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끊임없이 괴로움을 준 질병을 말하라면 ‘관절염’을 들 수 있다. 개나 말, 소와 같은 반려동물이나 가축은 물론 들짐승들까지도 사지를 가진 동물이라면 누구나 겪는 병이기도 하다. 관절은 인체가 움직일 수 있도록 뼈와 뼈 사이를 연결하는 곳으로 여러 질환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무리하게 사용하다 보니 닳아서 생기는 ‘퇴행성관절염’과 서서히 염증이 심해지면서 관절이 망가지는 자가면역질환인 ‘류마티스 관절염’이 대표 선수들이다. ‘내 사랑(Maudie, 2016)’ 영화는 태어날 때부터 성장에 문제를 가진데다가 어린 나이에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게 되면서 걷기도 힘들고 손으로 물건을 쥐기조차 힘든 상태로 오빠와 고모로부터 박대를 받다가 나이브 화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모드 루이스(Maud Kathleen Lewis, 1903~1970)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이브(Naive) 화가란, 단어 뜻처럼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고, 특정 미술 사조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자신이 본 자연이나 실물들을 솔직하게 그리는 화가들을 말한다. 일을 하고 싶지만 아무도 일거리를 맡기지 않아서 고민하던 모드(샐리 호킨스)는 입주해서 일할 가정부를 구한다는 전단지를 보고 마을에서 떨어
날씨도 무덥지만, 정치권과 정부의 국민 무시 행태는 사람들을 더 지치게 한다.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로 급등한 물가가 서민 생활을 위협한다.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음)해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한 젊은이들이 늘어난 이자 부담에 한숨을 쉰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무역수지가 4~7월 넉달 연속 적자를 냈다. 불어나는 무역적자는 원화가치 하락 압력 요인으로 작용한다. 당국이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나서자 외환보유액이 감소했다. 미국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면서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졌다.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으려면 우리도 금리를 더 높여야 한다. 경제상황이 악화일로인데 경제팀은 보이지 않는다. 추석을 앞두고 물가는 더 오를 텐데 정부 대책은 유류세 인하 및 수입 농축산물에 대한 관세인하 외에 뾰족한 게 없다. 여당과 대통령실, 정부가 지혜를 모아 대응해도 모자랄 판에 정치권은 이전투구에 날을 새고 정부는 헛발질 정책으로 국민 신뢰를 갉아먹는다. 교육부가 취학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가 나흘 만에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폐기하겠다”고 물러섰다. 초·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시도 교
부모를 간병하는 일은 ‘우리들 대부분이 건너야 할 어둠의 긴 터널’이다. 게다가 때로는 10년 이상 이어질 수도 있으므로 혼자서 그 짐을 짊어지려고 해서는 안된다. 가급적 다른 가족들의 관심과 도움을 최대한 이끌어 내서 독박돌봄의 무거운 짐을 나눠 져야 한다. 더불어 주간보호, 방문요양, 요양병원, 요양원, 간병인 등 가능한 사회적 지원도 모두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간병은 무겁고 힘겨운 여정이다. 오죽하면 노인의 경우는 ‘죽어야 끝나는 전쟁’이라고 하겠는가. 어머니를 모셔온 지 20년이다. 아니, 처음 10년은 어머니가 우리를 돌봐주셨다. ‘아이들을 돌봐주면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아들을 위해, 나이 65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신 지 17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나를 붙좇아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당시 81세의 어머니가 지금은 100세가 되셨다.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보통 자식의 의무로 이해되지만, 나의 경우는 어머니의 권리라 해야 맞다. 어머니는 일찌감치 10년 동안 나로부터 ‘돌봄 받을 권리’를 저금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늘 ‘고맙다, 미안하다’를 입에 달고 사신다. 96세에 대퇴부골절로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은 V라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주인공이지만 ‘얼굴’이 없다. 첫 등장에서 마지막 죽음까지 마스크 속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 주인공의 캐릭터를 V가 쓰고 있는 마스크의 상징성으로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V의 마스크는 가이 포크스(Guy Fawkes)의 얼굴을 형상화하고 있다. 하얀 얼굴에 볼은 분홍빛이다. 콧수염은 양쪽으로 치켜 올라가 있고, 턱수염 역시 아래로 날카로운 칼처럼 내리꽂혀 있다. 웃는 얼굴 같기는 한데, 어쩐지 웃고 있는 것 같지 않은 기묘한 느낌이다. 영화의 ‘얼굴’ 역할을 하는 가이 포크스라는 인물은 1605년 영국 제임스 1세의 가톨릭 탄압 정책에 항거해 그를 암살하기 위해 영국 국회의사당 상원 건물을 국회 개원 날 폭약으로 ‘날려 버리려 했던’ 무척이나 과격했던 인물이다. 감히 국왕과 영국 귀족들을 일거에 날려버리려 어마어마한 양의 폭약을 의사당 건물 지하에 쌓아놓았다가 적발됐으니 그 처벌 수위가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간다. 그에겐 ‘Hanged, Draws, Quartered(목매달고, 끄집어내고, 토막내기)’라는 설명하기조차 끔찍한 왕정 시대 영국법이 정한 최악의 형벌에 처해진다. 일단 교수형에 처
이전에 소개한 에린 브로코비치 외에 환경오염을 다룬 또 다른 영화를 올려본다. 2019년에 제작되어 화학물질을 다루는 거대 회사와의 오랜 법정 소송을 다룬 ‘다크 워터스(Dark Waters)’는 화학계 기업들의 법률을 담당하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인 롭 빌럿(마크 러팔로), 그의 아내 사라(앤 해서웨이), 로펌의 대표 톰(팀 로빈스) 등의 화려한 배역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거대 글로벌 기업인 미국의 듀폰(Du Pont)사를 상대로 20년의 세월을 싸우는 롭이라는 변호사의 이야기이다. 화학물질을 생산해서 전 세계에 공급하는 듀폰사는 최근까지도 각종 코팅제로 사용되는 ‘테플론’이라는 유기화합물을 이용해 엄청난 수입을 올렸다. 테플론은 과불화옥탄산(PFOA)이라고 지칭되는 합성물질에서 나온 건데, 처음 개발될 때는 너무 단단하고 분해되기 어려운 화합물이라 2차 세계대전 때 탱크에 방수처리용으로 사용하다가 듀폰사에서 가전제품이나 장난감 등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탄소 8개가 연결된 화합물이라서 다른 말로는 ‘C8’이라고도 불리고, 프라이팬에서부터 장난감, 의류, 자동차, 콘텍트 렌즈, 종이컵 등 온갖 제품의 코팅 등에 이용되었다. 이 물질은 영화에서처럼 오랜 시간이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탄소중립의 필요성에 관한 뉴스를 누구나 한번쯤 언론을 통해 접해 봤을 것이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배출한 만큼의 탄소를 흡수하거나 제거해 순 배출량이 ‘0’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온실가스를 줄여 지구 온난화로 수반되는 전지구적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고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탄소중립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전 지구적인 노력과 참여가 중요하다. 특히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실천적 행동 변화는 유치원에서부터 초중고교, 대학, 성인교육에 이르는 기후·환경교육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 모두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실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후·환경교육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기후위기와 환경재난의 시대에 어린이와 청소년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세대가 될 것이다. 미래의 지도자, 시민으로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책임을 져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한 기후·환경교육은 절망과 낙담보다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이해와 참여를 높이고 책임감을 길러주는 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청
치매는 알기 쉽게 표현해서, 정신이 나가는 병이다. 영어로는 디멘시아(dementia)라 한다. 라틴어 de(~로부터 나간)+mens(정신)+ia(상태)의 합성어다. 다소 점잖게 표현하자면 ‘정신이 없어진 상태’라고나 할까. 신이 내린 가장 가혹한 형벌이 ‘기억의 유실’이라는 말 그대로, 정신이 나가면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선 자신의 인생 목적을 알지 못하므로 잠시도 인생길을 제대로 운전할 수가 없어진다. 삶에 대한 결정권도 없으므로 주변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의 삶도 피폐하게 만든다. 결국은 집을 떠나 요양원으로 보내지고 만다. 요양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요, 인생행로의 종착지가 된다. 우리나라가 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치매환자 또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실시한 치매극복 연구개발사업(2019)에 의하면 국민은 치매를 가장 우선적으로 극복해야 할 질병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인구고령화에 따른 치매환자 및 사회적 비용 급증으로 국가 재정부담 또한 심화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치매를 의료비 지출(34.3%), 환자·가족의 고통(54.8%), 발병원인과 치료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ㆍ2005)’는 제임스 맥테이그(Jaems McTeigue)라는 생소한 이름의 감독의 데뷔작이자 아직까지는 그의 인생작인 듯하다. 앨런 무어(Allan Moore)라는 ‘디스토피아(Dystopia)적’ 만화를 그 유명한 워쇼스키 자매가 영화각본으로 재탄생시켰다. 제임스 맥테이그는 ‘매트릭스’ 시리즈에 조감독으로 참여해 워쇼스키 자매와 인연을 맺었다. 영화는 2005년에 제작됐지만 앨런 무어의 원작만화는 1988년도 작품이다. 당시는 소련이 해체(1989년) 되기 전으로, 세상은 여전히 핵전쟁의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영국에선 보수당 정권(마가렛 대처 수상)이 내세운 신자유주의와 극우 정치노선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디스토피아 작가들이 그려내는 미래상은 언제나 ‘현재’의 세상에서 그 암담한 미래상의 ‘조짐’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한다. 어쩌면 디스토피아 작가들은 「25시」를 쓴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가 말한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존재들인 셈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들은 항해를 떠날 때 항상 잠수함에 토끼 몇마리를 태웠다. 토끼가 사람들보다 ‘산소 부족’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승무원들은 멀
병원 직원으로 취업하려고 면접을 보는 한 여성이 있다. 그는 고교 졸업이 전부이고 병원 근무 경력이나 의학 교육을 받은 적도 없던 터라 보기 좋게 탈락하고 만다. 안 되는 날은 뭘 해도 안 되는지 주차한 차에는 교통위반 딱지가 붙어있고,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한다. 이 여인이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 2000)’ 영화의 주인공이다. 에린은 사고의 소송을 위해서 에드 메스리(알버트 피니)라는 변호사를 만나지만 재판에서 지고 만다. 어린아이들 셋을 데리고 사는 그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수십 군데를 알아보다가 자기의 소송을 맡았던 에드라는 변호사 사무실에 우격다짐 격으로 일자리를 달라고 하면서 들어간다. 에드는 마지못해 사무실에 자리를 만들어주고, 어느 날 에린이 서류 정리를 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퍼시픽 가스 전력회사(PG&E)라는 회사에 부동산을 매각하는 서류 사이에 병원 기록이 들어있던 것. ‘백혈구 수치 이상, 염증이나 백혈병일 때 나타나는 현상임’이라는 소견이 적혀있는 기록을 보고 이상하다고 여겨서 병원 기록의 주인을 찾아 LA 외곽의 힌클리(Hinkley)라는 작은 마을을 찾아간다.
여의도 국회 앞 주유소는 기름값 비싸기로 유명하다. 땅값이 비싸니 임대료가 높기도 하겠지만, 주유소 이용객 중 상당수가 기름값에 연연해하지 않을 분들, 국회의원인 측면도 있을 게다. 그도 그럴 것이 의원에게는 매달 차량 기름값 및 유지비로 146만원씩 지원된다. 국회가 개점휴업 52일째인 7월 20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위해 문을 열었다. 여야 충돌로 상임위원회 구성은 못한 채 본회의만 열었다. 마침 그날은 의원 월급날, 50일 넘게 일을 하지 않고서도 세비 1285만원은 어김없이 받았다. [※참고: 여야는 22일 후반기 국회 원(院) 구성 협상을 타결했다. 지난 5월 30일 전반기 국회 임기가 끝나고 국회 공백 상태가 된 지 53일 만이다. 핵심 쟁점이었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와 행정안전·기획재정위원회는 여야가 1년씩 번갈아 가면서 맡기로 했다.] 의원 세비는 주말을 포함해 하루 일당으로 치면 42만8500원. 본회의나 상임위 회의에 사유 없이 불참하면 1회에 3만1360원을 감액한다는 규정(국회법 32조)이 있긴 해도 벌칙성 금액은 일당의 10분의 1도 안 된다. 더구나 6월부터 50일간은 국회에서 회의 자체가 열리지 않아 감액할 일도 없었다. 의원들이
‘오늘이 며칠이냐?’를 반복하여 묻는 것으로 시작된 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고구마나 감자·과일·떡 등 음식물을 종이에 싸서 이구석 저구석에 꽁꽁 숨겨두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의 방을 대청소하다 보면, 언제 적 것인지 모르게 새까만 곰팡이를 뒤집어 쓴 것들이 발각되곤 한다. 어떤 것들은 도무지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요양원 주간보호에서 나눠준 음식물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선생님이 빵이나 과자, 떡 등을 나눠주셨을 것이고, 어머니는 일부러 아껴 먹다가 슬며시 얼마쯤은 호주머니에 넣고 오셨으리라. 어머니의 어렸을 적 첫 기억이, 두 살 위 오라방의 손을 잡고서 이웃집 초상집에 밥 얻어 먹으러 갔던 것이라니...얼마나 음식에 대한 부족이나 염려가 일상적이었으랴. 또한 나의 달콤하고 비밀스런 기억 또한, 어머니께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계를 하고 오셔서 살짜기 내 손에 쥐어주시던 사탕 두 알이 아니던가. 나만의 그 은밀한 비밀을 안고서, 하나 둘 곯아떨어지는 언니들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던 그 겨울밤의 독서라니... 사실 책이야 흉내에 불과했고, 끄덕끄덕 거리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어머니의 발 기척에 용케도 눈을 부릅떠서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아버지 아우렐리우스와 아들 코모두스라는 2명의 황제를 보여준다. 철학가 뺨치는 지혜를 뽐냈던 아우렐리우스가 ‘정치가(statesman)’라면, 아버지를 목졸라 죽이고 황제 자리를 찬탈한 코모두스는 전형적인 ‘정치인(politician)’이다. 그럼 정치가와 정치인의 차이는 뭘까. 정치인은 정치를 입신양명과 부귀영화의 통로로 사용하고, 자신이 가진 권력의 크기를 즐긴다. 반면 정치가는 공동체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고, 자기희생을 통해 그 비전을 실현한다. 그래서 정치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크기만큼 고통스러워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치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정치가는 고통스러워도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대개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 3가지 성격의 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거나 타협한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면 아무 걱정 없겠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해야만 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픈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보통 사람이 아닌 권력자가 ‘해야만 하는 일’을 외면하고 ‘하고 싶은 일’에 매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