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학교에서의 물질수업은 조별로 이루어진다.
‘흙조’라 이름 붙여진 우리 조는 5명으로 구성되었다. 나를 빼고는 모두 20∼30대 젊은 해녀들이다. 스쿠버 다이버를 남편으로 둔 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물질을 처음 배우는 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물질의 기량이 다르게 나타난다. ‘물질도 타고 나는 법’이라는 해녀 선생님의 말씀처럼 저마다 소질과 역량이 다른 셈이다. 잘 하는 친구는 선생님이 잠수법을 가르쳐 주자마자 ‘척 하면 삼천리’처럼 물속에 들어가서 돌멩이를 건져 올린다.
반면에 잘 못하는 친구는 아무리 반복해서 가르쳐 주어도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태왁 주위에서 맴돈다. 애저녁에 겁을 집어 먹고서 감히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지 못한다. 물을 먹을까봐 머리를 쳐들면서 용을 쓰다가는 오히려 장난스럽게 달려드는 파도의 물세례에 연거푸 물을 먹고 만다. 하푸하푸 하면서 물 위에서 퐁당대다가 용감하게 물속으로 들어가는가 싶으면 어느새 금방 물위로 솟구쳐 오른다. 오죽하면 선생님이 어깨를 붙잡고서 물속으로 함께 들어가 주실까. 그래도 안 되는 친구는 돌멩이가 가득 들어 있는 망실이를 붙들고서 물밑으로 내려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처럼 배움의 시작부터 기량이 다르므로 같은 조원이라도 시간이 지나가면 연습하는 바다의 깊이가 달라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기량이 비슷한 이들끼리 짝을 이뤄서 물질을 하게 된다. 비교적 깊은 곳으로 가서 소라도 잡고 문어도 잡아 보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끝까지 얕은 물에서 찰싹이는 파도가 무서운지 태왁에 달라붙어 발차기를 하는 부류도 있다.
그러니 실습이 끝날 즈음에는 저마다 숨비는 바다의 깊이가 다르고 잡아내는 소라의 크기나 양도 달라진다. 같이 노는 이들이 어느 정도 고정되고, 물질하기 좋아하는 바다의 지경도 대충 정해진다. 그렇게 계속 물질을 하게 된다면 아마도 해녀학교 학생들 간에도 그 역량에 따라서 전형적인 작업조가 형성될 것이다. 누가 잘하는지, 숨이 얼마나 긴지, 누구들이 같이 다니는지에 따라서 상·중·하의 보이지 않는 계층이 만들어지는 거다.
이렇게 해녀들의 물질세계를 설명하는 것 중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게 상군·중군·하군의 조직체계다. 해녀들은 나이나 경력이 아니라 물질 기량에 따라서 상·중·하로 물질계층이 분류된다. 가시적인 조직도나 계급장이 있는 게 아니라 물질하는 영역에 따라 자연스레 갈라지는 작업조이다.
보통 호흡이 길어서 수심 12m∼20m의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들을 상군이라 하는데, 이들은 잡는 물건부터가 다르다. 소라도 몇 년씩 바다를 지켜온 노병처럼 두꺼운 껍질에다 세월의 계급장인 양 산호나 해초를 달고 있다. 시벌건 빛깔을 띠는 이 문둥구제기들은 누가 보더라도 먼 바다에서 잡혀온 백전노장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마찬가지로 전복도 크기나 색깔이 깊은 바다의 무게감을 나타내는 특상품들이다. 진상품으로 올라가서 임금님 수라상의 중심부를 차지했을 게 분명한 위엄이 남아 있다.
다음으로 중군은 8~10m, 하군은 5~7m 깊이의 바다에서 물질을 한다. 이밖에 해녀를 지망하는 애기좀수나 늙어서 기량이 떨어진 해녀들은 5m 이하에서 작업을 한다. 이러한 작업 영역의 구분은 매우 분명하게 가늠되고 엄격하게 지켜진다. 비록 작업장 전체가 물로 덮여 있어서 선을 그어놓지는 않았지만 해녀들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어디가 자기들의 작업장인지를. 그러므로 혹여 중군이나 하군 해녀가 물질을 마치고 나오는 도중에 애기좀수들이 노는 애기바당을 넘보다가는 당장 상군으로부터 불호령을 듣는다.
이처럼 해녀들의 물질 영역과 관련해서 상군들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이 구분이 윗사람이 손해를 보고 아랫사람이 이득을 보는 하후상박(下厚上薄)의 배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상군해녀인들 물이 얕은 곳에서 잠수하는 게 더 수월하고 편안하지 않겠는가? 만약에 작업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자유롭게 어디에서나 물질을 할 수 있다면, 어느 바다나 가리지 않고 종횡 무진할 수 있는 상군이 가장 많은 이익을 획득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의 업무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약자를 위한 배려이자 보호인 셈이다.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사람다운 작업장이라고나 할까.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리더십, 소위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먼저 섬기는 자가 되라’는 섬기는 리더십이 실제로 실행되는 곳 말이다.
직장생활에도 이 해녀들의 리더십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상군이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희생하고 더 많이 배려하듯이 직급이 높은 이가 상군해녀의 리더십을 실행해 보는 거다.
보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작업성과가 올라가고 하위직들이 만족하며 고위직들이 존경받는 직장이 되어가지 않을까? 선배는 배려하고 후배는 예우하는 작업장, 노약자나 장애자도 자연스레 제몫을 할 수 있는 일터의 모델이 해녀들이 만들어 온 제주바다가 아닐까.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