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주인공들은 인류를 통째로 파멸시키려는 사토르에 맞서 인류의 종말을 막아야 한다. 요즘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대단히 통이 커서 지구 종말쯤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 아예 우주까지 통째로 날려버리려 한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어마어마한 악당에 맞서야 하는 영웅들도 더 바빠지고 부담도 커져 버렸다. ▲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을 일어나지 않도록 한 ‘영웅’들의 이름은 묻히고 기록되지 않는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영화 ‘테넷’에서 인류 몰살을 꿈꾸는 악당 ‘사토르’가 워낙 천재적이고 그 조직도 방대하다 보니 악당을 막아야 하는 영웅과 조직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누가 동지이고 누가 적인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 악당에게 노출되고 덫에 걸릴지 모른다. 그들은 서로가 동지임을 확인하는 약속된 암호를 주고받는다. 그래서인지 인류 구원의 엄청난 사명을 짊어진 주인공은 이름조차 없다. 이름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다. 소련의 음모로부터 자본주의 세계를 지키는 첨병 ‘007 제임스 본드&r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최신작 ‘테넷(Tenet)’은 공상과학영화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철학영화라고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어쩌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전작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나 테넷을 통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시간과 운명’이라는 주제는 철학적 명제에 가까워 보인다. 테넷에 굳이 장르의 이름표를 붙여야 한다면 ‘철학 공상과학 영화’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 시간을 거꾸로 돌려도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과거에 일어난 일들이 다시 일어날 뿐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인셉션에서는 ‘꿈속의 세계에서는 현실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다루고, 인터스텔라에서는 ‘나’의 시간과 ‘상대’의 시간의 속도가 다르게 흘러가는 모습을 그린다.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온 아직도 젊은 주인공은 100살이 다 된 딸의 임종을 지켜봐야 한다. 덩케르크에서는 1주일, 1일, 1시간이라는 제각각
똑똑하긴 하지만 어질지 못한 수많은 인재가 나라 곳간을 털고, 회사 기밀을 팔아넘긴다. 서울 및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똑똑한 입후보자들이 넘치지만 그들의 행적과 말은 그다지 어질어 보이지 않는다. 덜 똑똑하더라도 참으로 어진 사람들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 어쩌면 한 국가를 맡길 만한 ‘현자’란 곧 ‘바보’인지도 모른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플라톤은 영원한 고전으로 남은 그의 「국가론」에서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한 국가의 통치를 맡길 만한 ‘현자(賢者)’의 조건을 기술한다. ❶현명한 인간이라면 자신의 고귀한 목적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 ❷현명한 인간은 학문을 귀하게 여겨 심신을 바로 닦고 야만성을 길들여 사악한 즐거움에 빠지지 않도록 절제한다. ❸현명한 인간이라면 재물을 취할 때도 분에 넘치지 않도록 주의한다. ❹현명한 인간은 세상의 그릇된 찬사에도 휩쓸리지 아니하며, 항상 자신의 세계를 관조하며 산다. ❺현명한 인간은 무질서나 태만이 스며들지 않도록 경계하며 혼란을 예방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문득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이반 데니소비치가 시베리아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보내는 하루를 그렸다. 특별한 날도 아닌 평범한 ‘하루’가 참으로 다사다난하고 길고도 길다. ▲ 기억이 없다면 사람의 일생도 하루살이의 일생과 다를 바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포레스트 검프’의 이야기 전달 방식은 대단히 단순하다. 제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제니에게 줄 초콜릿 한 상자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수다’를 떠는 것이 전부다. 검프 옆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3번 바뀐다. 첫번째 청자聽者는 피곤한 간호사다. 아마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퇴근하는 간호사인 모양이다. 극도로 피곤한 간호사는 검프의 ‘수다’에 일일이 반응할 기운도 없다. 검프의 수다를 피하기 위해 책을 읽는 척하지만 검프의 수다는 막무가내로 집요하다. 두번째 청자는 한가한 중년 남성이다. 남는 것은
미국의 고질병은 흑백 인종문제다. 우리의 고질병은 남북분단과 좌우 이념대립이다. 시대를 이끄는 리더들이 가끔 “인종이나 이념은 하찮은 것”이라고 역설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인종과 이념을 두고 양쪽으로 갈라선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이 천동설을 버리고 지동설을 받아들인 것보다 이 문제가 더 어려워 보인다. ▲ 흑백인종과 좌우이념이라는 고무줄은 도무지 끊어지지 않고 수많은 '이상현상'을 늠름하게 버텨낸다. [자신=게티이미지뱅크] 포레스트 검프는 미국의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선물해준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이상한 ‘개다리춤’을 추면서 혜성처럼 등장하고, 앨라배마에서는 흑인민권운동이 불붙는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존슨 대통령의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한다. 핑퐁외교로 미국과 중국의 역사적인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고, 애플이 컴퓨터로 ‘대박’을 치고 돈을 쓸어 담는다. 그러고 보면 해방 이후 우리나라만 참으로 격동의 시대를 보낸 것 같지만 미국도 만만치 않다. 미
검프는 많은 것을 이룬다. 대학 미식축구 우승팀의 일원으로, 베트남 전쟁 영웅으로 백악관에 초대돼 케네디 대통령, 존슨 대통령과도 만난다. 미국 탁구 대표선수로 ‘핑퐁외교’의 주역이 돼 탁구 라켓회사의 광고 모델이 되기도 한다. 새우잡이로 성공을 거둬 경제주간지 포브스(Forbes)의 표지에 등장하기도 한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성공한 젊은이’임에 분명하다. ▲ 검프의 팔로워들은 검프의 실체는 보지 못한 채 그림자 중 하나를 실체라 생각하고 팔로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찬란한 성공을 거둔 검프지만 검프에겐 빈자리가 있다.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인 제니는 꿈길에서밖에 만날 수 없다. 어느 날 꿈처럼 검프를 찾아온 제니는 검프와 하룻밤만 지내고 또다시 종적을 감춘다. 망연히 허공을 응시하던 검프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 영화 속 검프의 내레이션은 달리는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 그야말로 ‘닥치고 달리기’인 ‘닥달’이다. 지난 총선에 모당의 대표가 선거운동 대신 느닷없이 달리기 운동을 해서 모두들 그 깊은 뜻을 헤아
신기의 탁구 실력으로 중국을 다녀온 검프는 존 레넌과 함께 출연한 토크쇼에서 이런 말을 던졌다. “중국엔 종교도 없고, 사유재산도 없다.” 자신의 히트곡 ‘이매진(Imagine)’에서 그가 꿈꾸는 이상사회를 ‘종교도 없고, 소유도 없는 세상’이라고 노래했던 존 레넌은 깜짝 놀란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의문이 떠오른다. 모든 종교를 마약으로 규정하고, 사유재산을 제거한 마오쩌둥毛澤東의 혁명은 정말 이상사회를 만들어낸 걸까. ▲ 아스퍼거 증후군의 검프는 초절정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아스퍼거 증후군의 검프는 초절정의 집중력이라는 천재성을 발휘한다. 동네 악동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검프에게 검프의 유일한 친구인 제니는 “달려라!”고 소리친다. 검프는 그 한마디에 경주마처럼 달리기에 집중한다. 악동들을 따돌리는 것은 물론 대학 미식축구 경기장까지 질주한다. 검프의 집중력 높은 달리기는 미식축구 감독의 눈을 사로잡아 검프는 미식축구 명문 앨라배마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자원 입대한 검프는 군대에서도
포레스트 검프의 정신의학적 상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는 애매하다. 일반지능은 통상적인 경계선인 80에 조금 미달하는 모양이다. 거기에 더해 자폐증 증상도 보이고, 아스퍼거 증후군의 특징도 보인다. 아스퍼거 증후군의 대표적 특징은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특정한 일이나 주제에만 몰두한다는 점이다. ▲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는 타인의 소망과 슬픔, 분노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오스트리아 소아과의사였던 한스 아스페르거(Hans Asperger)는 일반적인 자폐증상과는 차별화한 특징을 가진 그룹을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 명명했다. 그 특징은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교우관계 형성능력이 없다. 대화는 한곳으로만 쏠리고, 특정한 일이나 주제에만 몰두하고 동작도 어색하다. 또한 자신이 겪은 흥미로운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는 특징을 보여 한스 아스페르거는 이들을 ‘작은 교수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교수’라는 직책이 대개 편협한 자기세계에 갇힌 사람들이기는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세상 모든 일에 특별한 관심이 없지만 달리기에는 집중을 잘한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1994년)’는 설명이 필요 없는 걸작이다. 누가 어떤 기준에서 선정하든 영화 역사상 100대 명작에 반드시 포함될 만한 작품이다. 인생에서 소위 ‘천재’와 ‘그렇지 않은 이들’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 '운명론(fatalism)'과 '결정론 (determinism)’은 항상 어지럽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영화는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새털로 시작해서 다시 바람에 날리는 새털로 끝난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바람에 날리던 새털은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는 검프의 발치에 내려앉는다. 바람결을 따라 정처 없이 이리저리 날리던 새털의 목적지는 검프의 발치였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 검프가 아들을 학교버스에 태워 첫 등교를 시키고 버스 정류장에 하염없이 앉아 있을 때, 다시 하늘에 새털 하나가 이리저리 떠돌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새털은 어디에도 내려앉지 않고 하늘 멀리 어디론가 사라진
멜 깁슨의 ‘아포칼립토’는 두려움에 대한 보고서다.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두려움으로 일관한다. 사냥한 멧돼지 한 마리를 막대기에 매달고 의기양양하게 마을로 돌아가던 ‘표범 발’ 일행은 숲속에서 두려움에 질려 마을을 버리고 길을 떠난 다른 부락 사람들을 마주친다. 한순간에 분위기가 깨진다. ▲ 무너진 1500년대 초 마야사회에선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며 허우적댔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공포에 짓눌린 이웃부락 사람들은 두려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지만 ‘표범 발’ 일행에겐 그 공포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전염된다. 모두의 마음속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자라기 시작한다. 말을 잃은 그들은 저마다의 생각에 빠진다.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때 일행의 리더격인 ‘표범 발’ 아버지 ‘단단한 하늘’이 ‘표범 발’을 단속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눈에 서린 ‘막연한 두려움’을 경계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가 본 것을 말하지 마라. 공포는 전염되는 것이다.&
영화 ‘아포칼립토’에 등장하는 인디언의 이름은 소박하고 정겹다. 주인공은 ‘표범 발’이고 그의 아버지는 ‘단단한 하늘’이며 주인공의 외동아들은 ‘달리는 거북’이다. 주인공은 이름 그대로 뜀박질이 일품이다. ‘표범 발’의 아들은 ‘달리는 거북’이다. 꼼지락거리며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아버지 ‘단단한 하늘’은 차돌멩이처럼 작지만 다부지다. ▲ 인디언들에게 '시간'이란 현재의 한순간이 아니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인디언 이름은 케빈 코스트너가 감독·주연을 맡았던 영화의 제목 ‘늑대와 함께 춤을’일 듯하다. 평원에서 외롭게 늑대 한 마리를 벗 삼아 지내는 주인공을 멀리서 지켜보던 인디언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인디언들은 자연과 영혼을 두려워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달과 함께 걷다’도 있고, ‘숨죽인 천둥’도 있고, ‘수다스
주인공 ‘표범 발’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개기 일식’이다. 쿠쿨칸 피라미드 꼭대기에 인신공양 제물로 끌려간 ‘표범 발’은 같이 잡혀 온 ‘제물’들과 온몸에 파란 물감을 칠하고 죽음의 순간을 기다린다. 쿠쿨칸 신에게 바쳐질 인간 제물들에게는 모두 파란색이 칠해진다. 눈부시게 빛나는 ‘인디고 블루(indigo blue)’다. ▲ 권력자들은 독점한 지식과 정보를 부나 권력을 유지하거나 확대 재생산하는 데 동원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인디고 블루’는 하늘과 통하는 신성한 색이다. 그래서 바빌론의 거대한 문이나 이슬람 사원들도 인디고 블루를 애용했던 모양인데, 이는 마야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온몸에 눈부시게 ‘예쁜’ 파란 칠을 하고 줄지어 선 인간 제물들이 하나씩 제단에 묶여 산 채로 심장이 꺼내어지고, 여전히 숨 쉬는 심장은 신에게 바쳐진다. 심장을 빼앗긴 인간의 잘린 목은 쿠쿨칸의 91개 계단을 굴러 내려가고, 행사 진행요원들은 목 없는 몸통을 피라미드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