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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잉글리시 페이션트 (12)

 

영화 속 간호사 해나(Hana)는 선의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이다. 해나가 돌보는 부상당한 병사들은 해나의 선하고 상냥한 미소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병사들은 해나에게 키스 한번만 해주면 고통도 잊고 잠도 잘 올 것 같다고 보챈다. 성희롱으로 영창에 갈 만한 작태들이다.


해나는 그런 병사들에게도 상냥한 미소를 잃지 않고 ‘마지막’이라며 키스해 준다. 성희롱일 수도 있는 부탁을 해나는 ‘선의’로 받아들인다. 지켜보던 모든 병사가 자기도 해달라고 아우성친다. 해나는 팬들의 사인 요청을 모두 들어주지 못하는 스타처럼 미안한 미소를 짓고 빠져나간다.

어느날 해나를 ‘언니’처럼 따르는 어린 간호사 동료가 해나에게 데이트 비용을 빌려 달라고 한다. 자기도 돈 없다고 웃던 해나는 어린 간호사가 또다시 칭얼대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돈을 건넨다. 갚을 수 있는지, 언제 갚을 것인지 빌리는 사람도 말하지 않고 빌려주는 사람도 따지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을 ‘선의’로 처리한다.

전신 화상을 입은 알마시가 치료를 위해 병원 수송차량을 타고 먼 길을 가기엔 어렵다는 걸 알아챈 해나는 그와 함께 폐허가 된 수도원에 남기로 한다. 해나는 그곳에서 근처 군부대 지뢰제거반에서 일하는 킵이라는 시크교도 인도 병사에게도 선의와 믿음으로 대한다. 종교도 피부색도 국적도 다르지만 그와 사랑을 나눈다. 

또한 알마시와 해나 단둘이 떨어진 수도원에 카라바지오(윌렘 대포)가 찾아든다. 정체도 알 수 없고 인상도 고약한 이 사내에게도 해나는 그가 자신과 같은 캐나다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선의’로 대한다. 알마시는 그렇게 모든 사람을 ‘선의’로 대하는 해나가 경이롭다. ‘너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아무라도 믿고 결혼할 것 같다’고 걱정한다. 해나는 이번에도 그저 미소 짓는다.

마지막에 알마시는 해나에게 ‘안락사’를 부탁한다. 알마시의 모든 것을 알게 된 해나는 그 딱한 알마시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간호사가 환자를 안락사시킨다는 것은 감옥에 갈 범죄행위이지만 자신이 알마시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선의’다. 알마시에게 ‘선물’할 치사량의 모르핀을 주사기에 채우면서 해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해나를 보면 ‘선의’야말로 모든 부질없는 복잡함을 날려버리고 세상을 밝혀주는 힘이다. 모든 사람을 ‘선의’로 대하고 감싸는 해나 주변은 항상 평화스럽고 따뜻하다. 그런데 왜 알마시는 모든 사람을 ‘선의’로 대하는 해나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알마시는 상대에게 베푸는 ‘선의’가 항상 ‘선의’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선의’를 잔뜩 풀어놓는 해나가 단 한번도 배신당해 본 적이 없다면 그녀는 어쩌면 대단히 운 좋은 사람이거나 혹은 대단히 ‘선구안’이 좋아서 ‘선의’에는 ‘선의’로 답할 만큼 ‘신의’가 있는 사람들만을 ‘선의’로 대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순진한 선의는 사기꾼들의 사기본능을 일깨우고 군침 돌게 만든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베풀어야 하는 것이 ‘선의’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을 통찰하는 능력이 거의 신계(神界)에 도달한 작가다.

그의 희곡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 1막 1장 첫머리에서 어머니가 아들에게 살아가면서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일러준다. “모든 사람을 선의로 대하는 것은 좋지만 모두 믿어선 안 된다.” 신의를 지키는 사람만 선의로 대하라는 가르침이다.

꼬일 대로 꼬인 일본과의 관계를 우리가 먼저 ‘선의’로 대하는 대승적 결단을 통해 풀겠다고 한다. 우리가 저들을 선의로 대하면 저들도 우리를 선의로 대할 것이라고 한다. 내줄 것을 먼저 모두 내어주고 모든 것을 상대방의 선의에 맡기겠다는 외교책략이 너무도 ‘신박’해 당황스럽다. 셰익스피어가 들으면 펄쩍 뛸 일이다. 일본이 과연 ‘선의(善意)’로 대해도 좋을 만큼 ‘신의(信義)’가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1594년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 전투에서 크게 패한 명나라는 왜군과 강화협상을 했다. 그때 명나라 칙사 담종인(譚宗仁)은 조선군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에게 왜군과 싸우지 말라는 ‘금토패문(禁討牌文)’이란 명령서를 보낸다. 지금으로 치면 전시작전통제권을 쥐고 있는 미국 대통령의 명령인 셈이다. 

 

 

“일본의 각 장수가 모두 갑옷을 풀고 전쟁을 그치고 본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니, 너희 조선도 전쟁의 어지러움을 벗고 태평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어찌 양국의 이익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분노한 이순신은 명나라 황제의 칙사 담종인에게 보낸 ‘답담도사종인금토패문(答譚都司宗仁禁討牌文)’이란 답장에서 이렇게 반박한다. 

“왜는 간사하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信義)를 지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흉악하고 교활한 적들이 아직도 포악한 짓을 그만두지 아니하고 살인하고 약탈하기를 전보다 더하니, 병기를 거두어 바다를 건너 돌아가려는 뜻이 과연 어디 있다 하겠는가.”

우리 민족의 수호신 이순신 장군마저도 ‘왜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국익도 외면하고 국제정세도 모르는 편협한 민족주의자쯤으로 매도해야’ 실드가 가능한 지금 우리의 대(對)일본 외교의 모습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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