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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35)

1 눈을 감는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당신을 사랑하세요.’

 

규범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들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줄 모른단다. 자식사랑도 마찬가지더라. 엄마가 너희들에게 그랬구나. 사랑이라고 확신했지만 너희들에게 보낸 엄마의 그것은 정성이었을지는 몰라도 사랑은 아니었다. 엄마의 독단이고 편견이며 아집이고 오만이었지. 미안하다. 규범아 그리고 귀희야. 용서해다오, 이 엄마를,’

 

오빠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내가 엄마의 일기장에서 떨어진 하트모양의 작지만 두꺼운 종이를 집어 들어 읽고 있었다.

 

이제 엄마가 너희들 곁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늘 함께 있다할 수 있음은 여기 엄마가 남긴 흔적으로부터 일 게다. 엄마가 귀희·규범, 너희들에게 한 약속의 그 흔적. 우리가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함께 나눠보자꾸나.

 

“오빠, 오빠가 네 살, 내가 한 살이었다니까 얼추 삼십 오년 전에 엄마가 쓴 일기잖아? 엄마는 우리와 헤어져야만 했을 때 우리를 다시는 영 못 만날 줄 알았나봐. 그래서인가? 지금 우리에게 하는 것 같아. 지금 말야. 그렇게 되고 말았잖아.”

 

나는 엄마의 일기를 읽어갔다. 엄마가 아빠에게 보낸 편지도 들어있었다.

 

<귀희·규범이 문제로 이 아이들의 아빠에게 띄우는 글>

 

나, 한소연이 언제나 답답하고 염려스러웠던 것은 당신, 문재수 씨가 당신과 당신 가정의 일을 매사 중히 여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거였어요. 늘 감정으로만, 그것도 당신의 감정 또는 감상만이 중요했습니다. 기분에 따라 사는 당신은 끝내 나와 아이들보다는 당신과 인연하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는 오히려 호의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당신을 정 많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해 줄지는 모르나 다른 어느 사람-나와 두 아이가 되겠지요-에게는 무시이며 모욕이 될 겁니다. 누구의 탓을 따지려는 게 아닙니다.

 

이제 무언가 결정을 내려주셔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당신 부모의 의사가 아닌 당신, 문재수 씨의 생각을 말해 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한 살, 그 어린 것이 강제로 엄마 품을 빼앗긴 뒤 밥을 안 먹는다고 포도당주사를 맞히고 있다고 하니 이것이 어찌 인간들이 할 일이랍니까. 더더구나 며느리도 가족이라고 말하던 분들이. 다 나 때문인가요? 나 때문이라면 내가 알아듣게 그 이유를 말해주세요.

 

나는 우리 가족의 해체가 왜 일어났는가를 곰곰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판단한 그 이유는 대화단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신은 나에게나 아이들에게나 늘 점잖게 그리고 좋은 말로만 대해줬습니다. 하지만 그 언행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 마디로 싫은 소리는 하지 않으려는 상대배려 같지만 지나친 자기편의와 다름없었습니다. 그 무난함은 가족이 아닌 남이 하는 말 같고 행동 같았습니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성인군자 같은 당신의 반응에 도대체 당신이 한 여자의 남편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인가 하는 부정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당신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태도는 무관심이며 방관이기에 무책임입니다. 결국 가족에 대한 방치로 보입니다. 성인군자식 당신의 방관과 방치는 당신을 도량 넓은 사람으로 보이게 할지는 몰라도 사랑이 없는 사람으로도 보이게 합니다. 당신의 그런 태도는 당신 부모의 뜻에 의존하는 결과로 지금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엄연히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어느 부모의 자식보다도 더 소중해야 할 가정의 가장입니다.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을 탓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그 뜻이 정당치 못하다면 한 여자와 두 아이에겐 죄를 범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효심이라 할지라도 저버린 사랑을 감싸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뭐라 하셨기에 우리 가족이 한 순간에 해체, 아니 내가 가족의 일원에서 빠져나가야 합니까? 한 마디 이유나 사정도 들려주지 않고 부모님이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데리고 간 데에는 당신의 의사도 분명히 들어있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역시 곰곰이 따져보았습니다.

 

당신이 일 년 넘게 가장으로서 해야 할 책무를 못하고 있습니다.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적어도 경제적인 책임에 대해서조차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회피했습니다. 나는 이에 대해서도 남편이지 가장인 당신에게 묻거나 더구나 따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정말 하기 싫은 과외 등으로 나는 우리 집안의 경제를 불평 없이 맡게 되었습니다. 남편인 당신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어느 날 불쑥 아이들을 데려가 버렸습니다. 내가 한 그 한 마디 때문인가요?

 

‘아이들의 교육은 내가 전적으로 맡겠다. 당신이나 당신 부모에게 맡겨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그래서 아이들을 자유를 빙자해 방치해 놓게 할 수는 없다. 당신과 같은 무책임한 어른으로는 만들고 싶지 않다.’

 

이 한 마디가 당신의 부모님의 귀에도 들어간 건가요? 내가 또 심한 말을 했군요.

 

‘책임과 의무가 없는 자유는 결코 자유라 할 수 없다. 남들은 당신을 자유인이라고 부를지 모르나 나는 이런 당신을 그저 무책임한 자일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 이 두 마디와 그 뒤의 나의 행동이 가족해체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맞나요? 그렇다면 왜 아이들의 엄마인 나와 대화로서 상의하지 않았던가요? 점잖은 듯해 보이는 당신의 방관과 방치는 아내인 나에 대한 무시이며 자식에 대해서는 무책임입니다. 부부인 당신과 나는 대화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화 없는 일방적인 행동은 책임회피를 넘어 폭력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과 나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유년기의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당신의 효심과 당신 부모의 아들사랑으로 고생해야 하고 아이들의 장래를 망쳐야 하는 건가요. 나는 두 아이들을 열 달 아픔을 앓고 세상에 내놓은 엄연한 엄마입니다. 왜 엄마의 자리를 일방적으로 빼앗아가는 건지요. 두 아이들의 아버지라서 그럴 수 있는 건가요? 좋아요. 두 아이는 정상적으로 살게 해주고 싶습니다. 이러려면 법으로 해야겠지만 아이들에겐 이 또한 상처가 됩니다. 당신하곤 이제 헤어져도 두 아이의 엄마의 자리를 절대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당신의 대답과 행동을 기다립니다.

 

남자다움은 보기에 점잖은 게 아니라 속이 찬 행동을 보이는 것입니다.

 

 

굉장히 긴 편지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답장은 없었나 보다. 엄마가 기대했던 부부간의 대화는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아버지의 행동만 있었다.

 

아이들을 보내줘서 고맙습니다. 나의 두 아이, 보란 듯이 잘 키워내겠습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짤막하게 답장을 보냈다.

 

“오빠, 이런 경우 법으로 하면 엄마가 승소하게 돼 있지?”

 

“승패의 문제가 아니지. 법으로는 엄마에게 양육권이 주어지겠지. 엄마가 더 잘 알았을 것이고, 아버지도 이를 잘 알고 있었겠지. 법으로 하면 진다는 것을. 하지만 법의 의지로 아버지가 자식에 대한 책무를 저버리게 되면 법탓으로 돌릴 것까지 엄마는 염려해서 막고 싶었던 걸 거야. 법탓은 엄마탓이 될 테니까. 도덕적 기피라고 해야 할까. 이것만은 아이들의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하지 말아주면 했겠지, 엄마는. 엄마는 아빠를 기다렸던 거지. 아빠는 우리에게 우표첩을 만들어준 것만으로 아버지의 역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계실지도 몰라. 우리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 우표첩으로 과대포장된 것이고 이에 반해 엄마의 사랑은 과소평가, 아니지, 평가절하시켜 우리에게 엄마의 사랑은 없었다고 믿어온 게 사실 아니니?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다. 몸에 안 좋다고 라면 먹지 못하게 하는 엄마보다 라면 한 번 사준 아빠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다지 않던. 뒤를 더 읽어보렴.”

 

엄마는 두꺼운 대학 노트 한 권을 일기로 거의 다 메웠다. 내가 이 긴 엄마의 심정을 읽어 내려가고 있는 동안 오빠는 <슬픈 열대>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예속 상태의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독립과는 전혀 다른 그 무엇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내가 이해하게 된 것은, 어느 날 밤 캘커타에서 어떤 신화의 테마를 소재로 한 우르보시(Urboshi, 젊음과 아름다움이 영원한 천사의 이름)라는 제목의 연극을 보고 나서이다. ... 언쟁의 중심이 딴 것에 있다. 그것은 전통의 질서는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날 밤의 연극을 보고 인도인들에 대한 몇 가지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던 참이라 그 연극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 일부 인도인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던 터라 극장에서 마주친 또 다른 인도인들의 무관심은 나로서는 무척 고무적이었다. 그들의 태도가 소극적이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들 사이에는 은근한 형제애가 싹트고 있었다. ... 그들의 세계관이 바뀌고 있었다. 백인도 자기들과 다름없는 단순한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다는. ... 살아가는 데는 아주 조금만으로 충분하다. 약간의 공간과 음식과 오락과 기구와 연장. 이것은 ’손수건 안의 인생‘이다. 하지만 영혼만은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 그들의 그 작은 기도융단이 세계를 표상하는 문명이요, 땅바닥에 그어진 네모가 예배장소를 설정하는 문명이다. ... 삶의 고달픔을 견뎌낼 수 있기 위해서는 초자연과의 매우 강인하고도 매우 개인적인 유대가 필요할 것이다. ... 나는 인도양에 면한 한 해변에서 한 늙은이가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서 혼자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오빠는 두꺼운 책의 절반 부분을 넘기고 있었고 나는 그보다는 얇지만 노트로는 꽤 두툼한 엄마의 일기의 끝부분을 읽고 있었다.

 

혼자 스스로 생각해서 옳은 선택을 할 줄 아는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어주길 기대하면서도 나 또한 그러하지 못해 슬기롭지 못한 엄마가 되어가는구나. 귀희의 우표첩을 빼앗던 날, 엄마는 엄마 방에서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눈물이 거의 없는 나이지만 그 날은 태어나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이었다. 엄마도 결국 타인의식 속에서 너희들을 키우고 말았구나 하는 자책으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단다. 엄마가 너희들에게 자립의 토대를 마련해주겠다는 것이 현실성 없이 사는 아빠에 대한 부정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은 끝내 현실성을 강조하게 되는 모순을 만들고 말았다. 엄마가 귀희와 규범에게 엄마로서 주고 싶은 최종의 선물은 ‘자기에게 먼저 감동하는 사람’이었거늘. 그러자면 사회에서의 자기역할을 당당히 해내야 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너희들에게 공부를 고집했던 것이지만 그 공부라는 게 최고지향으로 변질해버리고 말아 나도 별 수 없이 여느 부모와 다름없다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단다. 나도 여느 엄마처럼 편의나 이목을 쫓는 편의점 엄마였다는. 결국 얻은 것은 자식과의 어색함이라니. 다 큰 너희들을 보면서 ‘엄마로서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이런 부질없고 무소용한 만약으로의 회상이나 하고 있는 나를 실패한 엄마라고 내 자신에게 지금 말하고 있구나. 엄마가 너희와 정말 사랑으로 어우러지고 싶었건만.

 

이쯤에서 엄마의 일기는 더 심하게 번져 얼룩이 져 있었다.

 

엄마가 가르치던 아이의 집 마당의 벽에서 풍선덩쿨-이 이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을 우연히 보았단다. 왕눈깔사탕 만한 옅은 베이지색 풍선이 담벽을 타고 대롱대롱 붙어 있어 하나를 떼어 만져보았더랬지. 살짝 눌러보니 폴록폴록, 말랑말랑한 느낌에 손 끝이 간지러웠어. 아이의 엄마가 내게로 다가와서 안을 꺼내보세요, 하더구나. 종이 같이 얇은 풍선방울을 찢을 수밖에 없었단다. 열어 제쳐보니 까만 씨앗이 세 개 들어있었어. 그 아이의 엄마가 또 이러더라. 보세요, 해서 보니 까만 씨앗에는 하얀색의 하트가 박혀있었어. 어떠세요? 묻는 말에 엄마는 바로 대답을 못했단다. 감동이랄까. 엄마는 한 동안 대답을 못하고 그 작은 미물이 말 한 마디 없이 안겨주는 사랑의 메시지에 빠져들고 말았거든. 엄마는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고, 대단하네요. 이 작은 것이 사랑을 품고 있다니... 손으로 가리키면서 다른 풍선을 하나 더 떼어보라고 하더라. 그것은 좀 전에 본 것과는 달리 연두빛의 풍선덩쿨이었어. 열어보니 아직 덜 여문 조금 진한 연두색의 씨앗 세 개가 역시 그 안에 들어있었는데 그것들에도 흰색의 하트가 박혀있었단다. 선명하진 않았단다. 하트를 키우고 있는 것이겠지? 엄마는 가져가도 되냐 하고 집으로 가져와 화분에 그 씨앗들을 심어 매년 키우고 있단다. 너희들과 함께 보려고 말이다. 엄마의 꿈은 바로 이런 거였는데. 작은 감동을 너희와 함께 나누는 것. 그러나 한 번도 그래 보질 못하고 이미 너희는 어른이 되고 말았으니. 너희와 함께 풍선덩쿨을 키우고 그 풍선 안에 든 씨앗을 꺼내보며 엄마가 감동했듯이 너희도 감동할 수 있길 바랬는데...

 

엄마는 일기를 더 이어가지 못한 것 같았다. 또 울고 있었을까.

 

엄마의 사랑은 지나치게 기다림이 길었다는 후회를 지금 한다. 그러고 싶었을 때는 이미 너희들은 엄마 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 하찮아 보이는 작은 풍선덩쿨도 사랑을 고이 품고 사는데 나의 사랑은 무엇인가, 너희에 대한 엄마의 정성도 사랑이라며 대접 받고 싶다만 엄마 스스로가 실패한 엄마라는 자책에 너희에게 미안함만 크구나. 십여 년째 혼자 키우고 있던 풍선덩쿨도 이제는 거두려고 한단다, 너희에게 보여주지도 못하면서 나 혼자 안고 있기엔 너무나 힘겨워서 말이다. 무엇보다도 사랑을 우선 선택한 엄마였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그 사랑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바보 여자에 그리도 사랑을 자식에게 제대로 주지도 못한 바보 엄마가 되어버린 지금... 나라고 어찌 사랑 받는 여자이고 싶고 사랑 주는 엄마이고 싶지 않았겠니. 실패한 엄마가 지금 고작 해주고 싶은 말은, 너희들만은 자기 삶에 먼저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길. 자기감동 없이 타인을 감동시킬 순 없지 않겠니? 풍선덩쿨이 엄마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처음으로 해보는 말인가?

 

사랑해, 내 딸 귀희야.

 

사랑한다, 내아들 규범아.

 

 

 

엄마의 일기는 여기서 끝났고 나는 없는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엄마 무덤이라도 만들어드렸어야 하는 거 아냐? 오빤 다 알고 있었잖아.”

 

오빠가 <슬픈 열대>를 덮으며 나를 반듯이 쳐다본다.

 

“내일 같이 가볼까? 엄마한테. 대신 우리 이젠 슬프긴 없기다.” 글.그림=오동명/ 0편으로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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