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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17)

19 토벌대가 마을로 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아버지는 된장 항아리 하나 들어갈 만한 마당 웅덩이 속에 희수와 희정이를 들여보냈다.

 

“어떤 경우라도 절대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동생의 입을 꼭 막아야 한다.”

 

희정이는 네 살이었다. 엄마가 아버지부터 피신하라고 했다.

 

“산으로 올라간 사람도, 바다로 피한 사람도 다 죽었다.”

 

아기를 업은 엄마를 숨길 마뜩한 곳을 찾지 못한 아버지는,

 

“설마 애 업은 아녀자를 죽이겠는가.”

 

이 때 토벌대가 마당으로 들이닥쳤다. 토벌대뿐만이 아니었다. 작은 아버지와 이모, 그리고 동네사람들이 토벌대의 총부리가 찔러대는 방향으로 끌려와 마당에 부려졌다. 마당은 채소 따위 푸성귀를 심어 먹을 수 있는 흙땅이었다. 아버지와 엄마도 끌려온 사람들에 섞여 그 마당에 무릎을 꿇었고 토벌대는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창고로 쓰이던 밖거리에서 희수 키만한 대나무들을 들고 나와 마당에 던졌다. 대나무의 뾰족한 쪽에는 마른 진흙이 묻어 달라붙어 있었고 그것들은 봄이 되면 마당의 채소를 지지해주는 데 쓰인다는 것을 어린 희수도 알고 있었다. 작년 봄, 엄마가 하는 대로 따라 대나무를 땅 위에 세웠다.

 

“이거다. 이걸로 우리 대원 두 명이 어젯밤 이 앞 거리에서 당했던 게 확실하다. 이 마을 놈들의 짓이다. 다 싸그리 죽여 버려.”

 

이 때 앞집의 아저씨가 일어나 아들만은 살려달라며 토벌대 앞으로 나갔다. 토벌대 대장은 들고 있던 채소줄기받침 대나무로 아버지의 배를, 이어 땅에 쓰러져 배를 움켜쥐고 있던 아버지에게 달려 나간 초등학생 아들의 옆구리를 찔렀다. 웅성거리자 연달아 총성이 귀를 때렸다. 희수는 여동생 희정의 두 눈을 왼손으로 가려 막으며 오른손으로는 머리를 웅덩이 안으로 더 깊이 눌렀다. 희수도 동생처럼 고개를 처박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동생도 희수도 귀를 막을 손이 없었다. 웃는 소리가 났고 담뱃불을 지피려는지 성냥을 긋는 소리도 났다. 흙을 파는 부삽소리와 흙이 땅 위로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신음소리가 흙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점점 묻혀갔다.

 

 

“이 대나무들을 트럭에 실어라. 총알을 아껴야지. 남은 놈들 없나 샅샅이 뒤져봐.”

 

희수는 희정이 머리를 더 누르면서 자기 몸을 옴츠렸다. 습한 공기에 섞여 지린 냄새가 올라왔다. 희정이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희수도 그랬다. 집에 불을 지르고 트럭이 출발하는 소리가 난 뒤에도 웅덩이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마당을 내다볼 수 없었다. 감은 눈에 뜨거운 붉은 빛이 흔들렸다. 한참 후 희정이 머리를 한 번 더 누르고 희수는 눈을 떴다. 뉘엿뉘엿 늦은 오후의 햇살이 마당에 비쳐 돌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그림자 위로 연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돌아보니 검게 탄 나무들이 쩍쩍 갈라지고 툭툭 떨어졌다. 매콤한 탄내가 심하게 코를 찔러댔다. 신음하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땅 위로 눈만 내놓고 더 주의 깊게 둘러보는데 희수의 손보다 작은 인형 같은 손가락이 흙밖에 나와 움직거렸다. 누운 햇빛에 더 선명하게 보였다. 손가락을 덮은 도톰하게 볼록한 흙이 가슴처럼 약간씩 여러 번 들썩이다가 멈췄다. 그 흙 위로 추운 겨울의 내쉬는 숨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아기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았다. 몇 달 전에 태어난 동생, 희범이의 손가락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의 숨도 흙속에서 멈췄다. 마당에 움직이는 것이라곤 타는 집 연기와 지는 해그림자뿐이었다. 어두워져 밤이 깊어가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희정이는 잠이 들어있었다. 잠이 든 희정이는 몇 분마다 몸을 바르르 떨었다. 눈을 가리고 머리를 누르던 두 손을 희정이에게서 뗐다. 일어서려고 몸을 움직여보지만 발도 엉덩이도 다 찌릿찌릿해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마당에 바람이 일었다. 피비린내가 났다. 희정이가 움직거렸다.

 

“엄마는?”

 

희수는 대답 대신 앙앙 울기 시작했다. 동생도 따라서 울었다. 더 크게 울어댔다. 새벽이 올 때까지 땅 속 웅덩이에서 희수도 희정이도 끝끝내 흐느끼면서 울어댔다.

 

“아니 이런 변고가 있나. 어떻게 사람 사는 데에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다니. 야들이 뭔 죄가 있다고 이런 흉측한 짓들을...”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정이가 먼저 뛰쳐나가며 울음목소리로 할아버지를 불렀다.

 

“너희들... 아니... 거긴...”

 

할아버지도 울기 시작했다. 울부짖었다. 희정이도 희수도 할아버지를 꼭 부여안고 다시 또 떨며 울었다.

 

“너희라도 살았으니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날 이후 곧바로 할아버지는 희수를 바다로 보냈다. 밀항선을 태웠다. 일본으로 피신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희수는 밀항선을 타고 육지로 나갔다. 큰아버지가 있는 목포였다. 제주도민은 제주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묶어두고 죽였다. 2년 뒤 여동생 희정이가 죽었다고 했다. 질식사라고 했다. 이불장롱 속에 죽어있는 희정이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죽은 희정이의 두 눈가에 눈물 흔적이 짙게 남아있었다고 했다. 눈이 부어있었다고 했다. 얼굴을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이 흠뻑 젖어 말라 있었다고 했다. 죽기 전에 무섭다는 말만 하며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목포로 피해 나온 희수도 같았다. 늘 혼자였고 모든 사람이 두렵고 무서웠다. 큰아버지는 희수에게 만화책을 사다줬고 만화에만 빠져서 지냈다. 그러나 큰아버지마저 목포형무소에 끌려들어갔다. 고향 제주도민들을 집에서 재웠다고 해서 였다. 희수는 봤던 만화를 또 보고 또 봤다. 죽은 여동생처럼 이불을 넣어둔 다락에서 읽었다. 보다 말고 동생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희정이가 세 살 때였다. 엄마·아버지, 그리고 석달바기 희범이가 죽임을 당하기 약 6개월 전쯤이었다.

 

“엄마젖이 딱딱해.”

 

젖을 빨진 않아도 엄마젖을 만지곤 하던 희정이가 말랑말랑하던 엄마젖이 딱딱해졌다고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희범이가 태어났다. 한 번도 운 적이 없던 엄마가 안방에서 계속 울고 있었다. 아버지는 방문 밖에서 연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엄마가 두 시간쯤 운 뒤에 “으앙” 소리가 안방에서 들려왔다. 희수와 희정이는 마당에서 흙놀이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희범이를 등에 업고 있었다. 부엌에서도, 마당에서도, 밭에서도 그랬다. 대나무를 흙 위에 세우면서 엄마가,

 

“저기 보이니? 한라산이 오늘은 더 잘 보이는구나. 은하수와 가장 가까운 곳이 저기란다. 희수는 은하수를 못 봤겠구나. 오늘 밤에는 엄마가 우리 집 큰 아들 희수에게 은하수를 보여줄 수 있겠는걸.”

 

깜깜한 밤에도 엄마는 희범이를 업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하나하나 빛나는 저 하늘의 점들을 별이라고 하지? 근데 저기 뿌옇게 생긴 하늘이 보이니? 저기, 엄마손을 따라서 봐보렴.”

 

엄마손이 가리키는 곳을 희수는 제 눈에 맞췄다.

 

“응, 보여 엄마. 연기 같애. 밥할 때 나는 연기 같애. 하늘에서도 밥을 하나봐.”

 

“그래. 희수 눈에도 보이는구나. 희수가 말한 것처럼 연기 같은 저것들도 모두 별들이란다. 수많은 별들이 한데 모여 있어서 연기 같고 강 같을 것이야. 저 별들이 바로 은하수란다. 낮에 본 한라산은 저 은하수와 가장 가깝다고 하니 매우 높은 곳이겠지?”

 

희수는,

 

“엄마, 나도 크면 엄마랑 아빠랑 희정이랑 희범이랑 한라산 올라갈 수 있어? 은하수를 따고 싶어.”

 

엄마는,

 

“그럼, 그럼. 물론이지. 우리 집 막내 희범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우리 가족 다함께 한라산에 올라가서 은하수를 따오자꾸나.”

 

희수는,

 

“나도 어른이 되겠네.”

 

희수는 엄마에게 희범이 얼굴을 보여 달라고 했다. 달밤에 비친 동생 희범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엄마, 희범이는 언제 눈을 떠? 언제나 눈을 감고 있어.”

 

엄마는,

 

“못 봤구나. 이제 눈을 얼마나 크게 뜨고 있는데. 엄마가 업고만 있어서 동생 얼굴을 희수에게 보여주지 못했어. 우리 큰 아들, 미안. 내일 눈뜬 동생을 보여줄게.”

 

희수는 눈뜬 동생을 보고,

 

“희범이 눈이 별 같애. 희범이 눈이 움직이면 은하수 같애. 은하수도 움직였거든.”

 

다락방에서 엄마도 아빠도 동생들도 다 떠올리며 희수는 와락 또 눈물을 흘렸다. 죽은 자는 붉은 피를 땅에 뿌리고 산 자는 무색의 눈물을 혼자 훑는다. 한국동란이 일어나도 제주도인이 고향 제주도로 돌아갈 수 없었다. 여전히 제주도인은 제주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대대로 법 없이도 살아온 사람들은 육지 외부의 법에 의해 제주도는 감옥이 되었다. 땅과 바다만 바라보며 살아온 죄 없는 순박한 사람들은 이유를 모른 채 죄인이 되어있었다. 큰아버지는 형무소에서 나와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국가란 국민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인다. 국민을 팔아 백성을 죽인다. 일본이 나을 것은 없지만 내 나라 이곳 역시 나을 것도 없다. 무정부주의자들을 이해할 것 같다.”

 

희수와 사촌형·누나를 훗날 데리러오겠다고 했지만 일본으로 간 큰아버지는 조국 한국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조국이 받아주지 않았다. 이념으로 피, 혈연을 끊었고, 정치에 의해 조국은 품이 아닌 등이 되었다. 품어주지 못하고 등 돌린 조국으로 50년을 이국에서 떠돌아야했다. 조국에선 천대 받은 도피자로, 일본에선 멸시 받는 국외자로... 한 많은 세상을 살다가 제주4·3의 누명이 조금씩 벗겨질 즈음 제주도 밖에서 죽었다.

 

“내 삶에서 빛은 없었다. 죽은 뒤라도 그 빛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

 

일본에서 번 돈의 전부를 제주도의 한 대학에 희사했다.

 

“제주도가 나를 밖으로 밀어낸 것은 아니지 않느냐.”

 

희수는 자취방을 구할 때도, 직장을 갖고 전셋집을 얻을 때도 남향집을 피했다. 남쪽은 저린 눈물을 피 토하듯 쏟게 하는 정이며 한이다. 남쪽은 희수의 모든 것을 다 앗아갔지만 남아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등을 돌릴 수도, 가슴에 품을 수도 없는 고향은 미치도록, 정말 사무치도록 그리운 곳이다. 하시라도 빨리 더 멀리 벗어나야겠다고 해서 또 다른 이국의 언어, 영문과를 선택했지만 떠나려면 붙잡는 게 또 고향이었다. 밀쳐낸 고향도, 붙잡는 고향도 다 미웠다. 미움은 그리움의 한 구석이다.

 

“선생님은 말투가 우리와는 달라요. 말끝이 짧아요. 반말 같기도 하구요. 고향이 여기 아니죠?”

 

제자들이 고향을 물으면 바다라고 대답한다. 희수에게 고향 제주도는 바다와 같다. 제주도가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어서만은 아니다. 바다는 머물 수 없는 한 순간의 땅이다. 수영을 해서 몸을 담든, 배를 타고 떠나 머물든 한 순간에 불과하다. 머물 수 없는 곳, 바다. 그러나 바다 밖에서 더 바라보게 하는 곳이 바다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는 흔들리고 요동을 쳐 도주하고 싶어지지만 그 밖에서는 수평선의 평화로 안주하게 만드는 곳이 바다다. 바라봐야 하는 곳, 바라보게 하는 곳, 이래서 바다라고 했는가. 그곳이 희수의 고향이다. 고3 입시생을 가르쳐야 하는 수업시간에도 희수의 수업은 언제나 영시 하나를 흑판에 옮겨 적어놓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Behold, The Grave

 

 

 

Behold, The Grave of a wicked man,

 

And near it, a stern spirit.

 

There came a drooping maid with violets,

 

But the spirit grasped her arm.

 

 

 

보라, 저 무덤을

 

 

 

보라, 저 위악한 사나이의 무덤을,

 

근처에 있는 냉엄한 망령을.

 

힘없이 고개 숙인 처녀가 제비꽃을 안고 거기 왔으나,

 

망령이 처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를 위한 꽃이 아니다.’ 망령이 말하자,

 

처녀는 울었다.

 

‘아, 나는 그이를 사랑했어요.’

 

그러나 망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그를 위한 꽃이 아니다.’

 

보자, 이것은 그렇다.

 

망령이 옳았더라면

 

그녀는 왜 울고 있었지?

 

글.그림=오동명/ 18로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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