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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많게는 120ℓ 발생 … 염분 과다로 음식물 처리 미생물도 죽어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라면 국물 남기지 않기 운동 전개

한라산을 오르는 등반객이 어깨에 짊어진 배낭에 빠지지 않고 챙겨가는 먹거리가 있다. 바로 '컵라면'이다.

 

 

고된 산행을 거치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뜨끈한 국물에 '후루룩' 흡입하는 라면은 그 어디에서 먹었던 것보다도 꿀맛일 수밖에 없다.

 

한라산에서 버너 등을 이용한 취사 행위는 불법이지만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은 먹을 수 있다.

 

한라산에서는 언제부터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에서 근무하는 직원으로 구성된 '한라산국립공원후생복지회'가 1990년 1월부터 윗세오름과 진달래밭 대피소, 어리목에서 매점을 운영했다.

 

이때쯤부터 컵라면이 한라산 특식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당시 후생복지회는 매점을 운영하기 위해 별도로 직원을 채용했다.

 

컵라면의 인기가 어찌나 좋았던지 후생복지회가 한 해 매점에서 팔기 위해 사들인 컵라면만 30만개가 넘었다고 한다.

 

수요가 폭발하는 겨울 등반 시즌을 앞두고는 컵라면 수송 작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라산에 눈이 많이 내리면 화물 운반용 모노레일이 오도가도 못하기 때문에 겨울 등반 시즌 두 달 전부터 라면 수만개와 물을 끓일 석유 등 월동용품을 운반했다.

 

정상 등정을 앞둔 기착지인 윗세오름이나 진달래밭 대피소 앞에는 컵라면 등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1월, 28년 만에 한라산국립공원후생복지회가 해산하면서 매점도 폐쇄됐다.

 

후생복지회 해산과정에서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가 문화재청 승인을 받지 않고 28년간 대피소에서 매점을 운영한 것이 드러나면서 매점 운영권을 다른 주체에 넘기는 것도 어려워졌다.

 

본래 문화재청 소유 국유재산이던 윗세오름 대피소와 진달래밭 대피소는 붕괴와 조난사고 예방을 위해 개축된 후 2009년 3월과 2008년 5월 문화재청으로 다시 기부채납됐다.

 

우여곡절 끝에 컵라면을 판매하는 매점은 사라졌지만, 한라산에서 먹는 컵라면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특히 최근 '컵라면 먹기 인증사진 사진 찍기'가 유행을 타면서 컵라면과 보온물통을 가져와 컵라면을 먹는 일이 등반 필수 코스가 되다시피 했다.

 

자연스레 라면 국물 등 음식물 쓰레기 처리 문제가 대두됐다.

 

한라산 국립공원관리소에 따르면 한라산에서 하루에 모이는 라면 국물은 120ℓ에 달한다.

 

관리소는 매점 폐쇄로 라면 국물을 버릴 곳이 마땅하지 않자 2021년 8월 윗세오름 대피소 등에 등산객이 먹다 남긴 라면 국물을 모으는 60ℓ짜리 물통을 비치하고, 친환경 음식물 처리기 2대도 설치했다.

 

한라산에는 쓰레기통이 없어 등산 시 쓰레기가 발생하면 개인이 직접 되가져 가야 하는데 이때 라면 국물이 땅이나 화장실에 버려지기도 해 이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물통에 모인 라면 국물 등은 친환경 음식물 처리기를 통해 미생물이 포함된 톱밥과 섞여 분해되고 관리소는 이때 발생한 부산물을 모노레일에 실어 산 아래로 가져와 처리한다.

 

하지만 버려지는 라면 국물이 늘면서 친환경 음식물 처리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라면국물 염분 탓에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하는 미생물이 죽어버려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친환경 처리되는 화장실 변기에 컵라면 국물을 버리는 일도 잦아졌다.

 

관리소측은 대피소 화장실 입구에 '변기에 라면국물 및 음식물 쓰레기 투기하면 과태료가 부과됩니다'라는 안내 문구까지 내걸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라면 국물 정도는 넓디 넓은 산자락에 버려도 자연 분해된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나트륨 폭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라면 국물을 땅에 버리면 삼투압 현상에 의해 식물체 수분이 짠 국물을 머금은 토양으로 이동해 식물이 말라죽을 수 있다.

 

또 음식물을 처리하는 미생물이 죽은 것처럼 토양에 미생물도 죽을 가능성이 높은 데다 계곡 물줄기를 따라 흘러 깨끗한 물속에서만 사는 날도래, 수채(잠자리 애벌레) 등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

 

결국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는 현수막 게시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라면 국물 남기지 않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관리소는 라면 국물을 남기지 않는 방법으로 컵라면을 먹을 때 수프와 물을 절반씩만 넣어 애초 다 먹지 못할 양의 라면 국물이 생기는 것을 막자며 독려하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한라산에 라면국물을 버리다 적발되면 자연공원법상 과태료 20만원이 부과된다"며 "한라산을 찾는 모든 탐방객이 컵라면 국물 등 오염물질을 남기지 않는 작은 실천으로 한라산을 보호해 달라"고 말했다. [연합뉴스=백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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