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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9) 美, 유례 찾기 힘든 전쟁 국가
74년째 전쟁 중인 남북한 ... 좌익 · 좌파 소리만 들어도
‘아바나 증후군’ 시달려 … 박정희 시대의 유산일까

아만다(줄리아 로버츠 분)의 가족은 인터넷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연결고리’와 단절된다. 비행기가 해변에 추락하고, 수백대의 ‘자율주행’ 테슬라들이 공장에서 뛰쳐나와 한 방향으로 질주하다 꼬리를 물고 추돌한다. ‘연결’의 단절과 거기에서 비롯된 혼란은 인간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연결이 끊기자 모든 게 혼란스럽다. 숲속에 있어야 할 사슴들마저 방향을 잃은 채 아만다의 펜션에 몰려든다. 플로리다에나 있어야 할 플라밍고 떼도 아만다의 수영장에서 어리둥절하게 헤엄친다. 급기야 하늘에서 아랍어로 ‘미국에게 죽음을’이라고 쓰인 ‘삐라’가 눈처럼 쏟아진다.

아만다 가족의 불안과 공포는 극에 달한다. 그들은 이 모든 사태가 9‧11 테러처럼 미국을 증오하는 세력이 감행한 공격이고, 미국 정부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 공포의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유리에 금이 갈 정도의 강하고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덮친다.

모두들 귀를 막고 쩔쩔맨다. 몇 초 만에 소리는 사라졌는데, 13세 아들 아치에게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한다. 두통과 거품을 물고 경련을 일으키는 발작증세를 보이다 멀쩡했던 이까지 빠지기 시작한다. 어금니를 너무 꽉 물었던 모양이다.

에스마일 감독은 소위 ‘아바나 증후군(Havana Syndrome)’이라는 아직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괴질환을 영화에 도입한다. 아바나 증후군이란 2016년 적대국인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에 근무하던 미국 정부 외교관 26명이 정체불명의 소음에 노출된 후 갑자기 두통과 기억상실, 불면, 발작 증세를 보였던 ‘의문의 질병’이다.

미국과 쿠바와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했던 사건이기도 하다. 여러 기관에서 수많은 가설을 내놓고 연구를 진행했지만 아직 뚜렷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이르러 전쟁과 안보 위협의 스트레스 속에서 상당한 괴음에 노출됐을 때 정신적 신체적 발작 증세를 보일 수 있다는 것으로 잠정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에스마일 감독은 미국인들 정신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전쟁불안증’을 들춰낸다. 미국은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전쟁 국가’다. 미국은 1776년 독립 이후 2024년까지 248년 중 219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024년까지로 한정해도 전세계 150개 지역에서 발생한 270개의 전쟁 중에서 미국에 의해 발생한 전쟁이 200개가 넘는다. 

어쩌면 미국에선 전쟁상태가 정상이고 평화는 비정상적인 예외 상황일지 모른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미국을 ‘전쟁 중독 국가’라고 손가락질해도 반박하기 애매하다. 어쩌면 미국인들의 만성적인 국가안보와 전쟁 불안감이 아바나 증후군을 야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만다 가족은 아랍어로 ‘미국에 죽음을(Death to America)’이라고 적힌 삐라를 보고 공포에 사로잡힌다. 미국의 전쟁의 역사가 그토록 화려하니 아마도 거의 전 세계가 미국에 죽음을 외치고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힐 만하겠다. 그 삐라를 읽고 난 후 어디선가 날카로운 괴음이 들리고 아치는 곧바로 발작을 일으킨다.

안보와 전쟁 불안감으로 아바나 증후군을 보이는 것은 미국인만은 아닌 듯하다. 우리는 74년째 전쟁 중인 나라다. 1953년은 ‘종전’이 아닌 ‘휴전’이다. 다시 말하면 계속 전쟁 중이다. 우리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좌익’ ‘좌파’ ‘북한’ ‘빨갱이’ 소리만 들으면 아치처럼 아바나 증후군을 보인다. 아치처럼 이빨이 모두 빠져버릴 정도로 어금니를 꽉 문다.

박정희 시대의 유산인지도 모르겠다. 좌익과 반국가세력 척결, 국가안보를 위해선 유신독재든 온갖 긴급조치와 비상계엄이든 모두 정당화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이 이미 50년 전의 ‘과거’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을 뿐 우리는 여전히 ‘박정희 시대’에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박정희’는 사라졌지만 ‘박정희’는 ‘컬트(cult)’로 남아있다.

남태평양 지역 폴리네시아와 미크로네시아 도서국가들에는 ‘화물기 숭배신앙(Cargo Cult)’이라는 ‘웃픈’ 현상이 아직도 존재한다. 말 그대로 원주민들이 썩은 화물기 모셔놓고 예배를 드린다고 것이다. 이는 문화인류학자들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현상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쟁의 주무대였던 그곳 섬들에 미국과 일본은 앞다퉈 군용화물기로 전쟁물자를 실어 날랐다. 아울러 전쟁을 위한 시설들을 세우고, 공사장에 동원된 원주민들에게 온갖 신기한 생활용품과 통조림, 식료품을 보급했다. 

원주민들은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와 모든 것을 하사한 화물기를 ‘신’으로 생각했다. 그때부터 그들에게 생긴 신앙이 ‘화물기 숭배신앙’이다. 그들은 아직도 이곳저곳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온갖 황홀한 화물을 싣고 왔던, 지금 섬 곳곳에 버려진 채 썩어가고 있는 화물기들을 신처럼 떠받들고 그 앞에 모여 머리 조아리고 소원을 빈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감히 그들을 미개하다고 조롱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리도 ‘화물기 숭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을 하늘에서 내려온 박정희가 가져다줬다고 생각하는 세대와 사람들은 오늘도 폴리네시아 원주민처럼 녹슨 껍질만 남은 박정희를 모셔놓고 숭배한다.

그의 따님을 모셔놓고 숭배하더니, 그 따님이 탄핵으로 물러났음에도 동대구역에 뜬금없이 박정희 동상을 세워놓고 대구시장님과 시민단체들이 충돌한다. 우리의 경제발전은 우리가 이룩한 것이지 박정희가 싣고 온 것이 아니다.

논리학에 유독 강했던 로마 학자들이 ‘인과관계’의 오류를 지적할 때 자주 사용해서 관용구처럼 쓰는 ‘post hog ergo propter hog’라는 라틴 구절이 있다. ‘A라는 현상이 B라는 현상 바로 다음에 일어났으므로, B가 A의 원인이라고 판단하는 논리적 오류’를 이른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아니다. 화물기가 나타나고 신의 선물이 쏟아져 들어왔으니 화물기가 신이라는 건 오류다. 닭이 울고 해가 떴으니 해를 뜨게 하는 것은 곧 닭 울음이 될 수도 없다.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당연히 닭을 신전에 모시고 경배해야 마땅하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독재, 긴급조치, 비상계엄으로 경제발전이 이뤄졌으니 우리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의 비결은 비상계엄이란 황당한 논리를 구사하는 광장의 목소리가 요란하다. 황당한 비상계엄령을 선포해서 직무정지된 대통령이 부디 다시 살아 돌아와 또다시 박정희 표 비상계엄령을 이번에는 박정희처럼 좀 제대로 실시해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니 황당한 비상계엄령보다 더욱 황당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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