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조롱당하는 느낌이 듭니다. 대단한 걸 주는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속 빈 강정같은 느낌입니다."
요즘 결혼을 앞둔 제주도내 예비 신혼부부들 사이에 나오는 말이다. '피식' 웃는 이도 있다.
이유는 제주도가 지난 12일 인구 감소와 저출생 문제에 대응하기 위헤 내놓은 '인구정책 신(新) 전략사업' 때문이다. 발표된 정책들은 주거 지원, 출산 및 육아 지원, 일·가정 양립 촉진, 인구 유입 등 4대 핵심 분야로 구성돼 있다.
최명동 제주도 기획조정실장은 "이번 인구정책 신 전략사업은 제주의 지역적 특성과 도민들의 실질적인 요구를 면밀히 분석해 마련했다"며 "인구 유출 방지와 유입 촉진 효과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제주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주의 청년들, 특히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들은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
도에서 발표한 정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혼부부 연 30만 원 공공임대주택'이다. 월 임대료 2만 5000원이라는 파격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임대주택이 실제로 얼마나 공급될 수 있을지 구체적 계획은 없다.
제주도 통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연간 혼인 건수는 약 3000건에 달한다. 그러나 제주도개발공사가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의 연간 공급량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모든 신혼부부가 임대주택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2022년 제주도개발공사가 공급한 신규 공공임대주택은 약 500세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신혼부부만을 위한 물량이 아니다. 주로 청년, 저소득층 등 다양한 계층이 대상이다.
신혼부부들에게 실제로 할당될 주택 수는 더욱 적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도는 해당 정책을 발표하면서 공급 세대 수나 지역, 신청자격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저렴한 임대료가 열악한 주거환경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현재 제주도개발공사가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 브랜드 '마음에온'을 보면 월 임대료 2만 5000원 수준의 마음에온 삼도일동과 삼도이동은 전용면적이 21~27㎡에 불과하다. 6~8평 정도의 면적이다. 이 좁은 공간이 신혼부부에게 적합한 주거 환경인지도 의문이다.
국토교통부의 '주거기준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2인 가구의 최소 주거 면적은 36㎡ 이상으로 권고되고 있다. 그 기준에 크게 못 미친다.
정작 내부시설 문제도 있다. 2022년 5월 제주도내 공공임대주택 입주민들의 불만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주요 불만 사항은 공간의 협소, 방음 불량, 누수 등 시설 하자, 부족한 편의시설 등이다.
당시 한 입주민은 "공간이 너무 좁아 기본적인 가구 배치도 어려우며 방음이 되지 않아 사생활 보호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국토연구원 보고서는 "공공임대주택의 입지가 입주민들의 생활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며 편의시설과의 접근성이 부족할 경우 주거 이동 의사가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저렴한 임대료 정책도 중요하지만 주거의 질을 담보하지 않으면 입주민들의 생활 만족도를 높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도는 '제주청년 The+하영드림 주택마련 지원' 정책을 통해 주택 구입자금의 이자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최대 지원 금액이 연 450만원이다.
현재 부동산 가격과 대출 이자율을 고려하면 이 정도의 지원으로는 청년들의 주택 구입 부담을 크게 줄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제주도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제주도내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약 3억원에 달한다. 단독주택 및 다세대주택의 평균 가격도 2억원 이상으로 나타나 청년들이 자력으로 구매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024년 기준 연 3.5~5% 수준이다. 3억원의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2억 5000만원을 대출받는다고 가정하면 연 이자는 약 1125만원이다. 최대 지원 금액인 연 450만원은 전체 이자 부담의 약 40%에 불과하다. 원금 상환액과 각종 세금 및 부대비용까지 고려하면 실제 부담은 여전히 크다.
한국주택금융공사 '2022년 주택금융 및 보금자리론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자 지원 정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청년들의 부채 상환 계획과 소득 증대 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혜 대상의 제한도 문제다. 정책의 혜택이 소득 수준, 신용 등급 등 엄격한 조건을 충족하는 청년들에게만 제공돼 실제로 주택 마련이 절실한 다수의 청년들이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특히 소득이 낮거나 불안정한 청년들은 주택 구입이 더욱 어려운데 엄격한 소득 기준은 이들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 신용 등급이 낮은 청년들은 대출 자체가 어려워 이자 지원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의 약 30%가 소득 불안정과 신용 등급 문제로 인해 주택 금융 지원에서 제외되고 있다. 통계청의 자료에서도 청년 가구의 약 25%가 비정규직 또는 저소득 계층으로 분류돼 금융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김현수 주택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엄격한 수혜 조건은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청년들을 배제할 수 있으며 정책의 효과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도가 발표한 정책 중 첫 자녀 출산 가정에 500만원을 2년에 걸쳐 지원하겠다는 '행복한 첫아이 지원금' 정책도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출산과 양육에 드는 비용을 고려하면 500만원은 미미한 금액이다. 단순한 금전적 지원만으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됐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단순한 재정 지원은 출산율을 높이는 데 있어 한계가 있다. 일과 가정 양립 지원, 고용 안정성, 성평등 정책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금전적 지원만으로는 출산율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보육 시설 확충, 근로 시간 단축, 성평등 강화 등의 종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 촉진을 위한 공공 부문에서의 '4.5일제'와 '주 1일 재택근무제' 도입은 긍정적인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민간 기업에서의 적용 가능성은 낮다. 가족친화인증기업에 대한 지방세 감면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기업들이 이를 도입할 동기가 충분한지 의문이다.
도가 발표한 '기회발전특구 지정'과 '디지털 노마드 비자 도입'을 통해 인구 유입을 촉진하겠다는 계획은 기존 도민들과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회발전특구'는 정부가 특정 지역을 지정해 기업 투자 유치와 산업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각종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는 특별 구역을 말한다. 이를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인구 유입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다.
'디지털 노마드 비자'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원격으로 근무하는 '디지털 노마드'를 대상으로 발급되는 비자다. 여러 국가에서 이 비자를 도입해 해외의 우수한 인재들을 유치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그러나 외부 인재 유치에만 집중할 경우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 경쟁이 심화되고 생활비 상승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히려 기존 주민들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스타트업 붐으로 인해 해외 인력이 유입되면서 현지인들과의 일자리 경쟁이 심화됐다. 그 결과 숙련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현지 청년들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도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외국인 투자와 개발 사업을 통해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지만 그 혜택이 도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또 부동산 가격 상승과 환경 훼손 등에 대한 우려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인구 문제 전문가들은 "외부 인재 유치도 중요하지만 기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 사회의 통합을 고려해야 한다"며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인구 유입 정책은 지역 사회와의 조화와 상생을 고려한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인구 감소와 저출생 문제는 복합적인 사회 구조의 변화로 인한 결과다. 단편적인 금전 지원이나 일부 제도 개선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 교육, 복지, 일자리, 주거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종합적인 접근과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국책연구기관인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들의 실제 필요를 반영한 맞춤형 정책 수립이 중요하다"며 "지역 특성에 맞는 장기적인 계획과 지속 가능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과시용' 정책이 아니라면 다시 한번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되짚어 볼 때다. 더 세밀한 정책으로 도민에게 응답해야 한다. 기왕하는 거 박수받는 정책으로 제주도정이 어깨를 폈으면 좋겠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