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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세상풍경(13) .. 제주도민이 강정을 도와야 한다

이름 때문일까?

 

해군기지로 인해 여전히 아픔을 겪고 있는 강정을 바라보면 가슴이 시리다. 강정(江汀)은 그 이름처럼, 마을을 감싸 도는 강정천의 물이 사시사철 용출되어 바다로 흐른다. 대부분 제주의 내(川)들이 비가 오면 흐르다가 얼마 없어 말라버리는 건천이기에, 강정천의 흐름은 신비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정천을 ‘큰 내’라 불렀다. 강정은 물(江: 물 강)과 물(汀: 물 정)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오늘도 서귀포시민들은 식수의 70%를 강정 취수원과 정수장을 통해 공급받고 있다.

 

특히 강정천의 물은 제주도의 척박한 타 지역 토양과 달리 강정으로 하여금 그 귀한 '곤쌀'(백미)을 생산할 수 있게 하였다. 얼마나 논물이 깨끗하기로 소문났으면, 강정미의 품질이 궁궐에까지 알려져서 수라상에 올랐을까? 그 자랑스러움을 담아서 제주사람들은 강정 앞에다 일등을 붙여 ‘일강정((一江汀)'이라 불렀다.

게다가 향긋한 수박향기를 풍기면서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은어들이 바다에서 강정천으로 거슬러 올라오니, 마을의 기운은 상서롭게까지 비쳤으리라. 어쩌면 이 은빛 나는 ‘올림은어’들과 마을 안팎 사람들이 어우러져 벌이는 한바탕의 축제도 하늘이 설촌시에 이미 구성해 놓은 마을사의 극본일지 모른다. 마치 물 흐르듯이 강정의 이름도 그 인심과 함께 원근각처로 도도하게 퍼져갔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강물을 받아서 한층 깊어진 바다는 은어처럼 파도를 가르는 상군잠수들을 넉넉히 길러냈다. 섶섬·문섬·범섬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어장의 경관 또한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마을의 지경을 한 없이 드넓혔다. 화훼단지의 백합화가 향기를 바람에 휘날리기 시작하면 강정의 이름은 천혜의 기운을 타고 이국에까지 퍼졌다. 그래도 실상 강정은 600여 가구가 오순도순 처마를 맞대고 살아가는 전형적인 제주마을이다.

나는 가끔 고향 마을, 대포로 가는 길에 강정을 지난다. 강정(江汀)은 서귀포시로 통합되기 전, 중문면의 ‘짱’이었다. 중문면민단합체육대회가 열리면, ‘1강정((一江汀)'의 진면목을 여실히 드러내곤 했으니까. 사실, 이름만으로 보면 강정은 ‘냇가의 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의 중심’이라는 중문(中文), ‘사자가 온다’는 예래((猊來), 돌이 많아서 '돌숭이'라는 도순(道順)을 기세 좋게 물리쳤다. 물론 물이 돌아서 ‘도래물’인 회수(回水), 달처럼 아늑한 ‘넓은 들’의 월평(月坪), 샘물이 많은 하원(河源), 소통을 잘 하는 색달(穡達)도 강정의 적수가 못되었다.

 

하지만 포구가 커서 ‘큰개’임을 자부하는 대포(大浦)만은 만만치가 않았다. 강정의 샅바를 물고서, 그래봤자 ‘냇물’이라며 큰소리를 질렀다. 실제로 대포는 마을 면적이나 인구 면에서 강정의 절반에 불과하다. 맞장 뜰만한 적수가 못된다. 그럼에도 대회장소인 중문중학교와 가까운 위치적 이점을 이용해서 젖 먹는 아이까지 총동원하였다. 둘의 싸움은 그야말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을 이뤘다. 대포는 강정이 있어서 호전성이 솟구쳤고, 강정은 대포를 만나서 승부욕이 들끓었다. 대포와 강정이 마주 서서 팽팽히 마지막 줄을 당길 땐, 지던 해도 산방산에 걸터앉아 한동안 날숨을 죽였다. 운동장을 응시하며 붉어진 해의 얼굴엔 난형난제(難兄難弟)의 고민이 서렸다.

그래서일까? 대회가 끝나면 어느새 승패는 사라지고 모두가 해처럼 불그스레 취하였다. 중문면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한바탕 우정의 잔치를 벌일 즈음, 흥겨움에 취한 해도 오렌지 빛 미소를 뿌리며 내일을 기약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대회가 끝나면 마을 간에 결혼식이 벌어졌다. 아직도 강정에서 이름난 상군 잠수들 중에는 대포 출신이 더러 있다. 그러니까 두 마을은 이웃사촌이자 사돈지간이다.

2007년 4월 강정마을회가 해군기지 유치의사를 밝힌 후 화순과 위미를 제치고서 최종 승자로 가려졌다. 우리는 역시 ‘1 강정’이라 여겼다. 산남에는 ‘1 강정, 2 화순, 3 고산’이란 속설이 있다. 가장 풍광 좋고 살기 좋은 마을의 순서이리라.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찬성이 반대로 바뀌고, 갈등과 투쟁이 불거졌다.

이웃에 살면서도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무엇을 도와야할지 주저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강정은 전국적 이슈로 부각되었고, 육지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2011년 9월의 평화축제에는 2000여명이 운집하였다. 강정 주민보다 더 많은 숫자다. 우리가 발붙일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2011년 10월, 정부가 민·군복합형 관광미항(해군기지) 지역발전계획(안)을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열었다. 그간의 미안함과 불편함을 안고서 우리 대포동 사람들은 행사장으로 향했다. 김정문화회관에는 해군기지에 대한 도민사회의 관심과 제주지역에 미치는 파장에 비해 머쓱할 정도로 참석자가 적었다. 마치 수 십 명이 모여서 한 마을의 문제를 논의하는 장소와도 같았다. 하지만 막 설명회가 시작되자 일단의 사람들이 소란스레 들어왔다.

많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유독 여성인 내가 눈에 띄었을까? 그들 중 한 여자가 걸쭉한 육지 말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 여자는 왜 여기에 와 있어? 기지촌 들어오면 몸이나 팔아보려 기웃거리지?” 그 원색적 삿대질에 나는 그만 폭탄을 맞은 듯 쭈그러들고 말았다. 혹여 누가 들었을까 싶은 수치감에 얼른 자리를 옮겨 구석으로 가 앉았다. 시선을 둘 데 없어 황망해 있는 사이, 그들은 제주도 담당자가 인사말을 시작하자 한 바탕 소란을 피우고선 퇴장해버렸다.

저들 속에 정작 강정의 주민은 몇이나 될까 싶었다. 대부분 낯 선 얼굴, 생소한 말투였다. 지역발전 계획은 당사자인 강정보다 이웃마을 법환이 주도하는 분위기였다. 대포 사람들은 한 마디도 입을 떼지 못하고, 오히려 민망한 마음으로 자리를 떴다. 이 사건은 오래도록 나를 혼란스럽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또한 강정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 속에는 수상한 이들도 있음을 떠올리게 하였다.

다시 시간은 속절 없이 흘렀다. 강정은 더 많이 찔리고 상해서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강정출신 윤용택 교수를 통해 ‘강정마을 사람들이 벌이는 눈물겨운 싸움’을 보면서 강정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100년이 걸리더라도 해군기지를 반대한다’는 절규가 강정의 소리로 메아리쳐 울렸다. 가슴 저리게 미안했다. 눈물짓고 통곡하는 사진들, 까맣게 타들어간 얼굴들, 깡마르고 고단한 표정들, 분노와 좌절이 교차된 시선들이 슬프고, 아팠다. 예전의 그 여유와 힘차던 기운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실, 내가 아는 강정 사람들은 유별나게 강했다. 중문중학교 시절, 중문백사장에서 여름캠프를 하면 자연스레 수영대회가 열렸다. 대포 출신으로서 상군해녀의 후계임을 자부하는 우리는 너나없이 기세 좋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물을 만난 고기처럼, 때를 맞은 소나기처럼 신바람이 일었다.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오른팔 왼팔을 사정없이 휘저었다. 목표지점의 푯대를 향해 모두가 몸부림쳤다. 처음엔 한 무리의 멸치 떼처럼 덩어리지던 아이들이 얼마쯤 지나면 고등어처럼 벌어진다. 이윽고 머뭇머뭇 뒤처지는 선수들은 회수나 하원, 색달의 중산간 아이들이다. 중문의 신작로 아이들도 허우적거리긴 매한가지다. 반환점을 돌아서 출발선으로 돌아올 즈음, 예래와 월평의 온순한 아이들이 느슨해진다. 여전히 팔 다리를 필사적으로 저으면서 용쓰는 애들은 강정과 대포다. 막상막하(莫上莫下)의 경주다. 하지만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강정 아이들이 한 뼘씩 더 돌진해 나간다. 고개를 쳐들고 물의 면상을 치면서 몸부림쳐보지만, 대포는 거기까지다.

역시 강정이다. 강정 바다 그 깊은 물에서 전천후로 훈련된 은어의 후예들을 우리가 어찌 당하랴. 그 기억이 해군기지와 대등하게 겨루는 강정을 볼 때마다 비밀스런 기대를 갖게 하였다. 강정이라면 무엇이나 해낼 것 같은 믿음이 있다. 그들의 강인한 리더십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일강정의 면모를 보여주리라는 바람이.

하지만 지금, 강정의 상황은 비장하기 그지없다. 8년 이상 지속돼 온 갈등과 투쟁으로 수 억 원의 벌금폭탄을 사정없이 맞았다. 2014년 말까지 강정 해군기지 반대활동으로 벌금이 부과된 인원은 600여명에 달한다. 대대로 강정을 지켜온 토박이와 해군기지 이후 거주지를 강정으로 옮긴 주민이 반반 정도다. 가까이에 있는 우리가 달려가서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하는 사이에 멀리에서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몰려와 한주민이 되었다. 마을회관을 매각해야 이들을 위한 벌금을 해결할 수 있단다.

어디 벌금만 문제인가? 정작은 주민들 간에 찔리고 상하여 마음밭이 황폐해진 게 보다 더 큰일이다. 친목이 깨지고 친족 간 관혼상제가 파괴됐다. 교회마저 쪼개졌다. ‘해군기지 결사반대’가 찍힌 노란 깃발을 표식으로 마을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재회와 기다림의 상징인 노란 리본이 강정에선 저항과 거절의 메시지가 되었다. 강정을 지날 때마다 펄럭이는 깃발에서 마을의 적요함을 응시한다. 어쩌다 우리의 일강정이 이렇게 되었는가?

문득, ‘강정의 이웃은 누구인가?’를 질문하게 된다. 사전적으로는 ‘서로 가까이에 인접하여 사는 집’이 이웃이다. 그럼, 바로 법환, 월평, 대포가 아닌가? 아니, 중문·서귀포·제주도가 모두 이웃에 속한다. 제주는 한 점 섬이고, 섬 전체가 하나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자비를 베푸는 자’가 이웃으로 정의된다. 바로 이 자비로운 이웃의 개념과 연관하여 발의된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 요즘은 윤리적인 관점에서 이웃의 역할을 규정한다.

 

사마리아인은 다음과 같이 성경에 등장하는 얘기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된 채 버려졌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지나다가 죽어가는 사람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얼른 피하여 달아나고 말았다. 다음은 레위인이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았으나, 역시 피하여 도망쳤다. 세 번째는 여행 중 그곳을 지나던 사마리아인이 그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다가갔다. 그리고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맨 후 자기가 탔던 낙타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갔다. 거기서 정성껏 돌보아주었을 뿐 아니라 이튿날 그곳을 떠나면서는 주막 주인에게 돈까지 주면서 당부했다.

‘이 사람을 끝까지 돌보아주시오. 돈이 더 들면 돌아올 때 내가 반드시 갚아 주리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를 되묻는 성경은 우리에게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제사장은 당시 유대 사회의 지도층을, 레위인은 지역의 유지쯤으로 간주된다. 반면에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로부터 거룩하지 못한 민족으로 천대와 멸시를 받는 집단이다.

이쯤에서 강정과 착한 사마리아인을 연상해 본다. 나를 포함한 제주사회의 지도자와 유지들이 과연 진정한 이웃의 역할을 수행해 왔는가? 우리가 비겁하게 물러서서 바라만 보는 사이, 외지인들이 다가가서 이웃의 역할을 수행하진 않았는가? 이 점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법적 배경을 다시 살펴본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은 자신이 위험에 빠질 우려 없이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 불이행(Failure-to-Rescue)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개념이다. 구조거부죄 또는 불구조죄라고 한다. 프로야구 선수가 제대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식물인간이 된 사건이 입법의 사례로 적용되었다.

 

2008년 5월 이 법의 취지를 받아들여 우리나라 국회가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러나 아직은 처벌보다 착한 행위를 장려하기 위한 면책규정에 불과하다.

 

그 빛나던 강정이 이렇게 될 때까지 우리는 과연 불이행한 게 없는가? ‘강정이 자청한 일이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고 방조하진 않았는가? 이제는 우리가 강정의 이웃이 될 차례다. 우는 이들과 함께 우는 심정으로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리라. 국방연구원 고성윤 박사의 제안처럼 범도민적 차원에서 ‘치유 프로세스’를 가동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안도 체계화시켜야 할 것이다. 특히, ‘중앙정부와 해군이 강정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 제주도정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강정의 전면에서 제주도 차원의 주도권을 발휘해야 할 때다.

더불어 제주도민들도 ‘혼디 모다들엉’ 강정으로 달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가서 함께 울고·싸매고·얼싸안고·일으켜주며, 당장의 현안인 벌금 문제부터 함께 해결해 가는 거다. 마을마다 조직되어 있는 주민자치위원회는 이 때를 위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손이 될 수 있다. 마을마다 십시일반 마음을 모으면 강정의 마을회관은 세우고도 남으리라. 제주도에 불어 닥친 역사적 고난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한 궨당이 되어 오지 않았는가? 어쩌면 강정이야 말로 하늘이 선물한 이 섬의 진주, 그 아픔이야 말로 ‘제주도가 보물섬’인 하늘의 섭리가 아닐까?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일강정의 이름이 다시 한 번 제주의 긍지를 살려낼 줄 믿는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했으며, 언젠가 해녀가 되어 서귀포바다를 얼싸안고 살아가고 싶은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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