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이트풀 8’에서 서로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힌 8명이 모인 미미네 잡화점은 그야말로 ‘혐오의 백화점’이 된다. 흑인과 백인이, 범죄자와 범죄자 사냥꾼이, 남군과 백군이 서로를 혐오한다. 그중에서도 북군 출신 흑인 워렌 소령과 남군 출신 백인 샌포드 장군의 혐오는 인종과 정치를 포함한 ‘중층中層’의 혐오를 선보인다. ▲ 결투는 국가가 시시비비를 가려줄 만한 역량이 없거나 상실했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남북전쟁에서 패한 백인 샌포드 장군은 괴롭기 짝이 없다. 눈폭풍을 피해 들어온 미미네 잡화점에서 거만한 흑인 워렌 소령이라는 자와 함께 있게 된 것이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고통스럽다. 비록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벌레’ 같은 흑인 장교 따위는 당연히 무시하고 모욕함으로써 최소한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 워렌 소령은 패장인 주제에 여전히 오만한 백인 장군이 아니꼽기 그지 없다. 결국 둘 사이에 아슬아슬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시비는 워렌 소령이 먼저 건다. 샌포드 장군은 워렌 소령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영화 ‘헤이트풀 8’의 개봉을 앞두고 타란티노 감독은 한 흑인 인권단체 집회에서 “나는 살인을 보고 그냥 지나가지는 않는다. 나는 살인은 살인이라 부르고, 살인자는 살인자라고 부른다”고 외쳤다. 흑인을 차별적 태도로 대하고, 흑인 범죄용의자를 향해 무분별하게 총질하는 미국 경찰을 향한 문제제기였다. ▲ 우리는 은행에 돈을 신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생명'을 국가에 신탁한 셈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타란티노 감독의 이런 발언은 미국 경찰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히 도발적이었다. 미국 경찰조직은 ‘100만 경찰’의 이름으로 타란티노 감독의 신작 ‘헤이트풀 8’에 대한 대대적인 보이콧 운동을 펼쳤고, 이는 ‘헤이트풀 8’의 흥행 실패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잔혹한 복수극을 트레이드 마크로 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경찰의 공권력에 대단히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 것은 다소 의외다. 미국 경찰단체의 반발에 타란티노 감독은 자신이 ‘경찰 혐오자’는 아니라
영화 ‘헤이트풀 8’ 스토리의 중심에는 자그마한 체구의 한 여인 데이지가 있다. 데이지라는 소박한 꽃 이름과 자그마한 체구의 모습이 썩 잘 어울린다. 그러나 어울리는 것은 거기까지만이다. 데이지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이 여인은 현상금 사냥꾼에게는 로또나 다름없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흉악범이다. ▲ 사회적 약자들을 사회적 강자들과 평등하게 대하는 평등은 모두 불평등이며 폭력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현상금 사냥꾼 루스(커트 러셀)는 마치 바다의 로또 밍크고래 한 마리를 횡재해 끌고 가듯 데이지를 호송한다. 천하의 흉악범이지만 루스에게는 금덩이만큼이나 소중하다. 데이지의 동료들이 언제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몰려올지도 모르고, 또 다른 현상금 사냥꾼들이 이 금덩이를 가로채려 들지 모를 일이다. 마치 미국 대통령의 경호원이 핵무기 발사장치 ‘블랙박스’를 아무에게도 탈취당하지 않기 위해 24시간 손목에 수갑으로 채워 연결하고 다니듯, 루스는 자신의 손목과 데이지의 손목을 수갑으로 채워 연결하고 데이지와 샴쌍둥이 같은 기묘한 동행을 한다. 현상수배범을 죽여서 데려오든 산 채로
▲ '문'이란 안과 밖의 양면성을 지닌다.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어수선하고 불온한 시기, 시절만큼이나 황량한 와이오밍의 겨울 벌판 위 외딴 여관에 서로에 대한 증오와 혐오로 가득한 8명이 눈보라를 피해 모여든다. 남군과 북군, 흑인과 백인, 범죄자와 현상금 사냥꾼 등 한곳에 모인 이 기묘한 조합만으로도 이미 타란티노식 불행한 결말이 예견 가능해진다. 이들의 ‘잘못된 만남’이 이뤄지는 미미네 여관 겸 잡화점에 기묘한 출입문이 등장한다. 어쩌면 이 출입문은 영화의 주연급은 아니어도 충분히 조연급은 될 만한 ‘출연진’으로 손색이 없다. 눈보라 정도가 아니라 눈폭풍이 몰아치는 벌판에서 허겁지겁 미미네 잡화점으로 돌진한 인물들은 문을 밀어도 보고 당겨도 보지만 열릴 기미가 없다. 문을 부술 듯 두들겨도 열어주는 사람이 없다. 단지 안에서 ‘문을 힘껏 차라’는 불친절한 안내가 돌아온다. 안내대로 발로 있는 힘껏 걷어차자 그제서야 문이 열린다. 문을 연다기보다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 그렇게 문을 ‘부수고’ 들어
미국은 여러모로 참 ‘특별’한 나라다. 국토의 면적과 국부는 물론이고, ‘합중국’이라는 형태나 인종의 다양성 역시 대단히 특별하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특별함 못지않게 또 다른 특별함이 있다. 세계 패권국이 되기까지의 여정 속에서 수많은 대외전쟁을 치렀지만 미국 내에서 치른 대외전쟁은 단 한번도 없었다는 기록이다. ▲ 혐오에는 '자기보호적 혐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항적 혐오'도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토록 많은 전쟁을 다른 국토에서 치렀다니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기록이다. 미국은 어웨이 경기만 하지 결코 홈경기를 하지 않는 특별한 나라다. 어웨이 경기만 하는데도 무패의 전적이라면 실로 놀랍다. 이런 지구의 ‘안전지대’와 같은 미국의 전 국토가 전쟁터가 되었던 단 한번의 전쟁이 있었다면 다름 아닌 ‘남북전쟁(1861~1865년)’이다. 이 전쟁에서 북군·남군 합쳐 약 62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는데, 이는 당시 미국 인구의 2%에 해당한다. 고도로 기계화된 살상병기들이
‘헤이트풀 8(Hateful 8)’은 내놓는 영화마다 화제를 몰고 오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여덟번째 작품이다. 2015년에 공개한 이 영화는 역시 타란티노스럽다. 타란티노의 브랜드와도 같은 ‘복수’ 코드는 빠져 있지만 이를 부득부득 가는 듯한 ‘증오’ 코드는 전작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 우리 마음속에 살고 있는 괴물과 귀신은 '증오'와 '혐오'일지도 모른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영화의 배경은 미국 남북전쟁(1861~ 1865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아마도 1870년대 어느 시점인 듯하다. 조지아, 앨라배마, 사우스 캐롤라이나처럼 남북전쟁의 광기가 집중적으로 할퀴고 지나가지는 않은 궁벽진 와이오밍 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타란티노의 증오극의 막이 오른다. 와이오밍 주의 몸을 숨길 곳조차 없는 허허벌판에 지독한 혹한과 눈보라가 몰아친다. 용무가 무엇이 됐든 그런 날씨에 길을 나선다는 것은 곧 죽음에 가깝다. 그 근방을 말 타고, 혹은 마차를 타고 지나던 사람들이 허겁지겁 긴급대피소를 찾듯 &l
박사장 가족이 바캉스를 떠난 날 밤, 기택네 식구는 박사장 집 거실에서 술을 곁들인 가족 파티를 연다. 기택이 박사장의 아내가 의외로 순진하고 착한 구석이 있다고 평한다. 기택의 아내는 남편이 남의 아내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것에 심사가 상했는지 반론을 제기한다. “그게 다 여유 있으니까 착한 거야.” ▲ 한 인간의 고매한 품격도, 그 천박함도 아무리 감추려해도 감추어지지 않는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박사장 아내의 ‘착함’이 여유로움의 결과에 불과한 것인지 천성인지 혹은 교양인지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만 박사장 아내가 착하다는 것에는 기택네 식구 모두가 동의한다. 박사장 아내는 기택네 식구들의 평가처럼 순진한 구석이 있고 기본적으로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재벌 사모님들의 엽기적인 풍모와는 분명 차별화되는 ‘착함’도 있다. 가짜 대학생 괴외선생인 기택의 아들, 가짜 미국 유학파 미술치료사인 기택의 딸, 가짜 ‘최고 가정부’ 이력을 가진 기택의 아내, VIP만 전문으로 모신다는 가짜 운전기사 기택, 이 모든 ‘
우리에게 익숙한 계급·계층의 드라마는 대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전선이 형성되고, 그 전선의 전후방에서 갈등과 치열한 전투가 일어난다. 그런데 영화 ‘기생충’에서는 조금 낯선 전선이 형성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아니라, 똑같이 ‘못 가진 자들’인 기택네와 지하실 남자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진다. ▲ 더이상 희망을 품고 상류층과 싸우지 않는다. 그저 걸리적거리는 '우리'와 싸울 뿐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기택의 대를 이어 백수의 세계에 안착한 아들에게는 명문대학에 다니는 부잣집 아들 친구가 있다. 친구는 현재와 미래를 모두 보장받았지만 기택의 아들에게는 현재도 미래도 온통 암울하기만 하다. 열패감이나 질투심에서라도 기택의 아들은 그 친구를 멀리할 법한데 그렇지도 않다. 그저 선망하고 부러워한다. 기죽어 지내지만 그렇다고 적개심을 갖진 않는다. 때때로 잘나가는 친구가 던져주는 ‘떡밥’을 머리 긁적이며 받아먹는다. 친구가 찾아와 해외연수를 떠나 있는 동안 자신이
“우리가 ‘I love you’라고 말할 때, 그 ‘I’가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I란 독립적이고 누군가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자족自足적인 개체여야 한다. 오로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독립적인 인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기생충에 불과하다. 기생충의 사랑은 무의미하다.”- 러시아 소설가 아인 랜드 ▲ '정신적 기생충'의 사랑 방식은 지하실 남자의 그것처럼 불안하고 불온하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러시아 태생의 미국 여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인 랜드(Ayn Rand)는 ‘사랑’이라는 것을 이처럼 대단히 냉정하고 엄격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영화 ‘기생충’에서 문제적 인물인 ‘지하실 남자’는 자신이 기생하는 주인집 사장을 향한 일편단심 ‘민들레 사랑’으로 충만하다. 왜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지독하게 사랑한다.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지하실 남자의 존재 이유 자체로 보인다. 사장님과는 물론 일면식도 없다. 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영화나 소설, 드라마의 질리지 않는 레퍼토리다. 부자는 악이고 가난한 자는 선인 명확한 선악 구도가 설정된다. 봉준호 감독은 전작 ‘설국열차’에서 이같은 방식으로 계급의 대립과 갈등을 그려냈다. 그러나 ‘기생충’은 빈부나 계급의 문제를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에서 많이 벗어난다. ▲ 공자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는 부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많은 작품 속에서 대개 부자들은 속물 근성에 찌들어 있고,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이중성을 보이며, 누리고 있는 부와 지위에 비하여 터무니없을 정도로 지적 능력이 부족하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놈’들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자존심, 양심, 상식, 교양을 두루 갖춘 ‘분’들이다. 부자놈들은 악이고 가난뱅이분들은 선인 명확한 선악 구도가 설정된다. 선악 구도란 단순명료하고 공감도 쉽다. 당연히 관객들은 못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영화를 따라간다. 계층의 부당함에 같이 분노하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함께 갈망하며 감독이 부자를 불행과
기택네는 가족 구성원 전원이 백수다. 우연한 기회에 부잣집 과외선생님으로 위장 취업한 아들을 필두로 딸과 아내, 그리고 기택까지 한집에 취업하면서 일가족의 사기 행각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기택네 가족이 악질 가족사기단은 아니다. 한집에 위장 취업하지만 그 집안을 말아먹을 거창한 계획을 세우진 않는다. ▲ '선線이란 사회생활에서 항상 '문제적'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재수·삼수 끝에 대학 진학을 아예 포기한 기택의 아들은 어느 날 친구의 부탁을 받고 명문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해 부잣집 영어 과외선생님으로 사기 취업한다. 해보니 별거 아니고 사모님은 생각보다 헐렁하고 순진하다. 곧이어 그의 여동생 역시 학력·경력을 몽땅 위조해 미술치료사로 위장 취업한다. 그리고 백수의 우두머리인 원조 백수 기택은 그 집의 운전기사로, 아내는 가정부 자리를 꿰차고 만다. 그야말로 일가족 사기단에 금맥이 터졌다. 기택네 일가족이 대단히 악질적인 가족사기단은 아니다. 범죄에도 생계형 범죄가 있고 기업형 범죄가 있다면, 기택네는 다분히 생계형 가족사기단이다. 일가족이 한집에 위장취업하지만 그 집
영화에 등장하는 ‘지하실 남자’는 조연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화 속 남자의 행태는 그의 비주얼만큼이나 충격적이고 압도적이다. 주연 같은 조연이다. 집주인이 동거인으로 허락지도 않았는데 가정부인 아내에 묻어 남의 집에 잠입해 사람의 내장처럼 미로 같은 지하실 깊숙한 곳에 자리 잡는다. 그야말로 기생충이다. ▲ 지하실 남자도 자신의 '충성서약'이 주인에게 전달되리라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경건한 의식처럼 매달린다. 기생충이 몸속을 활개 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지 않듯, 지하실 남자도 으리으리한 저택을 헤집고 다니는 법 없이 지하실에 꼼짝 않고 앉아 아내가 물어다 주는 아무것이나를 먹으며 지낸다. 지하실 한편에 꽤 많이 쌓여있는 수험 도서들로 미뤄 짐작건대 아마 공무원이나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하다 여의치 않았는가 싶다. 몸도 성치 않은 지하실 남자는 먹는 것 이외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먹는 일도 일정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남자가 하루에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라곤 특이하게도 지하실 두꺼비집 전선을 이용해 어디론가 모스 부호를 끊임없이 보내는 일이다. 남의 집 지하실에 숨어서 사는 이 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