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목바다는 평대보다 비옥한 편이었다. 처음 시집 와서 물에 들었더니 그리 깊지도 않은 바위 주위로 전복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얼마나 신바람 나게 전복을 땄던지, 그 후로는 늘 그곳을 지날 때마다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전복은 떼고 나면 그 자리에 흔적이 남는데, 얼마 있다가 다시 가보면 새 전복이 붙어 있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죽은 돌이 되어버렸다’며 가리켜 주는 바위는 잿빛을 띄고 있었다. 한 번 내려가서 만져보라는 말에, ‘이때다’하고 얼른 숨비질해 들어갔다. 해녀학교서 배운 물질기량을 선보일 절호의 기회였다.
마치 허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울퉁불퉁한 혹을 붙인 바위는 손으로 만지자 푸석거리며 먼지를 날렸다. 생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주위에는 버려진 플라스틱 병들이 나뒹굴어져 있었다.
‘이제는 눈을 씻엉 촞아봐도 전복이 어서(눈을 씻고 찾아봐도 전복이 없다). 한 물찌 넘어도 전복 구경하기가 어렵고. 구제기는 놈만 못해도 전복은 머정이 따라신디(소라는 남만 못해도 전복은 운이 따랐는데)... ’라며 등을 돌리는 멘토의 얼굴에 쓸쓸함이 일었다.
우리의 태왁 옆으로 스치로폴 박스 하나가 무심코 떠내려갔다. 사실 멘토에게 전복은 어머니를 생각케 하는 영물이나 다름없다. 상군 어머니가 바다 깊이 잠수해서 전복을 떼는 동안 애기좀수인 딸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전복물질을 배웠다. 잡기가 어려운 대신에 일단 잡기만 하면 큰돈이 되는 게 전복이다.
때문에 마치 심마니가 산삼을 찾아 돌아다니듯 전복에 머정이 있었던 해녀는 전복바당을 뒤지면서 숨비고 또 숨빈다. 소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전복만을 찾아서 수심이 깊은 바다를 하염없이 숨비는 해녀도 있다. 전복을 잡지 못하면 그야말로 헛물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흡이 길고 기량이 뛰어나서 전복을 잘 잡기로 이름난 해녀가 마을마다 존재한다.
물론 문어나 해삼, 오분자기를 잘 잡는 해녀도 있다. 이는 개인의 기술적인 주특기이기도 하고 나름의 물질연륜으로 해산물의 서식처를 달리 헤아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바다에서 작업을 해도 망실이에 담겨서 들어오는 물건은 제각각이다.
전복은 넓적한 근육성 발로 바위에 붙어서 치설로 식물을 갉아 먹으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부드러운 살갗을 편안하게 붙일 수 있는 평평한 산 돌에 서식한다. 대개 산 돌은 거무스름하고 매끈거리면서 감태같은 해초를 달고 있다.
특히나 껍데기가 둥글넓적한 암전복은 속살이 희고 영양가도 좋지만 떼어내기가 쉽지 않아서 애를 먹인다. 전복과 소라는 우미나 미역과 달리 잡을 수 있을지가 보장되지 않는 ‘헛물질’이다. 하지만 헛물에 들어서 빈 망실이로 돌아오는 해녀는 거의 없다. 물질은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다.
‘너른 바당 앞을 재연, 혼 질 두 질 들어가난, 저승질이 왓닥갓닥(넓은 바다 앞을 재서, 한 길 두 길 들어가니, 저승길이 왔다갔다)’하는 게 물질이다. 그리고 물질은 욕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점복이영 메역이영 호여당 우리 아이덜 공부시켜사주(전복이랑 미역이랑 해다가 우리 아이들 공부시켜야지)’하는 억척 말이다.
어쩌면 헛물질이란 스스로를 일컬어 ‘물질 잘 하는 상군’이라는 해녀가 드물듯, 해녀사회의 관습으로 내려오는 바다에 대한 겸손이리라.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