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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진부한 행정개편 논의의 역사 ... "새로운 전략적 설계를 하라"

8700만원의 용역비와 1200만원의 회의수당이 들어갔다. 100만원이 모자란 1억원이다. 그런데 이미 15년 전부터 거론해왔던 사안이건만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그 밥의 그 나물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2개의 구역을 추가하고 그 권역을 재조정하자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이 역시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 이전 검토한 대안 중 하나였다.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이하 행개위)가 지난 29일 4개 행정시와 행정시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직선제 도입을 원희룡 지사에게 권고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실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이미 충분히 예견됐다. 행개위 구성 자체가 이미 한계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5개월 전인 지난 2월 초 출범할 당시 짜여진 위원구성은 여성, 법조계, 학계, 시민사회 등이었다. 학계는 행정학이 주류였기에 특별한 대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보여지지 않았다.

 

지금 제주도가 논의해야 할 사안은 미안하지만 여성과 시민사회 대표성, 그리고 행정학적 담론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제주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차대한 전략적 이슈를 나꿔채야 하고, 공세적 이슈로 부각해야 할 상황이 지금이다. 특별자치도의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미 행개위가 구성될 2월 시점은 이렇듯 정부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이었는데 그렇게 갔다. ‘조기대선’ 가능성이 충분히 점쳐지던 시점이었다.

 

지금 새 정부는 지방자치 분권모델을 완전히 새로이 기획하고 있다. 지난달 새 정부의 문재인 대통령은 전국 17개 광역 시·도지사와 간담회를 가졌다. ‘제2국무회의’ 상설화 구상까지 밝히면서 그가 꺼내 든 화두는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 실현”이었다.

 

 

애초 2006년 7월 출범한 제주특별자치도가 ‘외교·국방을 제외한 고도의 자치권 실현’의 시범모델이자 연방제에 준하는 자치로 출발했다는 걸 감안하면 제주로선 심각한 위기국면이다. 제주만이 갖고 있었던 차별적 선점 효과와 특례가 사라지고 ‘특별’이 아닌 평준·평균화의 도상에 놓였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제주가 아이러니한 상황을 스스로 초래하고 있다. 정작 권한을 내줄 중앙정부는 혁신적인 큰 틀을 짜고 있고, 그 권한을 넘겨받을 제주에선 단순미봉책 수준이거나 대단히 소극적이고 제약적인 차원의 변화구상안을 만지고 있는 것이다. 행정권역 조정과 행정시장 직선제 안은 그런 점을 반영하고 있다. 그것도 전임 우근민 도정 시절인 2013년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제시한 ‘시장 직선제’(기초의회 미구성)란 카드를 또 내밀었다. 이미 그 시절 제주도의회가 상정을 거부했고, 당시 우근민 도정이 추진을 철회한 사안이다.

 

일단 행개위의 권고안을 제주도가 수용할 지는 미지수다. 또 수용한다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내년 지방선거에 적용되기 위해선 7월중 도의회 동의와 연내 입법절차를 거쳐야 한다.

 

게다가 이런 행정개편 논의는 사실 이제 진부한 이슈가 된 지 오래다. 이 참에 역사를 더듬어본다.

 

1998년 민선 2기 지사로 선출됐던 이는 2002년 6월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자 의욕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2002년 1월 제주국제자유도시가 출범했지만 아마도 그에게 당시의 제주 행정체제는 곳곳에서 암초와 같은 걸림돌이었고,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마침 각종 비리로 얼룩진 사건들이 터지면서 '시·군의회 무용론'이 일던 때였다. 더욱이 도지사였던 그는 그 시절 기초단체장인 제주시장과 각종 정책추진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다.

 

15년 전이다. 2002년 9월17일 도지사였던 그는 제주발전연구원에서 작성한 ‘제주도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위한 기본계획’을 근거로 본격적 행정구조 개편작업을 추진한다고 언론에 알렸다. 그는 그 시절 의회 도정질의 답변에서 “지역적 한계 극복을 위해 제주도의 행정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민선 5기 시절 행정시장 직선제를 추진하자 당시 박희수 제주도의회 의장이 “시·군을 없앤 단초는 현 도지사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한 발언은 바로 이 대목에 근거한 것이다.

 

 

제주발전연구원은 당시 여러 안을 제시했다. 제주·서귀포시와 북·남제주군 체제를 유지하되 도와 시·군간 사무를 재조정하는 방안과 남·북제주군을 동·서제주군으로 개편하는 방안, 그리고 제주도를 광역 제주·서귀포시 등 2개 시로 통합하는 방안, 시·군만 남겨두고 도를 폐지하는 방안이다. 그 외 시·군을 폐지하되 광역 도 안에 읍·면·동만 남겨두거나 현행 체제를 유지하되 시장·군수는 도지사가 임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2002년 10월에 만들어진 제주도 행정개혁추진위원회(위원장 조문부 제주대 총장)는 다음해 4월에 이르러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개편방안 용역을 맡겼다. 그해 10월에 이르러 지방행정연구원은 단일계층의 광역체제로 ‘제주특례시’ 모델을 제시하고, ▶시·군을 폐지하고 광역시에 읍·면·동을 두거나 ▶당시 4개 시·군을 행정구로 전환하는 방안 ▶4개 시·군 경계를 조정해 남·북제주군을 동·서제주군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미 상황은 꼬여가고 있었다. ‘특별도’와 ‘특례시’ 등 ‘특별’에 무게를 두고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행정구조만 개편하면 만사가 풀리는’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 중앙정부로부터 특별한 지위와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추진한 ‘특별도’ 구상의 한 방편으로 거론되던 시·군폐지 논의가 돌연 ‘목표’로 둔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로는 지금의 결과다. 2005년 3월에 이르러 김태환 도정은 여론조사를 거쳐 행정구조 개편 방향을 2개의 안으로 압축했다. 2005년 7월27일 주민투표의 보기가 된 ‘점진안’과 ‘혁신안’이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거릴지 모르지만 점진안은 당시 4개 시·군 체제를 유지하는 현행 유지안이었고, 혁신안은 지금의 시스템인 바로 2개 행정시만을 둔 제주도 단일 광역체제다.

 

선출직 시장·군수 등이 반발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고, “구더기(비리 시·군 의원)가 무서워 장독(의회)을 깨부수듯 풀뿌리 민주주의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것”이란 항의가 이어졌지만 결국 점진안과 혁신안으로 포장된 행정계층구조 개편안은 주민투표에 부쳐져 투표참가자의 57%인 8만2919명의 찬성으로 혁신안이 채택됐다. 주민투표법 시행 후 처음 치러진 주민투표였다.

 

그 결론을 근거로 제주도는 다음해인 2006년 민선 4기 지방선거부터 도지사와 도의원만을 선출했다. 4개 시·군은 폐지됐고, 시·군의회도 사라졌다. 남·북제주군은 각각 제주·서귀포시로 통합됐고, 2개 행정시의 시장은 도지사가 직접 임명했다.

 

그러나 예상한 문제는 고스란히 나타났다. 2006년 7월1일 4개 시·군을 걷어 치우고 단일 광역자치단체인 특별자치도가 출범했지만 ‘무늬만 특별자치도’란 비판이 수없이 이어졌다. 이미 시민단체들은 2003년 행정계층 구조 개편 논의가 불거질 무렵부터 “주민의 생활편의를 위한 서비스 확대와 자치·참여 확대에 대한 구상은 보이지 않고 목적도 불분명한 관료사회의 자의적 경계획정 논의만 판치고 있다”고 비난했었다. 당시 8개 제주도내 시민단체로 구성된 ‘자치개혁과 지방분권을 위한 제주협의회’는 2003년 10월14일 도민토론회 끝에 “행정구조 개편 방향이 제대로 된 자치의 실현이 아니라 국제자유도시 운운하며 투자자에 대한 통합 행정서비스만을 고려하고 있을 뿐 도민은 안중에도 없다”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기괴한 몰골, 우스꽝스런 모양의 특별자치도 제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주민 민원불편이 곳곳에서 제기됐고, 행정시인 제주·서귀포시 공무원들은 아무런 권한이 없자 늘 자치권을 가진 제주도만 쳐다봤다. 오죽하면 시위를 하는 단체도 권한이 있는 제주도청 앞으로만 몰려들 뿐 제주·서귀포시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도지사에 의해 임명되는 제주·서귀포시장 자리는 '선거공신' 몫으로 받아들여졌다. “도 국·과장보다 못한 시장”이란 소리가 이젠 정설로 굳어져가는 이유다.

 

사정이 이럴진대 아직도 행정시 권역조정과 행정시장 직접 선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행정시장을 직선으로 선출한다 하더라도 의회가 없기에 법인격 조차 인정받지 못해 인사·조직·재정권 조차 없는 권한 없는 시장이다. 직접 선출한다한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나?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제주특별자치도를 중심으로 완전히 새로운 자치권력구조 변화를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그 안에선 과거의 기초자치단체 부활은 물론 아예 제주도의회 다수당에서 집행부 수장을 선출하는 의원내각제까지 정치적 사안도 검토대상이다.

 

또 선거제도 역시 거론대상이다. 제주에서만이라도 과잉대표성을 막기 위해 1위 승자독식 구조가 아닌 과반수 득표자가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결선투표제 도입 등 투표방식의 변화까지 제주에 특례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제주가 선제적으로 제안해야 한다.

 

거기에 현행 3인 소선거구제 국회의원 선출방식 역시 제주에 한해 특례를 적용하는 구상도 나올 수 있다. 제주도 전역을 하나의 선거구로 묶는 중대선거구제를 채택, 1~3위 후보가 당선되는 방식을 채택하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그게 사표를 방지하고 오히려 정치신인의 등장도 가능하게 된다. 왜 어려운가? 이런 제도가 제주에만 특례적으로 도입된다고 할 때 여·여당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나? 득실이 있는가? 없다. 이해관계가 걸린 건 오직 제주다.

 

이런 전면적인 검토를 해야 하는데 그동안의 논의의 소비자는 안타깝게도 도민이 아닌 행정공무원이다. 행개위 위원들이 구성이 그래선지 정치학적 분석보단 행정학적 분석에 매몰된 감이다. 그 한계만을 안고 제주도나 도민들이 선택을 강요받은 현실이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이자 전략적으로 접근할 사안을 설문조사를 통해 선호도로 판단한다는 게 넌센스다. 풀어야할 문제는 원대한 전략적 기획인데 예시된 보기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지금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한 이라면 과거처럼 '기초자치단체 부활' 외엔 찾을 답이 없었다.

 

지금은 그런 소극적 논의에 머물 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제주에서 더 혁신적이고, 더 원대한 기획을 구상하고 내놔야 한다. 그래야 정부 차원의 지방자치분권 문제가 개헌과정에서 논의될 때 제주만의 독자성·차별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래야 특례가 보장되는 제주특별자치도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린 자치역량의 한계를 노출한 것이고, 그 결과로 흐른다면 전국 17개 시·도와 균등한 수준의 자치평준화의 옛 시범모델에 불과하게 된다.

 

지금은 행정적 담론의 시기가 아니다. 정치의 영역으로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 지금 제주에 필요한 건 행정학이 아닌 정치학이다. 허비한 15년의 세월을 전략적으로 뒤집으려면 이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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