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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3)
인간이 벌인 수많은 ‘사업’ ... 지구에 무해한 것 있었나
시들해진 ESG경영 열풍 ... 한발 물러선 글로벌 기업들
환경, 절박한 문제지만 … ‘더잘먹사니즘’만 좇는 사람들

아만다(줄리아 로버츠 분) 가족은 찰스턴 항구 해변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하던 중 대형유조선 ‘화이트 라이언(White Lion)’호가 백사장을 밀고 올라와 앉는 봉변을 당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실시간으로 뜨는 인터넷 정보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려 하지만 이미 인터넷도 불통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들은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달랜다.

 

 

그렇게 심란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아만다는 길가에 있는 ‘스타벅스’를 발견하고는 ‘스타벅스는 무조건 마셔줘야지’ 하는 듯 차를 세운다. 그런데 아만다나 가족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장면은 없다. 종업원이 카운터에 놓아주는 스타벅스 로고가 박힌 큼지막한 종이컵을 화면 가득히 보여줄 뿐이다. 도무지 영화적 맥락이 없다.

스타벅스 종이컵 등장이 얼핏 너무 난폭해서 실패한 PPL(상품 배치 간접광고) 같은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아마도 PPL은 아닌 듯싶다. 아름다운 해변에 나뒹굴고 있는 페트병과 스타벅스의 종이컵을 연결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인 듯하다. 

커피는 이제 우리도 숭늉처럼 마시고 사랑하는 음료이지만, 사실 커피 재배는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 못지않게 환경재앙을 유발하는 산업이다. 대규모 커피농장을 만들기 위한 삼림 벌채는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토양 침식을 유발한다. 화학 비료와 살충제 사용은 토양과 수질오염의 중요 원인이기도 하다. 커피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는 수자원 오염의 주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언젠가 가 봤던 남미의 한 커피농장에서 이상기온 탓에 서리가 내리자 커피나무 사이사이에 폐타이어를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 ‘범죄’를 본 적이 있다. 서리는 커피 원두에 치명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서리가 땅에 닿기 전에 녹여버리기 위해 폐타이어에 불을 붙인 건데, 무지막지하게 뿜어져 나온 시커먼 연기와 타이어 타는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굴뚝 산업이든 최첨단 산업이든 인간들이 벌이는 온갖 ‘사업’들 중에서 지구환경에 유익하거나 최소한 무해한 짓이 무엇이 있을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지구 입장에서는 ‘착한 인간은 죽은 인간뿐’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겠다.

이런 고약한 커피 산업에 종사하면서 스타벅스는 그나마 지구에 미안한 생각이라도 하고 ESG경영을 하는 가장 대표적 기업으로 알려져 있어서 감독이 특별히 영화 속에서 ‘참 잘했어요’ 도장을 한번 찍어준 듯싶기도 하다.

ESG경영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모든 기업들이 활동할 때 ‘환경오염,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ESG 경영론은 한때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는가 싶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아마존(Amazon) 주주총회에서 탈(脫)플라스틱 주장이 대거 후퇴했다. 석유에너지 산업의 선두주자 엑손모빌(Exxon Mobil) 주총에서도 탄소저감 주장이 슬금슬금 사라지기 시작했다. 비용이 증가하고 이윤이 감소하니 주주들이 잠깐이나마 지구에 미안해했던 것이 억울해진 모양이다.
 

 

그렇게 ‘잘먹사니즘’의 불패신화는 계속된다. 배송업체에 사과 몇알만 주문해도 ‘보랭백’에 사과 몇알과 함께 담겨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을 볼 때마다 기겁하게 된다. 그 업체 주주총회에서도 플라스틱 사용 자제 따위는 신경 끄자고 한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스타벅스는 종이컵에 텀블러 사용을 장려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종이 빨대를 시도하고 있으니 감독이 ‘참 잘했다’고 영화 속에 맥락 없이 큼지막하게 화면 가득 로고를 한번 띄워줄 만하다.

지난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한 후보가 상대후보에게 “RE100이 무엇인지 아시냐”고 ‘장학퀴즈’나 수능 ‘킬러문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상대후보가 “그게 뭐냐”고 눈만 껌뻑껌뻑해서 진영에 따라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그 공격적 질문을 한 후보도 ‘재생에너지 장려 방안을 알고 싶다’고 질문하지 그렇게 함정 파듯 질문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언론보도에도 후보들의 환경정책은 사라지고 오직 ‘RE100도 모르는 무식함’ 논란만 남았던 기억이 난다. 그 용어 하나를 알고 모르는 게 환경을 바라보는 인식을 가늠할 잣대인지 어리둥절해진다. ‘RE100도 모르는 후보’를 향한 비판 역시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본질적 문제보다는 잘먹사니즘에 기반을 두고 있는 듯해서 당황스러웠던 논란이었다. 

RE100은 애플, 구글, BMW 등 글로벌 대기업 345곳이 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만 생산한 제품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겠으며 당연히 수입도 않겠다고 선언한 민간 자율협약이다.

언론들도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지도자가 RE100도 모르면 어떡하냐는 ‘먹사니즘’ 걱정들이 주를 이루고 있을 뿐, 후보들이 지구환경을 보호하려는 인식과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묻지 않는다.
 

 

매년 발간하는 ‘유엔 인권보고서(UN Human Rights Report)’는 진정한 ‘인권’의 지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한다. 잘먹사니즘은 1960~1970년대에 중요시했던 ‘제1세대 인권’으로 분류된다.

1980~1990년대의 ‘제2세대 인권’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고 그 정체성을 탄압받지 않을 권리였다면, 2000년대 이후 소위 ‘제3세대 인권’은 누구나 맑은 물을 마시고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로 규정한다.

이제 환경문제는 먹고사는 문제나 인종과 종교, 이념의 문제보다 더욱 절박한 문제임을 가리킨다. 우리 인권의식은 그렇게 진화하지 못하고 1960년대 먹사니즘에서 1980년대에는 잘먹사니즘, 그리고 2000년대에는 ‘더잘먹사니즘’으로 진화하는 모양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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