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이 개정되려면 '개정이유와 근거, 신구조문 비교 등'이 자세히 설명되어야 한다. 이번에 공개된 제주특별법 전부개정안은 특별자치를 내세웠을 뿐, 각각 변경되는 수십개의 조문의 개정이유와 근거, 신구조문 비교 등에 대한 설명도 없다. '도민들은 알아서 공부해라!'라는 뜻이라면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전 제주도 고위 공무원은 제주특별법 개정 공청회마다 "제주도 전 지역을 관세자유지역으로 지정하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주장을 반영하였는지 제주특별법 개정안 279조는 '지정면세점'을 '제주자치도 내에서'라고 변경하여 '물품을 구입하여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반출하는 경우'에 관세 등을 면제하거나 환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행 '지정면세점(내국인면세점)'의 면세 또는 환급규정을 '도내 전 지역'으로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보아진다.
제279조(제주자치도 여행객에 대한 관세 등의 면제 또는 환급) ① 제주자치도 여행객이 제주자치도 내에서 물품을 구입하여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반출하는 경우에는 「조세특례제한법」, 「지방세특례제한법」 등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관세ㆍ부가가치세ㆍ개별소비세ㆍ주세ㆍ교육세ㆍ농어촌특별세ㆍ담배소비세 및 지방교육세를 면제하거나 환급할 수 있다.
② 제주자치도 여행객이 제주자치도에서 구입ㆍ소비하는 관광 관련 재화ㆍ용역은 「조세특례제한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부가가치세액을 환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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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원들과 지방공무원들이 유럽 연수기회가 많아지고 귀국할 때 공항에서 세금을 환급받은 경험에 '필'(?)이 꽃혀 “유럽에 가보니 이렇다!”며 아는 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책을 검토한 것이 아니라 잠시 단편적인 경험인데도 허세를 부리니 다른 사람들이 착각할 수 있다.
그들의 인식과 사실은 다르다. 유럽연합(EU) 국가를 방문한 외국 관광객은 부가가치세가 포함된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하여 국제공항이나 항만에서 세금을 환급받는다. 이 환급받는 세금은 '관세(customs)'가 아니라 '부가가치세(VAT; Value Added Tax)'다. 외국 관광객이 유럽연합 국가 이외의 국가로 이동할 경우에 그 나라에서 이 물건에서 관세가 부과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지정면세점에서 '외국물품'을 인도 받으면 '내국물품'
지정면세점에서 이미 면세된 물품을 구입하는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크다. 현행법에 따라 '지정면세점'으로 반입되는 특정한 '외국물품'은 수입해서 판매할 때 '관세ㆍ부가가치세ㆍ개별소비세ㆍ주세ㆍ담배소비세'가 면제된다. 그러므로 이미 면세된 외국물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면세하거나 환급할 세금이 없다. 그래서 면세점이다.
여행객이 '지정면세점'에서 '외국물품'을 구입하여 공항이나 항만에서 인도를 받으면 '내국물품'으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여행객이 이 '내국물품'을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더라도 '관세'를 부과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지정면세점' 이외에 '제주자치도 내에서' 물건을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반출하더라도 '관세' 부과대상이 아니다.
'관세'는 물품이 다른 나라로 넘어갈 때 국경(國境)에서 부과되는 세금이다. 관세청은 국경을 통과하는 국제공항이나 항만에서 외국으로 이동하는 물건에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기관이지, 도내에서 구입한 '내국물품'을 대한민국의 국내(國內)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에 세금을 부과하는 기관이 아니다.
외국 관광객이 도내에서 '내국물품'을 구입하여 귀국할 때 상대 국가에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그 나라의 사정이다. 외국 관광객은 도내에서 감귤이나 돼지고기를 국내의 다른 지역으로 가지고 갈 수 있으며 이 경우에도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외국으로 가지고 나갈 수도 없으며 관세가 아니라 검역 문제로 통관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여행객이 '제주자치도 내에서' '내국물품'을 구입하여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관세'를 부과할 수도 없는데 '면제 또는 환급하겠다'는 착각은 국제자유도시 망상에서 나온 오물 덩어리이다.
'법'도 아니고 '밥'도 아니
그 외의 세금도 마찬가지이다. 여행객이 도내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부과할 수도 없는 세금을 면제하거나 환급한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의심스럽다.
(1) '농어촌특별세'는 '① 소득세ㆍ법인세ㆍ관세ㆍ취득세와 등록면허세 감면을 받는 자 ② 개별소비세 납세의무자 ③ 증권거래세 납세의무자 ④ 취득세와 레저세 납세의무자 ⑤ 종합부동산세 납세의무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다.
그런데 '증권거래세'와 '취득세와 레저세',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납세의무자는 여행객이 도내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아니다.
(2) '교육세'는 '①금융보험업자 ②개별소비세 납세의무자 ③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 납세의무자 ④주세납세의무자'가 납부하는 세금이다. 따라서 '교육세'는 여행객이 도내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에 부과되는 세금이 아니다.
'금융보험업자'는 물건의 이동과 관련이 없으며,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 납세의무자'는 휘발류와 경유 등을 제조장에서 반출하거나 수입신고를 할 경우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그러므로 여행객이 도내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아니다.
(3) '지방교육세'는 '취득세ㆍ등록면허세ㆍ레저세ㆍ담배소비세ㆍ주민세ㆍ재산세ㆍ비업무용 승용자동차세'를 납부하는 자에게 부과된다. 그러므로 여행객이 제주도내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아니므로 '지방교육세' 부과대상이 아니다.
'취득세'는 부동산이나 차량, 회원권 같은 권리 취득에 납부하는 세금이다. '등록면허세'는 관계기관에 등록이나 면허를 받을 경우에 납부하는 세금이다. '레저세'는 경륜장이나 경마장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납부하는 세금이다. '주민세'는 해당지역 주민이 납부하는 세금이며, '재산세'는 토지와 건물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승용자동차세'는 자동차 등록지에 납부하는 세금이다. 이 경우에 부가되는 세금이 '지방교육세'다. 그러므로 물건의 이동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4) '담배소비세'는 '① 담배제조업자 ② 담배수입판매업자 ③ 외국에서 입국하는 사람이 반입하는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그러므로 여행객이 도내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아니므로 '담배소비세'를 부과할 수도 없으며 면제 또는 환급할 세금이 없다.
(5) '주세'는 “① 주류제조업자가 제조장에서 출고할 때 ② 보세구역에서 인수자가 주류를 인취할 때' 납부하는 세금이다. 그러므로 여행객이 도내에서 구입한 물건을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반출하는 경우가 아니므로 추가로 '주세'를 납부할 의무가 없다.
여행객이 도내 수입품 판매장에서 외국에서 수입한 담배와 주류를 구입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동 하더라도 '외국물품'이 아니라 '내국물품'이므로 '담배소비세'와 '주세'는 부과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면제하거나 환급할 대상이 없다.
탈세로 악용될 수 있는 규정
'개별소비세'는 ① 사행성기구나 귀금속, 고급가구나 승용차 등 고급 물품구입과 ② 경마장이나 골프장, 카지노 등에 입장할 경우에 부과되며, 사치성 소비에 중과세하는 세금이다. 그런데도 면제하거나 환급한다면 조세 정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탈세를 조장하는 규정이 되어버린다.
그렇다 할지라도 '경마장, 골프장, 카지노장'에 입장할 경우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는 도내에서 물품을 구입하여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비하여 서울시민이 도내에서 사행성 기구나 귀금속,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여 서울로 이동한다면 '개별소비세'와 '농어촌특별세'와 '교육세', '지방교육세'가 면제 또는 환급된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민이 도내에서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여 서울에 가서 등록하게 된다면 제주도 입장에서는 지방세인 '취득세와 등록면허세, 자동차세' 세원이 이탈 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국제자유도시 환상에서 빨리 깨어나기를
우리나라에서는 지정면세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이미 면세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별도로 면세 또는 환급할 세금이 없으며 이 점 유럽연합과 다르다는 점은 지방의원들과 지방공무원들이 다시 새겨야 한다.
그런데도 여행객이 도내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경우에 '부가가치세'를 면제나 환급한다면, 서울시민이 도내에서 고급차량을 구입하여 서울로 이동하여 등록하는 것처럼 국내 시장을 교란시키는 원인이 된다. 오히려 외국 관광객이 도내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다른 국가로 출국할 경우에 '부가가치세'를 면세하거나 환급해 주는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제자유도시'와 '특별자치' 정책 입안자들은 제주도를 대한민국의 주권과 통치권이 미치지 않고, 헌법이 적용되지 않는 제3의 국가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이 환상에서 빨리 깨어나지 않으면 제주는 화석처럼 퇴보한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의회는 특별자치에 맞도록 입법역량이 우선 강화되어야 하며, 제주특별법 전부개정안은 '퉁'치지 말고 각각 조문별로 '개정이유와 근거, 신구조문 대비'등 자세한 내용을 도민들에게 설명하기 바란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주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