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선생은 목포공립상업학교 4학년 재학 중이던 1929년 11월3일 전남 광주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박상준 선생은 1929년 11월16일 목포상업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을 규합해 "동맹휴교를 결행하면서 시위할 것"을 결의했다.
그는 "총독부 폭압정치 절대반대, 치안유지법 철폐, 피압박 민족 해방만세" 등의 문구가 써진 큰 깃발을 제작했다.
그는 1929년 11월19일 등사판으로 인쇄한 수천매의 격문을 목포역 앞까지 시가행진하면서 살포하고, 깃발을 흔들면서 시위를 벌이다 일본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그는 1930년 3월2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받고 항소했지만 그해 11월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이 확정돼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제이누리=강남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