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부터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몸과 마음이 몽롱하다. 전시기획으로 정신없이 바빴던 지난 6월을 생각하다가 오래전 6월에 그려졌던 그림 한점이 생각났다. 오늘 연재에 소개할 그림이다. 오늘로 벌써 30번째 연재에 들어섰다. 졸렬한 필체로 여기까지 오게 되서 돌아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나름 대견하기도 하다. 친구와의 사소한 만남과 가벼운 권유로 시작된 이 일에 스스로 부족하지만 그것을 딛고 용감하게 도전을 안했으면 이런일도 없었겠거니와 친구의 관심어린 권유가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으리라. 신기하고 감사하다.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이 그림은 2009년 서울 문화일보 갤러리에 전시되었던 작품으로 정글 아티스트그룹 정기전인 '정글 프로젝트 새로운모색 2009'에 내놓았던 작품이다. 전시를 하기 전 작업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면서 그림 소재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컴퓨터로 인터넷을 보다가 다음 사이트에 피묻은 한복 이미지가 올라왔는데 너무나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백범 김구가 안두희의 총탄에 스러졌을 때 입고 있었던 옷이었다. 그날이 마침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일인 6월 26일이었던 것이다. 전시를 앞두고 어떤 그림을 발표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고민하던 시기에 나타난 이 피묻은 옷은 인터넷 사이트에 우연히 나타남과 동시에 당시 나에게는 파격적인 시각적 강렬함을 선사 했다. 죽음, 비극이라는 단어와 함께 뭔가 가슴깊이 끓어오르는 감정이 올라왔고 그로인해 피묻은 옷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은 욕망이 올라와 그려졌다. 당시 내 작업은 추상표현 기법위주와 실험적 작업이 많았다. 추상기법만으로는 그림에 효과만 있지 철학과 내용에 있어서는 무언가 부족함을 많이 느끼던 시기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추상에 사실적 형상을 넣어볼까 고민하던 시기여서 마침 나타난 피묻은 옷이 주는 그 강렬한 형상의 이미지를 작품에 넣어보기로 한 것이다. 한가지 소재만을 탐구하는것보다 보편적이고 무한하고 상상이 넘치는 소재를 탐구하는 것도 화가의 작업에는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에 이 소재를 어떻게 다양하게 변용 확장시킬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깊어지던 때였다. 그래서 작업과정상 각 레이어마다 의미를 넣고 레이어의 중첩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심화시키려 마음먹고 이 작품을 제작해 나갔다. 바탕이 되는 배경의 첫 레이어는 백범 선생이 살아생전 나라사랑 애국정신의 마음으로 쓰셨던 서예 글씨들을 임서해 그 정신을 기렸다. '글이 곧 그사람이다'라는 서여기인(書如己人)의 의미다. 그 위에 두번째 레이어는 안타깝게 안두희란 인물에 암살을 당했지만 늘 평생 나라의 독립을 꿈꾸고 목숨에 연연하지 않았던 선생의 헌신을 순교의 상징 이미지로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표면 레이어는 피묻은 옷의 구체적 형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게 됨으로서 사실적 구상과 바탕의 추상성 정신성을 함께 보여주는 작품 컨셉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 컨셉은 돌이켜보면 2008년 작품 '공즉시색 색즉시공'(연재 24번째 작품)을 시작으로 구체화되고 이 작품에서 확연히 그 의도가 드러나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최종 레이어는 피묻은 옷의 사실적 표현 위에 심장을 그리고 더불어 동백 정맥을 태극기의 음양상징인 붉은색 푸른색으로 마지막 처리를 함으로서 백범 김구의 역동적인 삶과 이념을 벗어나 한나라 한겨레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상징하는 것으로 표현하여 이 그림은 완성을 맺는다. 2009년 4월 문화재로 등록된 백범 김구의 피묻은 옷을 인터넷에서 보고 거룩한 한 인물의 대의와 역사의 흔적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백범 김구의 그 고귀한 정신을 얼굴과 모습이 아닌 그 인물이 남겨놓은 상징인 글과 흔적들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이 피묻은 옷 이미지를 본 계기로 이 작품은 탄생되었다. 모든 소재 대상들은 그것을 상징하는 정신적 사유의 사실적 흔적들을 알게 모르게 남기고 있음을 성찰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은 살면서 남과 다른 고유한 자기의 필체로 자기의 글과 말로 자신의 가치와 신념 같은 체계와 흔적을 남기고 살고 있음을 알았다. 따라서 내 그림에 동서양을 떠나 모든 사람 사물, 형상이 그림의 대상 소재가 될수 있고 동양화의 정수인 서예를 차용할 수 있음에 한국화의 서화일치 개념또한 넣을 수 있다. 고무적이다. 추상적 회화를 한국화의 기본을 지키며 충족시킬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품의 구상적 형상은 대상하는 그 인물이 살아생전 좋아하거나 그 인물을 대표하는 물건들로 설정 선택하여 사실적 표현으로 사물을 묘사하면 한 작품 안에 추상성(정신성)과 구상성을 동시에 획득할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나타나 필연이 된 사고의 컨셉이 된 이 작품은 인간은 육체와 마음이라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밀합이라는 동양적 사고의 관점에 잘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것은 물질과 비물질, 이성과 감성, 객관과 주관같은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둘은 하나로 움직이고 조화로워야한다는 동양의 음양사상은 그 요체가 '둘은 곧 하나다'라는 철학적 명제가 된다. 미술작품 안에서도 이러한 성질의 다른 것들이 모여 통일감과 조화로운 표현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도 고민중이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림을 통해 타자에 대한 심도 깊은 감사와 배려를 담아본다. 타인이 모습이 곧 나를 자각하는 계기도 될 것이므로... 백범 김구 선생이 쓰신 귀한 글귀를 적어보고 나를 돌아보고 그 정신을 기려본다. 이런 큰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는 지금도 감사하게 이 나라에 살고 있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다. 정신 차리고 올바르게 잘 살아야겠다. 나로부터의 시작]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림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갈 만큼 갔다고 행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지며,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 -백범 김구-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 수괘(隨卦) 수(隨), 사이좋게 지내다, 유순하다, 뜻대로 하다, 생각대로 하다, 감각에 따라 가다, 임기응변하다 뜻이다. 일할 때 융통성 있게 하고 너무 고집 부리거나 너무 보수적이지 말라고 교도한다. 너무 고집부리면 자기 길을 막게 되고 스스로 돌로 자기 발을 찍게 된다. 독선적이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달의 흐리고 맑음과 차고 이지러짐에 따라 바닷물은 만조, 간조가 된다. 철새는 계절 변화에 따라 이동하고 번식한다. 국가 정치는 민의에 따라야 하고 과학을 따라야 하고 진리를 따라야 한다. 옛 사람은 천시, 지리, 인화를 중히 여겼다. 어떤 일이든 하늘의 이치,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했다. 지리에 순응하고 사람을 따라야 했다. 그러면 쉬이 성공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와는 상반되게 행했다. 흑백, 시비곡직도 묻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자기 의견만을 고집하였다. 끝내 여지없이 참패당했다. 우회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였다. 실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았다. 특히 지금 청소년 세대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곳곳에서 기존의 규칙에 도전한다. 왜 그럴까? 마음이 들썽하고 공허하고 삶의 목표가 없어서다. 자신을 지탱할 균형점을 찾지 못해서다. 예악이 무너진 시대에 일부 청년이 부도덕 행위, 심지어는 위법 행위에 고혹 되어 맹목적으로 쫓고 계속해서 큰 잘못을 저지른다. 쫓는 데에는 정도가 있다. 너무 틀에 박히거나 교조적이게 되면 케케묵은 규범을 고수하게 된다. 무원칙이고 아무렇게나 따라가는 것은 맹종이 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큰길 중앙을 걸어가면 가면 갈수록 순조로워질 것이다. 가면 갈수록 확 트이게 될 것이다. 치우치지 않음은, 시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사람에 따라야 융통성 있게 변통된다. 『주역』은 말한다. “수(隨)는 크게 형통하니(나), 곧게 하는 것이 이롭고 허물이 없다.” 자연변화의 규율을 따르고 사회발전의 규율과 인생의 규율을 따라야만 크게 형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주희(朱熹)도 말했다. “자기가 사물을 따를까, 아니면 사물이 자신을 따를까?” 무슨 말인가? 우리 자신이 만물의 변화를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만물의 변화가 우리를 따라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물론 결과는 누구라도 명확히 알 것이다. 어떤 사람도 만물을 주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직업을 찾는 데에는 재능을 따라야 한다. 자기 재능이 맞는 것을 골라야 한다. 자기 재능이 부족할 때에는 하향 조정하여야 한다. 꺽죽거려서는 안 된다. 물거품처럼 되어 버리면 아무리 아름답다하여도 손만 대기만 하면 터져버린다. 다 사라져 버린다. 물거품 속에는 자신이 자랑할 행동을 지탱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막 사회에 진입한 청년은 착실하게 마음잡고 일해야 한다. 진정한 능력이 무엇인지 열심히 배워야 한다. 황금은 어디를 가든지 간에 빛을 발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모가 귓가에서 잔소리하면 반감을 가지는 젊은이가 있다. 부모의 잔소리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하는 것이다. 자녀가 되도록 일찍 인생의 도리를 깨달아 살아가는 동안 굽은 길을 될 수 있으면 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부모는 경험자이다. 인생 경험이 풍부하다. 모두 세월이 쌓이면서 실천을 통해 얻은 것이다. “늙은이의 말을 듣지 않으면 눈앞에서 손해를 본다,” 아니 그런가? 옛 사람은 말했다. “그 도를 따라 얻으면 크게 형통할 수 있다.” 자기가 옳다고 제멋대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집 부려서도 안 된다. 고집은 좋지 않은 심리 앞에서 연출하는 것으로 모두 흉악범과 같은 배역이다. 고집은 열등감을 가진 사람을 더욱 노심초사하게 만든다. 편집증적인 사람을 더욱 고민하게 만든다. 우울한 사람을 더욱 낙담하게 만든다. 외로운 사람에게 더욱 소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불안을 느끼게 만든다. 고집스러운 사람은 독선적인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고 타인이 자기의 관점만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게다가 맹목적인 자아숭배의 심리를 가지고 있다. 자기는 모든 게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여긴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타인을 압도한다고 생각한다. 고집은 사람 간의 교제에도 장애가 된다. 이지적으로 자신을 평가할 수 없으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타인을 평가하지 못한다. 타인의 이해와 믿음을 얻지 못한다. 언제나 자신의 관점을 타인에게 강조하면 타인은 틀림없이 반감을 가지게 되고 무형 중에 일종의 ‘심리 대항’이 생겨나게 된다. 자기 견해를 고집하면 타인과 의견 충돌이 생겨나면서 타인과 사상 교류나 융화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한 고집은 사람과 소통할 방법이 없게 만들어 고립무원, 사고무친의 지경에 빠지게 된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쉽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고집불통인 사람은 ‘꺾이기’ 쉽다. 그렇기에 성장해서 일에 부딪치면 임기응변할 수 있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기·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의 기록이다. “조괄(趙括)은 어려서부터 병법을 배워 군대의 일을 말하면 천하에 당할 자가 없었다. 일찍이 아버지 조사(趙奢)와 병법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조사도 당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잘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전국시대의 조나라 장군 조괄은 어릴 적부터 병법을 공부하여 큰소리치기를 좋아하였다. 어떤 때에는 아버지인 조나라 대장 조사조차도 논박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조사는 내내 조괄이 진정한 재능과 견실한 학식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나중의 결과는? 장평(長平)대전에서 조괄은 진나라 병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조나라 40만 대군은 전부 산채로 땅에 묻혔다. 조괄은 남의 것을 기계적으로 모방했을 뿐이었다. 탁상공론만 알았다. 전장에서 임기응변할 줄 몰랐다. 결과는 죽음뿐이었다. 『주역』은 말한다. “못(澤) 가운데에 우레가 있는 것이 수(隨)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날이 어둠을 향하면 안에 들어가 편안하게 쉰다.” 무슨 말인가? 못에 천둥소리가 난다. 못은 천둥소리 따라 진동한다. 이것은 따르는 것을 상징한다. 군자는 적당한 휴식시간을 따라야 한다. 낮에는 밖에 나가 일하고 밤에는 집에서 잠자고 안식하여야 한다. 천둥소리를 얘기하면 다음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Let me eat your pancreas [君の膵臓をたべたい], 2017년)’는 다소 섬뜩한 영화인 듯하다. 제목만 보자면 무슨 공포 영화인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은 풋풋한 로맨스 영화다. 자신이 다녔던 학교의 교사가 된 주인공 시가 하루키(키타무라 타쿠미)가 도서관을 정리하면서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하루키는 고등학교 시절에 늘 혼자만 있던,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병원에서 야마우치 사쿠라(하마베 미나미)라는 여학생의 공책을 주워서 돌려주게 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고, 선생으로 지내는 현재와 과거의 상황이 오고 가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사쿠라는 자신의 투병 일기를 ‘공병문고(共病文庫)’라는 공책 속에 적어가고 있었는데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 투병 일기가 아니라 공병, 즉 함께 병을 알아간다는 뜻을 내포한 것 같다. 얼굴도 예쁘고 사교성이 좋아 학교에서 제일 인기 많은 소녀 사쿠라는 순진한 소년 하루키가 마음에 든다. 둘이 사귀면서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둘만의 여행도 다니게 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부분이나 뚜렷한 복선을 까는 것은 일본 소설이나 영화의 특징이다. 이 영화에서는 공병문고라는 투병 일기장, 도서를 정리하면서 사쿠라가 자주 하는 말 “책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보다 아무렇게나 두는 것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지”하는 말은 사쿠라가 하루키에게 남기는 유서를 찾게 되는 복선이다. 영화는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몰이를 했던 소설이 원작이고, 영화도 흥행에 성공해서 이듬해 만화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내가 죽으면 내 췌장을 네가 먹게 해줄게.”라고 말하면서 “누가 자신의 췌장을 먹으면 영혼이 그 사람 속에서 함께 살 수 있대.” 이렇게 사쿠라는 고백 아닌 고백을 하루키에게 한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아픈 부위에 해당하는 다른 동물의 장기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중요 장기를 먹으면 그 장기의 영혼이 들어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게 된다는 오랜 믿음도 있어서 하루키에 대한 감정을 사쿠라는 내비쳤던 것이다. 췌장의 기능을 살짝 엿보면..... 췌장은 ‘이자’라고도 하는데, 영어로는 판크레아스(pancreas)라고 한다. 그리스어에서 ‘전체(pan)’라는 뜻과 ‘기름덩어리(creas)’라는 뜻이 합쳐졌기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다. 손가락 두 개를 붙여놓은 너비에 길이는 15cm 정도이고, 위 뒤편에 있으며 뒷복벽 가까이에 붙어있다. 다른 장기들처럼 단단하지 않고 물렁물렁하다. 그래서 의과대학생들이 해부를 하다가 잘못 건들면 부서지기 쉬워서 그 부분을 다룰 때는 조심해야 한다. 췌장의 기능이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중요성이 밝혀진 건 1800년대 후반인데, 이전까지만 해도 의학의 세계에서는 위 뒤편에 숨어있는, 의미 없는 기름덩어리로만 봤다. 해부학과 조직학, 생리학이 발달하면서 췌장은 소화액을 만드는 중요한 장기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후 독일의 파울 랑게르한스(Paul Langerhans, 1847~1888)라는 의사가 1869년에 췌장에 섬처럼 분포되어 있는 조직 소견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고하였고, 그의 이름을 따서 ‘랑게르한스섬(Langerhans islets)’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사람에게서 혈당 조절을 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한참 나중에야 알려지게 된다. 사람의 췌장에는 약 100만~150만 개 정도의 그 섬들이 있다. 현미경으로 보일락말락한 섬들 속에는 알파(α), 베타(β), 감마(γ)라는 세포들이 있어서 우리 몸의 혈당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베타 세포에서는 인슐린을 만들어서 혈액 속에 일정량의 포도당이 돌아다니도록 하는데, 인슐린 분비가 잘 안 될 때는 혈당이 높아지는 병인 ‘당뇨’가 되는 것이다. 췌장의 병을 대표하는 것은 술로 인해 생기는 췌장염과 영화 속 사쿠라가 앓는 것으로 보이는 췌장암이 있다. 위 뒤편에 있기 때문에 상복부가 아프면 흔히 위염인 줄로 착각하기 쉽다. 가장 심각한 병으로는 췌장암이 있는데, 이 또한 위가 아픈 것처럼 보여서 위염약만 먹다 보면 암이 더 진행하게 되어 발견하기까지 시간이 지체되기 일쑤다. 사쿠라의 죽음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퇴원하기를 반복하던 사쿠라는 영화 말미에 다른 문제로 어이없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오열하는 하루키. 훗날 다니던 학교에 선생으로 일하면서 둘이 만났던 도서관에서 사쿠라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 영화에서처럼 병을 고치거나 어떤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동물의 장기를 취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전 세계에 퍼져있던 현상이다. 눈이 좋아진다며 생선의 눈알을 먹거나 머리가 맑아진다며 소의 골(뇌)을 먹기도 한다. 몸에 좋다며 곰쓸개(웅담)나 오소리, 소, 돼지의 쓸개를 생식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모두 의학 상식에 맞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 있는 기생충에 감염될 위험이 더 크다.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감독의 ‘감각의 제국(愛のコリダ, 1976년)’에서 여주인공 아베 사다(마츠다 에이코)는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생각으로 죽도록 좋아했던 남자의 성기를 잘라서 목에 걸고 다닌다. 변태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것도 췌장을 먹는 것처럼 민간의 관습으로 볼 수도 있겠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 예괘(豫卦) 예(豫)는 즐거움, 화기애애하다, 화락하다 뜻이다. 우리는 즐겁게 살아야 한다. 곤란에 처했더라도 쓰러져서는 안 된다. 곤경이 우리에게 고개 숙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적극적, 열성적으로 즐거움, 낙관을 추구하는 인생관을 향락주의와 동등하게 봐서는 절대 안 된다. 진정한 즐거움은 완강하게 필사적으로 싸우는 데에서 온다. 타인을 돕는 데에서 온다. 쾌락을 추구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고생을 낙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 만족할 줄 알고 항상 즐겁게 살며 고생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고생을 낙으로 여긴다. 스스로 기쁨을 느끼며 자기 혼자서 즐기는 사람도 있다. 미소로 참담한 인생을 대면하는 사람도 있다. 묵묵히 희생하는 것을 긍지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부지런히 농사짓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일을 특별히 좋아하여서 거기에 몰두하거나 탐닉하여, 낙이 있으면 고생도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즐거움, 기쁨, 행복은 본래 좋은 것이다. 그런데 과도하게 기쁨을 추구하면 나쁜 것으로 변한다. 즐긴다는 것, 즉 즐거움은 양날의 칼이다. 즐기면 즐길수록 유쾌해지는 사람은 성공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즐거움이 슬픔으로 변하는 사람은 실패하게 된다. 사람은 영원히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목표를 정하고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원대한 생각을 품어서, 끊임없이 추구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매진한다. 더 멋있는 경지를 향하여 자신을 끌어올리려 한다. 『주역』은 사람이 즐거울 때 처음부터 끝까지 고강도의 경계심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냉철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라고 한다. 굳센 지조로 돌처럼 굴하지 말라고 한다. 시시각각 신중하게 생각하고 명백하게 구별하여서 반성하라 한다. 강건함과 중정을 결단코 유지하라고 한다. 그래야만 영원히 길하고 상서롭게 된다고 한다. 『맹자』는 말했다. “순(舜)은 논밭 이랑의 가운데에서 일어났고, 부열(傅說)은 공사장 사이에서 등용됐으며, 교격(膠鬲)은 물고기를 잡고 소금을 굽는 가운데에서 등용되었다. 관이오(管夷吾)는 하급 관리에서 등용됐으며, 손숙오(孫叔敖)는 바다에서 등용되었고, 백리해(百里奚)는 시장에서 등용되었다.”(「告子(下)」) 우울하고 곤궁한 환경은 언제나 사람에게 향상심을 가지게 만든다. 안일함과 향락은 방향을 잃게 하거나 사악함에 빠지게 만든다. 물론 극단적인 입장에서 하는 말이기는 하다. 그런데 안락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면서 냉철하지 않으면 공을 세우고 업적을 만들기 쉽지 않다. 암석 사이에서 자란 나무는 유달리 고아하고도 힘이 있다. 사막 속의 씨앗은 물을 만나기만 하면 재빨리 싹을 피운다. 극지방의 이끼는 오랫동안 메마르고 한랭한 환경 속에서도 의연하게 생존한다. 평범하지 않은 처지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게 한다. 순리적인 상황, 우월한 지위, 부유한 재물, 쾌적한 생활은 개인, 가정, 민족 발전의 유리한 조건임에는 분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와 현실 경험은 우리에게 반복해 알려준다 : 예부터 귀족의 자식이나 부잣집 아이 중에는 위대한 남자가 적다. 중국 오천년 문명사에서, 명문왕족은 주마등처럼 여러 번 바뀌었다. 가족의 운명이 5대까지 쇠퇴하지 않으면 적절하게 집안을 다스렸다는 미담이 됐다. 만청(滿淸)의 팔기(八旗) 자제가 가장 좋은 사례다. 말 위에서 살던 민족은 날래고 용감하였다. 그런데 통치계층이 된 후 몇 대도 지나지 않아 안락과 향락 속에 빠져들었다. 청 왕조의 멸망도 그에 따랐다. 즐거움은 추구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즐거움을 추구해야지 물질적 향락, 이익 도모를 추구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인 향락을 위하여 아무 것도 돌보지 않으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천리와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면 그런 즐거움은 죄악이다. 유성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유성은 어느 순간 유달리 환한 빛을 발한다. 눈부시기는 하지만 따라 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한 추락이다.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는 추락이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 즐거움, 기쁨이 온다. 각고분투하면 기쁨을 준다. 사심 없는 봉사는 기쁨을 선사한다. 즐거움, 기쁨, 행복은 우리 곁에 있다. 기쁨은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 자신의 즐거움을 모두에게 나누어줄 때 우리는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작가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말했다. “즐거움은 생명의 온도계와 비슷하다. 기쁨이 많으면 인생의 재미도 더 많아진다.” 즐거움은 심신이 유쾌한 상태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즐거움은 개인의 재력, 지위, 명성과 관련이 없다. 즐거움은 많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명예가 뒷받침이 되지도 않는다. 감투나 관직이 도움 되지도 않는다. 장포가 맹자를 만나 말했다. “포가 왕을 뵈오니, 왕께서 포에게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포는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심이 심하면, 제나라는 거의 다스려질 것입니다.” 훗날 맹자가 왕을 만나 말했다. “왕께서 장포에게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었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왕은 눈빛이 달라지며 말했다. “과인이 선왕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음악을 좋아할 뿐입니다.”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심이 심하면 제나라는 잘 되어 나갈 것입니다. 지금의 음악이 옛날의 음악과 같습니다.” 말했다. “얻어 들어볼 수 있습니까?” 말했다. “홀로 음악을 즐기는 것과 사람들과 음악을 즐기는 것, 어느 쪽이 더 즐겁습니까?” 말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즐기는 것만 못하겠지요.” “신이 왕을 위하여 음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왕께서 이곳에서 음악을 타시는데 백성이 왕의 종과 북 울리는 소리와 피리와 젓대 부는 소리를 듣고서 다들 머리 아파하고 콧대를 찌푸리면서 서로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심이여, 대체 어째서 우리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여서 부자지간에 서로 만나지 못하며 형제와 처자가 이산되게 하는가.’ 지금 왕께서 이곳에서 사냥을 하시면 왕의 마차소리를 듣고 깃발의 깃털 장식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다들 골치를 앓고 콧날을 찌푸리면서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 왕께서는 사냥을 좋아하시면서 대체 우리를 어찌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인가. 부자간에 서로 만나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는 헤어져 흩어져 버리나니.’ 이렇게 되는 것은 별다른 이유는 없고 백성과 함께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이곳에서 음악을 연주하시면 백성이 그 종소리와 북소리를 듣고 모두가 즐거운 표정으로 기꺼이 희색을 나타내고 서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마 우리 왕께서 질병이 없으신가 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겠는가.’ 지금 왕께서 이곳에서 사냥하시면 백성이 왕의 수레와 말달리는 소리를 들으며 깃과 깃털 장식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모두 흔연히 즐거운 표정으로 서로 말합니다. ‘우리 왕께서 요즘 병이 없으신가, 어떻게 저렇게 사냥에 능하실까.’ 이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신다면 왕 노릇을 하실 수 있습니다.” 크루프스카야(Krupskaya)가 말했다. “한 개인이 자신이 종사하는 사업을 일단 사랑하게 되면, 그는 사업의 분투와 성공 중에서 최대의 즐거움과 만족을 얻게 된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조그마한 성취를 거둔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자비로운 사랑을 지닌 어머니나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죽음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고 부상자를 돌보는 의사가 될 수도 있다. 사랑하는 마음만 충만하다면, 성실하게 봉사하고 착실하게 노동을 한다면 자그마한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세상은 아름답다. 우리가 미소 지으며 세상을 대할 때 우리는 세상을 정복하게 된다. 창업은 간난신고를 거쳐야 하지만 미소로 창업을 대면하면 성공하게 되리라. 춘하추동, 흐리나 맑으나 추우나 더우나 미소 짓자. 그러면 친구, 심지어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따스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봄바람에 혜택을 입듯이 영원한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 즐거움, 행복은 차례차례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豫卦 ䷏ : 雷地豫(뢰지예), 진(震: ☳)상 곤(坤: ☷)하 예괘는 제후를 세워 군대를 움직이는 것이 이롭다.(豫,利建侯行師.) 상전에서 말하였다 : 우레가 땅에서 나와 떨치는 것이 예괘다. 선왕이 그것을 본받아 음악을 지어 덕을 높임으로써 상제께 크게[은(殷)] 제사를 올려 조상까지도 함께 제사한다.(象曰,雷出地奮豫.先王以,作樂崇德,殷薦之上帝,以配祖考.) 정자가 말하였다. 예(豫)란 미리 준비하는 것이고, 느긋이 즐거운 것이다. 일이 준비되어 있으므로 느긋이 즐거우니, 같은 뜻이다.(程子曰,豫者,備豫也,逸豫也.事豫,故逸樂,其義一也.) [傳] 예괘는 「서괘전」에 “큰 것을 가지고도 겸손할 수 있으면 반드시 기쁘다. 그러므로 예괘로 받았다”라고 했으니, 대유괘와 겸괘 두 괘의 의미를 이어받아 그 다음 차례가 됐다. 이미 큰 것을 가졌는데도 겸손할 수 있으면 기쁘고 즐거움이 있다. ‘예(豫)’란 편안하게 화합하며 즐겁게 기뻐한다는 의미다. 괘는 진괘(☳)가 위에 있고 곤괘(☷)가 아래에 있으니, 순응하여 움직이는 형상이다. 움직이되 화합하여 따르니, 이 때문에 기쁘다. 구사는 움직임의 주인이 되니 위아래의 모든 음효가 함께 호응하고, 곤괘가 이를 받들어 따른다. 이 때문에 움직이면서도 위아래가 순응한다. 그러므로 화합하며 기뻐한다는 의미가 된다. 내외괘의 형상으로 말하면, 우레가 땅 위로 솟아난다. 양이 처음에는 땅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다가 움직여서 땅을 뚫고 나옴에 미쳐서는, 그 소리를 떨쳐내어 툭 트여 화합하고 기뻐한다. 그러므로 ‘예(豫)’가 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상륙작전이나 장거리포, 폭격기 등을 이용한 현대전에서는 참호전이 유용하지 않다. 어느 지역을 사수하면서 총과 대포로만 전쟁을 치르던 1900년대 초의 전투에서만 긴요하게 이용했었다. 참호전을 실감나게 다룬 ‘저니스 엔드(Journey's end)’라는 영화가 있다. 2017에 제작된 영화로 1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18년 프랑스 북부에 있는 영국군 부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상황을 담았다. 이 부대는 독일군과 1년 넘게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참호 속에서 단 1m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참호에서 조금 벗어나면 사람이 도저히 통과하기 힘든 철조망이 있고, 그것을 통과한다 해도 적의 기관총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막 임관을 해서 임시로 6일간 그 부대에 배속받은 제임스 롤리(에이사 버터필드) 장교와 어린 시절 잘 알고 지내던 스탠호프(샘 클래플린) 대위를 중심으로 병사들이 겪는 전장에서의 심리들을 여러 표정과 상황들로 세심하게 보여줌으로써 전쟁 영화로서는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참호전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영화 영화는 참호전의 여러 모습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담배를 태우는데, 이것은 상황이 지루하고 담배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참호 안에 시체를 방치하다 보니 썩어가는 시체 냄새를 가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쥐나 그것들을 수십 마리 잡아서 매달아 놓은 장면들은 실제 그 당시 참호 안의 모습이다. 그리고 영화는 전쟁의 불합리성을 우회하면서 보여준다. 목숨을 걸고 후추를 가져오게 하는 장교나 아무런 대책 없이 적진으로 가라는 군 수뇌부들. 의미 없는 전투에서 희생당하는 병사들과 그들을 책임져야 하는 장교들. 술로 매일 불안을 달래던 스탠호프 대위는 말한다. “총이라도 맞았으면 어떨까? 그랬다면 더는 이 지옥을 견딜 필요가 없어지겠지.....” 독일군이 총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정보에 동터오는 새벽, 참호에서 전투 준비를 하는 병사들의 눈빛에서는 불안과 절망이 뒤섞여 있고, 호흡은 가빠지면서 모두들 이대로 주저앉을 것 같다. 저니스 엔드(Journey’s end)는 우리 말로 ‘여정의 끝’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감독은 그 여정의 끝에 대한 대답을 주지 않는다. 6일간 의무 파견된 것이 끝나는 게 여정의 끝일까? 아니면 총탄에 쓰러져 더는 괴롭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는 걸까?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는 것일까?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어진 적이 있기라도 한가? 전쟁의 역사에서 달라지는 외상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적이 없다. 칼과 창으로 전투를 벌였던 시대에는 일대일의 싸움이었고 자상(刺傷, Stab wound)이 대부분이었다. 워낙 외상이 많았기 때문에 그러면서 발달한 게 외과학이다. 전투에서 칼에 찔리거나 팔과 다리가 잘리게 되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치료는 손상 부위를 잘라서 출혈이 멈추게 하고, 괴사 또는 괴저병이 생기는 것을 막는 것뿐이었다. 마취법이 없던 시대의 수술은 통증과 합병증을 만들어내는 길이었다. 운 좋으면 살아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고, 대부분은 수술이 잘되더라도 감염으로 죽었다. 전장의학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 의사로 프랑스의 파레(Ambroise Paré, 1510~1560)를 들 수 있다. 그는 정식 의사(Doctor)가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이어온 이발 수술장이(Barber-surgeon)였지만, 전쟁터에서 32년간 군의 역할을 하며 실전 경험을 축적하였다. 150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손상 부위를 끓는 기름으로 지지는 것이 출혈을 멎게 하면서 치료를 하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파레는 기름 소작법으로 치료를 받는 병사들의 고통이 너무 심하고,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아서 다른 방법을 고안해낸다. 출혈이 있는 혈관을 잘 찾아서 묶었더니 피도 멈출 뿐 아니라 상처가 잘 아물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혈관 결찰법’이다. 병사들이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파레는 나중에 정식 의학교육을 받아서 닥터라는 지위를 얻었고, 후대들은 그를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현대전의 시작인 제1차 세계대전은 손상의 수준과 상황을 바꿔놓은 계기가 되는데, 칼과 창 대신 기관총으로 대량 살상이 가능해진다. 총기와 포탄은 주 살상무기가 되어 적과 마주치지 않아도 심각한 부상이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고, 독가스나 화염방사기도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을 거치며 인류의 전쟁은 대량살상 무기의 시대를 열었다. 이전의 진지를 구축하고 싸우던 참호전은 의미가 없게 된다. 항공모함과 폭격기, 탱크 등은 물론이고 인류 최초로 원자탄까지 등장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는 너무 많고, 독일의 마지막 목줄을 죄기 시작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를 차단하면서 동시에 이탈리아를 겨냥한 시칠리아 상륙작전은 당시 가질 수 있는 최첨단 무기들이 동원된다. 그만큼 대량살상이 가볍게 이루어졌다. 2차 대전 중에 전체 사망자는 6000만~8500만 명으로 추산하고, 그중 양측 군인들의 사망은 40% 정도를 차지하여 거의 3000만 명이 넘는다. 죽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부상자들은 얼마나 더 많았을까? 21세기 초에도 실제 군인들의 사망 원인으로는 감염병이 많았다. 칼, 총, 포탄에 의한 부상은 곧 감염으로 이어졌고, 상처 부위가 썩어가는 괴저병(Gangrene)뿐만 아니라 전염성 있는 폐렴 등도 주된 사망 원인이 됐다. 공식 기록으로 보면 1차 세계대전(1914~1918)에서는 인플루엔자(독감)나 폐렴 등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미군 병사 5만 명 가까이 사망했다고 한다. 1930년대부터 개발된 항생제는 이러한 감염병을 확연히 줄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예로 2차 세계대전(1939~1945)에서는 미군의 참전군인 수가 이전 세계대전의 두 배로 늘었는데도 같은 감염병으로 사망한 수가 공식 기록으로 1265명이라고 한다. 설파제의 대량생산으로 인한 결과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지난달 4일부터 이달 3일까지 전시 후 막을 내린 '찾아가는 미술관 첫 번째 칠성통' 기획전시에 출품된 작품이다. 오늘도 마지막 작품 철수와 남은 정리를 하고 들어왔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작품도록에 이렇게 기록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고향 제주에 다시 입도해 들어온 나의 빛나는 하루하루는 서울에서의 생기 잃고 팍팍한 생활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 감사함의 원천은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아름답고 충만한 제주의 하늘과 바다와 땅 그리고 사람들... 각자지만 모두가 연결된 하나의 모습으로, 주어진 모든 것들이 찬란히 빛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아름답게 평화롭게 공존하는 환상의 섬. 그 빛나는 제주도를 그린다" 확연히 그렇다. 그런데도 몇주간 나의 상태는 이 그림을 제작했을 때 충만했던 기분과는 많이 다르다. 혼이 나간 듯한 넋나간 내자신을 본다. 왜그럴까를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사실 내 삶은 많이 변했다. 부족한 내자신에 대한 참회와 감사도 하는 삶으로의 변화도 왔고, 그런 삶속에 좋은 일도 감사한 일도 많아지고... 가깝게 나를 지켜본 아내가 인정할 정도니까 참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그 충만함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 생겨 많이 당황하고 있는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최근 다사다난한 일 때문인지 '번아웃'현상처럼 밑도 끝도 없는 무기력이 몰려온다. 화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예전 술을 많이 마실 때 겪었던 우울증과 비슷한 상태 같다. 그런데 뭔가 더 깊은 본질적인 것이 빠진 듯한 느낌!! 분명 나이지만 감사하고 신나게 열심히 살아왔던 그런 나를 잃어버린 느낌!! "이게 뭘까?"라고 생각하며 몇주간 지속되는 이 불쾌하고 불안한 느낌의 정체를 찾으려 지금도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자다가 깨면 '아 이렇게 모든 걸 두고 빈손으로 가는게 삶이구나'라는 생각이 한달넘게 계속되고 있다. 내일이면 괜찮으려나, 아니면 이 글을 쓰다보면 뭔가 정리가 되려나 싶고, 혹여 생기가 다시 돌아와서 무거움이 걷히고 모든 것에 감사함이 다시 충만해질까를 혹시나 하고 기대해보며 혼란스럽지만 용기 내 넋두리같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들과 함께 전시철수를 마치고 아는 술집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선배 한분이 내 안좋은 상태를 보고 먼지에 대한 얘기를 한다. 우리는 먼지일 뿐이라고... 그래서 캔자스의 더스트 인 더 윈드(DUST IN THE WIND)를 틀어본다. 여전히 정리는 되지 않지만 선배의 말에 공감은 많이 간다. 공감에는 이유가 있겠지 싶어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고민을 해본다. 초심을 잃은 것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예전처럼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내가 만든 억지를 쓰고 있던 것은 아닌가, 부질없이 지나간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에 신경이 곤두서서 저항과 억지힘을 쓰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 싶어 캔자스의 바람속의 먼지를 검색해본다. 명곡인만큼 익숙한 노래가 흘러 나온다. I close my eyes 눈을 감습니다 Only for a moment and the monent's gone 아주 잠시 동안, 그러면 그 순간은 지나가 버립니다 All my dreams 내 모든 꿈이 Pass before my eyes, a curiosity 바로 내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Dust in the wind 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 All they are is dust in the wind 모두가 바람 속의 먼지랍니다 이 노래는 캔자스 초기 단원이자 기타 연주자였던 케리 리브그렌(Kerry Livgren)이 쓴 곡이다. 미국 원주민 인디언들의 시를 모아놓은 시집에 '우리는 그저 바람 속의 먼지입니다'란 구절과 구약성서에 '모든 것이 헛되도다'란 두 구절이 생각나면서 단숨에 가사를 써서 15분 만에 만든 노래라고 한다. (2절) Same old song 똑같은 노래입니다 Just a drop of water in an endless sea 끝없는 바다의 한 방울 물에 불과하죠 All we do 우리가 하는 모든 게 Crumbles to the ground, though we refuse to see 부서져셔 땅 위를 뒹굴죠, 우리는 보려 하지 않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게 Dust in the wind 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 All we are is dust in the wind 우린 모두 바람 속의 먼지랍니다 (3절) Now don't hang on 이제 매달리지 마세요 Nothin' lasts forever but the earth and sky 땅과 하늘 외에 영원한 건 없습니다 It slips away 그저 사라져 버립니다 And all your money won't another minute buy 당신이 가진 모든 돈으로도 단 1분도 더 사지 못합니다 Dust in the wind 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 All we are is dust in the wind 우린 모두 바람 속의 먼지랍니다 Dust in the wind 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 Everything is dust in the wind 모든 것이 바람 속의 먼지랍니다 그렇다. 땅과 하늘 외엔 영원한 것은 없다. 매달리지말자. 휘둘리지말자. 정신차리자. 모든 게 부질없고 모든 게 헛되지만, 우리는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게 문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올라온다. 술집에서도 선배가 말했다. 먼지 같은 자신을 인정하라고... 그러니까 일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아무리 속상해 봤자 소용없으니까, 별거 아니니까 일찌감치 포기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란 의미가 떠오른다. 그런 먼지 같은 존재가 감당하지 못하는 생각으로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아! 역시 억지를 부리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짐을 느낀다. 조금 알았다고 착각하는 교만한 내자신이 무너지는, 감당 못하는 초라한 내자신이 비친다. 나 또한 부질없거나 별거 아닌, 이미 지나간 과오와 실수에 묶여 이 감사하고 소중한 순간을 잃어버리고 놓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더 빛나는 에너지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인다. 그리고 이 시행착오가 오히려 깊은 성찰의 또 한번의 계기가 되길 바라며 약간의 홀가분함을 느낀다. 넋두리를 마칠 시점이다. 이 주어진 지면에 감사하며 주어진 모든 것에 또한 감사하다. 덧붙여 위 그림을 그렸던 마음이 다시 일어남에 감사하다. 산방산 아래 광명사라는 절에 있는 돌에 새겨진 글귀가 불현듯 떠오른다. 죽을 때는 재물도 자식도 명예도 권력도 갖고 갈 수 없고 마음의 업보만 따라간다. 부질없는 것들을 먼지처럼 여기는 지혜를 가져보자. 그리고 현재 주어진 모든 것을 더 사랑하며 감사하며 다시 한번 마음의 힘을 내보자!!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고 온 유럽이 독일의 군홧발에 짓밟힐 때, 영국은 여러 나라의 저항군 세력들을 모아 특수부대를 만들었다. 독일은 영국과 유럽의 공격에 대비하고, 중요하게는 스웨덴에서 운송해오는 철광석을 보호하기 위해 노르웨이를 점령한 상태다. 1943년, 노르웨이 출신들로 이루어진 부대원 12명은 독일군의 주요 거점을 파괴하려는 작전을 부여받고 노르웨이로 상륙을 시도하게 된다. 배가 미처 육지에 닿기도 전에 독일군 함정에 발각되어 11명은 잡혀서 모진 고문을 받다가 처형당하지만 혼자 살아남은 12번째 군인, 얀(토마스 굴레스타드)의 탈출기를 영화는 담고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하 20도가 넘는 날씨와 얼어붙은 바다와 눈 덮인 산에서 맨발로 걸어야 했고, 4㎞나 되는 바다를 헤엄쳐야 하는 등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극한 상황은 모두 담는 듯하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외딴 오두막에 숨겨진 얀은 잡히면 죽는다는 공포감으로 매일 밤 악몽을 꾸었고, 심한 동상을 입은 발가락들은 괴사되기에 이른다. 결국 검게 죽어버린 발가락들을 자기 손으로 잘라내야 했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얼어붙은 바다를 몇 시간 동안 헤엄쳤던 것, 눈사태를 만나는 것이나 눈 속에 며칠이고 묻혀야만 했던 상황들이 있었지만, 영화에서 가장 처절하게 보였던 부분이 바로 자기 발가락을 잘라서 뜯어내는 장면일 것이다. 자신의 발가락을 잘라내야 하는 동상 우리 몸은 추워지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말단부의 혈관을 수축시켜 열이 발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경향이 있다. 신체의 끝부분인 귀, 손가락, 발가락들이 동상에 걸리고도 치료받지 못하고 추위에 장시간 노출하게 되면 결국 혈액을 공급받지 못해서 괴사, 즉 썩어버리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점점 더 괴사 부위가 넓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절단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잘려진 발가락으로 제대로 걷기도 힘들면서 중립국이던 스웨덴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급기야는 눈사태까지 만나서 피투성이가 되어 몸은 만신창이가 된 얀. 그를 돕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얀, 당신이 살아있다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독일인들이 당신을 찾지 못하는 건 우리 노르웨이인들에게는 자긍심이 되고 있어요.” 오두막에 숨겨준 사람들, 썰매를 만들어서 거동이 힘든 얀을 옮기던 사람들, 독일군의 위협에도 목숨 걸고 국경을 넘게 만든 사람들..... 그들을 만나면서 얀에게는 살아서 탈출해야만 하는 이유가 점점 강해져만 갔다. 탈주 63일째, 결국 얀은 스웨덴으로 탈출하게 되고, 안전하게 영국으로 돌아가 훈련 교관이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영화는 노르웨이 영화로 대자연과 설경을 배경으로 하고 오로라도 보여주면서 아름다운 장면들을 연출하고자 애쓴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감독은 아름답게만 봐야 할 배경 속에서 살기 위해 극한의 몸부림을 치는 얀의 투쟁을 담으며 역설의 미를 드러내려고 했던 것 같다. 동상은 추운 곳의 이야기를 담는 영화에서 볼 수 있는데, 북극 탐험대의 이야기를 다룬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Against the ice, 2022)’라는 작품에서도 극한의 추위 속에서 얼어버린 손가락, 발가락을 잘라야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 힘든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동상과 비슷하지만 다른 참호족 동상과 비슷한 것으로 참호족이라는 것이 있다. 영어로는 ‘트렌치 풋(Trench foot)’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참호(Trench) 속에 오래 있다 보니 발생해서 만들어진 질병 이름이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기간 중에 이 병이 많이 생겨서 프랑스의 군의관 도미니크 장 라레(Dominique-Jean Larrey, 1766~1842)가 1812년 처음 이 병의 원인과 치료 등을 기술하였다고 한다. 라레는 부상당한 병사들을 효율적으로 운송하는 방법을 고안하다가 마차를 개조한 구급차를 만들어 전장에 투입해서 많은 병사들을 살렸다. 훗날 구급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의사다. 이후 1차 세계대전에서 참호전(Trench warfare)이 주로 벌어졌고, 여기에서 많이 발생하다보니 이름도 참호족이 되었다. 참호는 또 훗날 멋쟁이들의 대명사가 된 트렌치 코트의 기원이기도 하다. 비를 막아주면서 따뜻한 안감을 댄 긴 외투는 참호에서 입기 좋은 옷이 되어 당시 장교들의 공식 군복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민간에서 입는 트렌치 코트에는 계급장을 부착하던 견장, 수류탄이나 탄창을 걸 수 있는 허리의 디자인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동상과 참호족은 증상이나 위험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될 수 있다. 동상(Frostbite)은 말 그대로 얼어버릴 만큼 아주 차가운 조건에서 생기는 반면에 참호족은 15℃ 안팎의 다소 따뜻한 온도에서도 생길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동상은 신체의 말단인 귀나 손, 발이 손상되는데, 참호족은 며칠이고 군화를 신은 채로 적과 대치하느라 발이 오래도록 습하게 군화 속에 갇혀있어서 발에만 주로 발생하게 된다. 동상은 감염과 크게 관련 없이 인체의 방어작용으로 자신의 일부를 없애는 자연스런 작용이라면, 참호족은 방치하고 오래 두게 되면 세균 감염으로 살이 썩게 되는 ‘괴저(Gangrene)’가 생기면서 패혈증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다행히 참호족은 환기가 잘되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면 원상회복 되는 경우가 많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사람은,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재능이나 포부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일에 요란하게 떠벌이거나 기세등등해서는 안 된다. 효과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바에야, 충분하게 자기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바에야, 맹목적으로 교만하고 우쭐대는 이상심리를 배제하고 이겨내고 더더욱 겸허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길러야 한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 술은 반 정도 취했을 때가 좋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꽃이 활짝 피어 아름다울 때면 사람들에게 꺾이거나 시들기 시작한다. 술에 만취하면 좋은 꼴을 보이기 어렵지 않던가. 인생도 이와 같다. 뜻이 이루어져 득의만만할 때 의기양양해 거드름을 피우거나 안하무인이 되어서 저밖에 없다고 뽐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과녁이 되기 쉽다. 어떤 출중한 재능과 지혜를 가지고 있던지 간에 명심하여야 한다 : 자신을 굉장히 뛰어나다거나 지극히 빼어나다고 여기지 말라. 구국제민의 성인군자인 것처럼 오만방자해서는 안 된다. 칼끝을 거두어들이고 꼬리를 오므리라. 겸허하게 사람을 대하라. 옛날에, 칼끝을 너무 드러내 화를 입은 전형이 있다. 공로가 혁혁해 군주의 위세를 압도한 신하다. 강산의 주인이 되려고 다툴 때 각지의 영웅들은 한 장군의 지휘아래 모여들게 된다. 재능이 전부 드러난다. 하나같이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군주는 자신이 도모하는 천하재패의 야심을 실현하려고 개개인의 재능이 필요하다. 그런데 천하가 안정되면 그런 용장과 공신의 재능은 황제 마음속의 근심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개국 초기에 공신을 주살하는 일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날던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갈무리되고 적국이 무너지면 중요한 신하는 죽는다.” 토사구팽이다. 한신(韓信)은 미앙궁(未央宮)에서 피살되었고 송 태조는, “술잔 들면서 공신들의 병권을 없앴다.”〔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 주원장(朱元璋)은 공신들을 모아 연회를 베풀면서 경공루(慶功樓)를 불태워 버렸다. 예외는 없었다. 『삼국연의』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유비(劉備)의 죽음에 주의하였을 것이다. 유비가 죽자 제갈량(諸葛亮)은 큰일을 하지 않은 듯 보였다. 운주유악하고 풍부한 경륜의 칼끝을 몽땅 노출하였던, 유비가 살아있을 때와 같은 행동은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유비와 같은 명군이 있을 때는 제갈량은 시기나 질투를 받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유비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갈량은 온힘을 다하여 자기 재능을 발휘하면서 유비를 도와 천하를 공략하였다. 천하삼분의 형세를 완성하였다. 유비가 죽자 아들 아두(阿頭)가 계승하였다. 유비는 여러 신하 앞에서 말했다. “만약 이 녀석을 보좌할 수 있거들랑 잘 보필해주시오. 그런데 이 녀석이 군주의 재목이 아니라면 그대가 군주의 자리에 앉으시오.” 제갈량은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울며 땅에 엎드려 말했다. “신이 어찌 온힘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충정의 절개를 죽을 때까지 어찌 게을리 할 수 있겠나이까?” 말을 마친 후 피가 흐를 때까지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며 절했다. 유비가 아무리 어질고 의롭다고는 하나 국가를 제갈량에게 넘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가 제갈량에게 군주가 되라고 한 말은 진심이었을까? 유비가 제갈량을 죽일 마음이 없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후 제갈량은 한편으로는 행동을 겸허히 하고 조심하며 신중하게 하여 자기 모든 것을 다 바쳤고 한편으로는 일 년 내내 밖에서 정벌전쟁을 벌이면서 ‘천자를 끼고 있다’는 약점이 생길 구실을 없앴다. 게다가 그는 칼끝을 완벽하게 거두어들였다. 일부러 자신은 나이가 들어 쓸모없다는 것을 나타내면서 화가 자신에게 미치는 것을 피했다. 이것이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계책이다. 칼끝을 거두어들인 것은 제갈량이 대단히 총명했음을 대변한다. 칼끝(재능)을 노출하지 않으면 영원히 중용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칼끝을 너무 노출하면 오히려 사람에게 모함받기 쉽다. 잠시 성공은 얻을 수 있으나 자신이 자기 무덤을 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재능을 펼칠 바로 그때, 위기의 씨앗도 함께 뿌려진다. 그렇기에 재능을 밖으로 드러낼 때에는 적당한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오직 겸허하며 조심하고 신중해야만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 그래서 『주역』은 말한다.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이니, (겸손으로써) 큰 내를 건너더라도(건넘이) 길하다.” 겸허하면서도 조심하고 신중한 군자야말로 겹겹이 쌓인 곤경을 극복할 수 있다. 모든 장애를 없앨 수 있다. 결국에는 안전하고 길하며 상서롭게 된다. 『주역』은 또 말한다. “부유하지 않고도 이웃함이니, 침벌(侵伐)을 씀이 이로우니(이롭고), 이롭지 않음이 없으리라.” 무슨 말인가? 비록 부유하지 않더라도 산골짝이만큼 깊이 겸허하고 두 마음이 없음을 맹세하듯 의지가 굳으면, 가까운 이웃과 함께 거만하고 난폭하며 안하무인인 사람을 정벌하는 데에 이롭고, 어떤 불리한 결과도 생기지 않는다. 계곡만큼이나 깊은 겸허함이 있어야만 더 많은 인재를 만날 수 있다. 끊임없이 타인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특히 호적수에게서 자신이 부족한 점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적수’는 자기의 최고 스승이다. 끊임없이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키워나가라. 그래야 거만하고 건방지게 되지 않는다. 자만하여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지도 않게 된다. 복잡하고 다변하는 사회에서 사람 마음은 갈수록 들썽해지고 있다. 들썽하면 사람이 경망스럽게 된다.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아름다운 꽃을 곁에 두려면? 사업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려면? 지금부터라도 겸허하고 조심하고 신중해지자. 계곡처럼 깊은 겸허함을 가지려 노력하자. ***** 謙卦 ䷎ : 地山謙(지산겸), 곤(坤 : 坤☷)상 간(艮: ☶)하 겸은 형통하니, 군자가 끝마침이 있다.(謙,亨,君子有終.) 「대상전」에서 말하였다 : 땅 속에 산이 있는 것이 겸(謙)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많은 것을 덜어내 적은 데에 더해 주어, 물건을 저울질하여 베풂을 고르게 한다.(象曰,地中有山,謙,君子以,裒多益寡,稱物平施.) 겸은 높으며 빛나고, 낮아도 넘을 수 없으니, 군자의 끝마침이다./겸은 높은 사람은 빛나고, 낮은 사람도 넘볼 수 없으니, 군자의 끝마침이다.(謙,尊而光,卑而不可踰,君子之終也.) 겸은 형통하니, 군자가 끝마침이 있다.(謙,亨,君子有終.) 땅 속에 산이 있는 것이 겸(謙)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많은 것을 덜어내 적은 데에 더해 주어, 물건을 저울질하여 베풂을 고르게 한다.(地中有山,謙.君子以裒多益寡,稱物平施.) 부유하지 않고도 이웃함이니, 침벌(侵伐)을 씀이 이로우니(이롭고), 이롭지 않음이 없으리라.(不富,以其鄰,利用侵伐,无不利.) [傳] 겸괘(謙卦䷎)는 「서괘전」에서 “크게 소유한 자는 가득 차게 할 수 없으므로 겸괘로써 받는다”라고 했으니, 그 소유함이 이미 큰 것은 가득 차는 데까지 이르게 할 수 없고 반드시 겸손하고 덜어냄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유괘(大有卦䷍) 다음에 겸괘로 받은 것이다. 괘의 형태는 곤(坤☷)이 위에 있고 간(艮☶)이 아래에 있으니, 땅속에 산이 있는 것이다. 땅의 몸체가 낮아서 아래에 있는데, 산이 높고 큰 물건이면서 땅의 아래에 있으니 겸손함의 상이며, 숭고한 덕으로 낮은 것의 아래에 있으니 겸손함의 뜻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 원도심 칠성통에는 '찾아가는 미술관, 첫번째 재생;칠성통'이라는 전시가 한창이다. 7월 3일 까지 진행된다. 위 그림은 이 기획전시에 출품된 작품이다. 전시되고 있는 공간은 일반 갤러리가 아니고 원도심 칠성통에 있는 4층 건물로 현재 비어있으며 오래되고 상징적인 건물이다. 벽과 바닥 천정이 거칠게 노출되어 있으며 벽에 작품을 걸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내 건축공사 현장에서 쓰이는 비계에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한 공간에 작품이 어울리려면 작품크기도 커야 하고 화면도 강한 질감과 붓질이 필요할 듯 해서 일부러 이호해수욕장의 제주자연모래를 퍼와 모래의 거친 질감을 바탕으로 표현해 보았다. 제주의 자연모래를 사용한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하겠다. 그리고 아크릴을 이용하여 과감하고 즉흥적인 드로잉과 붓질을 통해 생명과 자연의 기운을 전달하려 한 작품이다. 전체적인 화면은 새로운 새벽이 시작된다는 의미로서 블루를 깔았고, 포인트는 하늘에 떠 있는 일곱색의 무지개 빛이다. 그 빛이 건물들 사이로 스며드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고 있다. 이 전시는 뉴미디어 아트를 포함, 다채로운 시각예술장르의 작가11인이 참여하여 함께 만든다. 낙후되고 쇠퇴한 원도심에 생기를 불어 넣고자 칠성통쇼핑타운 입구 4층짜리 비어있는 건물 전층을 활용한 뮤지엄급 전시라 자부한다. 오는 26일 일요일 오후 6시에는 전시 이벤트행사로 제주민요패 소리왓 공연이 펼쳐진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이 전시는 처음부터 이러한 취지의 전시로 기획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제주애월고 외부강사로 있었던 나를 포함하여 몇몇 사람들이 애월고를 관두게 되는 바람에 서로 그동안 정도 들고 헤어지기 아쉬워 의기투합, 만들어졌다. 다들 평소 작업에 갈증을 갖고 있던터라 흔쾌히들 수락하였다. 전시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을 모색하다가 중간과정에 먼저 입도한 건축가이면서 미술기획을 경험했던 고향선배와의 만남이 담소 레지던시 선배 작업실에서 우연히 이루어졌다. 뒤이어 또 제주에 내려와 있던 과거 내 제자 미술큐레이터의 적극적인 참여로 본격적인 이 전시기획이 시작되게 되었다. 전시기획이 확장되면서 서로 인연된 만남들이 또 귀한 인연을 낳고 새로운 만남이 이어졌고 무언가 필요한 상황이 될 때나 어떠한 순간에 함께할 사람들이 이 전시 프로젝트에 동참할 사람들이 나타나고 모이기 시작하였다.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프로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었다. 살다보면 사람이 상처도 주기도 하지만 사람이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한다. 사람이 있어 모든 일은 이루어지고 만들어진다. 사람이 곧 자산이기도 한 이유다. 내 일같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고마운 만남이 쉽지는 않을 터인데 '너영나영'이라는 제주어처럼 각자가 모여 함께 큰일을 만들어 가는 것 그 자체가 예술이 아닐까 한다. 이 전시는 이른바 문화예술지원금 없이 시작한 전시다. 그래서 오히려 더 값진 전시라 생각한다. 발로 뛰어다니면서 순전히 개인적인 후원과 협찬으로 이루어졌다. 600만원의 금액으로 모든 전시기획에 필요한 요소를 충족한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전시에 물적.심적으로 후원과 협찬을 통해 도움준 사람들, 친구들, 지인들 그리고 전시기획에 참여하여 프로기질로 자기 역량을 십분 발휘해준 사람들 등, 어느 한사람이라도 빠지면 이 전시는 성사될 수 없었다. 이 자리를 빌어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한다. 그래서 기적은 사람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리라. 기획은 또 하나의 예술이다. 사람들이 모여 전체적인 짜임새를 갖춰가야 하고 하나의 기획을 실행하기까지 무수한 일들을 해결해야 한다. 여기까지 크게 무리없이 진행된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지만, 지나보면 모든 일들이 참 신기한 일들이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민하던 문제가 수월히 해결되고 오히려 의외의 성과를 낳는 것을 보면 모인 사람들이 탁월한 역량과 노력의 몫도 크지만, 모든 것이 우연같아 보이지만, 우리가 알 수 없는 필연적 운명같은 보이지 않는 힘들이 작용하고 있음 또한 부인할 수 없겠다. 억지로 되는 것보다 순리대로 된다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과 집착, 아집과 교만같은 자기의 억지힘보다 이타적인 배려, 감사, 사랑에 더 큰 부등호를 그릴 때 모든 일은 저절로 풀리기도 함을 배운다. 칠성통을 포함한 구제주 원도심이 예전의 영광도 찾고, 거주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활기와 생기를 찾아 함께 번영하길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이 전시의 목적과 취지 그리고 위 작품의 본래 내용을 기록으로 남긴다. <찾아가는 미술관/첫번째재생/칠성통>을 시작하며 주요한 시대마다 형성기를 지나 번영기 그리고 쇠퇴기가 존재하듯 각 도시들도 마찬가지로 나름의 번영과 쇠퇴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구도시는 신생도시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추억의 한켠으로 자리한채 한 때의 번영은 서서히 옅어지고 만다. (찾아가는 미술관,첫번째 재생:칠성통)은 제주의 정치,경제,역사의 중심을 담당했던 원도심 칠성통 거리에 비어 있는 유휴공간을 지역주민과 예술,제주와 타 지역간 소통을 위한 기회의 자리로 만들고자 기획되었다. 숨을 쉬고자 물밖으로 뱉어 내는 해녀들의 거친 ‘숨비소리’처럼 예술가와 지역민들의 가쁜 삶의 숨소리를 이 전시를 통해 들려주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도시와 일상, 제주의 삶을 해석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여 문화예술로 제주 원도심의 재생을 꾀하고자 한다. 관람객들의 방문으로 칠성통 원도심거리에 생기를 불어넣고 다채로운 장르의 시각예술작품을 통해 ‘재생과 지속 가능한 공존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고민해 나가고자 마련되었다. ............................................ 일곱개의 빛. 이젠 빛바래고 낡아버린 과거의 추억속의 사진처럼 변해버린 내고향 제주 원도심 칠성통. 칠성의 빛 , 일곱개의 무지개 빛이 재생의 빛이 되어 칠성통에 다시 임하고 내려앉아 예전의 왕성하고 활력이 넘치는, 새로운 희망의 무지개가 뜨는 거리가 되기를 마음모아 그려본다 인간의 상상은 현실로 구현된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느 날 강둑에서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시체 한 구를 발견한다. 시체는 흉측한 모습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뿐 아니라 며칠 사이에 여기저기 전국 물가에서는 사람 시신들이 떠오른다. 신고가 빗발치고,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비상대책본부를 구성한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함께 모인 대책본부 내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못 찾고 신종플루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설, 북한에서 강으로 퍼뜨린 생화학 무기설 등 근거 없는 주장만 오고 간다. 사람들이 갑자기 미친듯이 물을 찾거나 물로 뛰어들면서 자살을 해 버리는 황당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원인이 기생충인 ‘연가시’란 놈임을 알게 된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물에 들어갔을 때 항문이나 구강을 통해 인체 내로 들어가 기생하다가 뇌에 영향을 주면서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어 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는 결론을 얻는다. 연가시란 놈은... 연가시는 철사 모양으로 기다랗고 흑갈색의 유선형 기생충이다. 물속에서 모기의 애벌레인 장구벌레 같은 중간숙주를 거쳐서 최종숙주인 육상 곤충의 배 속에 들어가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20㎝ 내외 크기인 성충으로 자라는데, 2m까지 긴 것도 보고가 된다. 연가시가 최종숙주로 삼는 육상 곤충들은 다양해서 사마귀, 귀뚜라미, 딱정벌레, 심지어는 바퀴벌레에까지 기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곤충 배 속의 양분을 다 가로채면서 내장 기관이나 체강 내부에 몸을 꼬고 살아가다가 산란기가 시작되면 곤충으로 하여금 물로 뛰어들어 죽게 만든다. 그래서 연가시의 학명은 ‘물’이란 뜻이 들어있는 ‘Gordius aquaticus’라는 용어를 쓴다. 자기를 먹여 살린 곤충이 물에서 죽어갈 때 연가시는 항문으로 유유히 빠져나온 후 물속에서 암수가 어울려 짝짓기를 시작한다. 얼마 후 암컷은 물속 나뭇가지 같은 것에 수백만 혹은 수천만 개의 알을 낳고, 2주 정도 지나면 애벌레가 된다. 그것을 장구벌레가 잡아먹고, 장구벌레가 성충 모기가 되어 육상 활동을 하다가 사마귀 같은 상위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면 연가시 애벌레는 그대로 사마귀에게 옮겨가게 된다. 이후 최종숙주인 사마귀 같은 육상 곤충의 배 안에서 연가시 성충으로 자라는 것이다. 최종숙주 안에서 자란 성충은 배란기가 될 때 곤충이 물로 들어가도록 혼란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연가시가 직접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숙주인 곤충의 유전자를 변형시켜서 신경전달물질을 많이 만들도록 조작하여 정신 착란을 일으켜 물속으로 빠져 자살하게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연가시가 사람에게 들어간다면... 자연에 존재하는 연가시는 사람 몸속에서 살 수 없다. 설사 우연히 들어왔어도 번식을 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그래서 영화에서처럼 연가시란 놈을 만났다 해도 공포에 떨 필요가 전혀 없는데, 영화는 이것을 소재로 두려움을 극대화한 것이다.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어 죽게 하는 이 기생충을 영화에서는 ‘변종 연가시’라고 명명하였다. 기생충에 대해서 상식으로 알아둘 점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다르게 기생충은 변종이 쉽게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생충에서 변종이 생긴다 하더라도 수십 년 정도의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다.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 이것들이 변종이 됐으며 사람 속에서 기생하게 된 걸까? 그 이유는 영화 중간에 밝혀진다. 연일 관련 보도가 뉴스 앞부분을 장식하고, 사망자는 100만 명, 200만 명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자 사람들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보통의 구충제로는 효과가 없고 유일한 치료약은 생산이 중단된 ‘윈다졸’이라는 구충제.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재혁(김명민)도 가족들이 걱정되어 주의하라고 말하지만, 결국 그의 부인도 감염을 피하지 못했고 점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변종 연가시에 대한 의문점들이 하나, 둘씩 벗겨진다. 윈다졸을 만들던 제약회사가 사람 속에 들어가서 기생할 수 있도록 변종 연가시를 만들었다는 사실과 그 치료제를 개발해서 떼돈을 벌겠다는 속셈이었다. 제약회사는 슬슬 품절된 윈다졸 성분 공개를 미끼로 7000억원의 가치를 지닌 회사를 정부에 5조 원에 팔려는 협상을 한다. 보통 이런 바이러스나 감염 관련 재난 영화들은 의사 혹은 감염병 전문가가 영웅처럼 활약해서 치료 방법을 찾아내면서 끝이 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회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서 병원장의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평범한 제약회사 직원인 재혁으로 하여금 문제 해결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들과 다른 점이다. 영화에서는 보통의 구충제(기생충약)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간흡충(간디스토마)이나 촌충 따위는 특별한 약물로 치료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생충인 회충‧요충‧구충(십이지장충)‧편충과 같은 선충류(유선형으로 생긴 기생충들)들에게는 메벤다졸, 알벤다졸, 플루벤다졸 같은 구충제가 확실한 효과를 보여 준다. 연가시도 선충류의 일종으로 이 계통 약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 약들은 오래 전부터 복용했던 약이고, 영화에서 설정한 것처럼 내성이 생기거나 효과가 없지 않다. 단순한 기생충을 소재로 전 국민에게 한동안 검색 순위 1위를 하게 만들면서 공포감을 일으킨 연가시 영화는 재미와 더불어 기생충 상식을 덧붙여서 본다면 의미가 더 할 것이다. 기생충 관련 영화는 찾기 힘들다. 2019년에 개봉한 ‘기생충(Parasite)’은 제목만 보면 징글징글하고 속을 메슥거리게 만들어진 영화일 듯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봐서 알다시피 어느 부잣집에 ‘기생’해서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소 엽기적으로 다루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과 송강호 등의 연기력이 좋아 황금종려상, 아카데미상을 비롯해서 2019년에 국내외 영화제 상을 싹쓸이 해버린 영화이다. 기생충이 실제 나오지 않았어도 부잣집 사람들을 동경하면서도 질시하는 양가감정이 드러나고, 기생충이 몸속에서 살다가 몸을 망가뜨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절묘하게 비유해서 만들었다. 참고로 기생충은 한자로 ‘寄生’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예전에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 등으로 멋스럽게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여성을 이르던 말인 ‘기생(妓生)’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 겸괘(謙卦) 『설문』은 풀이한다. “겸(謙)은 경(敬)이다.” 겸허해야만 다른 사람의 경모하는 마음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환영과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겸허는 사람을 진보하게 한다. 겸허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자신의 결점을 고칠 수 있게 한다. 자만하여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들은 자주 ‘득의망형(得意忘形)’을 이야기한다. 득의양양할 때 자신의 본모습을 잊고 자아를 잃어버려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원래 ‘득의망형得意忘形’이란, 뜻을 얻어 자신의 형체마저 잊어버리다 뜻이다) ‘득의망형’의 전고는 이렇다. 동진(東晉)시대 완적(阮籍)은 걷잡을 수 없이 방탕하였다. 시와 문장에 능했다. 어떤 때에는 집에서 공부하면서 수개월을 은거하며 밖에 나오지 않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산수 간에 놀며 즐기면서 열흘이나 보름을 집에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즐거울 때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였다. 너무 흥분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심지어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된지도 모를 정도였다. 까마귀가 득의망형 할 때는 자기 입에 물고 있는 고기를 떨어뜨려버려 늑대가 대신 먹어버릴 정도다. 모기가 득의망형 할 때는 거미줄에 걸려 목숨까지 잃을 정도다. 『봉신연의(封神演義)』에 명장면 한 단락이 있다. 소달기(蘇妲己)가 향락의 녹대(鹿臺)를 완공한 후 여러 여우가 수련하여 변신한 신선을 청하여 연회를 베푸는 장면이다. 어리석은 주왕(紂王)이 달기를 총애해 하루 종일 음악을 연주하고 연회를 베풀었다. 녹대를 지으라고 명하면서 병란이 사방에서 일어났다. 백성은 변혁을 바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2년 4개월 후에 녹대가 준공되었다. 주왕은 달기의 신선과 선자를 초청해 구룡천자(九龍天子)에게 가서 연회를 베풀었다. 달기는 39의 여우가 변신한 신선을 초청하였다. 주왕은 조가(朝歌)에서 두주불사로 소문난 승상 비간(比干)을 파견해 술자리 상대가 되어 어울리도록 했다. 9월 15일 밤, 신선들은 약속대로 도착하였다. 오는 신선마다 선인의 풍채와 도사의 골격(선풍도골)이요 기백과 도량이 비범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연회 중 ‘신선들’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형체마저 잊어버렸다. 술 두세 잔을 마시자마자 주량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하나 꼬리를 노출하는 게 아닌가. 비간이 대장 4명을 파견해 알아본 결과 원래 그 신선이라 것들은 성 밖 35리 떨어진 헌원(軒轅)묘에 살고 있는 매구 무리였다. 이에 군사를 보내 구멍을 막고 불태워 버렸다. “금에는 순금이 없고 사람 중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이 속담, 대단히 적절하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알려면 자신의 장점,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인식하여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결점, 잘못을 인식하여야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이용해 자신의 부족한 면을 바로잡아야 한다. 장점을 발양하고 단점을 없애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 결점을 보고서도 모른 척 하면 진종일 오만하여 눈에 보이는 게 없게 되고 자신의 본체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 결점은 매구의 꼬리처럼 다른 사람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 상대방은 그 결점을 이용해 아주 쉽게 승리를 쟁취할 것이고. 자신을 정확하게 보고 자기의 장점을 발휘하고 자기의 결점을 고칠 생각이 있거들랑 겸손하고 조심하며 신중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겸은 형통하니, 군자가 끝마침이 있다.” 무슨 말인가? 겸허의 미덕은 모든 일을 순조롭게, 막힘없이 통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겸허는 모든 사람이 견지해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군자라야 할 수 있다. 우리가 일하는데 마음이 들썽하게 되면, 일을 도중에서 그만두게 되면, 전심으로 어떤 일에 뛰어들 방법이 없다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겸허하지 않아서, 조심하며 않아서, 신중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스스로 반성해야 되지 않겠는가? “교만하면 손해를 보고 겸손하면 이익을 본다”(『대우모大禹謨』) 이 말은 옛 어른들의 신심을 닦고 교양을 쌓는 도리였다. “만족을 모르는 자는 손실을 더 보게 되고 겸허한 사람은 복을 더 받는다.”(구양수(歐陽脩)『역혹문(易或問)』)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공을 세울 수 없고 스스로 과시하는 사람은 뛰어나지 않다.”(『노자(老子)』) 모두 같은 도리다. 당나라 오긍(吳兢)은 『정관정요·정체(政體)』에 당태종의 한 말을 기록하였다. “천하가 조금씩 안정되면 더욱 두려워하고 삼가야 한다. 만일 경솔하게 교만하고 방자하면 실패하게 된다.” 이는 사람이 거만하고 자만하면 화를 불러오게 된다는 경고다. 자신을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는 옛말이 또 있다. 자신의 능력이나 결점을 정확하게 알려면 타인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남을 대할 때는 완전함을 바라지 말고 자신을 점검할 때는 늘 부족한 것처럼 하라.”(『상서·이훈(伊訓)』)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명철하다.”(『노자』) “자신이 겸허하면 (남의 말을) 듣기를 즐긴다.”(유우석(劉禹錫)『위생병요술(魏生兵要述)』) “군자는 타인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총명하게 된다.”(위원(魏源)『묵고(默)觚·치편(治篇)12』) “덕이 있는 사람은 총애를 받을수록 (자신을) 경계한다.”(『진어(晉語)』) “겸하여 듣는 밝음이 있으나 떨쳐 자랑하는 용모가 없으며, 겸하여 덮어주는 두터움이 있으나 덕을 자랑하는 낯빛이 없다.”(『순자·정명(正名)』) 『주역』은 말한다. “땅 속에 산이 있는 것이 겸(謙)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많은 것을 덜어내 적은 데에 더해 주어, 물건을 저울질하여 베풂을 고르게 한다.” 무슨 말인가? 땅 속에 산이 있다는 것은 높은 산은 지하에 표상을 숨겨놓는다는 뜻이다. 뛰어난 재능과 미덕은 마음속에 감추어 두고 밖으로 노출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겸(謙)이라 하는 것이다. 군자는 결국 손해는 많고 이익은 적다. 각종 사물을 따져보고 평가한 후 장점을 취하여, 단점을 보충하여 균형, 평형을 이루게 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에이즈 환자의 인권에 대한 영화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영화들을 보기 위해서는 에이즈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어서 다소 어렵지만 글 중간에 설명을 덧붙이게 되었다. 소개할 영화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Dallas Buyers Club, 2013)’과 ‘필라델피아(Philadelphia, 1993)’다. 달라스(Dallas)는 미국 남동부 텍사스주의 도시 이름이다. 바이어(Buyer)는 구매자를 뜻하니 영화의 제목은 달라스에 있는 구매자들의 모임인 셈이다. 보수적이기도 하고 마초들이 득실댈 것 같은 남부 도시 달라스에서 무엇을 팔기에 모임까지 만들었을까? 공사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는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는 코카인에, 로데오 경기 도박에, 오늘을 방탕하게 살며 내일이 없는 인간이다. 우연히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에이즈에 걸렸다고 판정을 받는다. 이미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여서 살 수 있는 날이 겨우 30일 정도라고 의사로부터 얘기를 듣는다. 당시에 에이즈는 말 그대로 불치병이고, 진단이 내려지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록 허드슨과 함께 세상에 알려진 에이즈의 공포 이 영화의 배경은 1985년경이며, 로널드 우드루프라는 인물의 실제 이야기를 다뤘다. 이 해는 ‘자이언트(Giant, 1956)’ 영화의 주인공이자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록 허드슨(Rock Hudson, 1925~1985)이 에이즈로 죽은 해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전에 없던 죽음의 병을 세상이 다 알게 되었고, ‘달라스 바이러스 클럽’ 영화에서도 록 허드슨의 이름이 언급된다. 그는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원인 바이러스라는 게 밝혀진 이후 사망했지만, 아쉽게도 그가 사망한 해는 치료 약제가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록 허드슨은 게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밝혔고, 죽기 전까지 에이즈 치료와 예방을 위해서 노력했다. 에이즈라는 괴물이 세상에 알려지게 한 최초의 유명인이었기 때문에 이 질병이 동성애와 등치되는 오해를 만든 걸까? 우드루프는 동성애자나 걸리는 병에 왜 자기가 걸렸는지 알아내려고 도서관에서 신문을 검색해본다. 열심히 자료들을 찾아보니 동성애자들이 많이 걸리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 이성애자도 성 접촉으로 충분히 걸리며, 마약 중독자들이 필로폰을 투여할 때 주사기를 함께 쓰다 보면 걸리기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코카인은 가끔 애용하지만, 필로폰 주사는 사용하지 않았기에 원인 제공처는 자신의 여성 친구일 것이다. 담당 의사인 이브가 상담을 마치고 환자 후원 모임을 권하자 우드루프는 비아냥대며 말한다. “난 곧 죽을 거예요” “그런 사람한테 호모들이나 만나라는 거예요?” 단골로 다니던 술집을 가도 사람들이 슬슬 거리를 두며 피한다. 친구 놈이 말다툼하다가 우드루프의 침이 튀자, “젠장. 침이 튀었어. 비누 어딨지?” 당장 죽을 듯이 설레발치며 화장실로 가서는 손을 박박 씻어댄다. 우드루프는 살아보려고 병원에서 임상시험 중이던 AZT(아지도티미딘, 최근에는 ‘지도부딘’으로 불림)라는 약물을 몰래 구해서 먹기도 한다. 용량도 모르고 함부로 먹다가 부작용으로 쓰러지고 입원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옆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와 말을 나누며 친해지게 되었다. 우드루프는 그를 남자 아가씨라고 부르는데, 같은 에이즈 환자이면서 자신이 죽도록 싫어하는 트랜스젠더이다. 남자 아가씨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들 때 중요한 동업자가 된다. 에이즈의 원인균 발견 1981년, 미국 의학계는 원인 모를 병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성소수자(대게는 게이를 말함) 중에 면역결핍 증상을 보이면서 폐렴 등 감염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사망하는 사례들이었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오직 알 수 있는 것은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있다는 점, 그로 인해 결핵, 폐렴 등 감염병에 취약해서 사망률이 아주 높다는 점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1983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미생물 학자 바레-시누시(Françoise Barré-Sinoussi, 1947~), 몽타니에(Luc Montagnier, 1932~) 박사가 세계 최초로 그 원인 미생물을 찾아내어 존재를 알렸다. 나중에 이 원인 바이러스를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라 부르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은 자궁경부암이나 콘딜로마를 일으키는 사람 유두종바이러스(HPV, Human papillomavirus)를 발견한 독일의 미생물학자 추어 하우젠(Harald zur Hausen, 1936~)과 함께 200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미생물이 밝혀졌으니 치료 방법이 활발히 연구되기 시작한다. 보통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세균)들은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직접 질병을 일으키는 게 대부분인데,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는 다른 바이러스들과 아주 다르게 활동한다. 그들은 사람 몸 안에 들어와 면역세포들을 파괴하고 면역체계를 약화시켜서 다른 흉악한 질병들, 예를 들면 건강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세균이나 곰팡이에 감염되어 결핵, 폐렴, 칸디다증(곰팡이 감염) 등이 생겨서는 회복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우리 면역계가 억제력을 잃게 되면 체력도 떨어져서 말라가며, 백혈병이나 카포지 육종과 같은 암도 발생하기 쉽다. 직접 병을 만들기보다는 다른 놈들이 들어와서 병을 일으키도록 몸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에이즈’라는 뜻은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에 걸려서 체내의 면역 기능이 저하되어 몸이 피폐해지며, 그러한 병에 걸려 오랜 시간 고생하거나 심하면 사망하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 질병 이름이다. 그래서 우리말로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 부르고, 영어로는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라고 한다.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인식 흔히 사람들은 ‘HIV 감염자 = AIDS 환자’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AIDS 환자는 거의 동성애자’라는 인식도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다. HIV 감염자는 말 그대로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말하지만, 모두가 에이즈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을 유지하거나 치료제를 잘 복용하면 요새는 웬만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국내 최초의 감염자가 아직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치료가 안 되거나 다른 이유로 면역력이 파괴되는 현상이 생길 때 에이즈라는 병명을 붙이기 때문에 둘을 같은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 또 하나 잘못된 인식은 '성소수자들은 대부분 에이즈에 걸린다'라는 오해다. 사실 성소수자들에게서 동성간 성관계로 인해 HIV에 감염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전체 에이즈 감염자 수로 비교해보면 절반 정도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이성간의 성관계에 의해서다. 2019년 한국 정부의 HIV/AIDS 역학조사 보고서에서는 이성간 성접촉에 의한 것은 전체 감염자의 46.1%, 동성간에는 53.7%라고 발표했다. 나머지 0.2%는 극소수로서 필로폰 주사 공동 사용 등으로 생긴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어떤 형태이든지 감염자로부터 성관계 혹은 생식기나 항문의 상처를 통해서 전염되는 것이지, 그 원인이 꼭 동성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이다. 대부분 성관계가 원인이 되는 이유는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된 정액이나 질액이 상대방의 성기 내 상처를 통해 옮겨가기 때문이다. 모유를 통한 수직감염, 마약 투여시 주사기를 같이 쓰는 경우도 있다. 수혈은 최근 철저한 관리로 인해 거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HIV 치료약으로 개발된 것이 주인공 우드루프가 몰래 훔쳐 복용하던 AZT다. 처음에는 항암제로 만들어졌지만,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켜서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를 공격하기 때문에 효과를 인정받아 에이즈 치료약으로 허가를 얻었다. 영화 달라스 바이러스 클럽의 우드루프는 AZT의 심각한 부작용에 대해서 몸소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단백질 영양제(펩타이드 T)를 복용했더니 자신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는 것을 알았다. 영양제이기 때문에 특별한 관리를 받지 않아도 돼서 에이즈에 걸렸거나, 걸릴까봐 걱정하는 성소수자들을 중심으로 이 영양제를 파는 회원 모임을 만든다. 이름하여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우드루프를 고소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오히려 제약회사가 숨기려 했던 부작용이 드러나고, 덕분에 용량을 줄여서 독성을 완화시킨 AZT와 펩타이드 T를 복합해서 에이즈 치료에 사용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우드루프는 최초의 에이즈 치료약 AZT 고용량 단독요법으로 속절없이 죽을뻔한 많은 이들을 살린 인물이 되었고, 30일 정도 살 것이라는 예측을 벗어나 1992년 9월 12일, 첫 진단 후 7년을 더 살고 죽는다. 주인공 우드루프역의 매튜 맥커너히는 이 영화를 위해서 살을 엄청나게 빼서 진짜 환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명연기를 펼쳐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텍사스가 고향인 맥커너히는 영화에서 그곳 사투리를 썼을까 궁금해진다. 또 다른 영화, 필라델피아(Philadelphia, 1993) 에이즈 환자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는 또 다른 영화 ‘필라델피아(Philadelphia, 1993)’를 권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형 로펌에 취직해서 일하는 앤드류 베켓(톰 행크스)은 장래가 촉망받는 변호사다. 그는 게이라는 것을 회사에 말하지 않고 숨기며 지내다가 몸이 안 좋아 받은 혈액검사에서 HIV 양성 판정이 나왔다.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나고 몸이 나빠져 에이즈로 진행된 상태였다. 일하던 법률회사는 이를 알게 되어 그를 해고하자 해고 자체가 부당하다면서 소송전이 벌어진다. 하지만 어떤 변호사도 그의 소송을 맡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게이이면서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영화가 제작된 당시는 여전히 성소수자들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에이즈에 대한 무지로 가득 차 있어서 HIV 감염자들에게 세상은 중세 수준의 인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몸이 안 좋아진 앤드류는 평소 자기와 감정이 좋지 않았던 조 밀러(덴젤 워싱턴)를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찾아갔으나, 그 역시 성소수자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거절당한다. 재판을 위해 10번째로 찾아간 건데 어렵게 되자 절망에 빠진다. 그러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조는 인종차별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는 자신들의 처지와 차별받는 동성애자들의 상황을 동일시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앤드류의 신념과 노력에 좋은 인상을 받아 변호를 맡게 된다. 거대 로펌을 상대로 길고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지고, 부당하게 해고됐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만만치 않다. 재판이 진행되는 긴 시간 동안 앤드류는 점점 몸이 쇠약해진다. 영화에서도 처음 장면에서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살이 빠지고 창백해지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주인공 톰 행크스도 그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몸무게를 20㎏이나 뺐다고 한다. 마지막 재판에서 변호사인 조는 강변한다. “이 법정에 모인 모두가 성적 기호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미움, 그리고 두려움 또한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미움이 어떻게 이 사람을 해고했는지 밝히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왜 제목이 필라델피아일까? 미국 독립선언문이 만들어지고 자유의 종이 있는 곳이 바로 필라델피아다. 영화는 재판이 성소수자들에게 역사적인 날이 될 것임을 상징으로 보여주려고 한 걸까? 유명한 주제곡 “Streets of Philadelphia”의 드럼 소리가 잔잔히 들리며 끝나기 때문에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영화를 음미하며 기다려도 좋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