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관문인 제주국제공항에서 공항서로를 타고 민속오일시장으로 향하는 중간지점. 기존 다호5길 방면으로 진입하자 얼마 안 가서 도로가 부자연스럽게 왼쪽으로 꺾였다. 곧 다시 원방향으로 꺾이자 희끄무레한 아스팔트가 깔린 직선도로가 시작됐다. 끝까지 가니 ‘도로 끝’ 표지판도 나온다. 하지만 좌회전을 하면 도로가 계속 이어진다. ‘도로 끝’이라니, 뭐가 끝이라는 걸까? 이 도로는 신설 도로처럼 보인다.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없었다가 어느샌가 보니 뚫려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아스팔트만 깔렸고 중앙선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속 방지턱과 이를 경고하는 표지판, 속도제한 노면까지 그려져 영락없는 도로다. 제주공항 부지와 도로를 분리하는 펜스까지 쳐져있다. 그러니 지나는 사람들 모두 당연히 도로겠거니 생각한다. 과연 겉만 보면 인근에 산재한 공사현장으로 어수선할 뿐 특별한 점이 없어보인다. 어떻게 보면 한적한 시골도로처럼 평화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치열한 분쟁의 주인공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제주시,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공항공사, 그 아래 제주항공청간 책임 떠넘기기로 인근 주민들만 고통받고 있는 것도. “렌터카 업체 등 인근 주민들이 길이 없다고 민원
제주에는 '돌챙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돌을 쌓아 집이나 밭, 무덤의 경계를 표시한 집담·밭담·산담을 만들고, 마을의 재앙을 막는 방사탑(防邪塔), 제주의 상징과도 같은 돌하르방 등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다. 흔히 옹기장이, 칠장이, 대장장이와 같이 단어 뒤에 '관련 기술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장이'가 붙는 것과 같다. '화산섬' 제주 지천으로 널린 돌. 이를 옮기고, 깨고, 다듬고, 쌓아 돌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사람들의 생활을 이롭게 만드는 이들이 그들이다. 한때 천하게 여기며 '돌챙이'라 낮잡아 불리던 이들을 우리는 이제 제주 문화를 대표하는 '장인'(匠人)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 제주 역사·문화 녹아든 돌챙이의 삶 지난 2008년부터 15년간 돌담 쌓는 일을 해온 '돌챙이' 조환진(50)씨. 그는 최근 제주 돌문화를 대표하는 장인들을 만나 인터뷰한 책 '제주 돌챙이'(제주도문화원연합회. 비매품)를 펴냈다. 돌담 장인 안기남, 원담 장인 이방익,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 송종원, 비석돌 장인 조이전, 비석에 글을 새기는 비석 각자 장인 고정팔, 초가장 축담 장인 김창석, 돌창고 장인 홍의백, 방사탑 장인 현태성, 돌
옛 제주 사람들의 생활필수품 구덕과 차롱. 구덕과 차롱은 대나무를 주재료로 만든 '대그릇'(竹器)으로, 오늘날 바구니 또는 그릇 용도로 쓰였다.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쓰임새로 인해 구덕과 차롱에는 제주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옛 전통을 잇는 사람들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사라지고 있다. ◇ 구덕 장인의 삶과 죽음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13살부터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제주의 대표 생활도구인 구덕과 차롱을 만드는 장인(匠人)인 고(故) 김희창(1941∼2021) 선생은 지난 2018년 제주도무형문화재보유자 신청 제출 자료에서 자신의 삶을 이같이 덤덤하게 풀어냈다. 한국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1953년, 집안 사정이 여의찮았던 그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대나무를 베고 다듬어 구덕과 차롱을 만드는 일이었다. 당시 죽세공 장인은 서귀포 토평에 30여 가구, 호근에는 10여 가구가 있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물건을 만들어 팔았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구덕과 차롱을 살) 돈이 없으면 쌀, 고구마(감자), 보리와 바꾸는 물물교환으로라도 우리 가족의 생계를
옛 제주 사람들의 생활필수품 구덕과 차롱. 구덕과 차롱은 대나무를 주재료로 만든 '대그릇'(竹器)으로, 오늘날 바구니 또는 그릇 용도로 쓰였다.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쓰임새로 인해 구덕과 차롱에는 제주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잊히고 사라지는 구덕과 차롱에 얽힌 생활문화와 전통을 잇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2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 구덕 없이는 아기 키우기도 힘들어 "웡이 자랑 자랑 자랑 우리 애기 잘도 잘다 어서 자랑 어서 자랑 자랑 자랑 저래 가는 검둥개야 이래 오는 검둥개야 우리 애기 재와도라 느네 애기 재와주마 (중략) ᄒᆞᆫ저 먹엉 ᄒᆞᆫ저 자랑 ᄒᆞᆫ저 먹엉 자불어사 니네 어멍 물질 가곡 니네 아방 밧디 가곡 헐꺼 아니가"(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제주문화대전') 제주민요 중 일종의 자장가라 할 수 있는 '애기구덕 흥그는 소리'의 일부다. 애기구덕에 아기를 눕히고 흔들어 잠재우는 모습은 옛날 제주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었다. 애기구덕을 지고 밭이든 바다든 어디에든 나가 일을 하며 아이를 돌봐야 했던 제주의 여인들. 지나가는 검둥개에게조차 아기를 재워달라 부탁하고, '얼른 먹고 자야 너의 엄마 물질 가고 너의 아빠
# 경기도 수원에 사는 A씨(43) 부부는 2박3일 일정의 제주여행에서 렌터카를 예약하지 않았다. 렌터카 비용이 비싸서도 아니고, 성수기 예약에 실패해서도 아니다. 운전할 걱정없이 점심, 저녁 반주를 즐기기 위해서다. 부부는 둘 다 애주가다. 먼 곳으로 여행을 간다치면 운전대를 잡을 한 사람은 술을 양보해야만 하는 상황이 불편했다. 함께하는 여행인데 함께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마침 아이들을 부모님 댁에 맡기고 부부끼리만 떠나는 온전한 ‘힐링 여행’이다. A씨 부부는 이번 여행에서는 아무 걱정없이 점심엔 맥주나 막걸리를, 저녁엔 ‘한라산 소주’를 즐길 계획이다. 일정은 한담에서 곽지해수욕장까지만 느슨하게 잡았다. 콜택시를 활용하면 이동수단도 해결된다. A씨 부부는 제주바다가 잘 보이는 식당에서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일 생각에 얼른 여행 출발일자가 오길 기대하고 있다. # B(22)씨와 C(23)씨, D씨(22)는 제주에서 처음 만난 사이다. 각각 ‘혼여’를 왔지만 여행목적은 같다. 천천히 도보로 여행을 하면서 제주를 온전히 즐기는 것. B씨는 이날 아침도 숙소에 누워 오늘 갈 곳을 정하기 위해 여행 커뮤니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C씨가 작성한 글이 눈에
제주시 원도심에 탐라국(耽羅國) 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칠성대'(七星臺) 유적이 최근 발굴됐다. 옛 도심 일대 북두칠성 모양으로 일곱 곳에 세워진 칠성대 중 하나로 추정되는 유적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항해가들의 길잡이가 된 북두칠성처럼 베일에 가려진 탐라 역사를 추적할 수 있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탐라국에 세워진 일곱개의 별 '칠성대' '칠성도(七星圖)는 주성(제주읍성·현재의 제주시 원도심 일대) 안에 있는데, 돌로 쌓았던 옛터가 있다. 삼성(三姓)이 처음 나왔을 때 삼도(三都, 일도·이도·삼도)로 나눠 차지하고 북두칠성 모양을 본떠 대(臺)를 쌓아 분거했다. 이 때문에 칠성도라 부른다.' 조선 중종 25년(1530)에 편찬한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장하는 칠성대에 관한 첫 기록이다. 칠성대는 이후 선조 34년(1601) 왕명을 받아 안무어사(安撫御史) 신분으로 제주에 온 김상헌의 기행문 '남사록', 효종 4년(1653) 이원진이 제주목사로 부임할 당시 기록한 '탐라지' 등에도 나온다. 이외에도 임제와 홍천경, 김상헌, 이형상, 김정 등 제주에 부임한 지식인과 관료의 개인 시문(詩文)에도 등장한다. 옛
적갈색 또는 흑갈색으로 고급스러운 빛깔을 자아내는 갈옷. 가끔 멋스럽게 디자인된 갈옷을 보면 꽤 대중적이어서 젊은 사람들이 입어도 손색이 없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오늘날 누구나 즐겨 입는 청바지가 옛날 서양 광부들의 작업복이었다는 걸 떠올리기 쉽지 않듯 갈옷이 제주 사람들의 노동복이었다는 사실도 10대 청소년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듯하다. 제주의 자연과 제주 선인들의 땀과 정성이 빚어낸 갈옷을 들여다본다. ◇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 갈옷의 계절 '凌雨枾染衣 冒雪皮爲帽'(릉우시염의 모설피위모) '장맛비 올 때 옷에 감물 들이고, 추운 겨울에는 가죽으로 모자를 만드네' 조선 후기 문신인 윤봉조가 1728∼1729년 제주에 유배됐을 당시 남긴 한시 '도중잡영'(島中雜詠)의 일부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뜻하는 '凌雨'(릉우)는 시(詩)에서 '장맛비'를 통해 '제주의 여름'을 비유하는 단어로 쓰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장마가 끝나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을 일컫는다. 장마가 물러가고 가마솥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로 이맘때쯤이면 제주에선 옷에 감물 들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갈옷을 만들기 위함이다. 갈옷은 목면 등의 천을 제주 토종 풋감
"20년 가까이 가족으로 지냈는데 마지막 이별로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거나 수화물로 뭍까지 보내야 합니까? 반려동물 친화도시라면서 아직까지도 장례식장이 없다니요." 말티푸 '코코'와 함께 한 지 어느덧 19년. 제주도민 A(37)씨는 축 쳐져 숨을 헐떡이는 코코를 데리고 동물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코코가 기력이 다한 것 같으니 이제 정말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 노견인 코코는 이미 2년 전부터 치매와 함께 각막궤양, 폐렴을 앓고 있었다. 수의사는 "입원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수도 있지만, 가족과 함께 마지막을 보내는 방법도 있다"며 넌지시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정식으로 장례를 치러주실 거면 빨리 움직이셔야 한다. 제주도엔 정식 동물 장례식장이 없어 비행기를 타고 뭍으로 가야 한다. 그게 아니면... "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A씨는 코코를 안고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온 뒤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동물 장례절차를 알아보던 A씨는 의사의 마지막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폐기물 관리법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포함한 동물의 사체는 생활폐기물이다. 이에 따라 반려동물의 사체를 집 앞 산이나 들에 매장하는 것은 '불법 투기'에
올여름 기나긴 장마 속에도 제주는 한낮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와 열대야가 밤낮으로 이어지고 있다. 높은 습도와 기온 탓에 밖을 나서면 끈적끈적한 땀이 흐르고 불쾌지수는 덩달아 올라간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날씨가 더욱 무더워지고 있다지만 한여름 더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냉감 소재를 이용한 기능성 속옷도, 에어컨과 같은 각종 냉방기기도 없던 옛날 제주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더위를 이겨냈을까. 예로부터 이어져 오는 제주만의 색다른 피서방법을 알아보자. ◇ 가지각색 제주 전통 피서법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여름 제주. 낮이든 밤이든 더위를 피하기 좋은 안성맞춤 장소는 사계절 푸른 '바다'다. 아이들은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 물놀이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하루해가 저문다. 반면, 어른들은 바닷가에서 일명 '모살뜸'을 즐겼다. 모살은 모래를 뜻하는 제주어로, 모살뜸은 쉽게 말해 모래찜질이다. 공항에서 동쪽으로 10㎞가량 떨어진 제주시 삼양해수욕장은 검은모래로 유명하다. 해안 현무암 지대를 덮은 흑사장이 아담하게 펼쳐진 이곳은 예부터 여름철만 되면 신경통과 피부병 등 각종 질환을 치료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모래찜질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여름철 복날만 되면 전국의 삼계탕 가게를 비롯한 보양식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몸을 보하는 차원에서 기운을 북돋워 주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이를 '복달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복날이 아닌 흔히 '닭 잡아먹는 날'이 따로 있다고 하는 데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 초·중·말복 삼복이 더운 이유? "초복 중복 말복 질기게 견뎌야 할 복더위에는 질기게 견뎌야 할 이 세상 된장 발라버릴 것들 대신 개장국이든 삼계탕이든 뱀탕이든 뙤약볕보다 더 드센 장작불로 푹푹 삶는 게 젤이다. 누가 더 질긴가 보자고 질긴 게 이기는 법이라고 뙤약볕도 이 세상을 푹푹 삶는다" (정양의 시 '복날' 중) 우리나라 세시풍속을 '시'로 표현한 시인 정양은 '복날'이란 시에서 안 그래도 열 받을 일 많은 세상살이 속에 맞닥뜨린 삼복더위를 일컬으며 이열치열로 맞서는 게 제일이라면서 결국엔 '질긴 게 이기는 법'이라고 말한다. 장마와 함께 무더위가 극성이다. 1년 중 무더위가 가장 심하다는 삼복(三伏) 가운데 첫 번째 복날인 올해 초복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삼복은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뜻한다. 올해는 7월 11일 초복과 21일 중복을
1950년 한국전쟁의 판도를 단숨에 역전시켰던 인천상륙작전. 사람들은 2016년 7월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성공확률 5천분의 1'이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작전의 숨은 공로자인 한국 해군 첩보부대와 켈로부대(KLO·한국인으로 구성된 연합군 소속 스파이 부대) 대원의 활약상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에는 그들 외에도 숨은 공로자가 많다. 인천상륙 및 서울수복작전에 참여했던 제주 출신 해병대원들도 대표적인 숨은 공로자로 꼽힌다. 그리고 그들의 참전 이면에는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비극 4·3의 슬픔이 깃들어 있다. ◇ 인천상륙작전의 주역 제주 출신 해병 제주 원도심인 동문로터리 한가운데 세워진 '해병혼탑'(海兵魂塔). 많은 사람이 찾는 동문재래시장이 바로 인근에 있어 타지역에서 온 관광객들도 한번쯤 눈여겨 봤을 법하다. 고대 이집트의 유물 오벨리스크처럼 하늘 높이 솟은 삼각뿔대 모양의 첨탑의 높이는 기단 1.83m를 포함해 10m에 이른다. 탑의 북쪽 면에는 해병혼(海兵魂)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휘호는 서예가 김광추 선생이 쓴 것으로, 그는 해병혼이란 글자 중 혼(魂)의 우변인 '鬼'(귀신 귀) 위에 붙은 꼭지(′)를 떼지 않으
“오늘 딱 4봉지 들어왔어요. 3kg 짜리 작은 것으로요. 며칠 만에 들어온 건데, 가져다 주시는 업체 직원분 말로는 이제 이런 수량도 입고할 수 없다고 하시네요. 그래서 우리 매장은 당분간 천일염 입고가 없을 예정입니다.” 전국에 몰아치는 천일염 품귀현상이 제주에도 상륙했다. 이미 있던 재고도 다 동났고 들어오는 물량도 없어 제주도내 마트란 마트마다 소금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제주시내 대형마트의 3곳의 경우 ‘천일염’ 관련 제품은 대부분 품절이거나 가는 소금 위주로 극소량의 재고만 남은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시 한 대형마트 직원 A(50대)씨는 “뉴스를 잘 안 듣고 사는데도 얼마 전 아침부터 줄 선 모습을 보고 (천일염 품귀 사태를) 실감했다”면서 “들여놓는 족족 다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은 지역 내 중.소규모 마트도 마찬가지다. 제주도내 창고형 마트 관계자는 “지점 두 곳 다 동났다. 한 지점은 며칠에 한 번씩은 들어오지만 금방 사라진다. 다른 한 지점은 이번 주엔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업체가 보내줄 수 있어야 천일염을 들일 수 있는데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인근 주민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B소형마트 관계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