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순의 몽골은 이제 막 여름으로 들어가는 날씨를 보여준다. 낮에는 25~30도 가량, 밤에는 10~15도이다. 한국의 가을 초입 날씨 같다고 보면 된다. 여름의 햇볕이 따갑지만, 우리나라처럼 습하지 않은 건조 기후여서 그늘에 가면 낮에도 시원하다. 재난 상황에서는 열린의사회라는 NGO 단체의 재난의료팀 소속으로 태풍, 지진, 전쟁터 등지로 다녔던 나는 몽골은 15년 전부터 여러 차례 진료 활동을 해오던 곳으로 친근하다. 동으로는 칭기즈칸의 고향이라는 헨티를 넘어서, 남쪽으로는 고비사막 너머 어믄고비 지역으로,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접하면서 바이칼 호수가 가까운 홉스골이나 불칸 지역으로 다녔다. 이번에는 몽골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바양울기 아이막(Баян-Өлгий аймаг, Bayan-Ölgii Province)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풍요로운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 바양울기는 몽골의 21개 아이막(주[州]) 중의 하나이지만, 몽골족이 아니라 인구의 90% 정도가 카자흐족이다. 언어도 몽골어를 사용하지 않고 튀르키예,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사람들과 같은 말을 쓰며, 당연히 대부분 무슬림이다. 카자흐(몽골에서는 ‘카작’이라고 발음한다)족이면서도 오래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 영화는 1963년 북미 대륙의 록키산맥 동쪽에 붙어있는 미국의 와이오밍주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다. 카우보이 에니스 델마(Ennis Del Mar, 히스 레저)와 잭 트위스트(Jack Twist, 제이크 질렌할)는 목장 주들의 조합에 고용된다. 그들의 역할은 양떼를 몰고 록키산맥 초원지대를 다니며 풀을 먹이다 겨울이 되기 전에 돌아오는 것이었다. 양들이 늑대에게 잡혀가든지 도둑 맞을까봐 그들은 늘 양떼 옆에서 자야하고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텐트도 자그마한 거 하나다.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서먹하던 것도 없어지고 어느 날 좁은 텐트 안에서 자다가 우발적으로 섹스를 하게 된다. 잭은 우연이고 일회성 관계였다고 말하지만 이후 양떼를 몰고 다니면서 둘의 관계는 아무래도 수상하다. 양떼 몰이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면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심하게 싸움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게 애증관계라고 하는 걸까? 서로를 기다리는 사이 그 후 에니스는 약혼자와 결혼해서 딸 둘을 낳고, 잭은 텍사스에서 로데오 경기 일을 하다가 부잣집 딸 로린을 만나 결혼을 한다. 헤어지고 나서 4년 정도 지난 시점에
LA에서 고급차 판매회사를 운영하는 찰리 배빗(톰 크루즈)은 고객들로부터 주문 받은 차들이 판매소에 빨리 도착하지 않아서 골치가 아프다.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직원이자 연인 관계인 수잔나(발레리아 골리노)와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갈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아버지와 다퉈서 고향인 신시내티를 떠난 후 한 번도 말도 붙여보지 않은 터라 장례식장에 참석하면서도 별 감흥이 없다. 옛집에서 잠시 둘러볼 때도 기억나는 거라곤 무서울 때마다 ‘레인맨’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노래를 불러줬다는 것. 1988년에 제작된 ‘레인맨(Rain man)’은 이렇게 시작한다. 숨겨져 있던 형제의 비밀 찰리는 유언장 대리인을 만났을 때 자신에게는 아버지의 오래된 자동차 한 대와 가꾸던 장미 몇 그루만 남겼고, 나머지 300만 불에 해당하는 전 재산을 다른 상속자가 받게 했다는 얘기를 듣고 황당해한다. 자동차를 주문한 고객들의 환불 요구가 빗발치고 있고, 회사의 상황이 안 좋은 처지에 그는 상속자가 누군지 알아내서 조금이라도 건지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겨우 찾아간 곳은 어느 정신병원. 원장은 상속자가 누구인지 절대 말을 안 해주지만 찰리는 수상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자기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엄마 손에 이끌려 한 개인 병원에 온 엘렌(릴리 콜린스)은 새로운 의사 윌리엄 베컴 박사(키아누 리브스)와 면담을 하지만 여기라고 별거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신체검사를 하는데 엘렌의 몸은 뼈에 가죽만 씌운 듯이 앙상하고, 생리한 지도 꽤 됐다고 한다. 소매를 걷어보니 팔에는 여성임에도 털이 많이 나 있다. 엘렌은 “털 난 여성도 꽤 있잖아요”하면서 자기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이 대꾸하며 베컴 박사에게 쏘아댄다. 그러자 박사는 “물론 그렇지. 하지만 네가 몸에 털이 많이 난 것은 지방이 없어서 체온을 높이려는 신체 현상이란다"하면서도 더 말을 잇지 않는다. 이런 환자들을 많이 겪어봤듯이 설명을 해도 안 먹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 ‘투 더 본(To The Bone, 2017)’은 이렇게 전개된다. 섭식장애를 가진 7명의 젊은이들과 그 부모, 그리고 다소 독특한 치료법을 사용하는 베컴 박사..... 영화는 이들을 중심으로 섭식장애가 어떤 건지, 그 괴로움, 쉽게 치료되지 않는 이유까지 보여주며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을 시작한다. 영어 제목 ‘To the bone’은 해석하면 ‘뼈를 위하여’가 된다.
지난번에 본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가 전형적인 우울증 이야기라면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는 우을증의 좀 독특한 증상을 다룬다. 부인을 잃은 상실감으로 우울증에 빠지고 괴이한 행동을 보여주는 ‘데몰리션(Demolition, 2015)’은 또 다른 느낌이다. 투자 분석가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데이비스 C. 미첼(제이크 질렌할)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자신은 무사했지만 부인 줄리아(헤더 린드)는 사망하고 만다. 부인이 죽었다는 통보를 받은 병원에서 자동판매기가 고장으로 돈만 먹고 초콜릿이 안 나오자 항의를 해야 한다고 다짐을 한다. 부인의 장례식 날에는 차분해지든지, 부인을 회상하든지 해야 하는데, 자동판매기 회사에 항의 편지를 써서 부친다. 이러는 자기도 이상하다고 생각된다. 왜 슬프지 않지? 해체하고 분해하려는 주인공의 심리 장례식 다음 날에는 휴식도 갖지 않고 여느 때와 같이 5시 30분에 일어나 기차를 타고 출근해서 직원들이 놀란다. 사무실 컴퓨터도 분해해서 부품별로 가지런히 놔두는 것도 모자라 회사 화장실의 칸막이들을 전부 해체해버린다. 집에서는 고장난 냉장고는 도대체 뭐가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겠다고 분해해버리고, 카푸치노 기계도 분해하고..... 길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My S.O. has got depression [ツレがうつになりまして], 2011) 영화는 제목처럼 우울하기 보다는 반대로 밝고 사랑스러운 내용들로 차 있다. 바로 그것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내용인 듯 하다. ‘우울증이라고 반드시 우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계 컴퓨터 회사에 다니는 타카자키 미키오(사카이 마사토)는 신혼 5년차의 건실한 남자이다.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매일 아침 식사도 준비하고, 자기가 먹을 도시락은 요일마다 늘 다른 반찬을 싼다. 그렇게 꼼꼼해도 아침마다 삐진 머리카락은 어쩔 수 없어서 부인이 출근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머리카락을 눌러준다. 매일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전철을 타고 스트레스 받는 회사를 다니더라도 부부는 알콩달콩 정답게 살고 있다. 부인 타카자키 하루코(미야자키 아오이)는 만화를 그린다. 남편이 만화가로 성공할 거라는 희망과는 다르게 인기가 없는 만화는 연재하다가 일찍 종결됐다. 집에서 반려동물로 키우는 이구아나(이름도 ‘이구’이다)와 놀던지 머리를 쥐어짜면서 만화를 그리는 게 하루 일과이다. 하루코는 남편을 부를 때 ‘츠레’라고 한다. 정겨움의 표시인데, 우리 정서로 보면 ‘자기’나
무의식의 세계를 깨운 프로이트가 나타나기 전까지 최면요법이 정신의학의 세계에서 최강자였다. 많은 정신질환들을 치료하려고 사용했다. 하지만 너무 강력해서 대상자에게 잘못된 기억을 심어줄 수도 있는 등 부작용이 있어서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얼마나 강력했는지 보여주는 영화를 소개한다. 홀연히 마을에 나타난 사나이 한 남자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숲 속에서 내려오고 있다. 시내로 들어서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더니 육교와 지하 터널을 지나간다. 멀쩡했던 전등들은 갑자기 깜빡거리는데, 뭔가 이상한 사람인 듯한 느낌을 준다. 장면이 바뀌면서 폴란드 바르샤바의 어느 사무실, 입국 심사를 하는 공무원이 그의 출생지가 우크라이나의 프리피야티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체르노빌을 언급한다. 체르노빌은 1986년 4월 26일 원자로 폭발사고가 났던 곳이고, 프리피야티는 그 근처로서 원자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집단 거주하던 곳이었다. 폭발이 일어나기 7년 전, 같은 날짜에 이 남자가 태어났다. 둘의 잠시 눈이 마주치더니 이 남자는 그 공무원의 뒤로 가서 머리를 감싸 쥐더니 나직이 읊조린다. “검은 시냇물이 발밑에서 흐르다가 내 손을 타고 들어옵니다.” 사무실을
해리성 장애란 정신 질환은 전혀 다른 인격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과거에는 그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히 조현병의 하나로만 여겼다. 크게 해리성 기억상실, 해리성 정체성 장애, 이인증 등으로 구분한다. 이 중에서 앞 두 가지를 다룬 영화를 살펴보자. 1957년 제작한 ‘이브의 세 얼굴(The Three Faces of Eve)’은 관련 영화로 아직까지 여기에 견줄 작품이 없을 정도로 내용을 잘 살렸고, 1인 다역을 해낸 주인공의 연기 또한 훌륭했다. 영화는 미국 남동부 조지아주에 사는 한 가정주부 이야기를 각색했다고 한다. 1951년 어느 날, 정신의학과 외래 진료실에 한 부부가 찾아온다. 남편 말에 의하면 부인이 요즘 부쩍 사치가 늘고, 비싼 구두나 의상을 사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다는 것이다. 이브 화이트(조앤 우드워드)라는 이름의 부인은 차분하고 순종적인 전업주부이다. 의사가 몇 가지 질문을 할 때 화이트 부인은 평소에는 괜찮다가 두통이 심하면서 갑자기 발작(기억상실을 발작이라고 말함)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억이 돌아왔을 때는 변한 상황을 전혀 기억할 수가 없다고 한다. 진료를 담당한 커티스 루터 박사(리 J. 콥)는 처음에
4, 50대 장년들에게는 어릴적 전설의 만화영화가 있다. 바로 일본 만화영화 ‘마징가 Z’이다. 악전고투 속에서도 악의 무리와 싸워 항상 이기면서 세계평화를 지킨다는, 동심을 감동시켰던 영화. 하지만 이런 영화에는 반드시 상대방인 악당이 있어야 하는데 그가 바로 아수라 백작이다. 한 얼굴에 두 모습을 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성격도 다르다. 실제하지 않는 인격이지만 1970년대 당시에 이런 설정을 했다는 게 놀랍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1957년 제작한 이브의 세 얼굴(The Three Faces of Eve)이다. 관련 영화로 아직까지 여기에 견줄 작품이 없을 정도로 내용을 잘 살렸고, 1인 다역을 해낸 주인공의 연기 또한 훌륭했다. 영화는 미국 남동부 조지아주에 사는 한 가정주부 이야기를 각색했다. 평소와 다른 인격의 아내 1951년 어느 날, 정신의학과 외래 진료실에 한 부부가 찾아온다. 남편 말에 의하면 부인이 요즘 부쩍 사치가 늘고, 비싼 구두나 의상을 사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다는 것이다. 이브 화이트(조앤 우드워드)라는 이름의 부인은 차분하고 순종적인 전업주부이다. 의사가 몇 가지 질문을 할 때 화이트 부인은 평소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초창기 작품인 ‘인썸니아(Insomnia, 2002)’는 알 파치노가 경험 많은 형사 윌 도너로 나오는 영화이다. 그는 수사 결과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내사과의 조사를 받던 중 알래스카에서 케이 코넬이라는 17세 소녀의 살인사건 수사 의뢰를 받고 도망치듯 떠난 것이다. LA 경찰청에서도 경험 많고 실력 있다는 얘기를 듣던 그는 동료 햅(마틴 도노반) 형사를 데리고 알래스카에 도착한다. 죽은 케이 주변을 조사하면서 그가 다니던 학교로 가자고 하자, 현지 경찰들이 웃는다. “지금 밤 10시예요.” 알래스카의 백야 현상 때문에 낮처럼 밝았던 것. 몇 달 동안 이대로 지속된다고 한다. 두 명의 파견 형사와 현지 경찰들이 탐문 수사를 벌이면서 숲속에서 용의자로 보이는 놈을 쫓고 있는데, 안개가 너무 껴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윌은 바로 앞에 용의자의 모습이 보이자 총을 겨누고 쐈지만, 쓰러져 있던 건 동료 형사 햅이었다. 경찰서로 돌아가서는 용의자가 햅을 쏘고 도망갔다고 속이고, 부검실을 찾아가서 햅의 몸속에 있는 총알과 자기가 찾아낸 용의자의 총알을 바꿔치기 한다. 그는 호텔 숙소로 돌아오지만 백야 현상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1954년 어느 날, 연방 보안관인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또 다른 형사 척(마크 러팔로)과 함께 보스턴을 출발해서 인근 섬으로 향하고 있다. 셔터 아일랜드라는 섬에 고립된 정신병원에서 환자 한 명이 사라졌다는 제보 때문이다. 안개를 뚫고 도착한 둘은 그곳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병원을 둘러본다. 넓은 정원에서는 산책하는 환자들이 여기저기 보이는데 테디를 보고 모두 아는 척을 하는 게 느낌이 좀 안 좋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 2010)’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 병원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독립된 몇 개의 병동으로 구분하고, 가장 심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성처럼 되어 있는 특수 병동에 있게 된다. 어린 자녀 셋을 물에 빠뜨려 죽이고 여기에 들어온 레이첼 솔란도라는 여인이 특수 병동에 있다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테디 일행은 경찰과 병원 책임자 코리 박사(벤 킹슬리)로부터 레이첼이라는 여인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지냈던 특수 병동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이라는 설명을 듣는다. 레이첼 솔라도는 퇴역군인의 부인으로 1952년 어느 날, 어린아이들 셋을 연못에 빠뜨려 죽인 사건으로 재판을 받
마차를 타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는 한 여인. 그의 이름은 사비나 슈필라인(키이라 나이틀리). 원래는 러시아 부유한 집의 5남매 중 첫째인데, 아끼던 여동생이 장티푸스로 죽자 그 때부터 정신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요양 겸 치료를 받으러 스위스로 와 있는 동안 발작이 심해져서 급히 취리히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당대에도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마이클 패스벤더)의 상담을 받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 심한 틱(Tics) 증상이나 조울증(양극성 장애) 증상이 나타나고, 의사들은 히스테리성 발작이라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정신의학이 발달하지 못해서 여성들에서 나타나는 여러 정신병 상황들을 거의 히스테리라고 불렀다. 히스테리는 자궁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나왔고, 자궁이 없어서, 혹은 자궁 문제로 병이 생겼다고 해서 ‘히스테리아’라는 명칭을 붙였다. 참 무지한 명칭이다. 슈필라인은 여러 번 상담을 하다 보니 어렸을 적 아버지에 의한 성학대가 중요한 심리적 원인이었다. 이러한 발작뿐만 아니라 이상한 성욕까지 나타나서 주체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프로이트, 융, 슈필라인 시간이 지나면서 융에 의해 슈필라인은 많이 좋아졌으나, 둘은 의사-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