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직원으로 취업하려고 면접을 보는 한 여성이 있다. 그는 고교 졸업이 전부이고 병원 근무 경력이나 의학 교육을 받은 적도 없던 터라 보기 좋게 탈락하고 만다. 안 되는 날은 뭘 해도 안 되는지 주차한 차에는 교통위반 딱지가 붙어있고,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한다. 이 여인이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 2000)’ 영화의 주인공이다. 에린은 사고의 소송을 위해서 에드 메스리(알버트 피니)라는 변호사를 만나지만 재판에서 지고 만다. 어린아이들 셋을 데리고 사는 그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수십 군데를 알아보다가 자기의 소송을 맡았던 에드라는 변호사 사무실에 우격다짐 격으로 일자리를 달라고 하면서 들어간다. 에드는 마지못해 사무실에 자리를 만들어주고, 어느 날 에린이 서류 정리를 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퍼시픽 가스 전력회사(PG&E)라는 회사에 부동산을 매각하는 서류 사이에 병원 기록이 들어있던 것. ‘백혈구 수치 이상, 염증이나 백혈병일 때 나타나는 현상임’이라는 소견이 적혀있는 기록을 보고 이상하다고 여겨서 병원 기록의 주인을 찾아 LA 외곽의 힌클리(Hinkley)라는 작은 마을을 찾아간다.
여의도 국회 앞 주유소는 기름값 비싸기로 유명하다. 땅값이 비싸니 임대료가 높기도 하겠지만, 주유소 이용객 중 상당수가 기름값에 연연해하지 않을 분들, 국회의원인 측면도 있을 게다. 그도 그럴 것이 의원에게는 매달 차량 기름값 및 유지비로 146만원씩 지원된다. 국회가 개점휴업 52일째인 7월 20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위해 문을 열었다. 여야 충돌로 상임위원회 구성은 못한 채 본회의만 열었다. 마침 그날은 의원 월급날, 50일 넘게 일을 하지 않고서도 세비 1285만원은 어김없이 받았다. [※참고: 여야는 22일 후반기 국회 원(院) 구성 협상을 타결했다. 지난 5월 30일 전반기 국회 임기가 끝나고 국회 공백 상태가 된 지 53일 만이다. 핵심 쟁점이었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와 행정안전·기획재정위원회는 여야가 1년씩 번갈아 가면서 맡기로 했다.] 의원 세비는 주말을 포함해 하루 일당으로 치면 42만8500원. 본회의나 상임위 회의에 사유 없이 불참하면 1회에 3만1360원을 감액한다는 규정(국회법 32조)이 있긴 해도 벌칙성 금액은 일당의 10분의 1도 안 된다. 더구나 6월부터 50일간은 국회에서 회의 자체가 열리지 않아 감액할 일도 없었다. 의원들이
‘오늘이 며칠이냐?’를 반복하여 묻는 것으로 시작된 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고구마나 감자·과일·떡 등 음식물을 종이에 싸서 이구석 저구석에 꽁꽁 숨겨두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의 방을 대청소하다 보면, 언제 적 것인지 모르게 새까만 곰팡이를 뒤집어 쓴 것들이 발각되곤 한다. 어떤 것들은 도무지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요양원 주간보호에서 나눠준 음식물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선생님이 빵이나 과자, 떡 등을 나눠주셨을 것이고, 어머니는 일부러 아껴 먹다가 슬며시 얼마쯤은 호주머니에 넣고 오셨으리라. 어머니의 어렸을 적 첫 기억이, 두 살 위 오라방의 손을 잡고서 이웃집 초상집에 밥 얻어 먹으러 갔던 것이라니...얼마나 음식에 대한 부족이나 염려가 일상적이었으랴. 또한 나의 달콤하고 비밀스런 기억 또한, 어머니께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계를 하고 오셔서 살짜기 내 손에 쥐어주시던 사탕 두 알이 아니던가. 나만의 그 은밀한 비밀을 안고서, 하나 둘 곯아떨어지는 언니들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던 그 겨울밤의 독서라니... 사실 책이야 흉내에 불과했고, 끄덕끄덕 거리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어머니의 발 기척에 용케도 눈을 부릅떠서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아버지 아우렐리우스와 아들 코모두스라는 2명의 황제를 보여준다. 철학가 뺨치는 지혜를 뽐냈던 아우렐리우스가 ‘정치가(statesman)’라면, 아버지를 목졸라 죽이고 황제 자리를 찬탈한 코모두스는 전형적인 ‘정치인(politician)’이다. 그럼 정치가와 정치인의 차이는 뭘까. 정치인은 정치를 입신양명과 부귀영화의 통로로 사용하고, 자신이 가진 권력의 크기를 즐긴다. 반면 정치가는 공동체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고, 자기희생을 통해 그 비전을 실현한다. 그래서 정치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크기만큼 고통스러워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치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정치가는 고통스러워도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대개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 3가지 성격의 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거나 타협한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면 아무 걱정 없겠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해야만 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픈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보통 사람이 아닌 권력자가 ‘해야만 하는 일’을 외면하고 ‘하고 싶은 일’에 매달
여름이 무르익으면 제주시내 곳곳에서 그늘막이 펼쳐집니다. 그늘막은 횡단보도나 교통섬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햇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가려주는 거대한 파라솔이에요. 정식명칭은 생생그늘터랍니다. 높이는 보통 3~5m, 무게는 150㎏ 정도예요. 7월 현재 제주시에는 253개의 그늘막이, 서귀포시에는 118개의 그늘막이 설치돼 있습니다. 또 각각 6개, 5개를 새로 설치하고 있고요. 도민들이 초록불을 기다리다가 더워서 쓰러질까봐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양 행정시에 따르면 그늘막 1개당 가격은 190만~200만원 선입니다. 하지만 그늘막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위탁.관리를 맡은 업체에서 덮개를 제거해 펼치는 수고로운 작업이 필요하대요. 날씨와 기온에 따라 자동으로 펴진다는 스마트 그늘막은 800만원 선으로 가격이 무려 4배나 뛴다고 합니다. 이마저도 서귀포에는 설치돼 있지 않고, 제주시에만 광양사거리 1곳과 신제주 이마트 앞 2곳 등 3곳에만 설치돼 있습니다. 만약 인공 그늘막 대신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면 얼마의 예산이 들어갈까요? 제주에서 가로수로 가장 많이 심는 수종은 지난해 말 기준 왕벚나무(1만6176본), 후박나무(1만1026본), 먼나무(1만
오영훈 도지사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세계자연유산 보존에 큰 관심을 가져 국회에서 제주 세계자연유산 보존과 관련된 행사와 도지사 후보시절에도 실질적인 세계자연유산 환경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유산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이에 따른 지원도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도민주권의 도정을 펼치겠다며 용천동굴하류 등재와 동부하수처리장의 문제는 세계자연유산의 보존가치와 주민의 입장에서 해결하겠다고 월정리 비대위와 마을회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분명하게 밝혔으며 일방적인 도정은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영훈 도지사가 7월 21일 오후 6시 월정리 방문에서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의 권고대로 용천동굴하류 구간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위원회에 등재시키는 청사진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2009년에 동굴 내 수중조사를 통해 용천동굴하류가 해안까지 연장된 사실이 확인되어 그 구간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아직까지 10년 넘게 세계자연유산에는 등재되지 않은 상태에 있습니다. 하루속히 용천동굴하류 구간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세계자연유산인 용천동굴과 당처물공굴의 지역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또한 육안으로 확인되는 용암동굴의 흐름과 투물러스 모습 등이 재조명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2.25%로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로써 지난해 7월 0.5%였던 기준금리가 1년 만에 4.5배 수준으로 올랐다. 2008년부터 이어져온 초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고금리와 긴축의 시대가 도래했다. 한은이 통상적인 금리 인상폭의 두배에 이르는 빅스텝에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3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도 처음이다. 금통위 직후 이창용 한은 총재는 “경기보다 인플레이션을 먼저 잡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옳은 판단이다. 물가상승률이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6%대를 기록한 데다 전기·가스 요금 인상에 추석 수요를 감안하면 7~9월에 7~8%대로 더 뛸 수 있다. 지금으로선 물가불안 심리를 진정시키는 게 급선무다. 걱정거리는 금리상승 시기에 취약가구와 한계기업이 부실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가계부채가 1800조원에 이르는 판에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은 6조8000억원 늘어난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영끌 가계’와 영업해 번 돈으로 이자 갚는 것도 벅찬 ‘좀비 기업’들이 연쇄 도산하면 경제 전반이 충격을 받는다. 더 큰 문제는 금리
가끔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하는 소리가 있다. “나, 어떵허난 백살꼬지 살아점신고, 이?” 곰곰이 어머니의 일생을 헤아려 보니,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죽음의 위기를 넘겨서, 오래 사시라는 주위의 돌봄이 있어서’로 요약된다. ‘혼자 사는 게 좋다’고 독립을 선언하셨던 어머니가, 어느 날 밤 배게를 안고 우리 방으로 오셨다. ‘혼자 자는 게 무서워서…….’라는 게 이유였다. ‘제주도 할머니들처럼 혼자서 먹고 싶은 거 마음껏 해 먹으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한 지붕 두 살림으로 살아온 지 10년 만의 일이다. 그렇게 딸과 한 방을 쓰면서, 어머니는 10년 가까이를 거뜬히 살아내고 계신다. ‘80대 중반이 평균 수명’이라는 어머니 가계의 유전적 전통이, 막내에 이르러서 그만 깨져버린 셈이다. 목하 100세를 살고 계신 어머니의 장수 비결이, ‘사랑하는 딸과 같이 살아서’라는 형제들의 진단처럼, 나와 같이 살면서 ‘딸을 돌봐주고 딸로부터도 돌봄을 받는다!’는 생각이 어머니로 하여금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사실 ‘외로움이 장수의 적’이라는 연구들이 더러 있기는 하다. 한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내놓은 ‘국내 90세 이상 장수사
제주시에서 교통안전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 근무하면서 교통사고예방을 위한 안전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신고사건 등 현장에서 목격되는 사고는 ‘차량’이 다수로 인식되어 왔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보행자’의 사고가 의외로 많다는것에 경각심을 가지지 않을수 없다. 최근 3년간 제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가 84명으로 전체의 45.2%에 이르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숨진 사고도 16명(19%)으로 보행자 사고는 간과할수 없다. 이에 보행자 중심 교통안전 문화가 사회전반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을 넘어 새로운 보행자 안전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이다. 특히 7월 12일부터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에는 △횡단보도 앞 보행자가 ‘통행하는 때’ 뿐만 아니라 ‘통행하려고 하는 때’까지 일시정지 의무가 부여되고, △어린이 보호구역 내 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은 횡단보도 주변에서 보행자 유무와 관계없이 무조건 일시정지 해야 하는데 이를 위반한 운전자에게 범칙금 6만원(승용차 기준)과 벌점 10점이 부과된다. 제주경찰청에서는 7월 12일 법시행과 더불어 한달간의 홍보활동 및 유예기간을 걸쳐 이후 위반자에게 단속을 강화
물가 상승세가 무섭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0월(3.2%) 3%대에 들어선 뒤 불과 8개월 만에 두배가 됐다. 4월 4.8%였던 것이 5월 5.4%로 뜀박질했다. 6월에는 6.0%로 더 올라갔다. 이러다가 7월에는 7%대, 8월에는 8%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할까 걱정된다. 물가 오름세는 하반기로 갈수록 가팔라질 전망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로 국제 유가와 일부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지만, 에너지·원자재와 곡물을 둘러싼 글로벌 공급망 불안 요소는 여전하다. 게다가 7월부터 전기·가스요금이 올랐다. 여름휴가철과 추석(9월 10일) 등 물가상승을 부채질할 요인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은행의 7월 기준금리 인상(13일 금융통화위원회 예정)은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시장의 관심은 인상폭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24년 만의 6%대 물가상승률은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높였다. 한국과 미국간 기준금리 역전 현상도 차단해야 한다. 사람들이 향후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보는 기대인플레이션도 문제다. 6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로 5월보다 0.6%포인트 올랐다. 기대인플레이션은 2012년 이후
가끔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하는 소리가 있다. “나, 어떵허난 백살꼬지 살아점신고, 이?” 곰곰이 어머니의 일생을 헤아려 보니,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죽음의 위기를 넘겨서, 오래 사시라는 주위의 돌봄이 있어서’로 요약된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길까? 아마도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헤아려보면, 어머니에게도 수많은 죽음의 위기들이 있었다. 17세부터 육지로 원정물질을 다니면서 60이 넘도록 해녀를 하였으니, 더 말하여 무엇하랴. 내 고향 대포마을에서도 물질을 하던 중 익사한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어머니의 조카인 종택이 어멍은 물질하던 중 숨이 다해서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제이는 물질을 마치고 나오다가 성창에서 발이 미끄러져 익사하였다. 그리고 달문이 삼춘은 ‘물 소굽에서 밥을 해영 먹어사 나오주’라는 소리를 듣는 대상군이었지만, 어느날 물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보목마을도 마찬가지다. 섶섬 앞에서 물질하던 해녀가 지나가던 배의 스쿠루에 걸려서 죽는 사고가 있었고, 태왁만 남긴 채 사라진 해녀가 거센 조류를 따라 지귀도에서 발견되
막시무스에게 코모두스는 그야말로 불구대천의 원수다. 코모두스는 막시무스가 아버지처럼 모신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목졸라 죽이고, 막시무스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까지 불태워 죽인다. 막시무스는 하루아침에 로마 최고의 장군에서 노예검투사로 전락한다. 코모두스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한 사내의 처절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볼 때 한가지 짚어볼 게 있다. 막시무스의 불행은 모두 코모두스 때문이었을까. 누가 뭐라 해도 직접적 원인은 코모두스가 제공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간접 원인들은 따로 있다. ‘간접 원인’이 없었으면 ‘직접 원인’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게 ‘진짜 원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 막시무스를 불행으로 이끈 간접 원인은 무엇이 있을까. 이 모든 사태를 만든 ‘간접 원인’은 어쩌면 게르만족의 침입이었을 듯하다. 북방 게르만족이 로마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막시무스는 로마 최고의 장군이 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거다. 아우렐리우스 황제 역시 아들 코모두스를 제쳐두고 막시무스를 후계자로 ‘찜’할 이유도 없었다. 어쨌거나 게르만의 침략을 당한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코모두스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막시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