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무엇일까? 지난밤엔 흙을 적실 만큼 비가 내려서 밤사이에 기온이 서늘해졌다. 저녁에 열어둔 창문 사이로 가을바람이 들어와 이불을 비집고서 선선한 기운을 불어넣었나 보다. 그 기운에 눈을 떠서 창문을 닫으려는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혹시나 해서 얼른 나가보니, 세상에! 어머니가 식탁에 앉아 계신다. “어머니, 이 밤 중에 여기서 미신 거 햄수과?”라고 묻는데, 입가에 거무스름한 가루가 묻어 있다. ‘배고프다’ 하시면서 반찬통에서 김을 꺼내든 어머니의 손등이 앙상하니 뼈가 드러나 보인다. 푸른 빛깔의 정맥도 눈에 띄게 선명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얼른 어머니를 부둥켜 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 어머니의 치매가 깊어지셨구나. 이를 어쩌나. ‘102세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깊은 동정심을 표시한다. 얼마나 힘이 들겠냐고. ‘아직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으면, ‘그럴리가 있나, 보지 않아도 당근이지!’라며 내 손을 부여잡는다. 사실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라고 하면 침을 아무 데나 수시로 뱉는 거, 기저귀를 몇 번이나 갈아드려야 하는 거, 화장실 출입이 여의치 않으니 뒷처리를 일일이
올해 국세 수입이 당초 전망치보다 약 30조원 덜 걷힐 것으로 정부가 재추계했다. 세수가 367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예산을 짰는데 337조원대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56조4000억원의 세수 결손에 이어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펑크’가 공식화됐다. 세수 결손의 주된 요인으로 기업 실적 부진에 따른 법인세 감소가 지목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글로벌 교역 위축과 반도체 업황 침체로 법인세 감소폭이 예상보다 컸다”고 밝혔다. 당초 전망보다 덜 걷히는 법인세가 14조5000억원으로 전체 세수 결손의 절반을 차지한다. 부동산 거래 부진으로 양도소득세가 5조8000억원 덜 걷히고, 유류세 인하 조치를 계속 연장한 결과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도 4조1000억원 펑크 났다. 하지만 기업 실적 부진이나 자산시장 위축은 예견된 일이다. 정부가 상저하고(上低下高)의 장밋빛 전망을 고집하며 세수 추계의 기본인 경기 예측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대규모 세수 추계 오류는 최근 연례화했다. 2021년 이후 4년 연속 수십조원 오차를 냈다. 세수 오차율이 2021~2023년 3년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8.1%에 이른다. 2000
영화 속 재시 올린(Jasie Orelean)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의 백악관 비서실장(조나 힐 분)은 그녀의 아들 제이슨 올린(Jason Orlean)이다. 백악관 비서실장이 손님들에게 찻잔 나르는 직책이 아닌 다음에야 조금 덜떨어진 자기 아들 앉혀도 좋을 만한 자리는 아니다. 자신의 아들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재시 올린 대통령의 인사(人事) 만행은 끝이 없다. 자신과 친분이 두텁고 정치 후원금을 가장 많이 내는 의사 출신 조슬린(Jocelyn)을 나사(NASA) 국장(헤티엔 박 분)으로 앉혀두고 있다. 자신의 내연남인 시골 촌뜨기 경찰서장을 느닷없이 대법원장에 임명하면서 올린 대통령의 엽기 인사가 완성된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까짓 행정경험, 법률적 지식, 우주항공 지식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다. 거의 사명감을 갖고 이성과 지성에 ‘빅 엿’ 먹이는 대통령이다. 이쯤 되면 지성무용주의도 아니고 가히 반(反)지성주의라고 할 만하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약이다. 애덤 매케이 감독이 이 망조(亡兆)가 든 반지성적 대통령에게 하필이면 ‘올린(Orelean)’이라는 흔치 않은 이름을 부여한 이유가 있을 듯하다. ‘Orelean’은 프랑스 지명 ‘오를
주말에 막내가 집으로 왔다. 미국 볼티모어에 사는 아들이다.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난 동생은, 반가우면서도 낯이 설다. “용익아, 어떵 이추룩 때 맞췅 와저니? 어제 오늘 어머니가 많이 쇠약해지셔서 걱정해신디....” ‘서귀포 강창학 축구장에서 열리는 국제시니어 축구대회에 참석하려고 왔다’는 동생은 여전히 씩씩하고 듬직하다. 어머니를 성큼 안아보더니, 지갑을 꺼내서 돈을 한 웅큼 집어 드린다. 우람한 아들 품에 안긴 어머니는 마치 아기처럼 웃는다. 역시 막내가 최고다. 어머니 속을 많이 태운 만큼 정도 깊이 들었으리라. 등산, 낚시, 운동 등 모든 종류의 힘쓰기를 좋아하는 동생은 몸이 매우 튼튼하다. 그만큼 사고도 많이 따라서 어머니의 애간장을 어지간히 녹였다. 한 번은 육지의 태백산 자락에 등산을 갔다가 추락해서 내가 보호자로 간 적이 있다. 두 팔과 어깨를 붕대로 칭칭 동여맨 동생을 택시에 태우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나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왜 또 산에 갔는냐, 그러다가 죽는 수가 있잖나. 네가 죽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어머니 아버지 생각을 해야지 않겠나.... 하나 마나한 잔소리를 들으며 불같은 성미를 꾹 꾹 눌러 참는 동생을, 운전기사가 흘
배추 한 포기 가격이 2만원을 넘어섰다. ‘금배추’로 불릴 정도다. 지독한 폭염과 가뭄 탓이다. 강원도 지역 고랭지 배추 작황이 부진한 영향이 컸다. 날이 너무 뜨거워서 배추 모종을 심는 족족 타죽었다. 다급해진 정부가 중국산 배추를 수입했다. 정부 차원의 배추 수입은 2010년, 2011년, 2012년, 2022년에 이어 다섯번째다. 수입 배추에는 한시적으로 할당관세(0%)를 적용했다.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에 장려금을 지급해 배추의 조기 출하를 유도하고 할인판매도 지원했다. 올봄 사과 값이 한개에 1만원까지 뛰어오르며 ‘금사과’ ‘애플레이션(apple+inflation)’ 조어가 나돌 때 취했던 조치(대체 농산물 긴급 수입, 할당관세 적용, 납품단가와 유통업체 할인판매 지원 등)와 비슷하다. 추석과 추분이 지나서야 폭염의 기세가 꺾였다. 인류가 앞으로 보낼 여름 중 올해가 가장 선선했던 시기로 기록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한반도라고 예외일 리 없다. 기온이 세계 평균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며 지역 특산 농산물 재배지도가 크게 변화했다. 사과는 대구에서 강원도 양구로, 배는 전남 나주에서 경기도 안성까지 북상했다. 제주도 특산물이었던 귤이 전남에 이어 서울
"도민들이 불편함을 느껴야 자동차 사용이 줄어들고 걷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의 이 발언은 결국 현실이 됐다. 자동차는 접근이 어려웠고,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난 28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제주시 연북로에서 열린 '차 없는 거리 걷기' 행사장. 제주도는 이번 행사가 도민의 건강 증진과 걷기 문화 확산, 사람 중심의 보행환경 조성, 탄소중립 달성 등 여러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행사 당일 나타난 문제들은 이러한 대의명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도는 이번 행사에 도민과 관광객, 공직자와 동호회 회원 등 사전 접수된 4000여명을 포함해 전체 1만여명이 참가했다고 전했다. 오 지사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제주와 탄소중립 실천이라는 대의를 위해 도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당부했다. 그러나 행사 진행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점들은 과연 이러한 대의명분이 도민들의 불편과 혼란을 감수할 만큼 가치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행사 당일 연북로가 부분 통제되면서 연삼로를 비롯한 주변 도로로 차량들이 몰려들었다. 이에 따라 일부 구간에서는 극심한 차량 정체가 발생해 운전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미국의 마지막 대통령이 되는 올린(Orleen)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은 지구로 돌진해오는 거대 혜성 ‘디비아스키’를 향해 미국의 최신, 최고의 핵미사일 수십기를 동시에 발사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물론 이 장면은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모든 미국인과 전 세계인이 환호한다. “디비아스키’ 넌 이제 ‘디졌다.” 거대 혜성으로 향하는 핵미사일을 바라본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수십기의 핵미사일이 육안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 핵미사일들이 슬금슬금 방향을 돌려 지구로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지켜보던 모두가 웅성거린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디비아스키 혜성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자마자 백악관 지하벙커에 마련한 ‘워 룸(war room)’에 세계최대 테크(Tech) 기업 배쉬(BASH)사의 피터 이셔웰(Peter Isherwell) 회장이 자기 회사 사무실처럼 나타나 올린 대통령을 턱짓으로 불러 옆방으로 데려간다. 이셔웰 회장은 올린 대통령에게는 최대 정치자금 후원자이다. 이를테면, 올린 대통령에게 상왕上王이자 저승사자다. 이셔웰 회장은 자기 회사 기술진의 보고에 따르면 디비아스키 혜성이 32조 달러 가치의 거대한 희토류 덩어
어머니가 백 세를 넘기면서부터 ‘이번이 어머니의 마지막 명절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되었다. 102세가 되신 올해는 추석을 준비하면서부터 노천명 시인의 ‘장날’이 떠올랐다. ‘대추 밤을 돈 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루 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준다고 울었다. 절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방울이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차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1938년도에 출간된 노천명 시인의 첫 시집 ‘산호림’에 나오는 시다. ‘돈 사야’라는 말은 충청도 방언으로 ‘내다 팔아 돈을 만들어야’라는 뜻이라고 배웠던 국어 시간이 생각난다. 이십 리를 걸어야 하는 외진 마을에서 음력 11일에 열리는 열하룻장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떠나는 아버지와 대추를 안 준다고 우는 막내딸은, 우리들 어린 시절의 서정이다. 저녁 무렵에 떠오르는 달을 송편에 비유한 시인의 마음 또한 추석을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의 애틋한 정서를 담고 있다. 저녁 어스름이 먼저 몰려오고 아버지가 장에서 돌아올 즈음, 하루 종일 아버지를 기다리던 이쁜이는 정작 잠이 들어버렸는지.
"마치 조롱당하는 느낌이 듭니다. 대단한 걸 주는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속 빈 강정같은 느낌입니다." 요즘 결혼을 앞둔 제주도내 예비 신혼부부들 사이에 나오는 말이다. '피식' 웃는 이도 있다. 이유는 제주도가 지난 12일 인구 감소와 저출생 문제에 대응하기 위헤 내놓은 '인구정책 신(新) 전략사업' 때문이다. 발표된 정책들은 주거 지원, 출산 및 육아 지원, 일·가정 양립 촉진, 인구 유입 등 4대 핵심 분야로 구성돼 있다. 최명동 제주도 기획조정실장은 "이번 인구정책 신 전략사업은 제주의 지역적 특성과 도민들의 실질적인 요구를 면밀히 분석해 마련했다"며 "인구 유출 방지와 유입 촉진 효과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제주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주의 청년들, 특히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들은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 도에서 발표한 정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혼부부 연 30만 원 공공임대주택'이다. 월 임대료 2만 5000원이라는 파격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임대주택이 실제로 얼마나 공급될 수 있을지 구체적 계획은 없다. 제주도 통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연간 혼인 건수는 약 3000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가 18일(현지시간)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섰다. 기준금리를 연 5.25∼5.50%에서 4.75∼5.0%로 0.5%포인트 낮추는 ‘빅컷’을 단행했다. 아울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향후 금리 수준을 전망하는 점도표에서 연말 기준금리를 4.4%로 제시함으로써 연내 금리를 더 낮출 수 있음을 예고했다. 미 연준의 금리인하는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졌던 2020년 3월 이후 4년 반 만이다. 8월 물가상승률이 2.5%로 목표치(2%)를 향해 가는 반면 악화하는 고용시장을 고려한 선택이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아직 남아있지만 경기 후퇴 방어에 베팅한 것이다. 연준이 금리 0.25%포인트 인하(베이비스텝)가 아닌 빅컷을 단행한 것은 고용시장이 냉각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연말 실업률 전망이 4.4%로 6월 전망치(4.0%)보다 상승한 반면 경제성장률 전망은 2.1%에서 2.0%로 0.1%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유럽ㆍ영국ㆍ캐나다에 이어 미국이 통화정책 완화 기조로 전환함에 따라 글로벌 금리인하 시대가 도래했다. 특히 미국의 빅컷에 따라 정치권의 한국은행에 대한 금리인하 압박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정부와 여당인 국민
지구를 완전파괴할 만한 직경 10㎞ 거대혜성 ‘디비아스키’는 6개월 후 도착 예정이라는 과학자들의 예측 그대로 ‘우직하게’ 날아온다. 요행은 없다. 태풍의 예상경로는 바뀌기도 하고, 진행속도가 느려지기도 하고, 그 강도가 커졌다 작아지기도 하는데, 혜성은 태풍이 아니다. 그런 법이 없다. 지구를 완전파괴할 만한 직경 10㎞ 거대혜성 ‘디비아스키’는 6개월 후 도착 예정이라는 과학자들의 예측 그대로 ‘우직하게’ 날아온다. 요행은 없다. 태풍의 예상경로는 바뀌기도 하고, 진행속도가 느려지기도 하고, 그 강도가 커졌다 작아지기도 하는데, 혜성은 태풍이 아니다. 그런 법이 없다. 사람들은 지구를 파괴할 수도 있는 혜성이 날아오는데도 별 반응이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태풍쯤으로 착각하는지 직경 10㎞짜리 혜성이 지구에 도착할 무렵이면 100m짜리쯤으로 작아질 것이라고 믿는 눈치다. 어쩌면 믿는다기보다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백악관도 이런 대단히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사람들의 희망을 부채질한다. 0.1%의 가능성이라도 믿고 싶은 사람에겐 50%쯤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니까. 국민들을 공포로 다스리기 불가능하다면 희망으로 다스려야 하는 것이 국가 지도자들이다. 희망을 만들어
애덤 매케이 감독은 지구를 완전 파괴할 정도의 거대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상황을 맞이한 미국이라는 사회가 보여주는 어이없는 대응을 한바탕 풍자극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이든 재벌기업이든 중차대한 위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데 혈안이 돼 있을 뿐이다. 거대 혜성이란 ‘위험한 변수’가 나타났다. 충돌하면 종말이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백악관은 중차대한 위기 상황에서도 정치적 계산기 두들기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 최대 재벌기업 회장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거대혜성에서 희토류를 추출해서 거대 이윤을 창출할 기대감에 흥분한다. 미국 정부도 희토류를 미국이 독점할 욕심에 러시아, 중국 등 우주강국들과의 국제공조를 거부한다. 일반 대중은 6개월 후에 거대혜성이 지구에 충돌한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셀럽들의 가십기사만 클릭질해 댄다. 그러는 사이에 거대혜성은 쉼 없이 날아 마침내 지구 상공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제야 미국과 온 세계는 자포자기 상태로 저마다의 온갖 신들에게 기도하거나 아니면 괜히 술 퍼마시고 총질해대고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을 약탈하고 여기저기 불 질러대면서 종말을 맞는다. 혜성 충돌 직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