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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잉글리시 페이션트 (2)

헝가리 출신 사막 탐사가인 라즐로 알마시(랄프 파인스)는 리비아 사막에서 영국 출신 사막 탐사가 제프리 클리프턴(콜린 퍼스)과 합류한다. 두 탐사가의 협업은 원래 문제 될 게 전혀 없는데, 제프리가 아내인 캐서린(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을 사막까지 데려오면서 심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일반인’ 아내를 사막까지 데려온 남편도 어이없고, 따라온 아내도 딱하다.

 

 

알마시와 캐서린의 회복불능의 ‘잘못된 만남’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서로가 찾던 짝을 그 사막에서 만난다. 캐서린은 알마시와의 첫 대면에서 그가 쓴 사막 탐사기를 읽어보았다면서 “아무런 수식어 없이 그렇게 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고 인사한다.

사실 형용사와 부사와 같은 수식어 없이 글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캐서린은 사막을 향한 관심보다는 수식어 없이 글쓰기 작업을 해내는 알마시란 사람에게 호기심을 느껴 사막까지 따라왔는지 모르겠다.

흔히 글쓰기를 요리에 비유하면 형용사는 설탕이고 부사는 소금에 해당한다고 한다. 명사와 동사는 재료에 해당한다. 형용사와 부사를 쓰지 않는 글은 요리로 치면 ‘날것’이다. 조난을 당하지 않은 다음에야 날것을 먹기는 힘들다. 혹시 양념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재료 자체로 대단히 훌륭하고 신선해야만 하고 대단히 훌륭한 요리사만이 만들 수 있다. 글쓰기로 치자면 대단히 정확하고 정밀한 명사와 동사를 구사해야만 가능하다. 

대단한 문장가 볼테르(Voltaire)는 “형용사란 명사의 적이다. 다시 말하면 본질의 적”이라고 단언한다. 스티븐 킹(Stephen King)은 수식어에 더 적대적이어서 “수식어로 포장된 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극언을 퍼붓는다. 독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수식어를 향해 독설을 날리지 않았을 리 없다. “수식어가 떠오른다면 그것을 죽여라. 수식어를 모두 죽이고 나면 그 나머지 말들이 비로소 가치 있게 될 것”이라며 수식어에 치를 떤다.

이들은 모두 현란한 수식어를 동원할수록 말과 글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을 경계한다. 지나친 양념은 훌륭한 재료까지 망쳐버린다. 아마 알마시도 그들과 같은 부류의 작가인 모양이다.

‘수식어 없는 사막 탐사기’에 감탄하는 캐서린에게 알마시는 “빠른 차, 느린 차, 까만 차, 빨간 차... 그냥 모두 똑같은 차일 뿐”이라면서 설탕도 소금도 치지 않은 ‘맛대가리’ 없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불행하게도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는 그 말에 오직 캐서린만이 깊이 공감한다.

캐서린은 알마시가 내놓는 양념 치지 않은 요리에 매혹된다. 남편 제프리에게서는 물론 영국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요리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모든 것에 심드렁한 알마시도 자신의 ‘맛없는 진짜 요리’에 박수를 쳐주는 캐서린에 빠져든다.
 

 

어쩌면 헝가리 귀족 출신 알마시가 사막에 매혹된 것은 사막에는 수식어가 필요없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사막에는 시원한 사막이나 뜨거운 사막, 좋은 사막, 나쁜 사막이 따로 없다. 똑같은 사막일 뿐이다. 사막에 경계를 치고 다투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막을 벗어나면 비옥한 땅도 있고 척박한 땅도 있다. 

똑같은 땅을 두고도 ‘헝가리 땅’ ‘오스트리아 땅’ ‘독일 땅’으로 나누어 누구는 수용하고 누구는 배제한다. 땅의 의미는 사라지고 ‘좋은’이나 ‘나쁜’이라는 수식어만 남는다. 혹은 헝가리나 오스트리아, 독일이라는 ‘수식어’만 남고 정작 본질인 ‘사람’은 가려진다. 똑같은 인간을 두고도 헝가리인, 오스트리아인, 독일인으로 나누어 차별하고 죽이고 죽는다.

이 영화의 제목은 ‘영국인 환자(English Patient)’다. 환자라고 똑같은 환자가 아니다. 영국 병원은 알마시를 영국인이라고 ‘오해’해서 돌보아준다. 그의 국적이 헝가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환자’로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구분과 구별을 위한 모든 수식어는 ‘차별’로 이어지곤 한다. 우리말은 명사나 동사보다 형용사와 부사가 유난히 발달한 언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소한 차이도 예리하게 발견하고 구분하고 그것을 차별적으로 대하는 데에도 유난스럽다. 

똑같은 사람을 남자, 여자에서 시작해서 돈 많은 사람, 돈 없는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잘생긴 사람, 못생긴 사람, 하얀 사람, 까만 사람, 일본 사람, 중국 사람 등등으로 분류하고 차별한다. 

이 다양한 수식어에 따라 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수식어에 따라 개만도 못하게 대응하기도 한다. 사람이면 그가 어떤 사람이든 사람이라는 명사로 대해야 할 텐데 그 앞에 붙는 형용사로 대한다. 명사 앞에 형용사가 붙으면 명사가 사라지고 형용사만 남는다.
 

 

알마시와 캐서린의 첫 인사 장면에서 알마시가 ‘느린 차든 빠른 차든, 까만 차든, 빨간 차든 모두 그냥 차일 뿐’이라고 하자, 옆에 있던 제프리가 생각 없이 끼어든다. ‘그럼 고장난 차는?’ 알마시도 그 질문에 즉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알마시는 ‘고장난 차’ 같은 인간까지도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고 선언하지 못한다. 느린 차든 빠른 차든 다 똑같은 차이듯, 인간도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는 듯 말이다. 알마시의 입장에서 보면 멀쩡한 사람들을 두고 뭐 그리 구별과 차별이 많아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수식어가 떠오른다면 그것을 죽여라. 수식어를 모두 죽이고 나면 그 나머지 말들이 비로소 가치 있게 될 것”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이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 오늘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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