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출신으로 드물게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오른 M. 나이트 샤말란(M. Night Shyamalan) 감독의 1999년작 ‘식스 센스’는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초자연·심리·스릴러 계열쯤 될 것 같다. ‘육감’이라는 문제 자체가 분석적·이성적으로 파악이 안 되는 초자연적이고 심리적인 영역일 듯하다. 이번엔 식스 센스 속으로 들어가보자.
‘식스 센스’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아 그해 아카데미상 각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샤말란 감독의 각본을 읽어본 월트 디즈니사의 사장이 회사의 검토 절차와 승인도 없이 그 자리에서 300만 달러에 판권을 덥석 사버릴 정도로 신선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뛰어난 각본이었던 모양이다.
타이틀 롤은 브루스 윌리스가 맡고 있지만 ‘다이하드’ 시리즈를 통해 악당들에 맞서 혈혈단신으로 족히 1개 사단에 맞먹는 전투력을 보여주던 맥클레인 형사가 아니다. 이번엔 우울한 아동심리학자 말컴 박사를 연기한다.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어쩌면 콜 시어스 역을 소화한 아역배우 조엘 오스먼트(Harley Joel Osment)일지 모른다. 9살 꼬마는 놀라운 연기력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실제로 그는 연기력을 인정받아 그해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부모가 이혼하고 엄마가 혼자 키우는 꼬마 콜은 외톨이에 문제아다. 콜의 문제는 ‘육감’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했다는 점이다. ‘오감(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은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흔히 ‘직관력’이라고 하는 육감은 그렇지 못하다. 상대의 눈빛만 보고도 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
보통사람들이 보기에는 딱 ‘정신병자’ 아니면 ‘악마’로 보일 수 있다. 본인도 괴롭다. 살다보면 ‘아는 게 힘’인 경우보다 ‘모르는 게 약’인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유서 깊은 학교 건물이 옛날에 무엇을 하던 건물이었는지 아는 사람 있느냐고 묻는다. 콜이 머뭇거리며 수줍게 손을 들고 “죄 없는 사람들의 목을 매달고, 눈알을 뽑고, 목을 자르던 곳”이란 끔찍한 대답을 한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입이 벌어진다. 그 학교는 옛날 법원 건물이었고, 선생님은 ‘법원’이라는 숭고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데 콜은 법원의 난폭한 결정으로 목이 잘려나가고 고문을 받고 사람들이 죽어나간 법원의 ‘민낯’과 ‘본질’을 말한다. 말문이 막혀 어이없고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선생님에게 콜은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말라’며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질러댄다. 영락없이 정신병을 앓는 문제아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정신상담을 위해 찾아간 말컴 박사를 피해 콜은 교회로 몸을 피한다. 교회로 따라 들어온 말컴 박사를 외면한 채, 콜은 장난감 병사 몇개를 가지런히 놓고 장난감 병사들에게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말컴 박사가 ‘장난감들에게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묻는다. 9살 꼬마가 뜬금없이 라틴어를 중얼거린다.
“De profundis clamo ad te Domine(이 몸이 깊고 깊은 어둠(죽음) 속에서 주를 소리쳐 부르나이다.)” 널리 알려진 성경 시편 130편의 한 구절이다. 오늘날에도 천주교 장례미사에서 사용되는 죽은 자들을 위한 위령慰靈과 진혼鎭魂의 구절이다. 콜은 상대가 로마 병사이기 때문에 라틴어로 말해줬다고 말한다. 장난감 로마 병사를 굽어보는 꼬마 콜의 눈빛이 춥고도 애절하다.
제국을 넓히고 제국을 수호하기 위해 죽어간 무수한 병사들의 죽음은 ‘영광’과 ‘명예’로 포장된다. 그러나 콜의 직관력(sixth sense)은 로마 병사의 영광으로 포장된 죽음 뒤에 자리잡은 고통과 공포, 슬픔이라는 ‘본질’을 직관한다. 제국의 영광이 병사의 죽음의 공포와 고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의 슬픔에 무슨 위로가 될 수 있겠는가. 부질없을 뿐이다.
콜의 ‘sixth sense’는 그렇게 법원의 권위, 로마제국의 영광이란 외피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직관한다. 부모와 사회, 그리고 학교는 그런 콜의 직관력에 ‘사회 부적응자’와 ‘정서불안’ ‘정신병’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우리 사회의 문화·체제·제도 모든 부문에 수많은 ‘불편한 진실’들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사회에도 가끔 콜처럼 직관력 뛰어난 사람들이 우리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불편한 진실’을 말하곤 한다.
콜이 ‘사회 부적응자’ ‘정서불안 환자’로 낙인 찍히듯, 우리 사회의 문제에 ‘촉이 뛰어난 사람’들은 때론 과격분자, 때론 몽상가, 때론 체제전복자로 매도당하기도 한다. 2016년 대통령 탄핵의 과정과 이후 유행어처럼 번진 ‘적폐’라는 것이 그런 ‘불편한 진실’들을 통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벌써 몇년째 모두 입을 모아 노랫말 후렴구처럼 ‘적폐청산’을 외치고 있지만 어떤 적폐가 얼마나 청산됐지는 체감이 되지 않는다.
누구나 느끼는 오감을 넘어서 오직 소수만이 느끼는 ‘여섯번째 감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을 설득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