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양재찬의 프리즘] 美 반도체지원법 ‘독이 든 당근’
초과이익 환수 등 독소조항 포함 ...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 시급

 

1983년 2월 8일, 당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일본 도쿄 출장길에 반도체 중에서 첨단 기술인 초고밀도집적회로(VLSI)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도쿄 선언’이다. 이는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7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사업이 본격화한 날로 가히 삼성의 운명을 바꾼 날이다.

앞서 1974년 12월 삼성전자는 파산 직전인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사업에 손댔다. 하지만 자체 기술 없이 조립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삼성은 가전제품용 고밀도 집적회로(LSI)도 겨우 만들던 때라 미국 인텔이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조롱했다.

삼성의 대규모 투자는 속전속결이었다. 6개월 만에 반도체 공장을 지었다. 그해 말 세계 반도체시장의 주력 제품인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일본과 비교해 10년 넘게 벌어졌던 기술격차를 단숨에 4년 정도로 줄였다. 이듬해인 1984년 5월, 삼성반도체 기흥 1공장을 준공했다. 국내 최초, 세계에서 세 번째 반도체 생산국은 이렇게 탄생했다.

한국의 반도체 신화는 기업의 의지, 우호적인 국제환경, 정부의 지원 등 3박자가 맞춰진 합작품이었다. 삼성은 창업주의 경영철학 ‘사업보국(事業報國)’에 맞춰 기술개발에 전념했다. 1980년대 세계 최강이었던 일본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한국에 기회로 작용했다. 정부도 반도체 육성 계획과 기흥공장 부지 지원 등으로 뒷받침했다.

‘도쿄 선언’ 이후 40년이 흐른 오늘날 한국 반도체산업이 처한 현실은 냉혹하다. 세계경기 침체 여파로 수요가 부진해 주력인 D램 가격이 급락하고 수출이 반토막 났다. 미국·중국 간 패권 다툼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불확실성을 키웠다. 게다가 미국은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며 보조금 지원을 미끼로 미국 내 공장 설립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2월 28일부터 390억 달러(약 50조원) 규모의 보조금 지원 신청을 받고 있다. 미국에 추가로 공장을 짓기로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대상이다.

 

 

하지만 보조금을 받으면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지 않는다는 ‘가드레일(안전장치)’을 지켜야 한다. 1억5000만 달러 이상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초과이익을 거둘 경우 일부를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또한 반도체 생산 및 연구 시설을 미국 정부에 공개하는 기업에 보조금 우선순위가 주어진다.

경쟁사와의 공정 격차가 관건인 반도체산업 특성상 생산·연구 시설 공개는 치명적 위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초과이익 환수를 이유로 미국 정부가 기업 회계장부까지 보겠다는 것도 지나친 경영 간섭이다. 말이 반도체지원법이지 ‘독이 든 당근’으로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로선 진퇴양난이다. 반도체 지식재산권과 생산장비 공급망을 쥐고 있는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참여는 선택이 아닌 생존조건이다. 그렇다고 반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고 대규모 공장이 가동 중인 중국에 등 돌릴 수도 없다. 미국의 기술 및 보조금도, 중국 시장도 모두 필요한 한국으로선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이는 개별 기업에 맡겨 둘 수 없는 국가적 현안이다.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 미국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무리한 요구에는 적극 대응해 윈윈하는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1일 자국 민주당 하원의원 연찬회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의 미국 투자를 거론하며 자신의 경제성과로 자랑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에 따른 보조금 차별로 한국산 전기차가 불이익을 당한 것처럼 뒷북 대응해선 안 된다. 이번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강대국들이 수출입 규제, 보조금 지원, 세액 공제 등을 동원해 전략사업을 육성하는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면 세계시장에 진출한 우리나라 큰 기업의 국내 투자는 거의 실종될 수도 있다. 중국으로의 신규 진출은 물론 기존 중국 공장의 증설 및 신제품 생산에도 지장을 받을 수 있다. 
 

 

전기차와 전기차용 배터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잘하고, 경쟁력 있는 분야에 대한 주권 행사가 어려워지면 경제는 물론 국가안보도 위태로워진다. 정부와 정치권은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하고 기업들과 협력해 ‘칩 주권(Chip Sovereignty)’ 등 산업 주권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경제안보 외교의 국익 확보 수준을 높이자. 식민 지배와 국토 분단, 전쟁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올라선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체득했듯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