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을의 전설’의 서사의 시작과 끝은 ‘One Stab(한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디언의 내레이션으로 이뤄진다. 아마도 미군에게 토벌당하기 전에는 인디언 부락에서 ‘한칼’ 했던 인물인 듯하다. 러드로 대령이 세상을 등지고 몬태나 산자락의 황야에 정착하면서 함께 목장을 일군 ‘창업공신’쯤 돼 보인다. ▲ 인디언 사회의 정신과 문화는 250년 이상 지속된 전쟁을 거치면서 철저하게 파괴되고 사라지고 말았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몬태나의 산자락 목장에 은거한 러드로 대령은 자신이 토벌하던 인디언들과 함께 살아간다. ‘한칼’ 외에도, 러드로 대령의 목장 동료들은 인디언 여자들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러드로 대령은 인디언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한다. 가장 사랑하는 둘째 아들 트리스탄의 교육은 거의 인디언 ‘한칼’에게 일임한다. 덕분에 트리스탄은 인디언처럼 자란다. 러드로 대령의 목장에서 인디언들은 어설픈 백인 복장을 하거나 인디언의 말을 버릴 필요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가을의 전설’에 등장하는 러드로 대령의 가문은 영국 콘월(Cornwall)계다. 영국계 이민자의 혈통인 셈이다. 한국의 김씨 중에도 여러 문중과 파가 있듯, 영국 앵글로색슨족에도 여러 파가 있다. 코니시(Cornish)로 불리는 영국 콘월 지방 출신의 앵글로색슨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가장 유서 깊은 앵글로색슨이라 자부한다. 콘월 출신 미국 이민자들 역시 스스로를 ‘코니시 아메리칸(Cornish American)’으로 부르며 남다른 콧대를 자랑한다. ▲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이 세상에 인간의 이성이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란 없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니시 아메리칸’은 다른 앵글로색슨보다 앞서 미국에 이주하고 광산개발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이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코니시 아메리칸’이었으니, 이들이 유별난 자긍심을 느낄 만도 하다. 그래서인지 러드로 대령을 연기하는 앤서니 홉킨스는 알아듣기 어렵고 오만하고 딱딱한 영국 ‘코니시’ 억양을 구사한다. 무척 인상적이다.
러드로 대령(앤서니 홉킨스)은 ‘인디언 전쟁’에 참여해 아녀자들과 아이들, 노인들만 모여있는 인디언 마을을 불지르고 닥치는 대로 죽여야 하는 임무를 받는다. 자신의 의지는 아니지만 군인이 ‘국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일이다. ‘인디언 전쟁’ 아닌 ‘인디언 대학살’을 마무리 지은 러드로 대령은 군인의 상징인 칼을 패대기치고 국가와 군대를 버린다. ▲ 속세를 떠나 자연의 품에 안기고자 했던 인간들의 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환멸, 그리고 학살의 죄책감에 무너진 러드로 대령이 찾아가 몸을 의탁한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몬태나주의 황량한 산기슭이다. ‘몬태나(Montana)’라는 이름 자체가 스페인어 ‘mo ntana(mountain)’에서 왔다. 문자 그대로 험준한 ‘산악(mountain)’ 지역이다. 그런 만큼 금광을 찾아나섰던 ‘골드러시’의 광풍이 휩쓸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몬태나주는 미국에
에드워드 즈윅(Edward Zwick) 감독은 남북전쟁을 다룬 ‘Glory’, 일본 개화기의 사무라이를 그린 ‘The Last Samurai’ 등 시대적 서사극을 솜씨있게 빚어내는 감독이다. ‘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1994’ 역시 역사 서사극(Epic Drama)이다. ▲ 인간은 역사의 꼭두각시 인형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서사극’은 그 속성상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과 격랑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린다. ‘주체적’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희망사항이고 때론 ‘인간’이 대단히 주체적인 존재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리고 대개의 인간들은 그렇게 주체적이고 독립적이지 못하다. 강물이 범람하고 쓰나미가 몰려오면 그 속의 인간들은 그저 흐름에 휩쓸려가고 운명이 결정되는 것처럼, 역사의 흐름이나 대사변의 소용돌이 속에 인간은 무기력하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흐름들이 운명이 되고 만다. 대개는
에린모어 장군은 영국군 전방부대에 긴급 명령을 전달할 ‘요원’으로 스코필드 하사와 블레이크 일병을 지목한다. 그가 다소 ‘얼빵’해 보이는 블레이크 일병을 뽑은 이유는 단 하나, 그의 형이 전방부대에 있어서다. 블레이크 일병에게 임무 완수는 사랑하는 형을 구하는 일인 셈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동기부여’는 없다. 국가든 회사든 그들이 나와 가족을 지켜줄 수 있을 때 헌신할 뿐이다. ▲ 모든 전쟁은 나라 간의 전쟁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개인 간의 전쟁’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서부전선에서 에린모어 장군은 영국군 전방부대에 총공격계획 중지를 긴급히 전달하기 위해 수많은 격전을 헤치고 살아남은 스코필드 하사를 선택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병사, 블레이크 일병을 스코필드 하사에게 붙여준다. 현명하다면 현명하고, 간교하다면 간교한 인선이다. 블레이크 일병이 선택된 이유는 단 한가지다. 그가 유난히 애국심이나 책임감이 강해서도 아니고, 일당백의 전투력이나 기민성을 갖춰서도 아니다. 단지 그의 친형
에린모어 장군으로부터 적진을 돌파해 최전방 영국군 부대에 긴급명령서를 전달하라는 특명을 받은 베테랑 병사 스코필드 하사와 블레이크 일병. 냉정한 스코필드 하사와 달리 마음이 따뜻했던 블레이크 일병은 적군을 구해주려다 되레 사망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최후처럼 보인다. 하지만 착한 사마리아인이 비극을 맞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두고 하는 말이다. ▲ 폭염에 아무리 불편해도 얼굴 가득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우리 모두가 ‘착한 사마리아인’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 1차 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으로 기록된 ‘솜(Somme)강 전투’에도 참가했던 베테랑 병사 스코필드 하사는 에린모어 장군으로부터 적진을 돌파해 최전방 영국군부대에 긴급명령서를 전달하라는 특명을 받는다. ‘솜강 전투’는 바로 1년 전인 1916년 7월부터 11월까지 프랑스 서부 솜강 근처에서 벌어졌던 1차 세계대전 최악의 전투였다. 전투 첫날 영국군 희생자가 무려 5만8000명을 기록했고, 석달간의 전투가 끝났을 때,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희생자 60만명, 독일군 희생자 40만명
1차 세계대전 프랑스 전선. 독일군과 마주한 최전선에서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영국군 부대에 마침내 ‘내일 총공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된다. 영국군 사령부는 공중정찰을 통해 독일군이 퇴각한다는 정보를 파악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퇴각이 독일군의 기만전술임을 파악한다. 에린모어 장군은 급히 스코필드 병장과 블레이크 일병을 독일군 점령지역을 통과해 전방부대 매킨지 대령에게 공격취소명령서를 전달하도록 한다. ▲ ‘개싸움’에서라면 인정에 호소할 수도 있겠지만, 미사일엔 호소가 통하지 않는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잔뜩 웅크리고 폐허가 된 채 버려진 독일군 점령지역을 통과한다. 길은 가시밭이다. 독일군이 버리고 간 참호에서 지뢰가 폭발해 매몰될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주인이 떠난 농가에서 소젖을 짜서 수통에 담으면서 전진한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농가에서 소젖을 짜 비상식량을 조달하면서 독일 전투기와 영국 전투기 몇대가 벌이는 공중전을 한가로이 올려다본다. 말이 ‘공중전’이지 커다란 글라이더 몇대가 한가롭게 하늘을 노
영화 ‘1917’은 관객을 두번 배신한다. 첫번째 배신은 출연진에 이름을 올린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크 스트롱 같은 스타 배우들이 단역으로 지나가고, ‘무명 병사’처럼 생긴 무명 배우 2명이 영화를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두번째 배신은 명색이 ‘전쟁영화’인 ‘1917’의 전투장면이 제한적이고 조촐하다는 거다. ▲ '임무'의 완수가 '행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화끈한 대규모 전투 장면을 기대한 관객들이라면 분명 ‘1917’은 어이없는 전쟁영화임에 분명하다. 그나마 전투장면이라면 영화의 마지막에 영국군 병사들이 일제히 참호를 기어나와 적진을 향해 포탄이 빗발치는 허허벌판을 노르망디 상륙작전처럼 달리는 장면뿐이다. 영국군 1개 사단의 전투력이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 한명에도 못 미친다. 한마디로 전쟁영화치고는 무척이나 따분하다. 그렇다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라인이 씨줄날줄로 정교하게 짜인 것도 아니다. 스토리라인 역시 지극히 단
영화 ‘1917’은 분명 전쟁 영화인데 왠지 전쟁영화답지 않다. 전쟁영화라면 대개 병사들의 처절한 전투 장면과 전쟁으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비극적 인간들의 모습이 담기기 마련인데, 묘하게도 ‘1917’에서는 이런 장면들을 찾기 어렵다. 그저 북부 프랑스 평원에 독일과 영국이 끝없이 파놓은 흙구덩이 참호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영국 병사들 모습뿐이다. 상대인 독일군들 역시 참호 속에 웅크리고만 있기는 마찬가지겠다. 소위 ‘교착상태’다. ▲ 실패의 경험이 누적될 경우 '노력해도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학습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교착상태(stalemate)’란 원래 서양장기인 체스(chess) 용어다. ‘체크메이트(check mate)’의 반대상황이다. King이 지금 직접 공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King을 어디로 움직이든 공격당하고 죽게 되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움직이면 죽는다.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다. 참호 속 병사들의 모습은 애국심에 불타는 것도 아니고, 독일을
우리에게 거장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아카데미 감독상·작품상을 다툰 작품으로 더 알려져 있는 듯하다. 이 영화는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가 어린 멘데스에게 들려준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병사 2명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들려준 ‘옛날이야기’답게 무척이나 단순한 서사구조를 띠고 있다. ▲ 1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대.최악의 전쟁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프랑스에서 독일군과 대치 중이던 영국군은 독일군이 퇴각한 것으로 판단하고 총공세를 준비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영국군을 유인하기 위한 독일군의 계략이었다. 뒤늦게 총공격 중지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부대 사이 통신수단이 모두 끊긴 상태다. 부득이 공격중지 명령을 ‘인편’으로 전달할 2명의 병사를 차출해 전방부대로 급파한다. 그런 상황에 그런 임무라면 차라리 비둘기가 제격일 듯한데, 굳이 병사들을 보낸 이유는 잘 모르겠다. 5년간 유럽은 물론 전세계를 난장판으로 몰고 갔던 1차 세계대전(1914~191
심스가 재학 중인 동부의 명문사립 베어드 고등학교 트라스크 교장은 대단히 깐깐하고 엄격한 규율을 강조한다. 당연히 학생들에겐 인기가 없지만 재단이사회에서는 엄지척할 인물이다. 트라스크 교장은 엄격한 학생관리의 공을 인정받아 재단으로부터 고급 승용차를 선물 받고 기뻐한다. 일부 ‘문제적’인 학생들에게는 자신들의 숨통을 졸라 받은 승용차와 교장 선생님이 곱게 보일 리 없다. ▲ '순교자(martyr)'의 본래 의미는 '목격(witness)'과 '기억(remember)'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결국 몇몇 ‘문제적’ 학생들이 교장과 승용차를 응징하기로 모의한다. 트라스크 교장의 지정 주차공간 가로등 위에 하얀 페인트를 가득 채운 대형 풍선을 매달아 놓고, 트라스크 교장이 출근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대형풍선을 원격조정해 터트린다. 부잣집 도련님들답게 악동짓도 스케일이 블록버스터급이다. 호기롭게 차에서 내리던 트라스크 교장과 자동차는 하얀 페인트를 뒤집어쓴다. 이쯤 되면 웃어넘길 수 있는 장난이 아니라 거의 교내 테러사건이 된다. 엄격
시력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슬레이드 중령은 남은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의 백악관 파티에까지 초대받았던 이력을 보면 군인으로서 꽤나 화려한 ‘왕년’이 있었던 모양이다. ‘왕년’이 화려하면 할수록 초라한 현실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고 고통스럽다. 마침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 자살여행을 떠난다. ▲ '포기'는 해서는 안 될 것이고, '체념'은 해야먄 하는 것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충동적인 자살이 아니라 말기암 환자처럼 소위 ‘버킷 리스트(bucket list)’까지 마련한 것을 보면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었던 모양이다. 슬레이드 중령의 버킷 리스트는 ‘잘나가던’ 시절 화려한 경험을 했던 뉴욕시를 여행하는 것과 절연한 채 살았던 형님 댁에 방문하는 것이다. 비행기 일등석을 타고 미국 최고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스위트룸에 묵으면서, 최고 재단사를 불러 최고의 양복을 맞추고, 리무진 서비스를 받고, 플라자 호텔의 최고급 사교클럽 오크룸에서 술을 한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