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괘(觀卦) 보다, 관찰하다, 시찰하다, 쳐다보다, 우러러보다, 의식에 참관하다 등이 모두 관(觀)이다. 본 후에야, 확실해질 수 있고 명확해질 수 있다. 인생을 꿰뚫어 볼 수 있고 삶을 느껴 깨달을 수 있다. 자아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고 타인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하여 경험을 총결하고 자아를 완벽해지게 할 수 있다. 자신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의 최대의 적은 타인이 아니다. 자신이다. 자신을 이해할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자아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늘 자신을 반성하여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자기의 부족과 잘못을 인지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을 고치고 자아를 높일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내가 내는 행동을 보되(니) 군자다우면 허물이 없으리라.” 자신의 행위를 관찰하니 군자는 잘못도 없고 재앙도 없다는 말이다. 자신만이 자기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사실 어떨 때에는 자기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기만하고 남을 속이기도 한다. 앞쪽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장 부딪쳐 들어가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손에 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하려면 반성하고 자아를 살펴야 한다. 반성은 성공의 가속기이다. 늘 자신을 반성하면 마음속 잡념을 없앨 수 있다. 이성적으로 자신을 인지할 수 있다. 사물에 대하여 똑똑하게 판단할 수 있다. 자신을 일깨워 잘못을 고칠 수 있다. 전면적으로 반성해야만 진정으로 자신을 인지할 수 있고 자신을 완전해지게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매일 반성하여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행위 중 부족한 부분을 점검하여야 한다. 제때에 자기가 잘못을 저지른 원인을 되돌아봐야 한다. 이것이 삶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 되어야 한다. 자주 자신을 반성하여야 정신을 진작시킬 수 있고 사유를 활발히 할 수 있으며 자신감을 증대시킬 수 있다. 반성의 질은 생활의 질을 결정한다. 자아 반성은 행복과 성공의 원천이다. 자기 정서의 특질을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의 정서를 최적 위치로 조정하는 데에 능숙하고 타인의 정서와 기교에 조화하거나 순응하는 데에 능하다. 그리하여 타인과의 교류와 소통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다. 자신의 정서를 인지하고 장악하면 자기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서 자기 인생의 중심이 되어 처리할 수 있다. 호전적인 무사가 선사에게 천당과 지옥의 함의에 대하여 물었다. 선사가 말했다. “당신 성격이 급하고 행동이 거칠지 않소. 난 당신과 같은 사람과 도리를 논할 시간이 없소.” 무사가 수치심으로 부아가 나 칼을 뽑아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네가 감히 나에게 이렇게 무례를 해! 내 단칼에 네 놈을 죽이리라.” 선사가 천천히 말했다. “이것이 지옥이요.” 무사가 문득 크게 깨달았다. 마음이 평온하고 태도가 온화해 져서 칼을 칼집에 꽂았다. 땅에 엎드려 절하며 선사에게 가르침을 주어 고맙다고 인사하였다. 선사가 또 말했다. “이것이 천당이요.” 사람이 어떤 정서에 빠졌을 때 때때로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고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의식적으로 반성하고 나서야 알아차리곤 한다.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은 타인이 자기에 대한 평가와 생활 경험으로 자신을 인식한다. 자신을 인식하면 우리는 일생 중 있어야 마땅한 풍모를 펼칠 수 있다. 자아를 인식하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 얘기할 수 있다. 자성은 자기의 동기와 행위를 자세히 살피고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결점을 정리하고 극복하여 마음을 정화시키고 심리상의 건강과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다. 자성은 자아를 초월한다는 기본 전제 아래 현실 수준 위의 자기를 초월하려면 반드시 담백하고 성실하게 자신을 대면하여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인생의 길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은 여러 번 탈바꿈을 하지 않은 자가 없다. 탈바꿈의 과정은 자아의식의 제고요 자아각성이요 자아개조며 자아 완성의 과정이다. 자신을 더 정확하고 더 깊게 인식하면 할수록 성공의 기회가 더 많아진다. 매일 한 번씩 자신을 성찰하면 1년에 자신의 잘못을 고칠 기회가 365차례나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루에 세 번 자신을 반성하면, 아니 하루에도 수 없이 자성하면 자신에게 남겨진 기회도 상대적으로 더 증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반성을 여러 번 한다는 것은 겉으로 보면 간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끝까지 견지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따져보면 위인과 보통사람은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차이라고 한다면 위인은 우리보다 하루에 여러 번 좀 반성한다는 데에 있을 뿐이다. 바로 매일 눈에 띠지 않는 ‘좀’이 위인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벌여 놓는다. 점점 더, 둘 간의 차이는 더더욱 멀어진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휘황찬란함과 용속함이란 두 극단까지 벌어지게 된다. ‘일일여삼추’라. 다른 사람은 저리도 빠르게 진보하는데 우리는 왜 느릿느릿 더디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다른 사람은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자신을 자세하게 살펴야만, 자신을 이해해야만 정확한 목표를 만들 수 있고 정확한 신념을 굳힐 수 있다. 약간 더 자신을 고치고 자아를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면 반드시 타인을 관찰하는 방법을 배우고 타인을 자신의 거울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내는 행동을 보되(니) 군자다우면 허물이 없으리라.” 무슨 말인가? 타인의 행위를 관찰하면 약간 더 자신을 이해할 수 있으니, 군자는 잘못도 없고 재앙도 없다는 뜻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림괘(臨卦) 임(臨)은 위쪽에서 고개를 숙여 아래쪽을 보다, 즉 감시하다 뜻이다. 특히 상급자가 하급자를 감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뜻이 다스리다, 통치하다, 관리하다 의미로 파생되었다. 세상은 안정되기를 바란다. 안정되어야 평화, 행복, 광명이 있다. 안정되려면 정돈되고 다스려져야 한다. 다스림에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지혜로써 감화하여야 하며 덕행으로써 사람을 만들어야한다. 잘못 관리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을 교육하거나 관리하려면 이치에 맞게 설복하여야 하고 지혜로써 해야 한다. 중용의 도를 견지하여야 한다. 정세에 따라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으로 교육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신뢰나 존중을 받아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모두(감동하여) 임하니 바르게 하여 길하다.” 무슨 말인가? 감화의 방식으로 다스리니(처리하니) 길하고 이롭다. 이롭지 않는 게 없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는 인성이 본래 선량하다.”(『삼자경三字經』) 사람은 본래 무지 무욕이다. 모든 것은 자연을 따랐다. 무지는 기교를 부릴 줄 모른다. 무욕은 추구하는 바가 없다. 욕심 없고 추구하는 바가 없는 것은 탐욕과 죄악이 없다는 말이다. 역으로 하면 청정(清静)을 지키고 사적인 욕망이 적으면,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욕심을 버리면 사람의 질박한 본성이 실현될 수 있다. 국가와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같은 도리다. 무위로 다스리면 하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천하 사람을 다스릴 때도 백성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치국의 근본이다. 옛 사람이 말했다 : 내가 하지 않으면 백성은 자연히 순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은 자연스레 순수하고 올바르게 되며, 내가 백성을 소란스럽게 하지 않으면 백성은 자연스레 부유해지고, 내가 사치의 욕심이 없으면 백성은 자연스레 순박해 진다. 맹자는 「진심(盡心上)」에서 말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욕심내지 말아야 할 것을 욕심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와 같을 따름이다.” 유가의 ‘무위’ 주장은 학술사상일 뿐 아니라 정치를 위한 실천이기도 하다. 바로 ‘무위이치(無爲而治)’다. 행하지 않고 다스리다, 잘 다스리려고 인위적으로 애쓰는 일 없이 자연스럽게 다스리다 이다. 『사기·여태후본기(呂太后本紀)』는 말한다. “군주와 신하가 전부 쉬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실을 평가했는데 마침내, “천하는 평안하였다. 형벌이 드물게 사용되어 죄인이 드물었고 백성들이 농사에 힘쓰니 옷과 음식이 더욱 풍족해졌다.” 또 『사기·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에서 조참(曹參)을 평했다. “조참은 한나라의 상국이 되자 청정무위야말로 가장 맞는 길이라 여겼다. 그리고 백성은 진나라의 가혹한 통치 뒤끝이라 조참은 백성을 쉬게 하고 억지로 일을 만들지 않으니 천하가 모두 그의 미덕을 칭송하였다.” 중국 전통 정사 24사 중 첫 번째인 『사기』에서 비일비재하게 ‘무위’의 다스림을 긍정하였다. 당나라 때에 위징(魏徵)은 당태종에게 직간하면서 고금을 통하여 칭송받고 있다. 그는 상소를 올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위 무욕하였습니다. 재난을 만나면 염려해 최고로 근면하였고 평안하면 교만하거나 방일하지 않았습니다.” 요임금과 성왕, 탕왕의 성덕을 칭송한 까닭을 얘기한 것으로 그렇게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다. 『주역』은 말한다. “지혜로 임하니, 대군(大君)의 마땅함이라서 길하다.” 무슨 말인가? 지혜로 다스리는 것이 군자가 쓰기에 알맞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길하고 이롭다. 예부터 지금까지 위인은 보통사람을 뛰어넘는 지혜를 가졌고 고상한 덕성을 지녔다. 그들은 지혜와 덕성으로 한 세대 한 세대를 감화시켰다. 지혜와 덕성은 가장 강력한 힘을 갖는다. 그렇기에 평상시에 지혜와 덕성을 가지 사람과 사귀어야 한다. “사람이 모든 것의 근본이요 덕성이 우선이다.” 훌륭한 덕성은 훌륭한 소질의 기초다. 도덕교육의 종지는 학생에게 사람됨의 기초를 닦는 것이다. 장쩌민(江澤民)은 일찍이 도덕교육은 국민 전체의 소질을 높이는 것과 관련된 큰일이라고 한 적이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오래 전에 제시한 ‘이상, 도덕성, 문화지식, 기율이 있는 공산주의의 새로운 인간형’도 도덕교육의 기본 내용과 목표를 포함하고 있다. 간절하게 현인을 구한 것은 조조(曹操)의 뛰어난 점이다. 조조는 더 많은 인재를 선발하기 위하여 봉건 문제 고저를 근거로 관리를 임용하는 표준을 깨뜨리고 ‘오직 인재만을 천거’하는 임용 방침을 제시하고 210년 봄에 「구현령(求賢令)」을 내렸다. 조조는 그 문장 시작 부분에 역사경험을 총결하였다 : 예부터 지금까지 개국 황제와 중흥 군주는 공동으로 천하를 다스린 인재를 얻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들이 얻은 인재는 뒷골목에서 나온 게 아니라 집권자가 인재를 구하고 인재를 방문하여서 얻은 결과라 했다. 이것을 근거로 삼아 조조는 현실에 입각해 당시는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고 제시하면서 현인을 구하는 가장 절박한 시기라고 천명하였다. 조조는 주변 사람들이 출신을 고려하지 말고 출신이 빈천해 묻혀있는 현인과 인재를 발굴하고 추천하기를 바랐다. 재능이 있기만 하면 중용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조조는 또 214년과 217년에도 「구현령」을 내려 반복적으로 이전에 임용할 때 ‘오직 인재만을 천거’하는 방침을 강조하였다. 그는 인사 주관 부서와 각급 지방 관리에게 인재를 선발할 것을 요구하면서 완전무결을 강요하는 것을 극력 방지하였다. 이런 저런 결점이 있더라고 상관하지 말고 그저 재능만 있으면 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런 노력의 결과, 조조는 많은 인재를 모을 수 있었다. 구름처럼 맹장이 모여들었고 책략가가 줄지어 모여들었다. 게다가 조조는 재능이 있는 인물에게는 이전의 원한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예를 들어 진림(陳琳)이 그런 인물이다. 진림은 원소(袁紹)의 부하였다. 일찍이 원소를 대신하여 격문(檄文)을 기초해 조조의 선조 3대를 욕한 적이 있었다. 원소가 실패한 후 진림은 조조에게 투항하였다. 조조가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예전에 원소를 위하여 격문을 쓰면서 욕을 해댔소. 나 개인을 욕하는 것은 그렇다하더라도 어찌하여 내 조상 3대를 욕할 수 있단 말이요?” 진림은 얼른 사죄하였다. 조조는 진림의 문재를 아껴 벌을 내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를 중용하였다. 지혜로 인생을 깨우치고 도덕교육으로 사람을 양성하면서, 불리한 상황을 정세에 따라 유리하게 이끌어가야만 모두의 신임과 존중을 받을 수 있다. ***** 臨卦 ䷒ : 地澤臨(지택임), 곤(坤: ☷)상 태(兌: ☱)하 림(臨)은 크게 형통하고 곧게 함이 이로우니, 팔월에 이르러서는 흉함이 있으리라.(臨,元亨,利貞,至于八月,有凶.) 감동하여 임하니, 바르게 하여 길하다./ 모두 임하니, 바르게 하여 길하다.(咸臨,貞,吉.) 육오는 지혜로 임하니, 대군(大君)의 마땅함이라서 길하다.(六五,知臨,大君之宜,吉) 「상전」에서 말하였다 : 못 위에 땅이 있는 것이 림(臨)이니, 군자(君子)가 그것을 본받아 가르치려는 생각이 다함이 없으며, 백성을 포용하여 보존함이 끝이 없다.(象曰,澤上有地臨,君子以,敎思无窮,容保民无疆.) [傳] 림괘(臨卦䷒)는 「서괘전(序卦傳)」에 “일이 있은 뒤에 크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림괘로 받았다”고 하였다. 림은 큼이요 고(蠱)는 일이니, 일이 있으면 크게 될 수 있기에 림괘로 받았다. 한강백(韓康伯)은 “크게 될 수 있는 사업은 일로 말미암아 생긴다”고 하였다. 두 양이 자라나 성대하기 때문에 림(臨)이 된다. 괘는 못 위에 땅이 있다. 못 위의 땅은 언덕이니, 물과 서로 닿아 물에 가까이 임하여 있기 때문에 림이 된다. 천하의 사물 중에 가장 가까이 서로 임한 것은 땅과 물 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땅 위에 물이 있으면 비괘(比卦䷇)가 되고, 못 위에 땅이 있으면 림괘가 된다. 림은 백성에게 임하고 일에 임함이니, 임하는 것이 모두 해당된다. 괘에 있어서는 위에서 아래에 임함을 취하였으니, 백성에게 임하는 뜻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7년 9월 서울민족미술인협회 회원전이며 기획정기전인 ‘2017 조국의 산하전’ 전시 출품작이다. 세종문화예술회관 광 갤러리(광화문역사 내)에 전시했던 작품이다. 민미협은 역사가 오래된 단체이면서 미술쪽에서도 시대와 역사를 통해 민중미술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중요한 단체다. 당연히 대학때 관심은 있었지만 분명한 역사적 통찰이 없던 나로서는 적극적으로 참여를 못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난뒤 뒤늦게 민미협 회원가입을 하게 되었고, 이 전시를 통해 처음 회원으로 참여한 작품이다. 조국의 산하전이라는 제목처럼 이 그림은 한반도를 분할하여 3단구성으로 되어 있다. 상단에는 북한땅을 중간에는 남한바다를 하단에는 우산 쓴 아이를 그려놓아 조국의 미래가 암울함을 전체적으로 검붉은 톤을 배경으로 처리하였다. 중간에는 2014년 뒤집혀 침몰한 세월호를 실루엣으로 표현하였고 하단에는 방패같은 우산 쓴 아이를 그려넣어 세월호 침몰로 죽은 아이들의 영령을 위령하는 의미와 함께 당시 노란색 리본이 상징하듯 노란색으로 인물을 처리하였다. 불확실한 세계, 암울한 미래세계를 암시하는 장치로서 어린아이를 등장 시킨 것이다. 상단의 북한 땅엔 핵미사일 실험과 발사로 인해 전쟁 위기를 조장하는 이미지로 핵미사일과 핵폭발의 장면을 그려 넣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안팎으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북한도 여전히 전쟁의 위협과 불안을 전지구적으로 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 때의 그림과 지금의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겠다. ‘2017 조국의 산하전’은 당시 4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2017 조국의 산하전'을 개최하면서 나온 보도자료 내용을 들여다보면 당시의 시대상황을 엿볼 수 있다. 투쟁과 눈물로 얼룩진 현장을 그림으로 함께 했던 민미협의 이번 전시회는 여태껏 전시회와는 좀 다른 분위기다. "지난해 촛불집회에서도 서울민미협은 그림, 조형 등 여러 형태의 미술로 시민들과 함께 했습니다. 시민들과 힘을 합쳐 9년만에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게 되어 무척 기쁜 일이지만, 그동안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회원들이 많이 지친 면도 있습니다. 비단 저희만 힘들었겠습니까? 절대 다수의 국민들 모두가 힘들었죠. 그래서 이번 서울민미협 '조국의 산하전'에서는 작가들이나 관람객들 모두 어깨에서 힘을 빼고 편안하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작가들이 꾸준히 작업해 온 작품들로 전시회를 엽니다." 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 회장을 맡고 있는 강성봉 작가가 이번 전시회에 대해 이렇게 소개를 한다. "'조국의 산하전'은 벌써 20여 년째 민미협과 서울민미협이 주최해 온 행사로 매 시기마다 주요 이슈가 되는 사안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해 12월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다'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현실참여적 그림으로 비판과 풍자의 메시지를 꾸준히 던져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는 특별한 주제가 없다. 꼭 주제를 이야기하라면 회원들끼리, 그리고 길을 걷다 우연히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들여 놓은 시민들의 어깨를 서로 두드려주면서 "그동안 고생 많으셨지요? 이제 우리 힘 냅시다"라고 이야기를 건네는 전시회다." 처음에는 나도 이 취지에 맞춰 가볍게 작품을 해볼려고 했는데 결국 나한테는 ’조국의 산하‘라는 제목이 주는 무게감이 만만치 않았고 처음 민미협 회원이 된 나로서는 현실 풍자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가다보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참담하고 비극적이고 슬픈 모습들이 벌어지는 조국의 산하가 그림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촛불집회도 있었다. 그 이면에는 광기어린 인간의 욕망과 탐욕, 그리고 선량한 국민들의 박탈감, 좌절감과 분노가 있었다. 나는 87년 학번이다. 당시는 6.29선언이 있던 해로 대학초년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그당시 거의 수업을 거부하고 시대의 좌절감을 데모로서 집단 행동으로 분노를 표출했던 세대다. 학교 대자보에 끊임없이 도배되었던 광주학살의 처참했던 사진과 군부정권의 폭력앞에 무기력하던 시절의 세대다. 그림 그리는 몇몇 의식있는 선배들은 예술가의 시대 참여정신,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걸개그림과 민중미술로 불의에 항거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이미 그 전부터 시작된 문화나 역사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 중심에 민미협이 있었다. 나 또한 4.3학살에 관련하여 한라산을 배경으로 죽창을 들고 항거하는 민중의 모습을 티셔츠에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지만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활발히 활동을 하진 못하였다. 약간은 방관자의 태도로 지켜보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겁고 미안한 마음이 늘 한켠에 있었다. 예술가는 역사를 알고 시대를 그려야 하는 숙명도 따라야 한다고 본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벽화를 그린것처럼. 케테 콜비츠가 어렵고 힘든 민중들과 함께한 것처럼 그랬던 것일까. 이 전시가 이루어지기 몇해 전 문래동에 있던 민미협 사무실에서 민미협 총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예전 대학시절 민미협사무국장이었던 양모 선배와 같이 가게됐다. 간 김에 선후배들과 인사도하고 바로 회원가입을 하였던 것이었다. 출판계쪽에 민중미술하던 선배들이 있어서 출판관련 삽화일도 가끔 소개받고 할 때라 자연스럽게 관계가 되어 있었던 영향도 컸었다. 당시 선배들을 통해 전국적으로 민미협 회원이 700~800명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사회의 부조리에 맞설 수 있는 힘 있는 단체가 있고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함을 풍자할수 있는 역량있는 분들이 있어 그나마 이 사회가 조화와 견제, 균형을 유지하고 있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대학시절 민중미술로 사회참여적 발언과 용기있는 활동을 하던 사람 좋은 선배들이 기억도 나고, 대학시절 방황하다 좀 더 진보적인 활동을 못한 마음에 빚진 느낌이 있어 민미협회원이 된 것이다. 작가로서 의미가 있는 일이었고 이 작품으로나마 전시에 참여, 그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한 기분도 좋았다. 예술가의 작품에 필요한 요소로 보통 작품성, 시대성, 독창성을 중요시한다. 시대성은 작가가 살고 있는 현재를 담을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를 돌이켜 현재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각성하고 있음을 얘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통해 결국 현재의 나를 아는 것이다. 모순과 격랑이 점철되는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고 그속에서 나를 찾음으로서 좀 더 나은 세계, 새로운 미래지향적 사고 또한 궁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인생도 역사도 지나간 결과로서 자기 성적표가 매겨지는 것처럼 사회 국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또한 정치에는 무관심한 편이지만 이젠 조금씩 관심을 가져야할 거 같다. 공부할 게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은 살아갈수록 자신이 모자라고 부족한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래서 가끔은 우울하지만 모자라면 채우고 부족하면 보완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미래의 후손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줘야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림속 우산쓴 아이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아닌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물려줘야 할 것이다. 제주도라는 특수한 환경과 역사에도 뒤늦게라도 조금씩 공부를 해나가야 하겠다. 내고향이고 내뿌리인 제주도의 역사를 모르고 잊고 살아왔다는게 뿌끄럽다. 뒤늦게라도 공부가 필요함을 느낀다. 모든게 일천하고 비루하다. 천성적인 나태와 게으름에 기인한 것이다. 지금 이슈인 우크라이나 전쟁사태 또한 남일이 아닌 우리 한반도의 현실일 수도 있다. 조그만 불장난이 걷잡을수 없는 화재로 번질 수도 있다. 전지구적 질병의 위험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환경파괴, 강대국간의 패권다툼, 경제전쟁, 물가불안, 빈익빈 부익부현상 등 인간이 당면한 문제들이 점점 쌓여가며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전지구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정신 바짝차리고 살아야 하는 세상, 욕망 갈망의 축적과 탐욕에 따른 끊임없는 투쟁의 장 속에서 인간의 꿈꾸는 욕망의 좌절이나 박탈감은 분노를 일으킨다. 분노는 좌절된 욕구에서 나온다. 욕망을 좌절당한 아이는 격하게 날뛰게 되고 쉽게 증오에 이르는데 증오는 결국 모든 것에 파괴적 영향을 미친다. 그런 세상에 우리 후손들이 살아서는 안된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나은 삶의 변화를 만들고 무수히 많은 시련과 도전에 대처하려는 자발적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려는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 때다. 암울한 시대일수록 사랑, 배려, 인정, 수용, 중립성, 비폭력, 기쁨, 평화라는 덕목과 의식이 더욱 더 빛이 나야 한다. 개인이든 사회든 나라든, 그렇게 밝고 높고 빛나는 의식과 에너지를 키워 삶이 질적으로 향상, 발전하는 올바른 미래의 여정이 되기를 모두에게 바라본다. 질병, 가난, 전쟁과 투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꿔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 고괘(蠱卦) 고(蠱)는 그릇에 많은 독충을 넣고 서로 잡아먹게 만든 후 남은 최후의 독충이다. 음식물 속에 넣어 사람을 해치는 데에 쓴다. 고는 해독을 끼치다, 미혹시키다, 문제, 잘못, 변고가 생기다, 귀찮게 하다 뜻이다. 잘못은 모든 사람이 저지른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면 재빠르게 정정한다. 어떤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한다. 큰 잘못을 저지르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인생의 길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잘못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주역』은 말한다. “고(蠱)는 크게 형통하다. 큰 시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갑(甲)보다 삼일 앞서서 하고, 갑보다 삼일 뒤에서 한다.” 이는 폐해를 고치고 혼란을 정리한다,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정상을 회복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시작부터 바로 형통이다. 뒤쪽의 고생과 어려움을 넘어서는 데에 이롭다. 그런데 큰일하기 전에 현재 상황을 고찰하고 사태를 분석하여야 한다. 이전의 과오를 뒷날의 경계로 삼고 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구해야(사람의 잘못을 지적하여 고치도록 하여야) 한다. 즉 과거의 잘못을 후일의 거울로 삼고 병을 고쳐 사람을 구해야1)한다는 말이다. 1942년에 연안(延安)에서 정풍운동이 벌어졌다. 그 정풍운동 중 마오쩌둥(毛澤東)은 정풍운동을 진행하면서 채택해야 할 중요한 정책을 제기하였다. “과거의 잘못을 후일의 거울로 삼고 병을 고쳐 사람을 구해야 한다.” 마오쩌둥은 이 방침을 해석하면서 지적하였다. “이전의 잘못에 대하여 반드시 드러내어 보여야 한다. 인정에 끌리면 안 된다. 과학적 태도로 과거의 잘못된 것을 분석하고 비판함으로써 이후 업무를 하는 데에 신중하게 만들고 좋아지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징전비후(懲前毖後)’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을 드러내어 보이고 결점을 비판하는 목적은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이 온전히 사람을 구하는 데에 있지 사람을 괴롭혀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톨스토이(Tolstoy)는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에서 지난날의 잘못을 고쳐 선하게 되는(개과천선) 데에 늦음을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사실상 처분이란 당사자에 대하여 덮어놓고 타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행동에 대한 효과적으로 제지하고 성실하게 시정하도록 재촉하는 것이다. 우리가 병을 고쳐 사람을 구하는 효능에 대하여 습관적으로 홀시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처분을 받은 후에 다른 사람보다 열등하다 생각하고 낙담하여 맥이 빠지게 만들어 버린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포자기해버려 탄식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이 성현이 아닌데 어찌 과오가 없을 수 있겠는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잘못을 고쳐 새로이 시작하는 용기가 부족한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처분하는 동시에 보도교육이 필요하고 추적해 효과를 확인하여야 한다. 당사자가 잘못을 고치고 있는지 감독해 정확한 인생 궤도에 올라오도록 하여야 한다. 섹스피어(Shakespeare)는 『리처드 이세(King Richard II)』에서 어지럽게 만든 화근을 참고 용서하여서 바로잡지 않은 까닭에 위험은 이미 피할 수 없게 되었다라고 했다. 그런데 잘못을 인지하고 바로잡으려고 한다면 비평과 자아비평이란 무기는 없어서는 안 된다. 마오쩌둥은 일찍이 비평과 자아비평을 ‘청소하는 것’, ‘거울을 비추는 것’, ‘세수’에 비유하였다. 방을 청소하지 않으면 먼지가 가득 쌓일 것이요 거울에 비추어보지 않거나 세수하지 않으면 더럽고 추하게 된다고 했다. 같은 이치로, 사람의 머리도 자주 ‘청소’하고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게 된다. 사람의 행위도 자주 거울을 가지고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제때에 자신을 교정할 수 있어서, 잘못을 저지르거나 잘못된 길을 가게 되면 곧바로 수정할 수 있게 된다. 먼저, 비평을 정확하게 대해야 한다. 비평을 전개할 용기와 결심이 있어야 한다. 사심과 잡념을 없애야 한다. 사심과 잡념은 비평과 자아비평이 건전하게 전개되는 주관 요소에 악영향을 미친다. 여러 가지 사심과 잡념을 없애고 자주 자신을 검토해 용감하게 모두 앞에서 자신의 ‘추한 면모를 나타내보여야 한다.’ 여러 가지 잘못된 경향을 대면할 때 엄숙하고 진지한 비평을 해야 하고 ; 문제를 고려할 때 대세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둘째, “잘못을 들으면 기쁘다”는 흉금을 가져야 한다. 비평 중 영향을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타인의 비평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자아비평은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의 자아 인식 능력은 일정한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시간 동안 우리는 완전하게 자신의 결점과 부족을 명확하게 볼 방법이 없었다. 옛 사람이 말하지 않았는가? “남을 알기는 쉬우나 자신을 알기는 어렵다”(『오월춘추•구천벌오외전(句踐伐勾吳外傳)』) 이 말이 그런 도리를 얘기한 것이다. 그렇기에 ‘방관자’ 입장에서 비평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진실로 타인의 비평을 받아들일 때, 주동적으로 타인의 비평 중 영양을 흡수할 때에만 끊임없이 진보할 수 있다. 셋째, ‘자책’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감히 “자신이 자기에게 소송을 걸 수 있어야” 한다. 『논어·자장(子張)』은 말한다. “군자의 허물은 일식, 월식과 같다. 잘못을 저지르면 모든 사람들의 눈에 뜨이고 고치면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본다,” 군자도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군자는 잘못을 고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군자가 존경을 받은 까닭이다. 만약 타인의 비평을 듣는 것을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외부 추진력이라고 한다면 자아비평은 내부 추진력이라 할 것이다. 이런 추진력이 있어야 자아를 정화하고 제고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끊임없이 자기 결점을 극복하게 된다. 『주역』은 말한다.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것이 고(蠱)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백성들을 진작하고 덕을 기른다.”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이 ‘덕을 기른다(育德)’라면 합리적으로 타인을 도와 잘못을 고치는 것은 ‘백성들을 진작하고 덕을 기르는(振民)’ 것이리라.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어릴 적에 유명한 말썽쟁이였다. 9세 때 아버지는 계모를 집에 데리고 왔다. 당시 그 가족은 시골의 가난한 집에 살고 있었다. 계모는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계모에게 카네기를 소개하면서 말했다. “여보, 이 녀석이 온 마을에서 가장 못된 아이요. 내가 어찌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소. 어쩌면 내일 아침 이전에 이 녀석이 돌을 가지고 와서 당신을 때릴 수도 있을 거요. 아니면 당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나쁜 짓을 저지를 지도 모르오.” 카네기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계모는 미소를 지으며 카네기 곁으로 다가가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틀렸는데요. 얘는 온 마을에서 가장 나쁜 말썽쟁이가 아니라 이 주변에서 가장 총명하고 가장 창조력이 있는 아이인 걸요. 단지 이 애가 아직 자신의 열정을 털어놓을 곳을 찾지 못한 것뿐이랍니다.” 계모의 말을 들은 카네기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 말 한 마디로 카네기와 계모는 믿음을 쌓게 됐다. 그 말 한 마디가 카네기에게 일생동안 노력하도록 만드는 동력이 됐다. 그가 나중에 성공할 수 있는 스물여덟가지 황금법칙을 창조하였고 일반사람들에게 성공의 할 수 있는 길, 치부할 수 있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계모가 오기 전에 카네기가 총명하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와 이웃은 말썽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계모의 한 마디 말이 카네기 일생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우리 곁에 얼마나 많은 카네기와 같은 아이들이 있겠는가! 그들을 격려해 줄 수 있다면,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면 다른 여러 가지 실수는 쉬이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잘못도 가볍게 버릴 수 있을 터이고. 이처럼 ‘백성을 진작하고 덕을 기르는’ 것이 바로 군자가 ‘고(蠱)’에 처하는 도리이다. ***** 蠱卦 ䷑ : 山風蠱(산풍고), 간(艮: ☶)상 손(巽: ☴)하 고(蠱)는 크게 선하여 형통하다. 큰 시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갑(甲)보다 앞으로 삼일 동안 하고, 갑보다 뒤로 삼일 동안 한다./ 고(蠱)는 크게 형통하다. 큰 시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갑(甲)보다 삼일 앞서서 하고, 갑보다 삼일 뒤에서 한다.(蠱,元亨.利涉大川,先甲三日,後甲三日.) 「상전」에 말하였다 :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것이 고(蠱)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백성을 진작하고 덕을 기른다.(象曰,山下有風,蠱,君子以,振民育德.) [傳] 고괘(蠱卦䷑)는 「서괘전」에 “기쁨으로 남을 따르는 자는 반드시 일이 있기 때문에 고괘(蠱卦)로 받았다”라고 했으니, 예괘(豫卦䷏)와 수괘(隨卦䷐) 두 괘의 뜻을 이어 다음 차례가 됐다. 기쁘게 남을 따르는 자는 반드시 일이 있게 마련이니, 일이 없다면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따르겠는가? 고괘(蠱卦)가 이 때문에 수괘(隨卦䷐) 다음이 됐다. 고(蠱)는 일이니, ‘고(蠱)’자의 뜻이 일이 아니고, 좀먹어서[고(蠱)] 일이 있게 된다. 괘는 산 아래에 바람이 있으니, 바람이 산 아래에 있다가 산을 만나 돌면 사물들이 어지러워진다. 이것이 ‘고’의 상이니, ‘고’의 뜻은 허물어지고 어지러운 것이다. 글자는 충(蟲)과 명(皿)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릇에 벌레가 있는 것은 벌레 먹어서 허물어진다는 뜻이다. 『춘추좌씨전』에 “바람이 산에 있는 것을 떨어뜨리고 여자가 남자를 유혹한다”라 했다. 나이 많은 여자가 젊은 남자에게 낮추는 것은 남녀의 바른 정(情)을 어지럽힌 것이다. 바람이 산을 만나 돌면 사물이 모두 흔들리고 어지러워지니, 이는 일이 있는 상이 된다. 그러므로 ‘고(蠱)’는 일이라고 말했고, 이미 좀먹어서 이를 다스리는 것 또한 일이다. 괘의 상으로 말하면 ‘고(蠱)’를 이루는 것이 되고, 괘의 재질로 말하면 ‘고(蠱)’를 다스리는 것이 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에게 얹혀 살아가고 있을 때, 조조의 의심을 살까 염려해 때를 기다리는 ‘도광양회’ 계책을 실행한다. 자기의 거처 뒤쪽 뜰에 채소를 심기 시작하였다. 조조가 청매를 내놓고 술을 데워서 그와 함께 영웅을 논하는 술자리를 만들었다. 조조가 갑자기 ‘유비는 진정한 영웅’이라는 말로 정통으로 찔러왔다. 유비는 당황했다. 어쩔 줄 몰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바로 그때 하늘이 도왔는지 공교롭게도 천둥 치면서 큰소리가 울렸다. 유비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하였다. 천둥소리에 겁을 먹은 척 귀를 막고 엎드렸다. 소심한 척 가장하여서 조조의 의심을 피했다. 임기응변 능력으로 자신을 구했다. 칼을 빼서 동탁(董卓)을 암살하려다 발각된 순간 조조는 기지를 발휘해 칼을 바치러왔다고 거짓을 꾸며 위기를 모면하였다. 조조가 탄 말이 놀라 농지를 밟자 재치를 발휘해 ‘머리를 대신하여 머리카락을 잘라’ 자기 말에 권위를 달았다. 이 모두 임기응변이란 지혜의 빛이 발한 이야기이다. 임기응변은 재능, 기지, 담력과 지모의 빛이 반짝이는 뛰어난 예술이다. 조조의 ‘머리를 대신하여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 좋은 예이다. 아무리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아도 이런 결론밖에 내리지 못할 것이다 : 이것이 바로 개성이 대단히 풍부한 예술의 표현이다. 특정적 환경에서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양쪽 모두가 좋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자는 조조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임기응변은 통일된 일정한 형식도 없고 고정된, 의지할 규율도 없다. 임기응변의 ‘기(機)’는 천시, 지리, 인물, 세태에 따르는 것이요 ‘변(變)’은 어려움에 당면했을 때 다른 길을 달리 찾는 것이다. 지원을 모색할 수 있고 기회를 기다릴 수도 있다. 바람에 따라 돛을 달 듯 추세에 맞추어 행동할 수 있고 내버려두고 상관하지 않는 수도 있다. 전략이 승패를 가른다. 신속하면서도 융통성 있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순간적인 기지가 필요하다. 현장에서 상황에 맞게 실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임기응변을 잘할 생각이 있거들랑 해박한 지식을 쌓으라. 탁월한 식견이 있어야 하고 낙관적인 성격이 있어야 하며 비범한 성품이 있어야 한다. 장기간에 걸친 실천적 연습이 되어 있어야 한다. 실천 중에 시선을 멀리에 두어야 하고 시야를 넓혀야 하며 창조성이 있어야 한다. 서로 관통하고 서로 촉진하는 것을 배우고 싶거들랑 끊임없이 시야를 확대시켜라. 넓은 시야가 없으면, 멀리 보는 시선이 없으면 시대의 조류를 따라갈 수 없다. 수구가 되고 낙후된다. 좀 더 높은 곳에 서야만 더 멀리 볼 수 있다. 역사 경험을 총결하고 현실 문제를 반영하며 미래의 추세를 파악해야만, 복잡하고 번잡한 현상 속에서 본질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 더 능숙하게 자신의 임기응변 능력을 높일 수 있다. 유명한 사상가, 뛰어난 예술가는 어느 누구 하나 창조력이 없는 사람이 없다. 모두 과감하게 탐색하는 본보기이다. 제백석(齊白石)은 고령의 화갑 나이에 ‘쇠년에 방법을 바꾸어’ 독창적으로 새로운 의경을 만들어 냈다. 독특한 예술 풍격을 창조하면서 중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그는 자기 학생에게 말했다. “나를 배우는 사람은 살 것이고 나를 닮으려는 사람은 죽을 것이다.” 무엇을 말하는가? 창조성은 예술의 생명이니 창조성이 없으면 앞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창조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하는 담력과 식견이 있어야 한다. 이전 사람을 뛰어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옛 관념을 없애고 낡은 관습을 깨뜨려야 한다. 끊임없이 내용, 형식, 수단과 방법을 새로이 창조하여야 한다. 모든 것을 실제에서 출발해 규율을 존중하고 탐색해 운용하여야 한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사상활동의 새로운 특징에 적응하여야 한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여야 한다. 현대 기술 수단과 전파 방식을 운용하여 역사 발전의 조류에 편승하여야 한다. 세계의 정수를 끌어안고 사방팔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옛 것의 장점을 취하여 유용하게 쓰고 외국의 장점을 취하여 자국에 도움이 되게 하여야 한다. 여러 장점을 널리 받아들이고 낡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창조하여야 한다. 새로운 사회풍조를 만들어나가고 시대의 풍조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변화하는 가운데에서 발전을 구하여야만 불패의 자리에 영원히 설 수 있다. ***** 隨卦 ䷐ : 澤雷隨(택뢰수) 태(兌: ☱)상 진(震: ☳)하 수(隨)는 크게 형통하니, 곧게 하는 것이 이롭고 허물이 없다./ 수(隨)는 크게 형통하나, 곧게 하는 것이 이롭고 허물이 없다.(隨,元亨,利貞无咎.) 「상전」에서 말하였다. 못(澤) 가운데에 우레가 있는 것이 수(隨)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날이 어둠을 향하면 안에 들어가 편안하게 쉰다.(象曰,澤中有雷隨,君子以,嚮晦入宴息.) [傳] 수괘(隨卦䷐)는 「서괘전」에 “기뻐하면 반드시 따르기 때문에 수괘(隨卦)로 받았다”고 하였다. 기뻐하는 도는 만물이 따르기 때문에 수괘가 예괘(豫卦䷏)의 다음이 되었다. 괘는 태괘(兌卦☱)가 위에 있고 진괘(震卦☳)가 아래에 있어서, 태괘(兌卦☱)는 기쁨이 되고 진괘(震卦☳)는 움직임이 되니, 기뻐해서 움직이고 움직여서 기뻐하는 것 모두 수괘(隨卦)의 뜻이다. 여성은 남을 따르는 자이니, 막내딸이 맏아들을 따르는 것이 수괘(隨卦)의 뜻이다. 진괘(震卦☳)는 우레가 되고 태괘(兌卦☱)는 못이 되니, 우레가 못 속에서 진동하고 못이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수괘(隨卦)의 상이다. 괘의 변화로 말하면, 건괘(乾卦☰)의 상효가 와서 곤괘(坤卦☷)의 아래에 있고 곤괘(坤卦☷)의 초효가 가서 건괘(乾卦☰) 위에 있으니, 양이 와서 음에게 낮추고 있다. 양이 음에게 낮추면 음은 반드시 기뻐하여 따르므로 수괘(隨卦)의 뜻이 된다. 괘를 이루는 것은 두 몸체의 뜻을 취하고서 효의 뜻을 취한 경우도 있고, 다시 괘의 변화의 뜻을 취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수괘(隨卦)가 뜻을 취함과 같은 경우는 더욱 자세히 구비되어 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불치병들은 의학통계로 예상되는 남은 수명이란 게 있다. 흔히 ‘얼마나 살 수 있겠습니까?’ 물었을 때 의사가 대답하는 그 생존 가능 시간을 말한다. 만일 죽음이 결정되었고, 남은 시간을 안다면 우리는 무엇을 간절히 하고 싶은지 물음을 받았을 때 어떻게 말할까? 영화 ‘파이브 피트(Five Feet Apart, 2019)’는 우리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진다.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을 앓는 스텔라 그랜트(헤일리 루 리차드슨)는 일곱 살 때부터 병원에서 살고 있다. 희귀질환이면서 감염에 취약하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병원에서 격리된 생활을 해야 했다. 언제나 산소통을 가지고 다녀야 하고, 하루종일 산소 콧줄을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입원한 병원에는 오래전부터 같은 질환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다 세상을 떠나고 자신과 포(모이세스 아리아스)라는 친구만 남아있다. 희귀질환인 낭포성 섬유증 영화에는 다소 어려운 의학용어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야기 전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병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스텔라가 앓고 있는 낭포성 섬유증은 희귀질환으로, 서양인들에게서 종종 발견되지만, 동양인에게는 잘 생기지 않아 한국 내 발병률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호흡기 전문 의사가 아니면 의학 서적을 뒤적여봐야 알 정도다. 이 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상염색체 열성유전에 의해서다. 우리 몸의 유전자는 성을 결정짓는 성염색체와 몸을 구성하게 하는 상염색체가 있는데, 바로 상염색체에 이상이 생긴 것이고, 열성유전이라는 건 양쪽 부모로부터 물려받아야만 질병이 발현된다는 뜻이다. 낭포성 섬유증은 주로 우리 몸 여러 군데에 분포하는 분비샘에 영향을 준다. 이상이 생긴 염색체는 분비샘에서 나가는 분비량을 조절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긴다. 필요할 때 분비물이 나오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멈춰줘야 하는 분비물이 계속 나오면서 많아지고 끈적끈적하게 되어 분비관이 막히면서 문제가 생긴다. 또 다른 문제는 고인 물은 썩듯이, 분비액이 흐르지 못하면 세균이 증식하기 쉬워져서 감염이 쉽게 된다. 코곁동굴(Sinus)에 영향을 주면 코곁동굴염(부비동염)을 자주 일으키게 되고, 소화기관에서는 간의 쓸개관이 막히거나 췌장관이 막히면서 여러 소화 효소들이 장으로 배출이 안 되기도 한다. 생식기관의 분비 작용에도 영향을 줘서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거의 불임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폐다. 폐로 들어오는 이물질들이나 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폐에서는 정상에서 조금씩 점액이 분비되어 물청소하듯이 쓸어내어 밖으로 배출한다. 그것이 가래다. 원래 약간의 가래는 좋은 기능을 하게 되어 있다. 낭포성 섬유증에 걸린 사람들은 점액이 너무 많고 끈적하게 되어 허파꽈리(폐포)나 작은 기관지들을 막아버린다. 이 상황이 오래되면 감염이 되기 쉽고, 자주 반복되면서 기관지가 기능을 잃어버린다. 기관지는 탄력이 없어져 부풀어 오르고, 그 모양 때문에 병 이름에 ‘낭포성(Cystic)’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물주머니 모양이라는 뜻이다. 숨을 쉴 때마다 좁아졌다 늘어났다 하는 기능을 못하게 되어 차차 기관지확장증이 생기기 쉽고, 폐의 조직들은 섬유화(Fibrosis)된다. 폐가 딱딱해지면서 탄력이 없어지니 호흡 기능이 약해지며 호흡곤란을 겪게 되어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야 하고, 폐렴 등 감염으로 위험해지기 쉽다. 결국 호흡곤란과 세균 감염 등 합병증으로 일찍 사망하게 되는 게 낭포성 섬유증 환자의 최후다. 최근에는 약물이 개발되기는 했지만, 가장 좋은 치료법은 새로운 폐를 이식받는 것밖에 없다. 언제 폐 제공자가 나타날지 몰라서 마냥 기다려야 하고, 설령 이식을 받아도 5년 정도밖에 생명 연장이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이름도 낯선 ‘B 세파시아’라는 세균의 공포 영화는 이러한 병을 가진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가다가 어느 날 윌(콜 스프로우즈)이라는 17살 사춘기 소년이 그 병원으로 이송되어 오면서 새로운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그로 인해 또 어려운 용어가 등장한다. ‘B 세파시아(Burkholderia cepacia)’라는 세균이다. 윌은 그 세균에 감염되어 신약의 임상시험을 위해 들어온 친구다. B 세파시아는 아주 드문 세균이고, 인체에 들어와도 보통은 감염병을 잘 일으키지 않는다. 반면에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에게는 감염되어 병을 잘 일으키고, 항생제 내성도 강해서 치료가 잘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원에 사는 어린 친구들은 어려운 이 세균의 이름을 너무 친숙하게 주고받으며 생활한다. 윌은 치료를 포기하고 제공되는 약도 안 먹으려고 한다. 어차피 치료되지도 못할 병이고, 신약이라고 해도 별 수 없다, 는 자포자기 심정이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모습을 관찰하던 스텔라는 윌에게 접근해서 친해지려고 하고, 한 주먹이나 되는 약을 쉽게 복용하도록 푸딩에 섞어 먹는 법도 가르쳐준다. 스텔라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소녀다. 그래서 그는 자기처럼 윌의 약도 반듯하게 정리하고 알아보기 쉽도록 표시도 꼼꼼히 해놓는다. 다소 엉뚱하지만 자기에게 계속 마음의 문을 열어 들어오게 만드는 스텔라와 친해진 윌. 둘은 조금씩 사랑이라는 것을 느껴가지만, 낭포성 섬유증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끼리는 누가 감염되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 거리는 6피트(feet), 즉 2m 정도이다. 요즘처럼 코로나19가 대유행하는 시기에 이 2m는 우리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너무나도 친숙한 말이 되어 있다. 사람이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세균, 혹은 바이러스를 품은 침방울이 튀는 거리가 바로 2m이다. 결핵을 비롯한 일부 미생물들은 공기 중(비말핵, Droplet nucleus) 감염이 되지만, 대부분은 침방울(비말, Droplet) 감염이어서 거리 유지가 필수다. 5피트의 간절함 B 세파시아를 비롯한 호흡기 감염들을 피하기 위해 스텔라, 포, 윌은 항상 6피트 거리를 둬서 만나야 한다. 어느 날 스텔라는 당구 큐대를 가지고 윌을 찾아간다. 같이 있어도 당구 큐대를 서로 잡고 있으면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구 큐대의 길이는 5피트밖에 안되어 스텔라는 잔머리를 굴린다. 모자란 1피트에 대한 변명이다. “낭포성 섬유증이 우리에게서 많은 걸 뺏어갔으니 1피트 정도는 뺏어 와도 되겠지?” 그래서 영화 제목이 6피트가 아니고 ‘5피트’가 되었다. 1피트에 대한 스텔라의 변명은 구차한 게 아니라 삶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둘의 달달한 사랑의 감정은 스텔라와 오래 병원 생활을 같이 하던 친구 포의 죽음으로 허망해진다. “이제까지 나는 치료를 위해서 살았어. 살기 위해 치료를 받은 게 아니라.....” 병원에서만 생활하던 스텔라는 창밖으로 바라만 보던 도시의 불빛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며 병원 문을 나서서 눈길을 걸어간다.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을 박차고 나간 것이다. “이제 좀 살아볼래. 그저 인생일 뿐인데, 뭐.” 이 영화는 어린 소년과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너무나 많은 내용들을 전해준다. 인생, 사랑, 생명, 희망과 절망, 우정..... 의학적 내용들도 상당히 많고, 세세한 내용들까지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런 것들은 영화의 소재나 소품들이라고 여기고 잔잔한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만 가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스텔라의 독백은 우리에게 던지는 말처럼 들린다. “서로를 만질 수 있다는 거..... 사랑할 때는 우리에게 공기만큼이나 더더욱 그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미처 몰랐다. 그의 손길이 간절해지기 전까지는.....”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6월 말부터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몸과 마음이 몽롱하다. 전시기획으로 정신없이 바빴던 지난 6월을 생각하다가 오래전 6월에 그려졌던 그림 한점이 생각났다. 오늘 연재에 소개할 그림이다. 오늘로 벌써 30번째 연재에 들어섰다. 졸렬한 필체로 여기까지 오게 되서 돌아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나름 대견하기도 하다. 친구와의 사소한 만남과 가벼운 권유로 시작된 이 일에 스스로 부족하지만 그것을 딛고 용감하게 도전을 안했으면 이런일도 없었겠거니와 친구의 관심어린 권유가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으리라. 신기하고 감사하다.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이 그림은 2009년 서울 문화일보 갤러리에 전시되었던 작품으로 정글 아티스트그룹 정기전인 '정글 프로젝트 새로운모색 2009'에 내놓았던 작품이다. 전시를 하기 전 작업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면서 그림 소재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컴퓨터로 인터넷을 보다가 다음 사이트에 피묻은 한복 이미지가 올라왔는데 너무나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백범 김구가 안두희의 총탄에 스러졌을 때 입고 있었던 옷이었다. 그날이 마침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일인 6월 26일이었던 것이다. 전시를 앞두고 어떤 그림을 발표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고민하던 시기에 나타난 이 피묻은 옷은 인터넷 사이트에 우연히 나타남과 동시에 당시 나에게는 파격적인 시각적 강렬함을 선사 했다. 죽음, 비극이라는 단어와 함께 뭔가 가슴깊이 끓어오르는 감정이 올라왔고 그로인해 피묻은 옷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은 욕망이 올라와 그려졌다. 당시 내 작업은 추상표현 기법위주와 실험적 작업이 많았다. 추상기법만으로는 그림에 효과만 있지 철학과 내용에 있어서는 무언가 부족함을 많이 느끼던 시기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추상에 사실적 형상을 넣어볼까 고민하던 시기여서 마침 나타난 피묻은 옷이 주는 그 강렬한 형상의 이미지를 작품에 넣어보기로 한 것이다. 한가지 소재만을 탐구하는것보다 보편적이고 무한하고 상상이 넘치는 소재를 탐구하는 것도 화가의 작업에는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에 이 소재를 어떻게 다양하게 변용 확장시킬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깊어지던 때였다. 그래서 작업과정상 각 레이어마다 의미를 넣고 레이어의 중첩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심화시키려 마음먹고 이 작품을 제작해 나갔다. 바탕이 되는 배경의 첫 레이어는 백범 선생이 살아생전 나라사랑 애국정신의 마음으로 쓰셨던 서예 글씨들을 임서해 그 정신을 기렸다. '글이 곧 그사람이다'라는 서여기인(書如己人)의 의미다. 그 위에 두번째 레이어는 안타깝게 안두희란 인물에 암살을 당했지만 늘 평생 나라의 독립을 꿈꾸고 목숨에 연연하지 않았던 선생의 헌신을 순교의 상징 이미지로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표면 레이어는 피묻은 옷의 구체적 형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게 됨으로서 사실적 구상과 바탕의 추상성 정신성을 함께 보여주는 작품 컨셉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 컨셉은 돌이켜보면 2008년 작품 '공즉시색 색즉시공'(연재 24번째 작품)을 시작으로 구체화되고 이 작품에서 확연히 그 의도가 드러나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최종 레이어는 피묻은 옷의 사실적 표현 위에 심장을 그리고 더불어 동백 정맥을 태극기의 음양상징인 붉은색 푸른색으로 마지막 처리를 함으로서 백범 김구의 역동적인 삶과 이념을 벗어나 한나라 한겨레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상징하는 것으로 표현하여 이 그림은 완성을 맺는다. 2009년 4월 문화재로 등록된 백범 김구의 피묻은 옷을 인터넷에서 보고 거룩한 한 인물의 대의와 역사의 흔적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백범 김구의 그 고귀한 정신을 얼굴과 모습이 아닌 그 인물이 남겨놓은 상징인 글과 흔적들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이 피묻은 옷 이미지를 본 계기로 이 작품은 탄생되었다. 모든 소재 대상들은 그것을 상징하는 정신적 사유의 사실적 흔적들을 알게 모르게 남기고 있음을 성찰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은 살면서 남과 다른 고유한 자기의 필체로 자기의 글과 말로 자신의 가치와 신념 같은 체계와 흔적을 남기고 살고 있음을 알았다. 따라서 내 그림에 동서양을 떠나 모든 사람 사물, 형상이 그림의 대상 소재가 될수 있고 동양화의 정수인 서예를 차용할 수 있음에 한국화의 서화일치 개념또한 넣을 수 있다. 고무적이다. 추상적 회화를 한국화의 기본을 지키며 충족시킬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품의 구상적 형상은 대상하는 그 인물이 살아생전 좋아하거나 그 인물을 대표하는 물건들로 설정 선택하여 사실적 표현으로 사물을 묘사하면 한 작품 안에 추상성(정신성)과 구상성을 동시에 획득할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나타나 필연이 된 사고의 컨셉이 된 이 작품은 인간은 육체와 마음이라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밀합이라는 동양적 사고의 관점에 잘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것은 물질과 비물질, 이성과 감성, 객관과 주관같은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둘은 하나로 움직이고 조화로워야한다는 동양의 음양사상은 그 요체가 '둘은 곧 하나다'라는 철학적 명제가 된다. 미술작품 안에서도 이러한 성질의 다른 것들이 모여 통일감과 조화로운 표현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도 고민중이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림을 통해 타자에 대한 심도 깊은 감사와 배려를 담아본다. 타인이 모습이 곧 나를 자각하는 계기도 될 것이므로... 백범 김구 선생이 쓰신 귀한 글귀를 적어보고 나를 돌아보고 그 정신을 기려본다. 이런 큰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는 지금도 감사하게 이 나라에 살고 있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다. 정신 차리고 올바르게 잘 살아야겠다. 나로부터의 시작]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림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갈 만큼 갔다고 행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지며,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 -백범 김구-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 수괘(隨卦) 수(隨), 사이좋게 지내다, 유순하다, 뜻대로 하다, 생각대로 하다, 감각에 따라 가다, 임기응변하다 뜻이다. 일할 때 융통성 있게 하고 너무 고집 부리거나 너무 보수적이지 말라고 교도한다. 너무 고집부리면 자기 길을 막게 되고 스스로 돌로 자기 발을 찍게 된다. 독선적이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달의 흐리고 맑음과 차고 이지러짐에 따라 바닷물은 만조, 간조가 된다. 철새는 계절 변화에 따라 이동하고 번식한다. 국가 정치는 민의에 따라야 하고 과학을 따라야 하고 진리를 따라야 한다. 옛 사람은 천시, 지리, 인화를 중히 여겼다. 어떤 일이든 하늘의 이치,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했다. 지리에 순응하고 사람을 따라야 했다. 그러면 쉬이 성공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와는 상반되게 행했다. 흑백, 시비곡직도 묻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자기 의견만을 고집하였다. 끝내 여지없이 참패당했다. 우회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였다. 실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았다. 특히 지금 청소년 세대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곳곳에서 기존의 규칙에 도전한다. 왜 그럴까? 마음이 들썽하고 공허하고 삶의 목표가 없어서다. 자신을 지탱할 균형점을 찾지 못해서다. 예악이 무너진 시대에 일부 청년이 부도덕 행위, 심지어는 위법 행위에 고혹 되어 맹목적으로 쫓고 계속해서 큰 잘못을 저지른다. 쫓는 데에는 정도가 있다. 너무 틀에 박히거나 교조적이게 되면 케케묵은 규범을 고수하게 된다. 무원칙이고 아무렇게나 따라가는 것은 맹종이 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큰길 중앙을 걸어가면 가면 갈수록 순조로워질 것이다. 가면 갈수록 확 트이게 될 것이다. 치우치지 않음은, 시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사람에 따라야 융통성 있게 변통된다. 『주역』은 말한다. “수(隨)는 크게 형통하니(나), 곧게 하는 것이 이롭고 허물이 없다.” 자연변화의 규율을 따르고 사회발전의 규율과 인생의 규율을 따라야만 크게 형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주희(朱熹)도 말했다. “자기가 사물을 따를까, 아니면 사물이 자신을 따를까?” 무슨 말인가? 우리 자신이 만물의 변화를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만물의 변화가 우리를 따라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물론 결과는 누구라도 명확히 알 것이다. 어떤 사람도 만물을 주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직업을 찾는 데에는 재능을 따라야 한다. 자기 재능이 맞는 것을 골라야 한다. 자기 재능이 부족할 때에는 하향 조정하여야 한다. 꺽죽거려서는 안 된다. 물거품처럼 되어 버리면 아무리 아름답다하여도 손만 대기만 하면 터져버린다. 다 사라져 버린다. 물거품 속에는 자신이 자랑할 행동을 지탱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막 사회에 진입한 청년은 착실하게 마음잡고 일해야 한다. 진정한 능력이 무엇인지 열심히 배워야 한다. 황금은 어디를 가든지 간에 빛을 발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모가 귓가에서 잔소리하면 반감을 가지는 젊은이가 있다. 부모의 잔소리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하는 것이다. 자녀가 되도록 일찍 인생의 도리를 깨달아 살아가는 동안 굽은 길을 될 수 있으면 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부모는 경험자이다. 인생 경험이 풍부하다. 모두 세월이 쌓이면서 실천을 통해 얻은 것이다. “늙은이의 말을 듣지 않으면 눈앞에서 손해를 본다,” 아니 그런가? 옛 사람은 말했다. “그 도를 따라 얻으면 크게 형통할 수 있다.” 자기가 옳다고 제멋대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집 부려서도 안 된다. 고집은 좋지 않은 심리 앞에서 연출하는 것으로 모두 흉악범과 같은 배역이다. 고집은 열등감을 가진 사람을 더욱 노심초사하게 만든다. 편집증적인 사람을 더욱 고민하게 만든다. 우울한 사람을 더욱 낙담하게 만든다. 외로운 사람에게 더욱 소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불안을 느끼게 만든다. 고집스러운 사람은 독선적인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고 타인이 자기의 관점만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게다가 맹목적인 자아숭배의 심리를 가지고 있다. 자기는 모든 게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여긴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타인을 압도한다고 생각한다. 고집은 사람 간의 교제에도 장애가 된다. 이지적으로 자신을 평가할 수 없으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타인을 평가하지 못한다. 타인의 이해와 믿음을 얻지 못한다. 언제나 자신의 관점을 타인에게 강조하면 타인은 틀림없이 반감을 가지게 되고 무형 중에 일종의 ‘심리 대항’이 생겨나게 된다. 자기 견해를 고집하면 타인과 의견 충돌이 생겨나면서 타인과 사상 교류나 융화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한 고집은 사람과 소통할 방법이 없게 만들어 고립무원, 사고무친의 지경에 빠지게 된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쉽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고집불통인 사람은 ‘꺾이기’ 쉽다. 그렇기에 성장해서 일에 부딪치면 임기응변할 수 있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기·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의 기록이다. “조괄(趙括)은 어려서부터 병법을 배워 군대의 일을 말하면 천하에 당할 자가 없었다. 일찍이 아버지 조사(趙奢)와 병법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조사도 당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잘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전국시대의 조나라 장군 조괄은 어릴 적부터 병법을 공부하여 큰소리치기를 좋아하였다. 어떤 때에는 아버지인 조나라 대장 조사조차도 논박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조사는 내내 조괄이 진정한 재능과 견실한 학식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나중의 결과는? 장평(長平)대전에서 조괄은 진나라 병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조나라 40만 대군은 전부 산채로 땅에 묻혔다. 조괄은 남의 것을 기계적으로 모방했을 뿐이었다. 탁상공론만 알았다. 전장에서 임기응변할 줄 몰랐다. 결과는 죽음뿐이었다. 『주역』은 말한다. “못(澤) 가운데에 우레가 있는 것이 수(隨)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날이 어둠을 향하면 안에 들어가 편안하게 쉰다.” 무슨 말인가? 못에 천둥소리가 난다. 못은 천둥소리 따라 진동한다. 이것은 따르는 것을 상징한다. 군자는 적당한 휴식시간을 따라야 한다. 낮에는 밖에 나가 일하고 밤에는 집에서 잠자고 안식하여야 한다. 천둥소리를 얘기하면 다음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Let me eat your pancreas [君の膵臓をたべたい], 2017년)’는 다소 섬뜩한 영화인 듯하다. 제목만 보자면 무슨 공포 영화인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은 풋풋한 로맨스 영화다. 자신이 다녔던 학교의 교사가 된 주인공 시가 하루키(키타무라 타쿠미)가 도서관을 정리하면서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하루키는 고등학교 시절에 늘 혼자만 있던,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병원에서 야마우치 사쿠라(하마베 미나미)라는 여학생의 공책을 주워서 돌려주게 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고, 선생으로 지내는 현재와 과거의 상황이 오고 가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사쿠라는 자신의 투병 일기를 ‘공병문고(共病文庫)’라는 공책 속에 적어가고 있었는데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 투병 일기가 아니라 공병, 즉 함께 병을 알아간다는 뜻을 내포한 것 같다. 얼굴도 예쁘고 사교성이 좋아 학교에서 제일 인기 많은 소녀 사쿠라는 순진한 소년 하루키가 마음에 든다. 둘이 사귀면서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둘만의 여행도 다니게 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부분이나 뚜렷한 복선을 까는 것은 일본 소설이나 영화의 특징이다. 이 영화에서는 공병문고라는 투병 일기장, 도서를 정리하면서 사쿠라가 자주 하는 말 “책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보다 아무렇게나 두는 것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지”하는 말은 사쿠라가 하루키에게 남기는 유서를 찾게 되는 복선이다. 영화는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몰이를 했던 소설이 원작이고, 영화도 흥행에 성공해서 이듬해 만화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내가 죽으면 내 췌장을 네가 먹게 해줄게.”라고 말하면서 “누가 자신의 췌장을 먹으면 영혼이 그 사람 속에서 함께 살 수 있대.” 이렇게 사쿠라는 고백 아닌 고백을 하루키에게 한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아픈 부위에 해당하는 다른 동물의 장기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중요 장기를 먹으면 그 장기의 영혼이 들어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게 된다는 오랜 믿음도 있어서 하루키에 대한 감정을 사쿠라는 내비쳤던 것이다. 췌장의 기능을 살짝 엿보면..... 췌장은 ‘이자’라고도 하는데, 영어로는 판크레아스(pancreas)라고 한다. 그리스어에서 ‘전체(pan)’라는 뜻과 ‘기름덩어리(creas)’라는 뜻이 합쳐졌기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다. 손가락 두 개를 붙여놓은 너비에 길이는 15cm 정도이고, 위 뒤편에 있으며 뒷복벽 가까이에 붙어있다. 다른 장기들처럼 단단하지 않고 물렁물렁하다. 그래서 의과대학생들이 해부를 하다가 잘못 건들면 부서지기 쉬워서 그 부분을 다룰 때는 조심해야 한다. 췌장의 기능이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중요성이 밝혀진 건 1800년대 후반인데, 이전까지만 해도 의학의 세계에서는 위 뒤편에 숨어있는, 의미 없는 기름덩어리로만 봤다. 해부학과 조직학, 생리학이 발달하면서 췌장은 소화액을 만드는 중요한 장기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후 독일의 파울 랑게르한스(Paul Langerhans, 1847~1888)라는 의사가 1869년에 췌장에 섬처럼 분포되어 있는 조직 소견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고하였고, 그의 이름을 따서 ‘랑게르한스섬(Langerhans islets)’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사람에게서 혈당 조절을 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한참 나중에야 알려지게 된다. 사람의 췌장에는 약 100만~150만 개 정도의 그 섬들이 있다. 현미경으로 보일락말락한 섬들 속에는 알파(α), 베타(β), 감마(γ)라는 세포들이 있어서 우리 몸의 혈당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베타 세포에서는 인슐린을 만들어서 혈액 속에 일정량의 포도당이 돌아다니도록 하는데, 인슐린 분비가 잘 안 될 때는 혈당이 높아지는 병인 ‘당뇨’가 되는 것이다. 췌장의 병을 대표하는 것은 술로 인해 생기는 췌장염과 영화 속 사쿠라가 앓는 것으로 보이는 췌장암이 있다. 위 뒤편에 있기 때문에 상복부가 아프면 흔히 위염인 줄로 착각하기 쉽다. 가장 심각한 병으로는 췌장암이 있는데, 이 또한 위가 아픈 것처럼 보여서 위염약만 먹다 보면 암이 더 진행하게 되어 발견하기까지 시간이 지체되기 일쑤다. 사쿠라의 죽음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퇴원하기를 반복하던 사쿠라는 영화 말미에 다른 문제로 어이없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오열하는 하루키. 훗날 다니던 학교에 선생으로 일하면서 둘이 만났던 도서관에서 사쿠라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 영화에서처럼 병을 고치거나 어떤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동물의 장기를 취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전 세계에 퍼져있던 현상이다. 눈이 좋아진다며 생선의 눈알을 먹거나 머리가 맑아진다며 소의 골(뇌)을 먹기도 한다. 몸에 좋다며 곰쓸개(웅담)나 오소리, 소, 돼지의 쓸개를 생식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모두 의학 상식에 맞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 있는 기생충에 감염될 위험이 더 크다.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감독의 ‘감각의 제국(愛のコリダ, 1976년)’에서 여주인공 아베 사다(마츠다 에이코)는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생각으로 죽도록 좋아했던 남자의 성기를 잘라서 목에 걸고 다닌다. 변태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것도 췌장을 먹는 것처럼 민간의 관습으로 볼 수도 있겠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 예괘(豫卦) 예(豫)는 즐거움, 화기애애하다, 화락하다 뜻이다. 우리는 즐겁게 살아야 한다. 곤란에 처했더라도 쓰러져서는 안 된다. 곤경이 우리에게 고개 숙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적극적, 열성적으로 즐거움, 낙관을 추구하는 인생관을 향락주의와 동등하게 봐서는 절대 안 된다. 진정한 즐거움은 완강하게 필사적으로 싸우는 데에서 온다. 타인을 돕는 데에서 온다. 쾌락을 추구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고생을 낙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 만족할 줄 알고 항상 즐겁게 살며 고생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고생을 낙으로 여긴다. 스스로 기쁨을 느끼며 자기 혼자서 즐기는 사람도 있다. 미소로 참담한 인생을 대면하는 사람도 있다. 묵묵히 희생하는 것을 긍지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부지런히 농사짓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일을 특별히 좋아하여서 거기에 몰두하거나 탐닉하여, 낙이 있으면 고생도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즐거움, 기쁨, 행복은 본래 좋은 것이다. 그런데 과도하게 기쁨을 추구하면 나쁜 것으로 변한다. 즐긴다는 것, 즉 즐거움은 양날의 칼이다. 즐기면 즐길수록 유쾌해지는 사람은 성공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즐거움이 슬픔으로 변하는 사람은 실패하게 된다. 사람은 영원히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목표를 정하고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원대한 생각을 품어서, 끊임없이 추구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매진한다. 더 멋있는 경지를 향하여 자신을 끌어올리려 한다. 『주역』은 사람이 즐거울 때 처음부터 끝까지 고강도의 경계심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냉철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라고 한다. 굳센 지조로 돌처럼 굴하지 말라고 한다. 시시각각 신중하게 생각하고 명백하게 구별하여서 반성하라 한다. 강건함과 중정을 결단코 유지하라고 한다. 그래야만 영원히 길하고 상서롭게 된다고 한다. 『맹자』는 말했다. “순(舜)은 논밭 이랑의 가운데에서 일어났고, 부열(傅說)은 공사장 사이에서 등용됐으며, 교격(膠鬲)은 물고기를 잡고 소금을 굽는 가운데에서 등용되었다. 관이오(管夷吾)는 하급 관리에서 등용됐으며, 손숙오(孫叔敖)는 바다에서 등용되었고, 백리해(百里奚)는 시장에서 등용되었다.”(「告子(下)」) 우울하고 곤궁한 환경은 언제나 사람에게 향상심을 가지게 만든다. 안일함과 향락은 방향을 잃게 하거나 사악함에 빠지게 만든다. 물론 극단적인 입장에서 하는 말이기는 하다. 그런데 안락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면서 냉철하지 않으면 공을 세우고 업적을 만들기 쉽지 않다. 암석 사이에서 자란 나무는 유달리 고아하고도 힘이 있다. 사막 속의 씨앗은 물을 만나기만 하면 재빨리 싹을 피운다. 극지방의 이끼는 오랫동안 메마르고 한랭한 환경 속에서도 의연하게 생존한다. 평범하지 않은 처지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게 한다. 순리적인 상황, 우월한 지위, 부유한 재물, 쾌적한 생활은 개인, 가정, 민족 발전의 유리한 조건임에는 분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와 현실 경험은 우리에게 반복해 알려준다 : 예부터 귀족의 자식이나 부잣집 아이 중에는 위대한 남자가 적다. 중국 오천년 문명사에서, 명문왕족은 주마등처럼 여러 번 바뀌었다. 가족의 운명이 5대까지 쇠퇴하지 않으면 적절하게 집안을 다스렸다는 미담이 됐다. 만청(滿淸)의 팔기(八旗) 자제가 가장 좋은 사례다. 말 위에서 살던 민족은 날래고 용감하였다. 그런데 통치계층이 된 후 몇 대도 지나지 않아 안락과 향락 속에 빠져들었다. 청 왕조의 멸망도 그에 따랐다. 즐거움은 추구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즐거움을 추구해야지 물질적 향락, 이익 도모를 추구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인 향락을 위하여 아무 것도 돌보지 않으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천리와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면 그런 즐거움은 죄악이다. 유성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유성은 어느 순간 유달리 환한 빛을 발한다. 눈부시기는 하지만 따라 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한 추락이다.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는 추락이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 즐거움, 기쁨이 온다. 각고분투하면 기쁨을 준다. 사심 없는 봉사는 기쁨을 선사한다. 즐거움, 기쁨, 행복은 우리 곁에 있다. 기쁨은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 자신의 즐거움을 모두에게 나누어줄 때 우리는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작가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말했다. “즐거움은 생명의 온도계와 비슷하다. 기쁨이 많으면 인생의 재미도 더 많아진다.” 즐거움은 심신이 유쾌한 상태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즐거움은 개인의 재력, 지위, 명성과 관련이 없다. 즐거움은 많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명예가 뒷받침이 되지도 않는다. 감투나 관직이 도움 되지도 않는다. 장포가 맹자를 만나 말했다. “포가 왕을 뵈오니, 왕께서 포에게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포는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심이 심하면, 제나라는 거의 다스려질 것입니다.” 훗날 맹자가 왕을 만나 말했다. “왕께서 장포에게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었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왕은 눈빛이 달라지며 말했다. “과인이 선왕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음악을 좋아할 뿐입니다.”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심이 심하면 제나라는 잘 되어 나갈 것입니다. 지금의 음악이 옛날의 음악과 같습니다.” 말했다. “얻어 들어볼 수 있습니까?” 말했다. “홀로 음악을 즐기는 것과 사람들과 음악을 즐기는 것, 어느 쪽이 더 즐겁습니까?” 말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즐기는 것만 못하겠지요.” “신이 왕을 위하여 음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왕께서 이곳에서 음악을 타시는데 백성이 왕의 종과 북 울리는 소리와 피리와 젓대 부는 소리를 듣고서 다들 머리 아파하고 콧대를 찌푸리면서 서로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심이여, 대체 어째서 우리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여서 부자지간에 서로 만나지 못하며 형제와 처자가 이산되게 하는가.’ 지금 왕께서 이곳에서 사냥을 하시면 왕의 마차소리를 듣고 깃발의 깃털 장식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다들 골치를 앓고 콧날을 찌푸리면서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 왕께서는 사냥을 좋아하시면서 대체 우리를 어찌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인가. 부자간에 서로 만나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는 헤어져 흩어져 버리나니.’ 이렇게 되는 것은 별다른 이유는 없고 백성과 함께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이곳에서 음악을 연주하시면 백성이 그 종소리와 북소리를 듣고 모두가 즐거운 표정으로 기꺼이 희색을 나타내고 서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마 우리 왕께서 질병이 없으신가 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겠는가.’ 지금 왕께서 이곳에서 사냥하시면 백성이 왕의 수레와 말달리는 소리를 들으며 깃과 깃털 장식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모두 흔연히 즐거운 표정으로 서로 말합니다. ‘우리 왕께서 요즘 병이 없으신가, 어떻게 저렇게 사냥에 능하실까.’ 이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신다면 왕 노릇을 하실 수 있습니다.” 크루프스카야(Krupskaya)가 말했다. “한 개인이 자신이 종사하는 사업을 일단 사랑하게 되면, 그는 사업의 분투와 성공 중에서 최대의 즐거움과 만족을 얻게 된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조그마한 성취를 거둔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자비로운 사랑을 지닌 어머니나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죽음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고 부상자를 돌보는 의사가 될 수도 있다. 사랑하는 마음만 충만하다면, 성실하게 봉사하고 착실하게 노동을 한다면 자그마한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세상은 아름답다. 우리가 미소 지으며 세상을 대할 때 우리는 세상을 정복하게 된다. 창업은 간난신고를 거쳐야 하지만 미소로 창업을 대면하면 성공하게 되리라. 춘하추동, 흐리나 맑으나 추우나 더우나 미소 짓자. 그러면 친구, 심지어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따스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봄바람에 혜택을 입듯이 영원한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 즐거움, 행복은 차례차례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豫卦 ䷏ : 雷地豫(뢰지예), 진(震: ☳)상 곤(坤: ☷)하 예괘는 제후를 세워 군대를 움직이는 것이 이롭다.(豫,利建侯行師.) 상전에서 말하였다 : 우레가 땅에서 나와 떨치는 것이 예괘다. 선왕이 그것을 본받아 음악을 지어 덕을 높임으로써 상제께 크게[은(殷)] 제사를 올려 조상까지도 함께 제사한다.(象曰,雷出地奮豫.先王以,作樂崇德,殷薦之上帝,以配祖考.) 정자가 말하였다. 예(豫)란 미리 준비하는 것이고, 느긋이 즐거운 것이다. 일이 준비되어 있으므로 느긋이 즐거우니, 같은 뜻이다.(程子曰,豫者,備豫也,逸豫也.事豫,故逸樂,其義一也.) [傳] 예괘는 「서괘전」에 “큰 것을 가지고도 겸손할 수 있으면 반드시 기쁘다. 그러므로 예괘로 받았다”라고 했으니, 대유괘와 겸괘 두 괘의 의미를 이어받아 그 다음 차례가 됐다. 이미 큰 것을 가졌는데도 겸손할 수 있으면 기쁘고 즐거움이 있다. ‘예(豫)’란 편안하게 화합하며 즐겁게 기뻐한다는 의미다. 괘는 진괘(☳)가 위에 있고 곤괘(☷)가 아래에 있으니, 순응하여 움직이는 형상이다. 움직이되 화합하여 따르니, 이 때문에 기쁘다. 구사는 움직임의 주인이 되니 위아래의 모든 음효가 함께 호응하고, 곤괘가 이를 받들어 따른다. 이 때문에 움직이면서도 위아래가 순응한다. 그러므로 화합하며 기뻐한다는 의미가 된다. 내외괘의 형상으로 말하면, 우레가 땅 위로 솟아난다. 양이 처음에는 땅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다가 움직여서 땅을 뚫고 나옴에 미쳐서는, 그 소리를 떨쳐내어 툭 트여 화합하고 기뻐한다. 그러므로 ‘예(豫)’가 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상륙작전이나 장거리포, 폭격기 등을 이용한 현대전에서는 참호전이 유용하지 않다. 어느 지역을 사수하면서 총과 대포로만 전쟁을 치르던 1900년대 초의 전투에서만 긴요하게 이용했었다. 참호전을 실감나게 다룬 ‘저니스 엔드(Journey's end)’라는 영화가 있다. 2017에 제작된 영화로 1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18년 프랑스 북부에 있는 영국군 부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상황을 담았다. 이 부대는 독일군과 1년 넘게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참호 속에서 단 1m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참호에서 조금 벗어나면 사람이 도저히 통과하기 힘든 철조망이 있고, 그것을 통과한다 해도 적의 기관총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막 임관을 해서 임시로 6일간 그 부대에 배속받은 제임스 롤리(에이사 버터필드) 장교와 어린 시절 잘 알고 지내던 스탠호프(샘 클래플린) 대위를 중심으로 병사들이 겪는 전장에서의 심리들을 여러 표정과 상황들로 세심하게 보여줌으로써 전쟁 영화로서는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참호전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영화 영화는 참호전의 여러 모습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담배를 태우는데, 이것은 상황이 지루하고 담배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참호 안에 시체를 방치하다 보니 썩어가는 시체 냄새를 가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쥐나 그것들을 수십 마리 잡아서 매달아 놓은 장면들은 실제 그 당시 참호 안의 모습이다. 그리고 영화는 전쟁의 불합리성을 우회하면서 보여준다. 목숨을 걸고 후추를 가져오게 하는 장교나 아무런 대책 없이 적진으로 가라는 군 수뇌부들. 의미 없는 전투에서 희생당하는 병사들과 그들을 책임져야 하는 장교들. 술로 매일 불안을 달래던 스탠호프 대위는 말한다. “총이라도 맞았으면 어떨까? 그랬다면 더는 이 지옥을 견딜 필요가 없어지겠지.....” 독일군이 총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정보에 동터오는 새벽, 참호에서 전투 준비를 하는 병사들의 눈빛에서는 불안과 절망이 뒤섞여 있고, 호흡은 가빠지면서 모두들 이대로 주저앉을 것 같다. 저니스 엔드(Journey’s end)는 우리 말로 ‘여정의 끝’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감독은 그 여정의 끝에 대한 대답을 주지 않는다. 6일간 의무 파견된 것이 끝나는 게 여정의 끝일까? 아니면 총탄에 쓰러져 더는 괴롭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는 걸까?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는 것일까?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어진 적이 있기라도 한가? 전쟁의 역사에서 달라지는 외상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적이 없다. 칼과 창으로 전투를 벌였던 시대에는 일대일의 싸움이었고 자상(刺傷, Stab wound)이 대부분이었다. 워낙 외상이 많았기 때문에 그러면서 발달한 게 외과학이다. 전투에서 칼에 찔리거나 팔과 다리가 잘리게 되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치료는 손상 부위를 잘라서 출혈이 멈추게 하고, 괴사 또는 괴저병이 생기는 것을 막는 것뿐이었다. 마취법이 없던 시대의 수술은 통증과 합병증을 만들어내는 길이었다. 운 좋으면 살아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고, 대부분은 수술이 잘되더라도 감염으로 죽었다. 전장의학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 의사로 프랑스의 파레(Ambroise Paré, 1510~1560)를 들 수 있다. 그는 정식 의사(Doctor)가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이어온 이발 수술장이(Barber-surgeon)였지만, 전쟁터에서 32년간 군의 역할을 하며 실전 경험을 축적하였다. 150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손상 부위를 끓는 기름으로 지지는 것이 출혈을 멎게 하면서 치료를 하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파레는 기름 소작법으로 치료를 받는 병사들의 고통이 너무 심하고,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아서 다른 방법을 고안해낸다. 출혈이 있는 혈관을 잘 찾아서 묶었더니 피도 멈출 뿐 아니라 상처가 잘 아물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혈관 결찰법’이다. 병사들이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파레는 나중에 정식 의학교육을 받아서 닥터라는 지위를 얻었고, 후대들은 그를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현대전의 시작인 제1차 세계대전은 손상의 수준과 상황을 바꿔놓은 계기가 되는데, 칼과 창 대신 기관총으로 대량 살상이 가능해진다. 총기와 포탄은 주 살상무기가 되어 적과 마주치지 않아도 심각한 부상이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고, 독가스나 화염방사기도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을 거치며 인류의 전쟁은 대량살상 무기의 시대를 열었다. 이전의 진지를 구축하고 싸우던 참호전은 의미가 없게 된다. 항공모함과 폭격기, 탱크 등은 물론이고 인류 최초로 원자탄까지 등장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는 너무 많고, 독일의 마지막 목줄을 죄기 시작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를 차단하면서 동시에 이탈리아를 겨냥한 시칠리아 상륙작전은 당시 가질 수 있는 최첨단 무기들이 동원된다. 그만큼 대량살상이 가볍게 이루어졌다. 2차 대전 중에 전체 사망자는 6000만~8500만 명으로 추산하고, 그중 양측 군인들의 사망은 40% 정도를 차지하여 거의 3000만 명이 넘는다. 죽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부상자들은 얼마나 더 많았을까? 21세기 초에도 실제 군인들의 사망 원인으로는 감염병이 많았다. 칼, 총, 포탄에 의한 부상은 곧 감염으로 이어졌고, 상처 부위가 썩어가는 괴저병(Gangrene)뿐만 아니라 전염성 있는 폐렴 등도 주된 사망 원인이 됐다. 공식 기록으로 보면 1차 세계대전(1914~1918)에서는 인플루엔자(독감)나 폐렴 등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미군 병사 5만 명 가까이 사망했다고 한다. 1930년대부터 개발된 항생제는 이러한 감염병을 확연히 줄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예로 2차 세계대전(1939~1945)에서는 미군의 참전군인 수가 이전 세계대전의 두 배로 늘었는데도 같은 감염병으로 사망한 수가 공식 기록으로 1265명이라고 한다. 설파제의 대량생산으로 인한 결과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지난달 4일부터 이달 3일까지 전시 후 막을 내린 '찾아가는 미술관 첫 번째 칠성통' 기획전시에 출품된 작품이다. 오늘도 마지막 작품 철수와 남은 정리를 하고 들어왔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작품도록에 이렇게 기록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고향 제주에 다시 입도해 들어온 나의 빛나는 하루하루는 서울에서의 생기 잃고 팍팍한 생활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 감사함의 원천은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아름답고 충만한 제주의 하늘과 바다와 땅 그리고 사람들... 각자지만 모두가 연결된 하나의 모습으로, 주어진 모든 것들이 찬란히 빛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아름답게 평화롭게 공존하는 환상의 섬. 그 빛나는 제주도를 그린다" 확연히 그렇다. 그런데도 몇주간 나의 상태는 이 그림을 제작했을 때 충만했던 기분과는 많이 다르다. 혼이 나간 듯한 넋나간 내자신을 본다. 왜그럴까를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사실 내 삶은 많이 변했다. 부족한 내자신에 대한 참회와 감사도 하는 삶으로의 변화도 왔고, 그런 삶속에 좋은 일도 감사한 일도 많아지고... 가깝게 나를 지켜본 아내가 인정할 정도니까 참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그 충만함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 생겨 많이 당황하고 있는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최근 다사다난한 일 때문인지 '번아웃'현상처럼 밑도 끝도 없는 무기력이 몰려온다. 화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예전 술을 많이 마실 때 겪었던 우울증과 비슷한 상태 같다. 그런데 뭔가 더 깊은 본질적인 것이 빠진 듯한 느낌!! 분명 나이지만 감사하고 신나게 열심히 살아왔던 그런 나를 잃어버린 느낌!! "이게 뭘까?"라고 생각하며 몇주간 지속되는 이 불쾌하고 불안한 느낌의 정체를 찾으려 지금도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자다가 깨면 '아 이렇게 모든 걸 두고 빈손으로 가는게 삶이구나'라는 생각이 한달넘게 계속되고 있다. 내일이면 괜찮으려나, 아니면 이 글을 쓰다보면 뭔가 정리가 되려나 싶고, 혹여 생기가 다시 돌아와서 무거움이 걷히고 모든 것에 감사함이 다시 충만해질까를 혹시나 하고 기대해보며 혼란스럽지만 용기 내 넋두리같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들과 함께 전시철수를 마치고 아는 술집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선배 한분이 내 안좋은 상태를 보고 먼지에 대한 얘기를 한다. 우리는 먼지일 뿐이라고... 그래서 캔자스의 더스트 인 더 윈드(DUST IN THE WIND)를 틀어본다. 여전히 정리는 되지 않지만 선배의 말에 공감은 많이 간다. 공감에는 이유가 있겠지 싶어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고민을 해본다. 초심을 잃은 것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예전처럼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내가 만든 억지를 쓰고 있던 것은 아닌가, 부질없이 지나간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에 신경이 곤두서서 저항과 억지힘을 쓰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 싶어 캔자스의 바람속의 먼지를 검색해본다. 명곡인만큼 익숙한 노래가 흘러 나온다. I close my eyes 눈을 감습니다 Only for a moment and the monent's gone 아주 잠시 동안, 그러면 그 순간은 지나가 버립니다 All my dreams 내 모든 꿈이 Pass before my eyes, a curiosity 바로 내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Dust in the wind 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 All they are is dust in the wind 모두가 바람 속의 먼지랍니다 이 노래는 캔자스 초기 단원이자 기타 연주자였던 케리 리브그렌(Kerry Livgren)이 쓴 곡이다. 미국 원주민 인디언들의 시를 모아놓은 시집에 '우리는 그저 바람 속의 먼지입니다'란 구절과 구약성서에 '모든 것이 헛되도다'란 두 구절이 생각나면서 단숨에 가사를 써서 15분 만에 만든 노래라고 한다. (2절) Same old song 똑같은 노래입니다 Just a drop of water in an endless sea 끝없는 바다의 한 방울 물에 불과하죠 All we do 우리가 하는 모든 게 Crumbles to the ground, though we refuse to see 부서져셔 땅 위를 뒹굴죠, 우리는 보려 하지 않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게 Dust in the wind 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 All we are is dust in the wind 우린 모두 바람 속의 먼지랍니다 (3절) Now don't hang on 이제 매달리지 마세요 Nothin' lasts forever but the earth and sky 땅과 하늘 외에 영원한 건 없습니다 It slips away 그저 사라져 버립니다 And all your money won't another minute buy 당신이 가진 모든 돈으로도 단 1분도 더 사지 못합니다 Dust in the wind 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 All we are is dust in the wind 우린 모두 바람 속의 먼지랍니다 Dust in the wind 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 Everything is dust in the wind 모든 것이 바람 속의 먼지랍니다 그렇다. 땅과 하늘 외엔 영원한 것은 없다. 매달리지말자. 휘둘리지말자. 정신차리자. 모든 게 부질없고 모든 게 헛되지만, 우리는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게 문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올라온다. 술집에서도 선배가 말했다. 먼지 같은 자신을 인정하라고... 그러니까 일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아무리 속상해 봤자 소용없으니까, 별거 아니니까 일찌감치 포기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란 의미가 떠오른다. 그런 먼지 같은 존재가 감당하지 못하는 생각으로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아! 역시 억지를 부리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짐을 느낀다. 조금 알았다고 착각하는 교만한 내자신이 무너지는, 감당 못하는 초라한 내자신이 비친다. 나 또한 부질없거나 별거 아닌, 이미 지나간 과오와 실수에 묶여 이 감사하고 소중한 순간을 잃어버리고 놓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더 빛나는 에너지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인다. 그리고 이 시행착오가 오히려 깊은 성찰의 또 한번의 계기가 되길 바라며 약간의 홀가분함을 느낀다. 넋두리를 마칠 시점이다. 이 주어진 지면에 감사하며 주어진 모든 것에 또한 감사하다. 덧붙여 위 그림을 그렸던 마음이 다시 일어남에 감사하다. 산방산 아래 광명사라는 절에 있는 돌에 새겨진 글귀가 불현듯 떠오른다. 죽을 때는 재물도 자식도 명예도 권력도 갖고 갈 수 없고 마음의 업보만 따라간다. 부질없는 것들을 먼지처럼 여기는 지혜를 가져보자. 그리고 현재 주어진 모든 것을 더 사랑하며 감사하며 다시 한번 마음의 힘을 내보자!!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