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 깃들 무렵, 아니면 어스름 새벽빛이 스며들 때 그는 산야로 내달린다. 지천에 널린 제주의 오름 들판에서 뛰놀던 말들도 고요히 머리를 숙인다. 그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린지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수년간 제주 들판에서 제주마의 삶을 섬세하게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가 김수오(58).
낮에는 한의사, 그외 시간엔 카메라로 제주의 자연을 내달렸던 그의 개인전이 열린다. 다음달 1일부터 30일까지 제주돌문화공원 내 갤러리 누보에서 펼치는 사진전 '가닿음으로'.
그의 제주마 주제 개인전으로 제주마의 사계와 생로병사를 담은 35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김 작가의 본업은 한의사다. 낮에는 진료를 하고, 밤에는 카메라를 들고 오름과 들판을 누비며 방목된 자유의 제주마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소설가 현기영은 그를 이렇게 소개한다. "밤의 어둠 속에서도 달빛과 별빛을 모아 촬영하는 사진가다. 그는 말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그려낸다." 그의 작품이 사물을 재현한 게 아니라 예술적 표현이란 소리다.
김 작가는 "제주다운 풍경 속에는 언제나 제주마가 있다"며 "제주 산야가 잃어가는 야생성을 아쉬워하는 마음에서 촬영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주마도 나에게 곁을 내주었다"며 이미 벗이 돼버린 말에게 마음을 풀어낸다.
짝짓기와 잉태, 출산의 순간부터 들판에서 생을 마감하는 말의 죽음까지 4계절 제주마의 생애와 생로병사를 담은 사진들이 갤러리를 채운다.
현기영 소설가는 "자연순환의 서사를 담아낸 생왕쇠멸(生旺衰滅)의 내러티브가 느껴진다"고 평했다.
김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들판에서 태어나 사계절을 견디며 생을 마감하는 제주마는 어린 시절 보아온 제주 사람들의 삶을 상징한다"며 "제주민의 척박한 삶과 말의 생애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 대해 "제주마에 가닿았던 나의 시간이 누군가의 마음에도 와닿기를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 작가는 전자공학도로 서울대를 나와 대기업 연구소에서 6년간 일하다 건강이 악화됐다. 자연의 원리에 따라 병을 치료하는 한의학에 눈을 떠 한의학도로 다시 시작했다. 한의사가 된 후 그는 제주로 돌아와 강정마을 주민들의 아픔을 치유하며 자연에 더 깊이 연결됐다.
그대로가 아름다운 제주섬의 자연환경이 더는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는 오늘도 카메라 가방을 메고 들판으로 나갈 작정이다.
전시 오프닝은 다음달 2일 오후 3시다. 작가와의 대화와 공연도 예정돼 있다. 또 전시 기간에는 고광민 제주생활사 연구자가 참여해 제주 목축문화에 대한 특강도 한다.
제주돌문화공원과 누보는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전시 관람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가능하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