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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다운폴 (13) 수많은 악마적 권력자 공과 있어
'괴물독재'로 맞선 '내란범'의 민망한 진영논리 ... 국민들에게 상처 남긴 비상계엄

영화 ‘다운폴’이 2004년 유럽에서 개봉했을 때 일부 관객의 거센 비난과 항의에 직면한다. 전체적으로 히틀러를 광기에 휩싸인 ‘악마’로 묘사하기는 했지만, 몇몇 장면에서 보여준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모에 관객들이 분노했다.
 

 

영화 속에서 히틀러는 자살하기 전날 에바 브라운과 순애보 같은 결혼식을 올린다. 여비서 드라우틀 융에에게 유언장 구술을 마치고, 부관들에게 자신의 시신처리에 관한 마지막 지시를 하고, 최측근들과 질식할 듯한 침묵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주방 아줌마’들을 찾아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일일이 손잡아 주고 감사인사를 전하고, 끝까지 자신을 ‘모셨던’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도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전한다. 

이 장면들만 떼어놓고 보면 범인(凡人)이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대단히 품위 있고 인간적인 장면들이다. 히틀러의 손을 잡은 사람들 모두 눈시울을 적신다. 히틀러는 순도 100%의 악마로 ‘낙인’찍어 역사 속에 ‘봉인’해 놓아야 한다고 믿는 많은 관객이 이 장면들에 거부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세계 역사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악마적 권력자나 전쟁광이 명멸했지만 그들에게도 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도 있어서 후대의 평가는 논쟁적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논란이나 고민할 필요도 없이 만장일치로 악마의 낙인을 찍고 역사적 평가에 ‘마침표’를 찍고 그 낙인을 봉인해버린 경우도 있다. 

1년 만에 정적 70만명을 처형한 소련의 스탈린, 캄보디아를 ‘킬링필드’로 만들어버린 폴 포트(Pol Pot), ‘발칸의 도살자’라는 별호를 얻은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 칠레의 피노체트(Pinochet)가 그러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권력의 광기에 휩싸여 자국민을 학살했다는 데 있다. 당연히 히틀러는 이 그룹의 상석을 차지한다.

인류의 양심은 이들에게 악마라는 낙인을 찍어 봉인했다. 행여라도 누군가에 의해, 어떤 이유로도 이 봉인이 해제돼선 안 된다. 이것은 원칙의 문제이기 때문에 무책임한 ‘용서와 화해’의 명분을 적용해서도 안 되고, ‘진영논리’를 동원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다운폴’에서 감독이 보여주는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모’에 관객들이 분노한 이유는 혹시라도 그 봉인이 훼손돼 히틀러라는 악령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지난해 12월 3일 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밖에는 표현할 길 없는 비상계엄령 발동으로 촉발된 6개월의 힘겨운 여정 끝에 마침내 21대 대통령이 선출됐다. 대통령 선거라는 것이 당연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지만, 워낙 황당한 사태로 느닷없이 맞은 대통령 선거라 유난히도 어지러웠던 듯하다. 
 

 

황당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대통령과 그 지지자에게 ‘내란 우두머리’와 ‘내란 세력’의 낙인을 찍어 청산하고 역사 속에 봉인해버려야만 하는 선거였다. 그런데 그 내란 세력이 이마에 내란이라는 불도장 낙인이 찍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온 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상처를 남긴 선거이기도 하다. 

내란을 심판하는 선거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이마에 내란 세력이라는 불도장 낙인을 제대로 찍어준 것인지는 모르겠다. 40%가량의 국민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여전히 내란 세력을 지지한 선거이기도 하다. 내란 세력에게도 살길을 열어주는 신비의 만병통치약이 진영 논리다. 

1950년대 니카라과의 소모사(Anastasio Somoza Garcia) 정권은 남미 최악의 인권탄압과 부패정권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미국 역대 최고의 대통령이라는 루스벨트가 이 최악의 독재자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보좌관들이 대통령에게 소모사 정권과 거리를 둘 것을 진언했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의 고민스러운 답변은 “소모사 ×자식 맞아. 그렇지만 우리 자식이야(Somoza may be a son of bitch, but he is our son of bitch)”였다고 한다. 

미국의 앞마당이라는 남미에 소련식 사회주의 세력의 확산을 우려한 진영 논리였다. 1980년 광주에서 자국민에게 총질을 해댔던 독재자 전두환을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첫 국빈으로 미국에 ‘모셨던’ 것도 전두환이 미국의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선거 과정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터무니없는 비상계엄을 발동한 대통령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중 아마도 40% 정도의 국민은 ‘그 자식, ×자식 맞아, 그렇지만 우리 자식’이라는 진영논리로 ‘윤어게인’을 외치고 윤석열의 끈을 흘러내리는 바지춤처럼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져준 모양이다.

자신들에게 ‘내란범’의 낙인을 찍으려는 상대 후보에게 ‘괴물 독재’라는 낙인을 찍기 위해 분주했던 것도 자신들의 민망한 진영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사(修辭)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면 진영논리도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진영 논리를 인지상정이라고 관대하게 받아줄 수만은 없는 경우도 있다. 왜(倭)가 쳐들어올 것 같다는 불안감이 커지던 1591년 선조가 왜국의 의중을 정탐하고 오라고 통신사절이라는 명목으로 황윤길과 김성일을 파견했다. 

문제는 황윤길은 ‘서인’ 진영이었고, 김성일은 ‘동인’ 진영이었다는 점이다. 돌아와 황윤길이 선조에게 왜가 쳐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는데, 김성일은 그렇지 않았다고 정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선조는 결국 김성일의 판단을 따랐다고 한다.
 

 

귀국 보고회에 동석했던 정승 유성룡이 김성일에게 ‘정말 왜가 쳐들어오지 않을 것 같냐?’고 다시 확인하자 김성일이 자기 생각에도 쳐들어올 것 같았지만 서인 황윤길이 그렇게 말하니 동인인 나는 반대로 말할 수밖에 없노라고 당당하게 답했다고 한다. 국가 대사에 진영 논리가 개입하면 어떤 재앙이 몰려오는지 보여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나치 전범들을 단죄하기 위해 1945년부터 1946년까지 진행한 뉘른베르크 재판은 진영과 관계없이 모든 독일 국민이 히틀러와 나치에게 역사의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고, 그 낙인을 봉인해버리는 하나의 의식(儀式)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대통령과 부역자들을 진영을 불문하고 국민 모두가 그들을 ‘내란 우두머리와 부역자들’로 낙인찍고 영구히 봉인하는 의식이었다고 기록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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