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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잉글리시 페이션트 (11)

클리프턴과 알마시는 클리프턴의 아내 캐서린을 둘러싸고 풀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다. 독도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난해한 문제와도 같다. 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가 둘 사이에 놓인 영토와 둘 사이에 놓인 ‘여자ㆍ남자’ 문제다. 

 

 

두 나라 사이에 놓인 영토는 전쟁의 영원한 주제가 되고, 둘 사이에 놓인 여자ㆍ남자는 드라마의 영원한 주제가 된다. 독도가 스스로 판단해서 ‘나는 누구의 섬’이라고 선언해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고, 캐서린 역시 둘 사이에서 방황한다.

풀기 어려운 갈등과 번민 속에서 클리프턴과 알마시는 ‘해결’을 포기하고 나름대로의 ‘결단’을 내린다. 알마시는 자신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클리프턴에게 돌아가겠다고 사라진 캐서린을 찾아 나서고 결국 파티장에 쫓아가 ‘덮치는’ 결단을 한다.

그렇게라도 자기의 여자로 만들려고 한다. 클리프턴의 ‘결단’은 더욱 황당하다. ‘바람난’ 아내 캐서린을 프로펠러 비행기에 태우고 알마시를 향해 돌진한다. 둘 다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어이없는 ‘결단’만 내린다.

관객들의 혀를 차게 하는 ‘말도 안 되는’ 문제 대응 방식들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말이 된다’고 생각해낸 ‘결단’인 모양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접하는 ‘결단’들이란 많은 경우에 이렇듯 객관적으로는 ‘말이 안 되고’ 오직 본인들에게만 ‘말이 되는’ 일들이다. 이성이 마비되고 눈에 콩깍지가 씌면 ‘말도 안 되는’ 결단을 내리기 마련이다.

해결(解決)과 결단(決斷)은 같은 듯 다르다. 해결은 문자 그대로 묶인 매듭이나 엉킨 실타래를 푸는 일이고, 결단은 매듭과 실타래를 풀지 않고 단칼에 잘라버리는 일이다. 해결은 막힌 물꼬를 터서 물을 흐르게 하는 일이라면, 결단은 아예 한방에 제방을 무너뜨려 버리는 일이다. 

당연히 해결하려는 노력은 끝없이 처음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그 효과가 감질나는 반면, 결단은 화끈하다. 다만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홍수가 나서 모두 떠내려갈 수도 있다.

고대 서양의 전설에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 나온다. 신전 기둥에 정교하고 복잡하게 묶어놓은 매듭을 풀고 옛 고르디우스(Gordius) 왕의 전차戰車를 차지하는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된다는 게 전설의 골자다.

아무도 그 복잡한 매듭을 풀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이 와서 그 매듭을 푸는 대신 단칼에 잘라버리고는 고르디우스의 전차의 주인이 되고, 예언대로 아시아까지 정복한다. 정복왕 알렉산더 대왕의 결단이다.
 

 

동양에도 그와 유사한 고대 역사가 있다. 중국 남북조(南北朝) 시대 동위(東魏)라는 나라의 왕이 여러 아들의 재주를 가늠해 보려 어지럽게 엉킨 실타래를 주고 풀어보라고 한다.

아무도 실타래를 풀지 못하는데, 한 아들은 그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하는 대신 칼을 뽑아 단칼에 잘라버리고 ‘풀지 못할 것은 베어버려야 한다’고 우쭐해 코를 벌름거린다. 왕은 그 결단에 흡족해서 그 아들을 후계자로 삼는다. 그 사람이 동위의 문선제(文宣帝)라는 인물이다. 우리가 말하는 ‘쾌도난마(快刀亂麻)’의 기원이다.

클리프턴은 자살비행으로 그 자리에서 죽어버려서 추가 ‘결단’을 내리지 못했지만, 살아남은 알마시는 또 다른 해괴망측한 결단을 내린다. 죽어가는 캐서린을 살리겠다고 민감한 군사정보인 사막지도를 독일군에게 넘기고 대가로 비행기를 얻는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문선제 못지않게 결단력 뛰어난 우리 대통령이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해결한다고 내놓은 결단을 놓고 나라가 시끄럽다. 수백년간 얽히고설켜 아무도 풀지 못했던 실타래를 그야말로 쾌도난마로 잘라버리고 의기양양하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 결단에 알렉산더 대왕과 문선제의 추종자들이 그랬듯 ‘따봉’과 ‘엄지척’을 날리느라 정신없는데, 많은 국민은 어안이 벙벙하다. 왜 그럴까. 알렉산더와 문선제의 결단이란 어찌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주어진 문제는 분명 ‘매듭과 실타래를 풀어라’였는데 자기 마음대로 문제를 ‘매듭을 잘라라’로 바꿔놓고 문제를 풀었다고 한다. 

콜럼버스도 ‘달걀을 세우라’는 문제를 자기 멋대로 바꿔 깨진 달걀을 세우는 사기를 치고 문제 아닌 문제를 풀어낸 다음 달걀을 세우지 못한 사람들을 조롱한다. 모두 발상의 전환이 아니라 사기에 가까운 수작이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문제는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책임 인정과 배상이었는데, 그 문제를 일본과의 ‘관계회복’으로 바꿔 놓고 한방에 문제를 풀었다고 한다. 이 결단이 알렉산더 대왕이나 문선제, 혹은 콜럼버스와 같이 우리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탁월한 ‘발상의 전환’인지 아니면 ‘만행’이나 ‘사기’인지 알 길이 없다.
 

 

여기서 사족(蛇足) 세가지. 첫째, 본래 술을 좋아하던 ‘쾌도난마’의 주인공 문선제는 왕위에 올라 술을 즐기고, 술만 마시면 재미로 사람 목을 ‘결딴’ 내는 폭군이 됐다. ‘쾌도난마’라는 말은 본래 폭군의 폭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됐다.

둘째,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지 않고 잘라버리는 ‘결단’을 보인 알렉산더 대왕은 그가 죽자마자 그가 결단력 있게 정복한 제국은 하루아침에 ‘결딴’ 났다. 셋째, 깨진 달걀을 세우는 사기를 쳤던 콜럼버스는 그 이후에도 계속된 사기행각들로 사기꾼으로 낙인찍혀 초라한 말년을 보냈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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