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을 맞아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정치학 박사이자 시·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는 강병철 작가의 ‘세계시선(詩選)’입니다. 동·서양 곳곳을 아우르는 나라의 고전과 현대 명시(名詩)를 강 작가의 유려한 문체로 우리 말로 풀어냅니다. 시작(詩作)이 번역이란 새로운 창작물로 재탄생하는 문학의 참맛도 엿보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꿈(Dream) - 에바 페트로포울로우 리아누 나의 꿈은 함께하는 것 해가 지고 있네 산의 얼굴 뒤편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는 너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하늘의 색은 너무 많았지 주황색 분홍색 그리고 약간의 녹색이 중간에 있지 화가로서 나는 섞었지 차갑고 따스한 색깔들을 검은 연필로는 눈을, 연한 붉은 색으로는 입술을 나는 하늘에 물었지 나의 태양이, 다시 돌아올까? 하늘이 대답했지: 만일 네가 빛을 믿는다면 태양은 항상 당신을 위해 빛날 거야!!! [번역=강병철 작가] Dream (Eva Petropoulou Lianou) My dream of togetherness The sun has fallen Behind the mountain s face Looking at the horizon I see your shape.. The sky had so many colors Orange Pink And some green In the middle As a painter I mixed up The cold and the warm colors Making yours eyes with a black pencil and your lips with a light red -I ask the sky -Did my sun, will come back again? The sky responds : If you believe in Light Sun will always shine for you!!!! ◆ 에바 페트로포울로우 리아누 =(EVA Petropoulou Lianou) 시인은 그리스 자일로카스트로(Xylokastro) 출신으로 그리스 예술가와 문인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uthors and artists Greece) 회원이며 시인이자 동화작가다. 피레우스 예술가와 작가협회(Association artist and authors Pireas) 회원이자 그리스 코린토스 작가협회(Association Authors of Korinthos)회원이다. 초기에는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며 1994년 프랑스의 'Le Libre Journal' 잡지사에서 일했다. 2002년 그리스로 돌아가 문학 활동을 했다. 전자문학잡지를 운영하며 다른 문학단체와 협업을 하고 있다. 그리스 문학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미국의 국제문학연맹(International Literary Union)과 협업하고 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제주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제주대 정치외교학과 시간강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 명이괘(明夷卦) 명이(明夷)는 빛이 사라지다 혹은 빛이 감춰져 있다 뜻이다. 먹구름이 짙게 깔리고 천둥 번개가 한꺼번에 칠 때에는 숨어야 한다. 모습을 나타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천둥 번개에 해를 입을 수 있다. 커다란 어려움이 닥칠 때에는 물러서서 스스로 지켜야 한다. 재능이나 포부를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해가 나올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동요해서는 안 된다. 예기(銳氣)와 재주를 모두 드러내 보이면, 지나치게 뽐내며 자신을 과시하면 어떻게 할까? 상(商)나라 시기에 주왕(紂王)에게 구금되었을 때에 주문왕(周文王)은 맹목적으로 반항하지 않았다. 자신의 지혜를 은밀히 숨겼다. 자신의 예기를 수렴하고 밖으로 온순한 척 했다. 나중에 안전하게 험지를 빠져나왔을 때 일거에 상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세웠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 어려운 시기에는 마땅히 도광양회(韜光養晦)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도광양회란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이다.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큰일을 위하여 치욕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일에 칼끝을 거둬야 한다. 재능과 행적을 숨겨야 한다. 조건이 성숙되기를 기다려 시기가 도래하면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전개하면 된다. 군자의 밝은 덕은 해를 입게 된다. 이때에 또다시 전진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현명한 방법은 자신의 재능을 수렴하는 것이다. 『주역』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비정상적인 시기에는 자신의 포부를 실현시킬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어떤 때에는 포부가 실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생명 또한 지킬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에는 물러서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강자 둘이 서로 싸우면 반드시 한 쪽은 다치게 마련이다.” 이 옛 사람의 교훈을 반드시 기억하여야 한다. 불 위에 기름을 부어서는 절대 안 된다. ‘초가삼간 태우는’ 비극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한 발 양보하는 것은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치에 맞고 서로 양보할 수 있다면 다중은 우리가 옳다는 것을 인정할 뿐 아니라 우리가 도량이 넓고 관대하다고 칭찬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뭇사람이 기대하는 바의 훌륭한 경지에 이르게 되리라. 1. 양보로 시작하고 승리로 끝내라. 양보로 시작하고 승리로 끝내는 것은 인간관계학 중에서 보기 드문, 비단주머니 속의 묘책이다. 위험성 있는 일을 할 때 냉정하고 침착하게 한 걸음을 양보하면 대단히 훌륭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성공의 첫걸음은 자신의 이익과 의도를 절대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타인의 관점과 이익을 존중하고 돋보이게 하는 것이 타인과 합작하는 강력한 법보다. 우리는 자주 이 법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너무 과하게 자신의 요구를 강조하면 타인은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태도를 바꾸는 것은 당연하다. 타인을 감동시키려면 타인의 필요에서 착수하여야 한다. 필요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각자 자신만의 호오가 있기에 그렇다. 성심으로 상대방의 진정한 의도를 탐색하여야 한다. 특히 우리 계획과 관련돼서는, 타인의 애호에 근거해 일을 진행하여야 한다. 먼저 자신의 계획을 타인의 필요에 맞춰야 우리 계획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타인을 설복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점 중 하나는 교묘하게 상대방의 심리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유별나게 자신의 장점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우위를 점하려 하면 상대방은 오히려 방어하는 데에 주력하게 된다. 2. ‘새 병에 묵은 술을 담는’ 방법을 교묘하게 이용하라. 양보는 표면적으로는 한 걸음 물러서지만 실제로는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는 방법이다. 이른바 ‘약탕만 바꾸고 약은 바꾸지 않는’ 방법이다. 즉 형식은 바꾸지만 내용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한 번은, 유명한 희극배우인 후파(侯波)가 공연 중에 말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여관은 방도 좁고 낮을 뿐 아니라 쥐조차도 곱사등이다.” 여관 주인이 듣고는 무척 화가 났다. 후파가 여관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그를 고소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후파는 기이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자신의 관점은 결지하면서도 필요 없는 성가심을 피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텔레비전 방송국에 나와 상대방에게 유감을 표하면서 말했다. “내가 일찍이 내가 머물고 있는 여관방의 쥐가 모두 곱사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잘못한 말이다. 지금 정중하게 고치고자 한다. 그곳에는 곱사등이 쥐는 한 마리도 없었다.” 후파의 유감은 분명 정정하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이전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풍자의 정도도 더 깊고 힘이 있었다. 다른 예를 들면,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앨프레드(Alfred)라는 학생이 있었다. 시를 잘 쓰기로 교내에서 평판이 좋았다. 하루는, 그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시를 낭송하고 있었다. 찰스(Charles)라는 동학이 말했다. “앨프레드의 시는 책에서 훔쳐온 것이다.” 앨프레드는 대단히 화가 났다. 찰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였다. 찰스는 생각하다가 대답하였다. “이전에 나는 내 자신이 한 말을 되돌린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틀렸다. 본래 앨프레드의 시는 내가 읽었던 그 책에서 훔쳐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에서 책을 찾아보니 그 시는 여전히 그 책에 있었다.” 두 말을 가만히 보면 표면적으로는 다르지만 뜻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가 표절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비웃고 풍자하며 야유하는 정도가 한층 더 강해졌다. 이러한 방법은 묘한 점이 많다. 거짓으로 진실을 가릴 수 있고 허로써 실을 살필 수 있다. 반어적으로 옳게 말할 수 있다. 허실이 정해져 있지 않다. 확실한 것은 상대방을 모호하게 만들며 막으려야 막을 수 없는 양보를 함으로서 진일보하는 고도의 기술이며 책략이다. 3. “높은 목표를 본보기로 삼으면 적어도 중간 정도의 결과는 얻는다.” 우리는 문틀을 넘어서고 계단을 오를 때 다리를 높이 들고 걸음을 낮게 한다. 본능에 가까운 그런 습관은 사교에서도 교묘한 양보 방법으로 응용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큰 요구를 하면서 양보하게 만드는 것이다. 위장하여 작은 요구를 성취하는 것이다. 먼저 큰 요구를 한다.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다시 작은 요구를 한다. 심리습관과 일반 사유방식에 있어서 상대방이 일단 대폭 양보했다고 느끼게 되면 십중팔구는 작은 요구에 동의하게 된다. 직접적으로 작은 요구를 하는 것과 비교하면 타인의 동의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자주 그런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매일 집에 일찍 돌아오게 하려면? 1시간 씩 텔레비전을 보게 하려면? 아이에게 30분간만 허락한다고 말하면 된다. 아이가 재삼재사 요구하면 당신은 그저 1시간 요구를 들어주면 아이는 더 이상 조르지 않는다. 당신이 이미 양보하였기 때문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좌전』도 말한다. “군주가 된 자는 장차 덕을 밝히고 어긋나는 것을 막아서 모든 관리들이 임조함에 있어 혹시나 자신이 할 일에 빠뜨린 부분이 있을까 두려워한다.”1) 옛말이 있다. “속임수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성심으로 감동시키고 ; 포악한 사람을 만나면 온화함으로 훈증하며 ; 사악함에 빠져 사리사욕만 꾀하는 사람을 만나면 대의와 절조로 격려하면 천하에 나의 도야 중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된다.”2)(『채근담菜根譚』) 무슨 말인가? 교활하고 속임수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진실한 마음으로 그를 감동시키고 ; 성정이 광폭하고 뒤틀린 사람을 만나면 온화한 태도로 그를 감화시키며 ; 행위가 부정하고 사리사욕을 취하는 자를 만나면 대의명분과 절의로 그를 격려하라는 말이다. 만약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천하사람 모두 우리의 미덕에 감화될밖에. 세상 사람은 각인각색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인생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사회 문제에 적응해 나간다. 우리는 불변으로 만변에 응해야 한다. 성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덕으로 사람을 따르게 한다는 마음으로 각색의 사람에 적응하여야 한다. 사리에 어둡고 완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심으로 대해야 한다. “정성이 지극하면 쇠와 돌도 열린다.” 그렇지 않던가. 나의 덕으로 감화시켜 타인의 양지(良知)를 개발케 한다면, 사리에 어둡고 완고한 사람도, “아침에 사람이 행해야 할 도리를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는다 해도 좋다.”(『논어·이인里仁』) 라는 지경에 이르는 일도 적지 않다. 이것도 임종할 때 깨닫는 것과 같다. 덕으로 교화하는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완고한 사람도 그럴진대 하물며 일반사람이야 말해 무엇 하랴. 나의 미덕으로 그와 더불어 있으면 결국 낙후된 사람을 덕으로 감화시킬 수 있을 터이다. 넓은 하늘에 깔린 별들 모두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과 같다. 사람마다 자신의 생존 공간이 있다. 우리의 생존 공간은 종횡으로 얽혀있다. 입체적으로 교차한다. 어깨가 부딪치고 발뒤꿈치가 잇닿은 듯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심리 공간은 넓고도 넓다. 한번 봐보시라, 세상을 보는 감각은 모두가 다르지 않던가. 마음속에 고뇌와 사욕으로 꽉차있다면 모든 우주를 가진다고 하여도 공간은 너무 좁고 너무 답답하다고 느낄게 될 것이다. 반대로 사람마다 넓은 심리 공간을 지닌다면, 타인은 존중하는 도리를 깨닫는다면, 고통과 억울함을 견디어낼 수 있다면 충돌과 마찰이 감소될 것이다. 갈등이 감소할 것이다. 즐거움은 커질 것이다. 빛은 찬란하게 비출 것이다. 자연스레 생존 공간도 넓고도 넓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수칙을 지켜야 한다. 믿음으로 입신하고 믿음으로 세상을 대하며 믿음으로 일을 처리하여야 한다. 믿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그렇게 정정당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도덕이 결핍된 사람이 지위가 높으면 탐욕의 성정이 취약한 고리를 뚫고 들어오게 된다. 그때 관리가 된 자는 석서(碩鼠)로 변하게 된다. 『주역』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석서처럼 탐욕스런 사람이 높은 지위에 승진하면 그의 행위가 정당하더라도 앞길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왜 그럴까? 그런 사람은 알맞지도 않고 바르지도 않기〔부중부정(不中不正)〕 때문이다. 승진한 이후에 다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향상하려 노력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 멸망을 자초할 게 틀림없다. 높은 지위에 있을 때 넓은 도량을 갖추어야 한다. 개인 득실을 따져서는 안 된다. 밝은 심성을 가져야 한다.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이익이 있음은 당연하다. ***** 晉卦 ䷢ : 화지진(火地晉), 리(離 : ☲)상 곤(坤 : ☷)하 진(晉)은 편안하게 다스리는 제후이니, 여러 차례 말을 하사하고, 낮에 세 차례 접견을 한다.(晉,康侯,用錫馬蕃庶,晝日三接.) [傳] 진괘는 「서괘전」에서 “사물은 끝까지 장성할 수 없기 때문에 진괘로 받으니, ‘진(晉)’은 나아간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사물은 장성해서 끝내 그치는 이치가 없어서 융성해지면 반드시 나아가니, 대장괘(大壯卦䷡) 다음에 진괘가 있는 이유이다. 괘는 이괘가 곤괘 위에 있으니 밝음이 땅 위로 나온다. 해는 땅에서 솟아나서 하늘로 올라가 더욱 밝아지기 때문에 진(晉)이 되니, ‘진(晉)’은 나아가서 광명하고 성대하다는 뜻이다. 모든 사물은 점차 융성하게 됨을 나아감으로 여기기 때문에 「단전」에서는 “진(晉)은 나아감이다”라고 했다. 괘에는 덕을 갖춘 괘도 있고 덕이 없는 괘도 있는데 그 마땅함에 따른다. 건괘(乾卦䷀)와 곤괘(坤卦䷁) 이외의 괘에서 ‘원형(元亨)’이라 말한 괘는 진실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며, ‘리정(利貞)’이라 말한 괘는 부족하지만 공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같지 않은 경우는 혁괘(革卦䷰)와 점괘(漸卦䷴)가 이것이니 괘에 따라서 확인할 수 있고, 나아감이 융성하지만 덕이 없는 이유는 갖출 필요가 없어서이다. 나아감이 밝고 융성하기 때문에 다시금 형통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큰 밝음에 순종하니 바르게 하라고 경계할 필요가 없다. 1) 君人者將昭德塞違,以臨照百官,猶懼或失之. 2) 遇欺詐之人,以誠心感動之;遇暴戾之人,以和氣薰蒸之;遇傾邪私曲之人,以名義氣節激勵之.天下無不入我陶冶中矣.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진괘(晉卦) 진(晉)은 전진, 진보, 승진 뜻이다. 승진은 기쁜 일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승진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 직업을 사랑하고 덕으로 사람을 따르게 만들며 공헌한 사람만이 승진할 수 있다. 게다가 승진은 점진적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배고프다고 밥그릇을 통째로 먹을 수 없듯이 조급하게 서두르면 되는 일이 없게 된다. 승진할 생각이 있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승진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승진은 너무 빨리 할 수 없다. 너무 빠르면 추위를 견디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게 된다. 승진할 생각이라면 인원을 경영할 수 있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참여해 모든 직원과 우의를 나룰 기회를 얻어야 한다. 당신이 승진할 생각이 있다면 먼저 어떤 사람이 쉽게 승진하는가를 확실하게 파악하여야 한다. 『주역』은 유순한 사람이 쉬이 승진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바로 태양과 대지와 같다고 ; 태양은 대지를 비춘다. 대지 만물은 유순하게 의지해 따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제후는 천자에게 공손하고 의지해야만 끊임없이 승진할 수 있다. 공손하고 순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책에 충실해 맡은 바 본분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기 직업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영지를 잘 다스려야만 천자의 신임과 표창을 받아 승진할 수 있다. 직장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일하는 직업과 업무를 사랑하는 것이다. 정확한 태도로 각종 직업 업무를 대하는 것으로 업무에 대한 행복감, 영예감을 배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맡은 바 업무에 전심전력하는 것은 엄숙한 태도로 자기 업무를 대하는 것이다. 맡은 바 본분을 다하고 직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직장을 사랑하고 본분을 다하는 정신은 상통한다. 높은 표준으로 엄격한 요구로, 전심전력으로 자기의 직책과 직무에 충실히 하는 것이다. 직장과 직분을 사랑하는 것은 직원이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이다. 어떤 일에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면 무슨 일이든 간에 전심전력하여야 공을 세울 수 있다. 삼백육십 개 수많은 분야, 업종마다 전문가, 달인이 나올 수 있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갖가지 직업 모두 전문가가 있다. 전문가가 되는 전제 조건은 직장과 업무를 사랑하는 데에 있다. 전심적력으로 자신의 업무를 하고 사랑하여야 한다. 업무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어떤 곳에서든지 전심전력하고 진취적인 태도로 직무를 수행해야만 비로소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성공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거머쥘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직장과 직무를 사랑하는 것은 보편적이며 평범한, 공헌할 수 있는 정신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천 년의 문명발전사에서 가장 눈부신 것이 있다 : 본분에 충실하고 성심성의껏 공헌하는 것이다. 찬란한 빛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헌하여야 할까? 우리가 영원히 기업 형상을 옹호하고 있다라는 것, 기업과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나타내야 한다. 기업의 직원이 되었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회사의 형상을 옹호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업 형상을 옹호는 것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두 방면에서 체현된다. 단정하고 장중하며 틀에 맞는 언행, 업무를 사랑하는 정신과 사람과 일에 대하여 성실히 책임지는 태도 모두 기업의 형상을 제고시킨다. 직원이라면 기업과 동고동락하여야 한다. 기업이 발전해야만 자기가 발전할 공간과 기회가 주어진다. 모든 직원의 가치는 기업 가치를 세우는 데에 있다. 기업이 성공하는 것을 벗어난 자아 가치의 체현은 공허한 말이다. 직원이 자아 가치를 실현하는 것 또한 기업을 발전시키는 근본적인 동력이다. 양자는 상호 의존관계이며 상호 추동관계에 있다. 개인이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게 되면 평범한 직위에서도 평범하지 않은 사업을 이루어낼 수 있다. 인도의 작가 타고르(Tagore)는 말했다. “열매의 봉사는 존귀하고 꽃의 봉사는 달콤하지만 내 봉사는 겸손한 헌신 그늘로 잎새의 봉사가 되게 하소서.”1)(『길 잃은 새』) 직장과 직무를 사랑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은 늘 아름다운 꽃을 위한 평범한 녹색의 잎사귀가 되지만 실제로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승진은 기쁜 일이다. 그런데 최초의 승진은 그렇게 쉽지 않다. 『주역』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사람이든 사업이든 최초는 모두 어렵다, 길하지 않다. 그저 승진할 때만 길하다. 승진 이후에는 길하지 않다.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을 때 구원의 손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기는 무척 어렵다. 그런데 그때, 정확한 길을 견지하기만 하면 여전히 길하다. 당신이 타인에게 신뢰를 받기 어렵기는 하지만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는 상태에서 현실을 대면하면 재난도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일을 시작하는 초기에, 너무 대우가 좋고 나쁨에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 월급이 많고 적음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확실한 도리다. 부단히 노력하는 동시에 의기가 투합하고 지향하는 바가 같은 사람과 단결하는 데에 주의하여야 한다. 『주역』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여러 사람의 신뢰와 지지는 지향하는 바에서 나온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높이 오를 수 있다. 윗사람의 원조를 받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심지어 고립무원이 되기 쉽다. 그래도 지향하는 바를 견지하면 복이 다가오게 된다. 때가 되어 상황이 호전되면 승진할 수 있다. 처음 떠오르는 태양과 같다. 점점 올라온다. 부드럽고 따스한 빛이 대지와 만물을 비추게 된다. 사람에게 복음을 준다. 사람에게 따스함을 선사한다. 그 다음에 광명의 덕행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우수한 품행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타인에게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게 된다. 『대학』은 말한다. “큰 학문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에 있다.” 1) The service of the fruit is precious, the service of the flower is sweet, but let my service be the service of the leaves in its shade of humble devotion.(『Stray Birds』)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장괘(大壯卦) 대장(大壯), 위력이 강대함, 성대하다 뜻이다. 강건할 때 너무 지나치게 자신의 힘을 써서는 안 된다. 사업이 순리적으로 풀릴 때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쩌면 이미 진퇴양난의 상태에 빠져 있을 수 있다. 반드시 적립금을 준비해 두고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일찌감치 준비해둬야 한다. 반드시 기억해 두라 : 세상 모든 것이 극성(極盛)에 이르면 쇠로(衰老)해진다.(『노자』) 지나치게 끝까지 고집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노자(老子)가 말했다. “남을 아는 것을 지(智)라 하고, 자신을 아는 것을 명(明)이라 한다. 남을 이기는 것을 유력이라 하고,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이라 한다.”(『노자』) 진정으로 강하다 함은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것이다. 양(羊)을 보자. 어릴 적에는 온순하지만 성장하여 다 자라고 난 후에는 용맹스럽기 그지없다. 힘이 넘친다. 자주 뿔로 울타리를 들이받는다. 벗어나 대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이다. 결과는?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지만 울타리는 꼼짝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뿔이 울타리 위에 걸려 버린다. 끝내 몸을 뺄 수 없게 된다. 『주역』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때의 양은 극단의 강함이 아니라 경솔하게 실행에 옮긴 것이다. 부주의한 것이다. 빨리 고치지 않으면 후회 막급할 수밖에 없다. 울타리는 휘저어져 망가진다. 양은 여전히 계속해서 장대해진다. 현재 상황에 안정을 찾지 못하여 곳곳으로 돌아다니다, 결국 두렁 속에 빠져버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장대해진 후 정확한 목표가 없고 순수한 동기가 없다면 물극필반(物極必反,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의 단계에 들어가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훌륭하고 선한 동기와 고상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의 원동력을 잃기 쉽다. 일반인의 노력에는 명예, 이익, 권력, 세력, 지위를 추구하지 않은 게 없다. 그것을 추구하는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죄악은 더더욱 아니다. 문제는 추구하는 과정에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는 게 아닌가? 타인을 해치지는 않는가? 아니면, 도덕을 해치지는 않는가? 추구하는 과정에서 향상심, 적극성은 있어야 한다. 다만 이해득실을 따지는 마음은 적게 갖는 게 좋다. 그래야 생활이 더 유쾌해 진다. 자신의 집념 때문에 타인을 해치지 않게 된다. 적극적이라 함은 일종의 태도다. 그 자체는 잘잘못이 없다. 동기가 불순하고 목표가 바르지 않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목표를 달성한 후 득의양양해 하거나 반대로 극히 고통스럽다면 그것도 잘못된 것이다. 오직 목표가 순수하고 도달하는 방법이 정확해야만 적극적 태도가 장점이 될 수 있다. 자신과 타인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 우리 개개인에게는 추구하는 목표가 있다. 실제에 맞는 정확한 목표를 위하여 분투하면, 설령 과정에 고난이 있다손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객관적 실제에 위배된 목표를 위하여 끈질기게 나아간다면, 그런 ‘한번 마음만 먹으면 끝까지 해낸다’는 마음은 ‘용을 도살하는 기능 ;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도 써먹을 길이 없는 것’처럼 가소로울 따름이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가 말했지 않는가, 가장 따분한 것은 따분함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탐냄은 사람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공통성이다. 어떤 때에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움켜쥐고 포기하지 않으려 하면서 스스로 고통스러워하고 스트레스 받으며 심지어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한다. 재물과 여색을 탐하면서 자신의 아름다운 전도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 심지어 생명을 해치는 일이 벌어진다. 집요하게 추구하고 수확에만 골몰한다면, 잠시 소유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하여 고집한다면, 일득일실에 끙끙 앓게 되는 오류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심지어는 극단에 빠지게 된다. 외적 사물에 연연하게 되면 평생 그 굴레를 벗어날 방도를 찾지 못하게 된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이 말은 스스로 분발시키는 명언이다. 맞다. 세월의 변화 속에서 열정적으로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기진맥진하고 상처투성이가 됐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힘들고 어려운 세월 속에서 배회하고 헛되이 보내게 되는 지경이 이르러서야 잔혹한 현실을 문득 깨닫게 되리라. 우리가 너무나 많은 헛된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리라. 집착이라는 것도 난관에 부딪치고 난 후 어리석은 고집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리라. 우리는 실제에 근거하여야 한다. 외부 요인과 자신의 조건을 살피지 않고 열 내서는 안 된다. 경솔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마음속 그 가장 높은 산을 위하여 참혹한 실패 뒤에 그 실패 원인을 깊이 생각하고 나서 적당한 시기에 포기를 선택하여야 한다. 능력 이외의, 힘이 미치지 않는 몽상을 포기하여야 한다. 실제에 맞지 않는 목표는 버려야 한다. 아쉬움 속에 손을 놓는 것이 가장 큰 해탈을 얻는 것이다. 그러면 유치한 격정이 성숙과 온건으로 대체됐음을 발견하게 되리라. 그렇게 하여 생명이 나날이 풍성해지는 것을 알게 되리라. 이러한 포기가 현명한 지혜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적당한 시기에 포기하는 것은 지혜다. 자신에게 내재된 잠재력과 외부 요인을 밝게 살펴볼 수 있게 만든다. 피폐해진 자신을 조정할 수 있게 만든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게 되고 즐거우면서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집착은 지나친 욕망에 따른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유하고 있고 또 끝없이 잃어버리고 있다. 금전에 연연하면, 명리에 연연하면 끝내 지불해야 하는 것은 건강이요 심하면 생명까지 버리게 된다. 적당한 시기에 포기하면 생명을 보호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잔혹한 경쟁은 엄중한 스트레스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담을 가지게 만든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젊은 인재들의 ‘과로사’가 끊이질 않는다. 오랜 기간 과부하가 걸린 채로 전전하기에 그런 젊은 생명이 일찍 시드는 것이다. 인생은 짧다. 그럼에도 생명을 무의미하게 마모시키는 것은? 장래를 위하여 생각하자. 먼 미래를 위하여 고민하자. 우리는 조금 일찍 재부에 대한 집요한 추구를 버릴 생각을 하지 않는가? 아직도 권력을 집요하게 쫓고 있지는 않는가? 인생에는 아쉬움이 많다. 세상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포기는 불현 듯 생각이 떠오른 마음에 따라 한 행동이어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퇴각하는 책략도 아니다. 객관적 상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다. 냉정이다. 굳센 의지의 결과요 구현이다. 정확한 포기는 성공의 선택이다. 삶에 있어 추구는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목표에 부합하여야 한다. 맹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포기는 가망이 없는 기다림에서 벗어나게 하여 우리를 새롭고 경쾌한 길로 들어서게 만든다. 명철한 지혜를 가지게 만들 것이며 새로운 소득을 얻게 만들 것이다. ***** 大壯卦 ䷡ : 뇌천대장(雷天大壯) 진(震: ☳)상 건(乾: ☰)하 대장은 곧음이 이롭다.(大壯,利貞.) 「상전」에서 말하였다 : 우레가 하늘에 있는 것이 대장(大壯)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예가 아니면 실천하지 않는다.(象曰,雷在天上,大壯,君子以,非禮弗履.) [傳] 대장괘는 「서괘전」에서 “돈(遯)은 물러남이다. 그런데 물건은 끝내 물러날 수 없기 때문에, 대장괘로써 받았다”라고 했다. 돈은 멀리 떠난다는 뜻이고, 장(壯)은 나아가서 장성하다는 뜻이니, 돈은 음이 자라서 양이 물러나는 것이며, 대장은 양이 장성한 것이다. 쇠하면 반드시 장성하면서 사라지고 생장함이 서로 의존하기 때문에, 물러났다면 반드시 장성하게 되므로, 대장괘가 돈괘(䷠) 다음이 되는 이유이다. 괘는 진괘(震卦☳)가 위이고, 건괘(乾卦☰)가 아래인데, 건괘는 굳세고 진괘는 움직여서, 굳셈으로써 움직이는 것이 대장의 뜻이다. 굳센 양은 크니, 양이 자라서 이미 중을 지났다. 큰 것은 장성함이며, 또 우레의 위엄과 진동이 하늘에 있는 것 또한 대장의 뜻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음으로, 소인을 멀리하면 자신은 소인이 모해하려는 목표에서 효과적으로 멀어진 수 있다. 소인과 접촉하면 내뱉어진 별스럽지 않은 말일지라도 소인은 손길이 가는 데로 집어내어 커다랗게 만들어버린다. 그러면 당신이 해를 당하게 된다. 그 다음으로, 소인을 멀리해야만 우리 자신이 저속하지 않게 된다. 근묵자흑이라 하지 않았는가. 소인과 너무 가까이하면 소인에게 오염될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의 인격과 형상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 소인이 내뿜는 오탁의 기운은 쉬이 없애지 못한다. 나쁜 것은 사라질지언정 그 악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나쁜 잔재는 쉬이 가시지 않는 법이다. 망령이 어디 쉬이 사라질까. 수천 수백 년 동안 사회를 좀먹지 않았던가. 소인이 득세하는 것은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음험한 소인은 여전이 우리 생활에 많은 번거로움을 가져온다. 위연(魏延)은 촉(蜀)나라 장군이다. 용감하고 책략에 뛰어났으며 총명하고 재능이 뛰어났다. 여러 차례 전공을 세운,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인재였다. 유비(劉備)가 살아있을 때에는 그를 대단히 중용하였다. 제갈량(諸葛亮)도 그를 무척 중시하면서 그를 군의 골간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대다수는 위연이 제갈량의 계승자가 되리라 여겼다. 그런데 제갈량은 일찍부터 장완(蔣琬)을 후계자로 정했다. 후주 유선(劉禪)에게 써서 보낸 편지에 제갈량은 말했다. “신이 만약 불행을 당하면 나중 일은 마땅히 장완에게 넘기소서.” 제갈량은 계속해 위연을 중용했으나 그 인물은, “단지 쓸 뿐, 의탁할 수는 없었다.” 위연은 전투에는 능하였으나 변덕스러운 소인의 마음을 가졌기에 그랬다. 제갈량은 군사로 매번 결단해야 했다. 촉나라의 생사존망을 모두 관장하고 고려하여야 했다. 그렇기에 사람을 씀에 있어서는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 하면서 재덕을 겸비한 인물을 선발해 중용하였다. 빠져나와야만 할 때는 단호하게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야 길하다. 그러한 결단은 소인은 내릴 수 없다. 소인은 일득일실에 끙끙 앓으면서 망설이고 결단하지 못한다. 지금의 후퇴는, 내일 더 빠른 전진을 위한 것! 소인은 한 손으로는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한 손으로는 아랫사람을 짓누른다. 소인에게 미움을 사면, 그는 앙심을 품어서 당신을 떼어내려 하고 밟아 죽이려 하고 제거하려고 한다. 화근을 뿌리째 없애지 못하면 윗사람의 ‘성지(聖旨)’라고 거짓으로 전하며 윗사람을 기만하고 아랫사람을 속이면서 제멋대로 나쁜 짓을 저지른다. 윗사람 앞에서는 고의로 사실을 외곡하고 이간시키면서 당신을 모함해 외톨이를 만든다. 소인은 이익을 중시하고 도의를 경시한다.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의리도 저버린다. 이익을 보면 곧바로 나서고 곤란한 상황이면 뒤로 물러선다. 결탁하기를 좋아하지만 단결하지는 않는다. 그룹을 만들기를 좋아하면서 대세를 무시한다. 모순과 충돌을 이용해 패거리를 짓는다. 공작 앞에서는 까마귀가 흉측하다 말하고 까마귀 앞에서는 공작이 헤프다고 말한다. 돼지에게는 원숭이가 시끄럽다고 말하고 원숭이에게는 돼지가 우둔하다고 말한다. 양다리를 걸치며 겉과 속이 다르다. 쌍방 앞에서는 자신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한다. 소인은 온갖 궁리를 다하여 ‘처세술’을 연구하고 쉽게 총애를 받으며 뜻을 얻는다. 그러면서 윗사람의 심복이 된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윗사람의 사고력은 소인에게 미혹돼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충신과 간신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소인은 재앙의 근원이다. 한 부서에 소인이 있게 되면 늘 소란스럽고 불안하게 된다. 내부의 대인관계가 긴장하게 되고 파별 투쟁이 극렬하게 된다. 소인은 윗사람만 염두에 둔다. 군중은 절대 안중에 두지 않는다. 소인은 윗사람이 스스로 파멸을 초래하게 만드는 원흉이다. 소인을 멀리하라, 군자와 더불어 있으라. 군자는 도의를 안다. ***** 遯卦 ䷠ : 천산돈(天山遯) 건(乾: ☰)상 간(艮: ☶)하 돈(遯)은 형통하니, 소인은 바르게 함이 이롭다. 돈(遯)은 형통하니, 조금 바르게 함이 이롭다.(遯,亨,小利貞.) 「단전」에서 말하였다 : 돈(遯)은 형통함이란 도피하여 형통한 것이다.(彖曰,遯亨,遯而亨也,) [傳] 돈괘는 「서괘전」에서 “항괘(恒卦)는 오래함이니 물건은 그 한 자리에 오래있을 수가 없으므로 돈괘로써 그 다음을 받았으니, 돈(遯)이란 물러남이다”라고 했다. 오래되면 떠나감이 있음은 서로가 필요로 하는 이치이니, 돈괘가 항괘를 잇는 까닭이다. 돈(遯)은 물러남이며 피함이니, 떠나감을 말한다. 괘의 형상은 하늘 아래에 산이 있는데, 하늘은 위에 있는 물건이고 양의 성질이 위로 올라가며, 산은 높게 솟은 물건이니 형체가 비록 높게 솟았다고 하지만 본체는 그치는 물건으로 위로 능멸하는 상이 있지만 그치고 나아가지 않고, 하늘은 이내 위로 올라가 떠나버리니, 아래에서는 능멸하고 위에서는 떠나가므로 이는 서로 어긋나 도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피해 떠나려는 뜻이 있다. 두 음이 아래에서 생겨 음이 자라나 장차 성대해지고 양은 사그라져 물러나니, 소인이 점차 성하게 되고 군자는 물러나 도피하기 때문에 돈괘가 되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돈괘(遯卦) 돈(遯)은 은퇴, 도피다. 도망쳐 숨다 뜻이다. 음기가 자라나고 양기가 숨는 것을 대표한다. 소인이 생장하고 군자가 멀리 사라진다. 풍설이 난무하기 시작하니 현사는 은퇴한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핍박받아 하직하는 사람이 생겨나기도 하고 도주하는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소인을 만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소인은 막기 어렵다. 사람은 살다보면 소인을 만나게 된다. 이른바 소인이라 함은, 음험하고 교활하며 본심을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을 가리킨다. 소인은 정도 의리도, 믿음도 덕도 없다. 권모술수에 능하다. 자주 중상모략 한다. 가장 비열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고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함정을 파고 덫을 놓으며 쌍방을 부추겨서 시비를 일으킨다. 농간부리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지껄인다. 헛소문을 퍼뜨리고 말썽을 일으키고 터무니없이 날조한다. 말은 달콤하게 하면서 속으론 늘 남을 해칠 생각만 하고 타인을 팔아먹는다. 이 모두가 소인의 특기이고 절기다. 무릇 소인은 윗사람의 호오를 열심히 연구한다. 아무 때나 윗사람의 희로애락의 ‘청우계’를 관찰한다. 윗사람의 말과 안색을 살펴보고 그 의중을 헤아려 비위를 맞춘다. 순종하며 환심을 산다. 『주역』은 우리에게 말한다 : 산이 높으면 하늘은 뒤로 물러선다. 산이 아무리 높아봐야 하늘에 닿을 수 없다. 소인을 멀리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소인을 증오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아무 엄격하게 행동하면서 소인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 늘 있는 소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첫째, 가능한 한 소인에게 미움을 사지 말라. 소인은 불쾌하게 만들 필요조차 없다. 소인은 타인의 약점을 들춰내는 데에 유달리 능하다. 지극히 조그마한 은원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복수하려고 벼른다. 그렇기에 차라리 군자에게 미움을 살망정 소인에게는 미움을 사지 말라. 일단 소인에게 찍히면 귀찮은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唐) 왕조 명장 곽자의(郭子儀)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안사의 난’이 평정된 후 공이 크고 권력이 세진 곽자의는 소인의 질투를 받지 않기 위하여 무척 조심하고 신중하였다. 한번은, 곽자의가 병을 얻자 관원 노기(盧杞)가 병문안을 왔다. 그는 역사에 명성이 자자할 정도로 간특한 소인이었다. 용모가 추하여 당시 사람들은 그를 반송장으로 취급하였다. 그래서 그를 보면 입을 가리고 킬킬 웃어대지 않는 부녀자가 없을 정도였다. 곽자의가 그가 찾아왔다는 문지기의 말을 듣고는 곧바로 가족에게 얼굴을 내밀지 말고 피하라고 하고는 자기 혼자 객실에서 손님을 맞았다. 노기가 떠나자 집안사람들이 병상에 모여들어 곽자의에게 물었다. “병문안을 온 모든 관원들 앞에서는 우리에게 피해있으라고 하지 않으셨는데, 어찌하여 저 사람이 왔을 때는 우리에게 숨어있으라고 하셨는지요?” 곽자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가 모르는 게 있다. 저 사람의 생김새만 추한 게 아니다. 내면도 음험하기 그지없다. 그대들이 그를 보고 실소를 참지 못하여 웃음소리를 내게 되면 저 사람은 분명 마음속에 원한을 품는다. 저 사람이 권력을 잡게 되면 우리 가족은 재앙을 피하기 어렵게 되기에 그랬다.” 나중에 노기가 재상이 되자,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이전에 자기를 비웃거나 멸시하였던 사람들을 모두 없애버렸다. 유독 곽자의만은 존중하였다. 소인에게 미움을 사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불필요한 갈등과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둘째, 군자는 소인과 다툴 수 없다. 어째서 군자는 소인과 다툴 수 없는 것인가? 소인은 도덕규범을 무시하고 상례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소인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교활한 소인이 델포이(Delphi) 신탁이 가짜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서 다른 사람과 내기하였다. 약속된 날짜에 그는 참새 한 마리를 겉옷 속에 숨겨서 왔다. 신전에 들어서서 신 앞에서 자신의 품속에 있는 물건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신에게 물었다. 소인은 신이 자신의 품속에 있는 참새가 죽었다고 하면 산 채로 신 앞에 내놓을 것이고 살았다고 말하면 참새를 몰래 죽여서 신 앞에 내놓을 심산이었다. 신은 그의 졸렬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간사한 계략을 알아채고는 그에게 말했다. “이놈. 잘난 체 하지 말거라. 물건이 내 품속에 있지 않느냐. 죽었는지 살았는지 네가 말하면 될 일이 아니더냐!” 소인은 덕성도 없고 신의도 없다. 목적을 달성하려 양아치와 같은 수단을 총동원한다. 군자는 동일한 상례로는 소인과 다툴 수가 없다. 그렇기에 군자는 소인을 이기기 어렵다. 셋째, 군자의 도로 소인을 대하면 된다. 어쩔 수 없이 소인과 정면으로 맞붙어 싸우게 된다면 군자의 도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 자기를 해하려는 소인을 대할 때는 절대 그 사람이 썼던 방법으로 그 사람을 다스리려 해서는 안 된다. 소인이 당신을 모해하는 과정은 그 본성이 폭로되는 과정이다. 군자의 도로 소인을 대하면 모두가 당신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을 인정하는 과정이 된다. 대중은 모두 스스로 시비를 판단하는 표준을 가지고 있다. 인심은 저울이다. 소인은 불의를 저지르기에 언젠가는 모두가 그의 낯짝을 간파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시장을 잃게 되고 길바닥에 나온 쥐새끼마냥 숨을 곳이 없게 된다. 넷째, 소인을 멀리하라. 먼저, 소인을 멀리하면 효과적으로 우리를 이용하려는 소인을 피할 수 있다. 소인은 근거가 전혀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서 시비를 부추긴다. 소인이 떠들어대는 말을 듣지 말고 소인의 미혹에 빠지지 않으면 된다. 소인이 이용하려고 하는 바를 피하면 된다. 그러면 자신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원래 프로이트 심리학파 영향을 받은 결정론 심리학자였다. 그런데 나치 수용소에서 처참한 세월을 보낸 후 독창적인 품격을 지닌 심리학파를 이루었다. 프랭클의 부모, 처자, 형제는 모두 나치의 마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본인도 나치 수용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어느 날, 벌거벗은 채 우두커니 수용실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어쩌면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이 그를 확연대오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극단적인 환경아래 사람은 결국 최후의 자유를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기 태도를 선택할 자유다.” 무슨 뜻인가? 한 개인이 극단적인 고통 속에서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을 때, 의연히 스스로 자신의 인생태도를 결정하게 된다는 말이다. 가장 큰 고난 속에서 프랭클은 적극적, 진취적인 태도를 선택하였다.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에 그려 넣은 것은, 석방된 후 어떤 강단에 서서 자신이 겪은 경험을 어떻게 학생에게 강의할 것인가, 이었다. 그런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사유방식에 근거하여 옥중에서 자신의 의지를 연마하면서, 자신의 영혼이 감옥의 금고를 초월하여 자유의 세상으로 임의대로 날아다녔다. 프랭클이 옥중에서 발견한 사유 준칙은 바로 우리 매 사람이 성공을 추구하는 데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인생태도, 적극적이며 주동적인 태도였다.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사람은 적극적이며 주동적인 사람과 비교하였을 때 큰 차이가 존재한다.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사람은 결국 자신이 환경과 타인에게 좌우된다고 느낀다. 타인이 알려주지 않으면,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자신은 그저 소극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환경이 좋지 않을 때에는 하늘을 원망하고 타인 탓으로 돌린다. 운명이 안배하기를 바란다. 귀인의 도움을 기다릴 뿐이다. 어떤 일에도 타인에게 의지할 뿐 자신이 주도하지 못한다.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다.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사람은 어떤 환경에 처했든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유지한다. 그래서 스스로 책임감을 지니게 된다. 운명을 자기 손으로 조종한다. 자기는 결코 환경이나 타인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다고 자신한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주도적으로 일을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여긴다. 현대화된 기업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하는 일은, 더 이상 기계식 중복 노동이 아니라 독립된 사유를 가지고 스스로 주동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이야기하였다. “미래의 역사학자는 말할 것이다. 본 세기의 가장 중요한 일은 기술이나 네트워크 혁신이 아니라 인류 생존 환경의 중차대한 변화라고 할 것이다. 본 세기에서 사람들은 더 많은 선택을 하여야 한다. 반드시 적극적으로 자신을 관리하여야 한다.” 그렇기에 오늘날 대다수 우수한 기업은 인재에게 기대하고 있다. 적극적이고 주동적이어야 한다. 열정이 충만하여야 한다. 융통성 있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현대화된 기업에서 성공을 거둘 생각이 있거들랑 반드시 자신이 주동이 된다는 의식을 배양하는 데에 노력하여야 한다. 일을 함에 있어 용감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주동적으로 자신이 업무 목표를 설정하여야 한다. 끊임없이 방법과 방식을 고쳐야 한다. 이외에 자신의 능력을 배양하고 확장하여야 한다. 상급자나 동료 앞에서 자신의 장점을 서슴없이 표출하여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피동적으로 타인이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가리켜 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주동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이해하여야 한다. 계획하여야 한다. 그런 후에 온힘을 다하여 완성시켜야 한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성공을 거둔 인물을 생각해 보라. 어느 누가 하자는 대로 승낙한 사람이 있던가.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 어디 있던가. 적극적이고 주동적이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만 도달하지 못하는 목표는 없게 된다. 자기의 학업과 연구 항목을 다루는 데에 있어 어머니의 마음이 필요하다. 어머니가 자식을 대하듯이 그렇게 책임지고 전심전력을 다하며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한다. ***** 恒卦 ䷟ : 뢰풍항(雷風恒) 진(震: ☳)상 손(巽: ☴)하 항(恒)은 형통하여 허물이 없으니(나), 곧음이 이로우니, 가는 것이 이롭다.(恒,亨无咎,利貞,利有攸往.) 「상전」에서 말하였다 : 우레와 바람이 항(恒)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서서 방소(方所)를 바꾸지 않는다.(象曰,雷風,恒,君子以,立不易方.) [傳] 항괘(恒卦)는 「서괘전」에서 “부부의 도는 오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항괘로 받았다”고 하였으니, ‘항(恒)’이란 오래한다는 것이다. 함괘(咸卦:䷞)는 부부의 도이니, 부부는 종신토록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함괘의 뒤에 항괘로써 받았다. 함괘(咸卦䷞)는 막내아들이 막내딸 아래에 있으면서 남자로써 여자에게 낮추니 남녀가 사귀어 감응하는 의리이고, 항괘는 맏아들이 맏딸 위에 있으면서 남자가 높고 여자가 낮으니, 부부가 집에 있는 항상 된 도이다. 사귀어 감응하는 실정을 논한다면 나이가 어림은 친절한 것이고, 존비의 차례를 논한다면 나이가 많음은 마땅히 신중하고 바르게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태괘(兌卦☱)와 간괘(艮卦☶)가 함괘가 되었고, 진괘(震卦☳)와 손괘(巽卦☴)가 항괘가 되었다. 남자가 여자 위에 있는 것은 남자가 밖에서 활동하고 여자가 안에서 유순하니 인륜의 떳떳함이기 때문에 항괘가 되었고, 또 굳센 양이 위에 있고 부드러운 음이 아래에 있는 것은 우레와 바람이 서로 함께 하며 공손하면서 움직이고 굳센 양과 부드러운 음이 서로 호응하는 것이니, 모두 항괘의 뜻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항괘(恒卦) 항(恒)은 장구하다, 꾸준하고 바뀌지 않는다 뜻이다. 장구하게 도를 꾸준히 지키는 것이다. 천지의 도는 항구하면서도 끝이 없다. “곧음이 이로우니 가는 것이 이롭다.” 새로운 시작은 반드시 있다. 일월이 하늘에 있으니 장구하게 빛을 발한다. 사계절이 교체하며 변하니 영구히 운행할 수 있다. 성인은 꾸준히 그 도를 지키니 천하의 도덕, 아름다운 풍속을 발육 생성시킨다. 끈기가 부족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세상에 살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포부(지향)가 없는 것이다 ; 굳고 강한 끈기로 노력하면서 자기 포부를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성취가 크고 적음은 왕왕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굳고 강한 끈기가 있으면 끝내 소득이 생긴다. 한 개인이 어떤 일을 끈기 있게 계속해 나가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연마하여야 하고 자기 사상을 깨우쳐야 한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여 점차 발전해 나가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끈기가 있어야 한다고 ; 자기의 의지를 견지하면 형통할 수 있다고. 배움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논어』는 이런 사상에 대하여 먼저 ‘태만하지 않음〔무권(無倦)〕’을 이야기하고 나서 다음에 ‘한결같음〔일이관지(一以貫之)〕’를 이야기했다. 더하여 날과 달이 거듭하는 것처럼 세월이 쌓이는 것이고, 순차대로 하나씩 진행하여 차례차례 갈고 닦아 높여나가라고 했다. 자장(子張)이 정치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는 대답하였다. “(관직에) 앉아있을 때는 태만하지 않고 정령을 집행할 때는 충성으로써 하여라.”1)(「안연(顏淵)」) 자로(子路)가 정치를 물으니 공자가 대답하였다. “먼저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고 몸소 수고롭게 하라.” “나태함이 없어야 한다.”2)(「子路」) 이것은 공자가 ‘정치’에 대한 제자의 물음에 답한 것이다. “나태함이 없어야 한다.” 바로 자신에 대하여 근면하고 태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근면함은 부족함을 메울 수 있다. 끈기는 모든 일을 성사시킬 수 있다. 배움도 이처럼 하여야 한다. 사람에 대해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피곤함을 느껴서는 안 된다. 그중 배우려는 자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배움에 나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것은 실천하기 어렵다. “학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하게 된다.”3)(좌종당) 맞지 않던가. 끝까지 고수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그렇게 오래 쌓이고 쌓이면 학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꾸준함이 성공을 위한 법보다. 모든 사람은 이상을 가지고 있다. 이상을 실현하려면 마땅히 초석을 잘 깔아야 한다. 많은 웅덩이가 존재한다. 당연히 좌절이 많다. 평탄하게 깔면 깔수록 어려움은 줄어든다.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한 세대 한 세대가 더욱 강해진다.” 이상을 실현하려면 초석을 튼튼히 깔아야 한다. 많이 쌓고 많이 사고하고 많이 깨달아, 평상시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세밀하게 엮어나가면, 성공이 가까워진다. 이상이 확정된 후 순리대로 이상의 피안에 도달하려면, 이상이 현실이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시간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길을 위하여 평탄한 큰길을 개척하여야 한다. 이상을 위하여 영원히 끊임없이 계속해서 분투하여야 한다. 어떤 좌절이나 어려움도 우리의 의지를 동요시킬 수 없다. 우리는 공동으로 분명하게 기억해 두어야 한다 :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으려면 하루 이틀 시간으로는 안 된다. “항심이 있어야만 쇠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 수 있다.” 정성을 다하여 노력하면 아무리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나태하지 말고 꾸준히 그리고 끝까지 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우레와 바람이 항(恒)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서서 방소(方所)를 바꾸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꾸준하게 지속해 나가면 어떤 난관이 얼마나 있더라도 군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 居之無倦,行之以忠.(「顏淵」) 2) 先之勞之;無倦(「子路」) 3) 學問如逆水行舟,不進則退.(左宗棠)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개할 작품은 화면상에 더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상처의 흔적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장지를 여러번 겹친 바탕을 만들고 장지의 표면을 거친 붓으로 비비고 짓이기고 일그러뜨린 바탕에 퇴색된 갈색의 느낌으로 채색한 그림이었다. 한지 자체의 물성을 이용하여 평평한 표면 위에 한지 자체가 짓이겨지고 일그러진 입체적인 상처와 흔적을 표면적으로 드러낸 작품인데 내 의도가 우연히 잘 드러난 실험작품이라 애착이 간다. 친구가 여러 작품들 중 구입할 그림을 선정해달라 해서 이 애착이 가는 작품을 권유했더니 그 친구가 바로 그 자리에서 작품을 가져갔다. 감사의 기억으로 이 작품을 소개한다. 오늘부로 이 연재를 끝내는 날이라 이렇게라도 이 귀한 지면을 통해 다시금 그 친구의 호의에 감사를 전해보려 한다. 작가들이 보통 개인전이나 기타 전시에 참여하여 발표한 작품들이 팔리는 경우는 보통 친한 지인들이나 가족들이 구입해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팸플릿이나 전시를 보고 아트 딜러나 화랑에서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용케도 작품이 눈에 띄어 인생이 바뀌는 축복받은 작가들도 많다. 적은 예산으로 전시를 치르는 경우는 홍보도 미미할 수밖에 없기에 그만큼 운도 따라야 그림을 팔 수가 있는 기회도 생긴다. 예전 친구가 천재도 재수가 좋아야 한다는 말이 일견 일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세상일은 혼자 힘으로는 안되는 일이 거의 절대적이다. 인연생 인연멸 하는 까닭이다. 작가 스스로 자기가 그린 그림이 맘에 들고 감상자들도 좋아하는 그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리고 나면 늘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평생 맘에 드는 작품 하나를 그리는 것이 작가들이 갖는 꿈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작가 등용문이라는 통념이 있어 국전 중앙일보 동아일보 공모전이 그 역할을 했었다. 나는 이유가 있어 대학때부터 철저하게 공모전 출품을 안했다. 지금은 젊을 때 치기어린 어리석은 생각으로 후회가 되는 면도 없지 않지만 이미 때늦은 일이라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과거에는 보통 개인전을 짧게는 5년이나 10년에 걸쳐 작업에 천착하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 성과를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하는게 다반사다. 오랜 화업을 이어나가고 학벌이나 지위를 갖춰야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 수가 있는 풍토였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1년에 한번씩 또는 그 이상 개인전을 치르는 작가도 많다. 학연.지연등에서 벗어나 자기색깔과 자기만의 밀도를 중시하며 많은 발표를 통해 인지도를 확장시키는 풍토가 만연하다. 그만큼 다양한 발표의 장과 환경이 형성되어 있고 젊은 작가들의 역량도 우수해서 그럴 것이다. 어느게 낫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 스스로의 선택이며 작가 스스로가 자신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많은 공모전과 많은 아트페어가 열려 작품을 공공연하게 팔 수 있는 환경과 공간이 많아지고 있다. 내가 2006년에 참여한 개인전 형식의 단체 부스전은 그 신호탄들이었던 것임을 지나보면서 알게 된다. 무수한 공모전의 난립, 전지구상으로 연결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발달, 지자체들의 문화 콘텐츠 개발 및 문화활동의 저변확대와 활성화 등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미술시장의 활성화와 더불어 작가의 작품 판로 개척과 예술의욕 고취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국제적 미술시장의 유입도 그렇고,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와 독창성으로 무장한 젊은 작가들이 발굴되고 그 위상이 빛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는 것도 참 다행한 일이다. 춥고 배고픈 예술가란 말이 옛날 이야기로 들릴 정도로 예술적 환경이 좋아지긴 하였지만 슬프게도 현실은 아직도 춥고 배고픈 예술가는 늘상 존재한다. 아쉬운 점은 미술의 대중화 속에 대중적 취향을 너무 의식하다보면 작가의 작품의 기원과 예술적 방법론 작품성보다는 표피적, 시각적 화려함에 경도되거나 치중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대중적 일반적 인식을 뛰어넘지 못하는 작품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 오류와 착각의 부작용을 경계해야 하는 것도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옥석을 가려가는 선진문화로의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예술가들도 예외일 수는 없다. ‘예술보다 삶이 먼저다’ 라는 말이 그 예다. 그러나 오랜시간과 고민을 들여 고통스럽게 창작하는 예술가들은 단순히 물질적 궁핍이나 결핍 때문에 자기의 잠재적 무한능력을 쉽게 돈과 바꾸고자 하지 않는다. 속물적 근성의 발로라는 경계에서 흔들리는 자신과 타협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울 수 있겠다.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시절이다. 돈은 분명 삶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중요한 가치들도 많다. 돈을 부정하는 것도 옳다고 할 수 없지만 돈을 신봉하는 것도 옳지 않다. 모든 건 조화와 균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반합도 그렇고 중도 중용의 삶도 그렇다. 많은 작가들이 자기 그림을 들고 많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아트페어에 나가 자기작품이 팔린 걸 자랑삼아 온라인 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는 것을 보면서 시대의 변화를 절감한다. 그러나 전국을 떠돌아 다니는 보부상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내가 판단하고 얘기할 자격은 없지만 거대한 흐름의 변화에 편승해야 한다는 그 조급함들이 약간은 우려스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용기들이 도리어 부러움으로 다가오는 것도 현실적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다. 그 용기와 도전도 부럽고 시각적 완성도와 아이디어와 센스도 부러운 게 솔직한 나의 심경이다. 나를 채찍질하는 마음과 함께 선·후배 작가들에게 말한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없는 날개짓으로 높이 비상들 하라.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생존의 치열한 싸움터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작품에 올인하고 총알도 많이 만들어라. 그 전업정신으로 물질적 결핍에 연연하지말고 열정으로 미래에 밝고 빛나는 더 큰 그림을 그려 한발 한발 이기고 나아가라. 어떨 때는 자신감있게 승부사적 비즈니스적 기질을 발휘하라. 나에게는 그런 점이 부족하고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시대를 읽고 자신이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냉철히 판단하고 배울 것은 배우고 공부하라. 배우되 지나치게 경도되거나 한쪽으로 쏠리지는 말아라. 고향에 돌아오자 귀한 만남의 인연으로 내 작품을 사 주는 이들이 꽤 된다. 참 감사하다. 그 빚진 마음이 있어 좀 더 나은 그림으로 보답하고 싶고 작품 발표도 좀 더 정리된 구상으로 보여주고 싶은데 이 또한 구태의연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변화를 두려워 말고 습식과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잘 아는 지인의 말처럼 '머리로 그리기 어려우면 손으로 그려라'라는 충고의 말이 더 와닿는 시절이다. 한발 내딛기 힘든 마음의 경계 안에서 바깥의 유혹보다 내면의 내실을 다지고 현실과 시대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에 걸맞는 나만의 그 무엇을 되돌아보며 찾아가고 중심을 바로잡아가고 잃지 않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하겠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명료하고 구체적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과 생각에 따라 현실은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 고뇌와 번민이 오히려 자신의 나약하고 부족한 성정을 타파하고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된다. 본질의 자신을 믿고 당당하고 자신있게 용기있게 열정을 갖고 도전하길 바랄 뿐이다. 한해가 또 무심히 지나간다. 누구에게는 멋진 한해였을 것이고 누군가에는 아쉽고 힘들고 아픈 한해였을 것이다. 겨울은 삼한 사온이 반복된다. 추워도 계속 춥지는 않은 법이다. 하루하루 순응하고 참고 버티다 보면 따뜻한 봄이 도래할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자신과 무관한 부정적 에너지에 휘둘리지 말고 힘을 내길 바란다. 고통이 도약의 발판이 되길 바란다. 얼마전 카톨릭 신자이신 나의 둘째 형님과 대화중에 주신 영적 말씀을 고이 간직하며 이글을 마무리한다. ‘하느님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깁니다. 현재는 하느님의 사랑에 맡깁니다.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깁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고백록]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빛이 되기를 바라며 모든 이들이 자신이 빛임을 알기를 바란다. 모든 것에 감사하다. 그동안 오만과 교만, 무지한 자신을 돌아보게 해준 이 영광스러운 연재코너에 감사하며 응원과 격려를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바란다. 새롭고 설레는 변화와 비상을 꿈꾸며... <끝> ** 그동안 한우섭의 '제주찰나'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이누리>는 새해에도 더 좋은 콘텐츠, 더 나은 연재물로 여러분을 찾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편집자 주> ☞한우섭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 함괘(咸卦) 함(咸)은 교감으로 서로 감응하는 것이다. 사람은 감정을 통하여 함께 모인다. 효심으로 하늘을 감동시킨 사람이 있다. 만감이 교차하며 감격하여 눈물 흘린다. 하늘을 감동시킬 만큼 지성이 대단한 사람도 있다. 서로 정을 느끼고 솔직하고 성의 있게 대하며, 마음을 열고 질실하게 대하면 능히 친구를 찾을 수 있다. 사랑이 순조롭지 않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아무리해도 끝나지 않는 이야깃거리가 사랑이다. 가까운 친척 간의 사랑은 혈육의 정이요 친구 사이의 사랑은 우정이며 연인끼리의 사랑은 애정이다. 사람은 모두 감정을 가지고 있다. 서로 함께 할 시간이 길면 길수록 감정은 깊어진다. 그러다가 서서히 감정은 책임으로 변한다. 『주역』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사람 사이의 교류는 왕왕 감응이 선행된다고. 그런 감응은 목적이 없다. 순결하다. 별의별 궁리를 다하여 교류하는 게 아니다. 옛사람은 그것을 ‘느낌〔감(感)〕’이라 했다. ‘느낌〔감(感)〕’이 있어야 ‘존경〔경(敬)〕’이 생기고 ‘사랑〔애(愛)〕’이 생기며 ‘구함〔구(求)〕’이 생기고 정으로 느낄 수 있다. 상대방을 기쁘게 하여 감동시킨다. 가장 마지막에 변함없는 감정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함(咸)’의 도리다. 청나라 때 소설가 심복(沈復)은 『부생육기(浮生六記)』에서 자신과 아내 운(蕓)이 일생동안 서로 사랑한 기초를 기록하고 있다 : 결혼하고 나서 몇 개월이나 지났어도 운은 심복을 처음처럼 공경하였다. 심복은 우리는 남이 아니니 그렇게 대하지 말라고 운에게 얘기하였다. 운은 그 말을 듣고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심복이 운에게 옷을 입혀 줄 때 운은 예전대로 감격하는 태도로 고맙다고 말했다. 결국 어느 날, 심복이 참지 못하여 또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위선자라고 말했다. 운이 조용하게 말했다. “성인의 가르침이 설마 틀리다는 말씀이십니까?” 심복은 마음속으로 공경하면 된다고, 그렇게까지 예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운은 멍하니 서 있다가 한참만에야 말했다. “그러면 부모에게도 그저 마음속으로만 공경하여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심복은 무척 감동받았다. 성낸 것을 바꾸어 웃으면서 아내를 위로하였다. 나중에 자녀를 낳고 사별할 때까지 두 사람은 한 번도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다. 살아가면 갈수록 감정이 더욱 돈독해졌다. 근대 문학가 임휘인(林徽因, 1904~1955)이 양사성(梁思成, 1901~1972)을 선택하고 서지마(徐志摩, 1897~1931)를 선택하지 않은 것도 공경으로 사랑하고 예로써 대했기 때문이다. 서지마와 같은 현대 시인은 서양인의 낭만을 배우기는 했지만 서양인의 진심어린 믿음은 배우지 못했다. 유럽만 하더라도 20세기에는 적지 않은 부녀자들이 공경으로 사랑하였고 예로써 대했다. 단지 ‘예의’라는 명사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감응은 위대하다. 감응이 애정을 만들기 때문이다. 천지가 감응하여 만물을 만든다. 성인은 지극한 믿음으로 만민을 감응시켜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 그렇기에 청년 남녀가 서로 감응하여 한 눈에 반하면 부부 인연을 맺고 후대를 낳는 것, 이 또한 자연적인 일이다. 친구를 사귀고 교류하는 데에 감응은 정보다, 그런 후에 믿음이 초석이 된다. 『주역』은 말한다. “함(咸)은 형통하니 바름이 이로우므로 여자를 취하면 길하리라.”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감응했다고 하자. 그런데 이제 막 시작되었다. 발 한 쪽은 움직이려 하지만 온몸이 움직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감응이 있기는 하지만 움직일 수 없다. 감응이 발가락까지는 왔다. 그래도 온몸을 움직이기는 부족하다. 그렇지만 처음보다는 힘이 있다. 이때 경거만동해서는 안 된다. 강요하거나 억지로 구하지 말라. 아직은 감응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드시 기억해 둬야 한다. 친구를 사귀려거든 강요하지 말 것이며 억지로 구하려고도 하지 말라. 감응이 허벅지까지 도착했다면? 이미 힘이 생긴 것이다.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주역』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때 냉정하게 조용히 관찰하라고. 급하면 안 된다. 맹목적으로 타인을 쫓아가면 안 된다.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감응이 마음까지 왔다면? 그때 교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교류도 사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 순수한 마음을 견지하여야 한다. 그래야 길하다. 다시 더 위로 올라갔다면? 입까지 갔다면. 달콤한 말도 과하다. 『주역』은 말한다 : 감동을 시키는 언어는 사람을 기쁘게 한다. 그런데 감동을 시키면서도 기본적으로 성의가 없다면 그것은 소인의 행위다. 산 위에 못이 있다. 위쪽의 못에는 물이 있다. 아래로 스며든다. 아래쪽에는 산이다. 산은 수분을 흡수해 윤택해 진다. 서로 감응하고 교류하면 못은 더욱 맑아지고 산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사람과 산은 서로 통한다. 겸허하게 타인을 받아들인다. 아무런 편견이 없다. 광범위하게 타인과 감응하고 소통하면서 자신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 咸卦 ䷞ : 택산함(澤山咸), 태(兌 : ☱)상 간(艮 : ☶)하 함(咸)은 형통하니 바름이 이로우므로 여자를 취하면 길하리라.(咸,亨,利貞,取女,吉.) 「상전」에서 말하였다:산위에 못이 있는 것이 함(咸)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서 마음을 비워 사람을 받아들인다.(象曰,山上有澤,咸,君子以,虛受人.) [傳] 함괘(咸卦:䷞)는 「서괘전」에서 “천지가 있은 연후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연후에 남녀가 있으며, 남녀가 있은 연후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연후에 부자가 있으며, 부자가 있은 연후에 군신이 있고, 군신이 있은 연후에 상하가 있으며, 상하가 있은 연후에 예의(禮義)를 둘 곳이 있다”고 하였다. 천지(天地)는 만물의 근본이며, 부부는 인륜(人倫)의 시작이다. 이 때문에 상경(上經)에서는 건괘와 곤괘를 맨 앞에 두었고, 하경(下經)에서는 함괘를 맨 앞에 두고 항괘(恒卦:䷟)로써 그 다음을 이었다. 천지는 두 가지 물건이므로 두 괘가 나뉘어 하늘[천(天)]과 땅[지(地)]의 도가 되었고, 남녀는 교합하여 부부를 이루므로 함괘와 항괘는 모두 두 몸체가 합하여 부부의 의로움[의(義)]이 된다. ‘함’은 느낌이니 기뻐함을 위주로 하고 ‘항’은 항상됨이니 바름을 근본으로 삼는다. 기뻐하는 도는 스스로 바름을 가지고 있다. 바름의 도에는 진실로 기쁨이 있다. 공손하면서 움직이고 굳셈과 유순함이 모두 호응하는 것이 기뻐함이다. 함괘는 태괘(兌卦:☱)가 위에 있고 간괘(艮卦:☶)가 아래에 있으니, 소녀와 소남(少男)이다. 남녀가 서로 느낌의 깊음은 젊은 사람만한 자가 없기 때문에 두 젊은 사람이 ‘함’이 된다. 간괘의 몸체는 독실하여 간괘가 의미하는 그침은 정성스럽고 참된 뜻이 되니, 남자의 뜻[지(志)]이 독실하여 아래로 사귀면 여자의 마음은 기뻐하여 위로 호응하므로, 남자는 느낌의 먼저이다. 남자가 먼저 정성으로 느끼게 하면 여자는 기뻐하면서 호응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은 제3회 개인전을 했던 한 해였다. 그 이후로 이런 저런 핑계로 혹은 기회가 있어도 개인전을 하지 못했다. 사실 개인전이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때가 되지 않으면 할 수가 없거니와 또 다른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말은 꼭 정답이 될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느닷없이 다가오기도 하는 일이 있기도 하니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게 기회도 오는 법이다. 서울 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개인전 형식의 부스를 할당받고 작품 열 몇점을 걸었던 전시였다. 마지막 날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당시 외국계 은행을 다니고 있던 친구가 오랜만에 찾아와줬다. 더구나 그림 한점을 즉석에서 매입까지 해주었던 고마운 기억이 남아있다. 그 전시작들 중 한 작품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흔적에 관한 추상표현 연구에 집중하던 때라 열몇점의 작품을 단기간에 제작할 수 있어서 가벼운 개인전이라 생각하고 진행된 전시였다. 큰 공간에 많은 부스를 나누고 관람객들을 상대로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전시이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바탕에 물감(분채)을 칠하고 흩뿌리고 나타나는 중첩과 우연성에 즉흥적인 감흥을 넣어 예기치 않은 순간의 무의식적 표현 위에 나타나는 붓자국과 얼룩의 흔적을 나름의 상징인 새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그림이다. 표면의 파여있는 입체적 표현은 심층의 깊이 잠자고 있는 무의식과 잠재의식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깔려진 색감의 얼룩을 통해 파여진 느낌을 묘사정리하며 새의 형상으로 변환하였다. 한 쪽은 멈춰있는 새의 형상을 그리고 다른 한쪽은 비상하는 새의 형상을 그려 대비를 주고 있다. 색깔도 달리하여 푸른색은 새 형상과 더불어 현실의 비상을 표현하는 의미로 만들어져 있다. 그 위의 종이가 뜯겨져 있는 형상은 조형적 구성의 변화를 더하고 매순간 부조리하고 불편한 현실을 얘기하고 있다. 현실은 마음대로 안되고 뜻대로 안되지만 그런 현실적 불편 속에서도 늘 희망의 백지처럼 헐고 낡은 벽지를 새롭게 도배하듯이 다시 극복해가려는 의지의 발현 같은 의미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또 다른 상처가 만들어지고 생기기를 반복한다. 쳇바퀴 돌 듯이 반복되는 일상, 늪같은 현실은 곧 자신이 선택하고 만든 에고(ego)와 잠재의식의 발현이기도 하지만 더 깊은 잠재의식 안에는 흐림, 어두움, 무거움이 없는 차별없이 순수한 사랑과 무한한 비상, 도약, 성장을 꿈꾸는 그런 세계가 있음을 믿고 지향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얘기하고자 한 작품이다. 그림이 어둡다고 내용이 어두운 것은 아니다. 어둠을 통해 밝음을 두드러지게 하는 일종의 환기장치로 보면 되겠다. 미추(美醜)의 구별은 그래서 중요하지 않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우섭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