없이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 당연히 정치적 궁지에 몰린 케네디가 한 언론인에게 토로했다는 서운함이 전해져 내려온다.

“승리는 수많은 아버지가 있지만, 패배는 고아다(Victory has a thousand fathers, but defeat is an orphan).” 승리하면 너도나도 그 승리가 자기 덕분이라고 나서지만, 패배하면 아무도 그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현실을 탄식한 셈이다. 

요즘 나라 안팎으로 경제도 어렵고, 정치도 어려워 보이고, ‘의료개혁’ 정책이 빚은 응급실 상황도 아슬아슬해서 모두들 불안해한다. 그런데 정부는 현재 경제난은 전前 정권의 책임이라 하고, 현재 ‘의료대란’의 책임소재를 두고 총리라는 분이 “전공의들이 제일 잘못했다”고 한다.

또한 현재의 정치파탄 사태를 두고 집권여당의 한 최고위원은 “그 책임은 대통령이 아니라 괴이한 야당 지도자들 책임”이라고 말한다. 실패한 정책들을 고아로 만들지 않기 위해 온갖 엉뚱한 곳으로 입양 보내버리는 듯하다. ‘The Buck Stops Here’가 아니라 ‘The Buck Stops There’다.

‘피그만 침공 실패’를 두고 케네디 대통령은 부실한 정보를 올린 CIA 국장을 즉각 파면하고 아예 CIA를 해체해 버리려는 계획까지 세웠다는데, 우리네는 국정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해임당하는 참모도 관료도 한명 없다.

그렇다고 전 정권 인사들이나 국정의 동반자라는 야당, 그리고 의사들이 현 상황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나눠 지겠다고 나서는 것도 아니다. 그들 모두 권한은 있지만(혹은, 있었지만) 그에 따른 책임은 지려 하지 않는다.
 

 

얼마 전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노쇠함’에서 비롯된 민주당의 위기에 책임을 지고 차기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했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도 트루먼 대통령처럼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지 그의 책임지는 자세만은 존경할 만하다. 나이의 무게를 버텨내지 못한 것도 본인 책임이다. 

그런데 바이든이 지난해 우리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우리 대통령에게 그 글귀가 담긴 명패를 선물했다고 한다. 이 양반이 정말 ‘치매’가 아닌 다음에야 자신과 똑같은 우방국의 대통령에게 그런 ’훈계조‘의 선물을 준비할 수 있는가 싶어 조금은 모욕적인 느낌이다.

우리 대통령도 회장님에게 복무지침을 받아온 계열사 사장처럼 그 명패를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 모셔놓고 있다는 소식에 ‘프로 불편러’처럼 조금 더 불편해졌던 기억이 아직도 맴돈다. 그런데 가장 불편한 것은 그렇게 그 ‘책임 명패’를 집무실 책상 위에 모셔놓고도 그다지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또한 전현직 대통령 모두 같은 것 같아 더 답답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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