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선거의 '바로미터', 풍향계 역할을 하던 제주지역 유권자 표심이 최근들어 과거의 균형잡힌 생각과 멀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양영철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장)은 5일 '제주의 정치발전과 도민의식'을 주제로 더 호텔에서 열린 제주언론인클럽(회장 이문교) 세미나에서 '역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본 제주정치발전과 도민의식' 주제발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양 교수는 "제주도민들은 한국 민주화를 위해 어느 지역보다 균형 잡힌 역할을 다했다"며 "대의제를 부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어떠한 정부나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낸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설령 지지를 하다가도 반민주적으로 가는 경우에는 과감하게 지지를 철회하고 집권여당 후보를 낙선시켰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선거행태가 과거의 균형잡힌 생각과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다른지역과 같이 '자신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어느 당이기 때문에' 투표를 하는 사회심리학적, 즉 비합리적.즉흥적인 투표행태가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의식, 지나치게 단일화로 가고 있다"
그는 "지연.학연.혈연이 최고의 투표 기준이 되어 가고 있다"며 "집권당이 잘하면 여당, 여당이 싫으면 야당을, 두 당이 싫으면 무소속에게 투표를 하면서 전국의 투표 방향을 잡아주던 제주도민의 의식이 지나치게 단일화로 가고 있다는 평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정당과 연계한 역대 총선 결과를 분석하고 제주도가 영남 성향에서 호남 성향으로 분류되어 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1~5대(1948~1963년)는 '여야 소극적 지지, 무소속 강한 지지', 6~8대(1963~1972년) '여당 독점시대', 9~14대(1973~1996년) '무소속 전성기(절대 지지) 시대, 15~19대(1996~현재) '1당 독점시대'로 분류했다.
◇박정희 집권 초반 공화당 독점 지역 제주도가 유일
6~8대까지 박정희 정권 시대엔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2개 의석 모두 석권하면서 여당 독점시대를 열었다. 이 시기에 공화당이 독점한 지역은 유일하게 제주도다.
9~14대는 국내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무소속 전성시대를 맞는다. 이 시기에 제주지역 당선자 중 최소 절반은 무소속이다. 11대와 14대에선 무소속이 모두 당선되는 이변을 낳았다.
◇한때 무소속 전성시대
제주 국회의원 정원은 9~12대 2명에서 13대부터 3명으로 늘어난다. 이 시기 제주도는 무소속 강세 지역으로 명성이 높아 정치학자들의 분석 대상으로 떠오른다.무소속 돌풍은 제1회 지방선거가 열린 1995년 도지사 선거에도 이어졌다. 당시 무소속 신구범 후보가 여당인 민자당 우근민 후보를 꺾고 승리했다.
15대 총선에 접어들면서 제주지역은 무소속이 지고 1당이 독점 또는 강세 지역으로 돌변한다.
16대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2석을 차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15대 총선에선 여당인 신한국당, 17대에선 여당인 열린우리당, 18대와 19대 연속 야당인 민주당이 3석을 모두 차지하는 등 특정 정당이 모두 석권했다.
전국적으로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독점하는 경우를 보이기 시작한 대수는 13대 부터다. 13대 총선에서 전남 등 호남은 평민당, 경북은 민정당이 독점하기 시작하면서 영호남이 확연하게 정당 편중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16~19대 총선 민주당 강세...호남 성향으로 분류
양영철 교수는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이 3석을 모두 석권한 뒤 16대부터 19대까지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어 제주도는 호남 성향으로 분류된다"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역대 정권과 총선 결과를 연계해 제주도민의 정치적 성향을 분석했다.
초대~3대 이승만 정부(1949~1960년)는 '소극적 저항기(약세)', 5~9대 박정희 정부(1963~1980년) '집권 전반기 절대 지지, 후반기 소극적 지지', 11~12대 전두환 정부(1980~1987년) '적극적 반대', 13대 노태우 정부(1988~1993년) '무관심.소극적 반대', 14대 김영삼 정부(1993~1998년) '절대적 지지', 15대 김대중 정부(1998~2003년) '적극적 지지', 16대 노무현 정부(2003~2008년) '절대적 지지', 17대 이명박 정부(2008~현재) '절대적 반대' 성향을 보였다.
이승만 정부 당시 제주도민들은 여야 보다는 무소속을 많이 선택했다.
이승만 정부에서 치러진 4차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은 매번 선택됐다. 제헌국회인 1대 총선에서 대동촉구당과 대동청년당이 1석씩, 그리고 무소속 1석을 얻었다. 2대 때는 무소속 2석, 국민회의 1석이었고, 3대 때 역시 무소속 2석, 자유당 1석을 얻었다. 4대 총선에선 민주당과 자유당, 무소속 각 1석씩 나눠가졌다.
4.3 사건에 대한 정부의 편향적 자세와 이승만 정부의 독재가 제주도민에게서 지지를 받지 못했다.
군사 쿠데타로 탄생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제주도민들은 집권 초반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1963년 10월 치러진 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470만2640표를 얻어 454만6614표를 획득한 윤보선 후보를 15만표차로 신승하면서 당선됐다.
그런데 제주도민들은 박정희 후보에게 63.5%(8만1422표)라는 높은 득표율을 안겨줬다. 윤보선 후보는 득표율 20.3%(2만6009표)에 그쳤다.
◇박정희 대통령 당선 제주 '일등공신'
제주에서 두 후보간 표 차는 5만5413표다. 전국 득표 집계에서 박정희 후보가 윤보선 후보에게 15만6천표 차로 꺾은 것을 감안하면 제주도민들은 박정희 후보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낸 것이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박정희 후보는 고향에서 50.6%를 얻어 겨우 과반을 차지했다. 오히려 전남에서 76만여표를 얻어, 48만여표를 획득한 윤보선 후보를 28만여표 차로 따돌렸다. 전남과 제주도가 박정희 대통령 탄생에 일등공신 지역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후 두차례 대선에서 제주에서 각각 7만3천여표, 7만8천여표를 얻었다. 윤보선 후보는 4만1천여표, 김대중 후보는 5만7천여표를 가져갔다.
대선과 마찬가지로 박정희 정권에서 치러진 다섯차례 총선에서 6~8대는 여당이 공화당이 싹쓸이했다. 9~10대 선거에선 공화당과 무소속 후보가 1석씩 나눠가졌다.
양 교수는 "박정희 정부에 대한 절대적 지지는 '여촌·야도'의 현상과 제주도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개발 지원을 한 영향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러한 집권 후반에 치러진 두차례 선거에선 유신독재 정부에 대해 절대 지지에서 절반의 지지로 대폭 후퇴하는 용기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두환 정부 출범 초에 치러진 11대 총선에서 전국 국회의원수 276명 중 집권여당인 민정당이 151석으로 과반을 넘겼는데도 제주에선 한 석도 당선되지 못했다.
12대 총선에선 민정당과 무소속 1석씩 나눠갖는다.
양 교수는 "제주도민들은 시퍼런 독재 칼 앞에서도 정통성 없는 정부에 대해 과감하게 지지를 거절했다"며 "이후 선거에서 전두환 정부가 수많은 공약을 했는데도 여당과 무소속 후보 1명씩 당선시키는 균형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양 교수는 전두환 정권 당시 제주도민들이 왜 야당을 지지하지 않았는 지 해석이 궁금하다고 했다.
노태우 정부는 정권을 인수하자마자 치른 13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민정당이 299석 중 125석밖에 얻지 못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 정부로 기록된다.
제주도민 역시 두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을 선택하지 않았다. 13대 총선에선 무소속 2석, 야당인 민주당 1석을 차지한데 이어 14대 총선에선 3석 모두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양 교수는 "집권여당이 두차례에 걸쳐 한 석도 얻지 못하는 패배를 맛보았다"며 "노태우 정부를 여전히 군부정권이라고 생각해 지지를 유보한 것이다"고 평가했다.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에서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민자당이 139석을 얻는데 그쳐 여소야대 정국이 지속된다. 하지만 제1야당인 국민회의가 민자당에 한참 뒤진 79석을 얻는데 그쳤다. 전국 선거가 여소야대임에도 제주지역은 여당이 3석을 모두 차지했다. 공화당에 이어 또 다시 여당 독점시대를 열게 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지지
김대중 정부에서 치러진 16대 총선에선 여당인 민주당에 힘을 실어줬다. 민주당 2석, 한나라당 1석을 차지한다. 전국적으로 민주당이 제2당에 머물렀지만 제주에선 제1당이 된 것이다.
양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이 4.3 사건 진상과 기념사업을 위한 노력과 국제자유도시 지원 등 제주도민에게 보여 준 진정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에선 대통령 탄핵 여파로 전국적으로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얻으며 한나라당을 제치고 제1당으로 떠오른다.
제주에선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 모두 정치 신인임에도 모두 당선되는 기염을 토한다.
양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도에 대한 애정, 대통령 탄핵주도당에 대한 견제, 새로운 인물에 대한 도민들의 요구 등이 결합된 결과다"라고 해석했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기간 중 두 차례 총선이 치러졌다. 대통령 취임 초에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낙승이 예상됐다. 예상대로 한나라당은 153석을 얻어 다시 제1당이 됐다. 민주당은 76석을 얻는데 그쳤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민주당을 선택했다.
지난 4월 치러진 19대 총선에서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과반수를 차지 제1당을 유지했지만 민주당은 127석을 얻는데 그친다.
하지만 도민들은 다시 야당인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이명박 정부 지지는 매우 약한 반면 야당 지지 절대적
양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는 매우 약한 반면에 야당에 대한 지지는 절대적이다"며 "4.3 사건에 대한 과거로의 회귀, 강정 민군복합항 문제, 지역정책에 대한 무관심이 낳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제주도민들은 정치 발전을 후퇴시키는 정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군부 정부에 대해 지지가 약하거나 절대 반대 경향이 강했다"고 평가했다.
양 교수는 "민주화에 헌신한 대통령에 대해서는 절대적 지지를 보낸 반면, 4.3사건에 대한 곡해나 편견을 가진 정부에 대해서는 절대적 반대 의사를 선거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