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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살아남기 위한 물질의 규약과 관행 … 소중한 경영학의 유산

 

2011년부터는 대학의 몇몇 최고경영자과정에서 제주해녀의 기업가정신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부산에 있는 부경대학교와 동아대학교이다. 부산 영도에는 원정물질을 가서 그곳에 정착한 제주해녀들의 물질이 활발하게 이어져 왔고, 제주출신 출향민들이 타지역에 비해 아직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두 대학의 최고경영자들은 제주해녀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대단히 높아서 강의시간 내내 질문이 많았다. 특히 해녀들이 어떻게 조직을 이루어서 물질을 하고, 어장을 관리하며, 오늘날까지 해녀문화가 지속되고 있는지를 흥미 있게 물었다.

 

사실 해녀들의 작업 현장을 살펴보면 어떻게 경영학을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이 이토록 탁월한 경영학적 조직 시스템을 갖추어서 어느 유명 기업 이상으로 훌륭하게 운영하고 있는지가 놀라울 정도다. 해녀들은 보통 물질 역량을 기준으로 ‘하군’, ‘중군’, ‘상군’으로 분류된다. 옷이나 태왁, 모자와 같은 곳에 계급으로 표시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바닷속 깊이 들어가서 소라·전복 등 해산물을 잘 캐느냐에 따라 해녀들 간에 암묵적으로 주고받는 칭호다.

 

상군은 보통 물에 들어가서 2분 이상 숨을 참을 수 있으므로 12질에서 20질이 넘는 바다에서 잠수한다. 1질이란 숨비질해 들어간 후 두 팔을 뻗어서 한 번 헤엄친 깊이에 해당하므로 약 1 미터 정도가 된다. 깊은 바다에서 상군이 잡아 올린 문둥구제기(소라)는 크기나 색깔부터 다르다. 어른 주먹보다 훨씬 크고 껍질이 두꺼우며 시벌건 색깔을 띠고 있다. 표면에 산호나 해조류가 붙어 있어서 얼마나 바닷속에서 오래토록 버텨왔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중군은 보통 8∼10m, 하군은 5∼7m 깊이를 숨빈다. 물론 숨비질해서 잡아 올린 물건의 품질도 상군과는 다르다.

 

하지만 이 해녀조직은 기업의 하급, 중급, 고급으로 구성된 피라미드식 계층구조와는 다른 성격으로 운영된다. 나이나 근무 연수에 따른 연공서열식이 아니라 순전히 능력에 따른 작업장의 구분일 뿐이다. 어찌 보면 가장 평등하고 자유로운 조직체계라 할 수 있다.

 

상군은 아무리 시간 여유가 있고 몸의 컨디션이 나빠도 하군이나 중군이 물질하는 바다를 기웃거리지 않는다. 반대로 하군이나 중군은 물질 기량이 좋아지면 얼마든지 상군바다로 진입해 들어갈 수 있다. 어쩌면 이 구분은 상군이 중군과 하군에게 보이지 않는 관용을 베풀기 위한 배려로 보이는 측면이다. 상군은 물질하고 나오다가 망실이 속 내용물이 빈약해 보이는 초기 하군에게 자기가 잡은 물건을 은근슬쩍 집어넣어 주기도 한다.

 

물질에 대한 동기부여인 셈이다. 이밖에 물질을 배우는 아기좀수들을 위한 아기바당, 나이가 많이 들어서 기량이 떨어진 해녀들을 위한 할망바당도 있어서, 어쩌다가 하군이나 중군이 이 바당들을 기웃거리다가 상군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크게 호통을 듣는다.

 

또한 하군보다도 더 야트막한 곳에서 물질하는 해녀를 ‘갓잠수’, 여름철 혹은 미역이나 성게 등이 나오는 한철에만 물질하는 해녀를 ‘고망잠수’라고 하는데, 어쩌면 이들은 기업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정규직이 아니라 시간제나 기간제로 일하는 파트타이머로 볼 수 있다. 문헌기록만으로도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해녀들이 이토록 체계적인 조직을 만들어서 자유롭게 운영해 왔다니, 요즘의 기업인들 눈으로 보면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상군 중에서도 특별히 기량이 뛰어나고 성품이 훌륭한 해녀를 ‘대상군’이라 호칭하여 조직 전체의 리더로 대우했다는 사실에 기업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요즘처럼 사람을 키워주지 않고 인재를 알아주지 않는 기업세계에서는 매우 본받아야 할 해녀세계의 덕목으로 간주된다.

 

이 대상군이 해녀들을 대표해서 마을 어른이나 지역유지들과 대등한 자리에서 의견을 나눔으로써 결국은 해녀들의 전반적인 사회적 지위도 향상되었으니, 더 말하여 무엇 하랴. 서로를 배려하고, 인재를 키워주며, 리더십을 인정하는 해녀들이야말로 경영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조직이론을 뛰어넘어 살아 움직이는 이상적인 조직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해녀들이 물에 들어갈 때는 보통 3∼4명, 적어도 2∼3명이 짝을 지어 물질을 함으로써 서로의 안전을 살펴보고 협력을 하였는데, 바로 이러한 사실이 요즈음 기업계의 팀제와 같은 원리여서 경영자들이 저절로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더욱이 혼자서 해내기에 버거운 전복 채취라든지 큰 물고기를 잡을 때는 두 세 명이 협력하는 테스크포스(TF)팀으로 즉각적인 전환이 가능하니 얼마나 능률적인 조직인가?

 

그렇다면 ‘멀리 떨어진 섬으로 배를 타고 물질을 가는 난바르는 다소 규모가 큰 TF팀이라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박수를 치며 감탄하는 기업인들은 해녀를 통해 조직이론의 진수를 체험하는 듯 하였다.

 

한편 근래 들어 기업계의 화두로 등장한 지속경영의 관점에서도 해녀들은 일찍부터 이 개념을 실천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 기업인들의 안목에 의해서 새삼스럽게 제기되었다. 지속경영이란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해서 이윤과 고용을 창출하는 경제적 책임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환경적 책임을 균형 있게 수행함으로써 법인(법적 인간)으로서 지속적인 수명을 이어간다는 관점의 경영이론이다.

 

이 점에서 볼 때, 해녀들의 경제적 활동은 가정뿐만 아니라 제주경제를 책임질 정도로 탁월한 측면이 있고, 사회적 책임 또한 여타 조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극적이고 실질적임이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기업계에서는 최근 들어 강조되기 시작한 환경적 책임에 대해 해녀들은 경제활동과 동일한 선상에서 처음부터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사실 해녀들은 드넓은 바다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물건을 거저 채취해서 무제한 팔아치운 것이 아니라 자원을 보호하고 키우며 관리하는 일도 동시에 수행해 왔다. 이를테면 전복이나 소라와 성게가 알을 까는 기간에는 ‘금채기’를 두어서 절대로 채취를 하지 않는 것을 규율로 두었다. 바다의 생태계가 자연계의 순환원리대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하려는 조치다.

 

또한 철따라 이뤄지는 '갯닦기(바닷속의 잡풀 캐기 청소작업)'는 육지에서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김을 매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미역을 키워내기 위한 환경관리에 해당한다. 이 갯닦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미역 캐기를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해녀들의 자원관리는 엄격하고도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요즘은 미역이 양식화되는 바람에 갯닦기도 시들해졌지만, 해녀들이 정기적으로 수행하는 바닷가 쓰레기 청소와 오물 수거 작업은 환경적 책임의 일환으로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해녀들이 자연스런 이어 온 작업 활동이 현대적인 경영학의 관점에서 보아 독특한 조직관리와 지속경영으로 해석되는 점은 재미있는 일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혹은 살아남기 위해서 머리와 가슴을 맞대어 만들어 낸 규칙이야 말로 동서고금을 아울러서 하나의 경영사례로 제시할 수 있는 조직관리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이 점에서 제주해녀들이 눈물을 머금고 천년을 이어온 물질의 규약과 관행은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소중한 경영학의 유산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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