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바 중위는 한밤중에 외로운 요새에서 홀로 잠들어 있다가 들소떼의 질주 소리에 잠을 깬다. 수우족 인디언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들소떼다. 인디언들에게 들소는 비에 버금가는 생명줄과 다름없다. 인디언을 몰아내려는 백인들은 이런 들소를 전쟁의 도구로 삼는다. 1860년대에 미국 대륙에서 들소 개체수는 이미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인디언들이나 백인들이 마구 잡아먹어서 아니라 백인들 ‘전략’의 희생양이 돼서다. 백인들은 온갖 당근과 채찍을 들이대도 자신들의 거주지역에서 물러나지 않고 저항하던 인디언의 특성을 알아냈다. ‘생명줄’인 들소떼가 사라지면 어쩔 수 없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난다는 거였다. 인디언들과 전쟁을 하기보다 들소를 몰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백인들의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둔다. 들소도 슬프고 인디언도 슬프다. 던바 중위는 한밤중에 말을 달려 인디언들에게 들소떼가 나타났음을 보디랭귀지를 총동원해서 알려준다. 수우족 인디언들은 환호한다. 곧바로 던바 중위를 앞세우고 전 부족이 들소 사냥에 나선다. 평원을 뒤덮은 어마어마한 들소떼를 발견하고 한 해를 넘기기에 풍족한 들소의 가죽
남북전쟁 중에 벌어지는 동족상잔에 질려버린 존 던바 중위는 어쩌다 영웅이 된 김에 사령관에게 특청을 넣어 ‘평화로울 것 같은’ 서부 지역으로 옮겨간다. 하지만 서부 지역의 평화는 던바 중위의 환상이었을 뿐, 그곳 역시 평화롭지 않다. 인디언들을 몰아내는 전쟁이 동부의 동족상잔보다 더 처절했던 시절이었다. ▲ 우리는 재일교포, 조선족, 사할린 동포라는 이름의 ‘그들’에게 적대적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존 던바 중위는 남북전쟁 당시 미국 영토의 가장 서쪽 지역인 사우스다코타 지역 사령부가 있었던 헤이스(Hays) 요새에 전입신고를 한다. 헤이스 요새의 사령관은 던바 중위를 관할지역의 세즈윅 요새에 발령한다. 헤이스 경찰서에 배속돼 세즈윅 파출소로 발령이 난 셈이다. 던바 중위는 동부전선에서 동족끼리의 학살에 염증이 나서 서부로 왔지만, 서부전선의 사령관 팜브로 소령은 인디언 학살에 진저리를 치고 있던 중이다. 팜브로 소령은 ‘전쟁영웅’이라는 던바 중위를 비웃는다. 묘한 표정으로 세즈윅 요새로 떠나는 던바 중위를 창밖으로 응시하다가 난데없이 &lsqu
영화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1990년)’은 케빈 코스트너가 제작과 감독, 그리고 주연을 동시에 맡아 말 그대로 ‘케비니 하고 싶은 거 다 한’ 영화다. 그해 아카데미상 12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케빈 코스트너 본인이 받은 감독상과 주연상까지 포함해 무려 7개 부문을 휩쓸었다. 통상 ‘명화’는 흥행 성적이 신통치 못한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도 대박을 터뜨렸다. ▲ 남북전쟁은 미국 역사에서 실로 참담했던 전쟁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가 펼쳐 보이는 사우스 다코타의 탁 트인 광활한 평원이 가슴을 웅장하게 만든다. 사우스 다코타의 광활한 평원을 수천마리의 버펄로 떼가 지축을 울리며 질주하는 영상은 가히 압도적이다. 이곳은 수우(Sioux)족 인디언들의 땅이다. 영화는 이미 뇌사판정을 받은 사어(死語)에 가까운 수우족 인디언이 쓰던 라코타(Lakota)어를 재현하는 진지함을 보인다. 진지하다 보니 상영시간이 3시간 남짓에 달한다. 호흡이 짧은 요즘 관객들에게는 조금은 불친절할 수도 있겠는데 늘어진다거나
유럽에서 상권과 이권을 놓고 아웅다웅하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남미에서 과라니 부족을 격퇴할 땐 의기투합한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하나와의 싸움도 중과부적인 과라니족에게는 실로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과라니족들이 기댈 곳이라고는 가브리엘 신부밖에는 없다. 그러나 교황청도 스페인과 포르투갈 양대세력에 휘둘려 그들의 손을 들어준다. ▲ 평등한 관계는 힘이 같을 때만 가능한 것일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무력진압에 앞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대표는 ‘친절하게도’ 과라니족 대표를 직접 만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시도한다. 협상이라기보다는 최후통첩에 가깝다. 그 자리에 나온 과라니족의 대표는 스스로를 과라니의 왕이라 칭한다. ‘너희들에게 왕이 있다면 나도 왕’이라며 평등한 관계 속에서의 정의로운 타협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땅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다. 모두 옳은 말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대표는 벌거벗고 얼굴에 검댕칠을 하고 왕이라 칭하는 ‘짐승’의 주장을 무표정하게 듣는다. 결코 논쟁하지 않는다. 논리로 따지자면 과라니족 왕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
영화 ‘미션’은 진정한 사랑에 관한 보고서다.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케임브리지대의 역사철학자 C. S. 루이스가 언급한 스토르게(storge), 필라(philla), 에로스(eros), 아가페(agape) 등 네가지 서로 다른 사랑을 검증하듯 말이다. 노예사냥꾼 멘도사의 사랑도, 가브리엘의 사랑도, 추기경의 사랑도 그렇게 그려진다. ▲ 사랑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이를 뭉뚱그려 love라고 칭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남미로 파견된 제수이트 교단의 한 신부가 과라니족에 의해 십자가에 묶여 이구아수 폭포 속으로 처박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 시간에 스페인 용병 출신 노예사냥꾼 멘도사 대위는 숲속에서 과라니족들을 사냥해 마을로 끌고 가 팔아넘긴다. 그러나 무지막지한 노예사냥꾼에게도 사랑은 있다. 멘도사가 끔찍하게 사랑하는 약혼녀는 멘도사가 사냥을 나간 사이에 멘도사의 이복동생과 사랑에 빠진다. 실의와 분노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멘도사는 이복동생을 죽여버린다. 순교와 살인 모두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영화 ‘미션’은 1754년부터 2년간 스페인·포르투갈 연합군과 남미 과라니 부족 간에 벌어졌던 소위 ‘과라니 전쟁’을 보여준다. 무기라야 작은 짐승 사냥하는 새총 같은 활과 화살밖에 없는 원주민들과 세계 최강 스페인·포르투갈 연합군 간 전쟁은 애당초 성립부터 가능하지 않다. 전쟁이 아니라 그저 학살이었을 뿐이었다. 그 참혹했던 ‘과라니 학살사건’을 ‘과라니 전쟁’으로 명명하는 서양인들은 참으로 용감하기는 하다. ▲ 친절이야말로 진정한 선善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750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에 의해 수천년간 그 땅의 원주인이었던 과라니족의 운명이 결정된다. 조선의 백성들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운명이 청나라·일본·러시아·미국이 자기들끼리 멋대로 벌이는 전쟁과 자기들 형편에 따라 체결한 조약으로 결정됐던 역사와 너무나 흡사해서 마음이 아프다. 작게는 우리의 재산과 생명, 크게는 우리의 운명 자체를 결정하는 전쟁과 조약이
1750년대 남미 대륙은 유럽의 세력 균형이 요동치면서 혼란에 빠진다. 남미 대륙 전체의 패권을 장악해왔던 스페인에 신흥세력 포르투갈이 도전한다.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일전을 불사해 기존 패권을 고수하기보단 포르투갈과의 ‘거래’를 택하고 ‘마드리드 조약’을 체결한다. 이로부터 현재 브라질의 광대한 영토가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확정된다. ▲ 자본가와 권력자들이 ‘공동체주의적 대안’을 반기지 않는 건 이익의 분배가 탐탁찮아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브라질의 접경 지역에 살고 있던 과라니족에 대한 처분이다. 스페인의 제수이트 교단이 천신만고 끝에 교화하고 개척한 ‘과라니 공동체 지역’을 포르투갈이 요구하면서 그 지역에서 과라니족들을 쫓아내고자 하고, 스페인은 반대한다. 이 분쟁을 중재하고 판결하기 위해 교황청은 추기경 알타미라노를 현지에 파견한다. 알타미라노 추기경도 현지답사 결과 제수이트 교단이 ‘하나님을 섬기는 과라니족의 아름다운 공동체(community)’를 건설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과연 이들을 노예거래를
가브리엘 신부는 남미 과라니족 선교의 ‘미션’을 현장에서 담당하는 신심 깊은 인물이다. 하나님의 가르침과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언감생심 200여년간 스페인의 침략과 만행에 치를 떠는 과라니족들을 개종하겠다고 나설 수는 없을 터다. ▲ 제수이트 교단은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교도들을 죽였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과라니족은 가브리엘 신부의 전임자도 십자가에 묶고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씌워 이구아수 폭포로 밀어 넣었다. 가브리엘 신부는 그야말로 목숨을 내어놓은 결사대 선교자다. 그는 과라니족의 숲속에 혼자 들어가 과라니족이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오보에를 연주한다. 순교를 작정한 듯한 모습이다. 오보에의 황홀한 선율 덕분이었는지 가브리엘 신부는 전임자처럼 이구아수 폭포로 끌려가는 대신 그들의 마을로 안내된다. 가브리엘 신부가 속한 ‘제수이트(Jesuit)’ 교단은 기독교 역사에서 참으로 많은 논란을 야기한 곳이다. 1517년 교황청에 반기를 든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고 이른바 ‘구교’와 ‘신교’의 피비린내
멘도사(로버트 드 니로)는 최악의 죄인이다.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 하며 살아간다. 인류문명사 최악의 ‘스캔들’로 남아있는 스페인의 남미 정복 과정에 ‘용병’으로 참전한 전쟁영웅이었지만 남미를 정복한 이후엔 ‘노예사냥꾼’으로 전업한다. ▲ 인간이 저지른 죄를 과연 누가 정죄하고 누가 용서할 수 있을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노예사냥을 하는 멘도사의 모습을 보면 전투력이 뛰어난 용병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만큼 많은 남미 원주민을 학살했음도 확실해 보인다. 그 전투력과 경험을 ‘노예사냥’에 접목한 그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 듯하다. 스페인 총독과도 서로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다. 이런 죄악罪惡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던 멘도사는 자신의 약혼녀와 ‘바람 난’ 이복동생까지 죽여버린다. 죄악의 3종세트를 완성한다. 멘도사는 스페인 정부와 과라니 원주민 노예를 독점 거래하듯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죄를 ‘독점’하다시피 하지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
영화 ‘미션’의 시대적 배경은 1750년대 남아메리카다. 더 정확하게는 현재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 그리고 브라질의 접경지역 어디쯤인 듯하다. 3개국에 걸쳐 있는 이구아수 폭포가 있는 곳이다. 남미의 대표적인 부족인 ‘과라니(Guarani)족’의 땅이기도 하다. ▲ 과거 스페인에선 식민지 농장 경영을 위한 노예사냥이 이뤄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는 1530년대 프란치스코 사피로와 에르난 코르테스가 각각 남미의 잉카제국과 아스텍 제국을 무너뜨리고 광대한 남미대륙이 스페인의 수중에 들어간 지 200여년이 흐른 뒤 남미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페인 총독 카베사가 왕처럼 군림하고, 스페인풍의 궁전과 성당, 성과 요새들이 들어서고, 스페인에서 건너온 스페인 정착민이 귀족으로 자리 잡는다. 조금 요령 있는 원주민들은 유럽풍 복장을 하고 눈치껏 새로운 ‘주인’의 집사나 하인 노릇이라도 하지만, 대부분은 스페인이 건설한 거대한 농장에서 고된 노동으로 연명한다. 남미 정복 이래 자행된 스페인의 가혹한 통치와 노예경제에 원주민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스페인은 공식적으로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The Mission):1986’은 그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최우수 각본상을 받아 ‘걸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교황청에서 선정한 ‘최고의 종교영화 15선’에도 뽑혔다.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상은 받을 만하다 싶은데 ‘교황청상’은 뜻밖이다. 영화 내용이 남아메리카 기독교 선교 과정에서 있었던 참상을 그리고 있고, 그 와중에 교황이 보여준 모습도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영화 미션은 남아메리카 기독교 선교 과정에서 벌어진 참상을 그리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미션’엔 흥미로운 게 많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그리고 파라과이에 걸친 세계 최대 폭포 이구아수 폭포의 장관을 배경으로 한 전성기의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는 이구아수 폭포만큼이나 압권이다. 이제는 액션배우로 자리매김한 리암 니슨이 보여주는 ‘앳된’ 선교사의 모습은 조금 당황스럽다. 혹시라도 인디오들에게 아내와 딸이 납치당해서 인디오들을 때려잡기 위해 사제 복장으로 이구
영화 바벨의 이냐리투 감독은 미국·모로코·멕시코, 그리고 일본 4개 나라의 모습을 통해 감독이 생각하는 세계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세계화 현상은 진행 단계를 지나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섰다곤 하지만, 이냐리투 감독이 보여주는 ‘세계’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 영화 속 모로코는 세계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많은 이가 힐링을 위해 그곳을 찾는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미국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멕시코 아줌마’ 아멜리아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차를 운전해 멕시코 여행을 떠난다. 국경을 넘어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멕시코 북부의 풍경은 미국 남부와 다를 바 없다. 자연풍광이 다를 바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마을과 거리의 풍경조차 미국 LA 변두리 어디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닮았다. 도로 표지판, 건물의 모습, 거리의 간판, 거리를 오가는 자동차, 그리고 사람들의 ‘먹성’ 모두 그렇다. 멕시코 사람들도 미국의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마시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다. 세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