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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복수는 나의 것 (1)
당연하고 강력한 인간 욕구 ‘복수 ... 복수는 반드시 또다른 복수 불러
복수 결과 핵무기처럼 상호파괴적 ... 정치판 복수, 복수인가 보복인가

미국에 ‘복수극 전문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있다면 한국에는 박찬욱이 있다.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은 박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와 함께 복수극 3대 명작으로 꼽힌다. 굳이 이들 감독을 복수극 전문가라고 부르기도 어색할 정도로 ‘복수’라는 주제는 영화의 가장 흔한 주제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복수심’이라는 감정과 ‘복수’라는 행위는 인간들이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이자 그에 따른 행동양식인 듯하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의 주인공 류(신하균 역)는 세상에 유일한 피붙이인 누나가 당장 신장이식을 받지 못하면 죽을 상황에 몰린다.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고 싶지만 불행하게도 혈액형이 맞지 않는다. 

류는 장기 밀매업자를 찾아가 자신의 신장과 누나의 수술비로 꽁꽁 싸매둔 전 재산 1000만원을 주고 누나와 혈액형이 맞는 신장을 받기로 한다. 그러나 자신의 신장만 털려버리고 누나의 수술비까지 날린다. 그 순간 그토록 기다리던 신장기증자가 나타나지만 수술비 1000만원이 없다. 

류는 애인 영미(배두나 역)와 함께 아동납치에 나선다. 류와 영미에게 납치당한 금지옥엽 외동딸이 시신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버지 동진(송강호 역)은 복수를 결심한다.

영미를 찾아낸 동진은 잔혹한 전기고문 끝에 영미를 죽인다. 누나도 없는 세상에 애인마저 잃고 절망적인 분노에 사로잡힌 류는 영미의 복수에 나서지만, 오히려 동진에게 잡혀 마찬가지로 ‘끔살’당한다. 

동진이 그렇게 찝찝하게나마 복수를 완성했다고 믿는 순간, 어디선가 ‘재벌해체’와 ‘미군철수’를 외치는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 조직원이었던 영미의 동료조직원들이 난데없이 나타나 다짜고짜 동진의 심장에 칼을 박고 사라진다. 영미의 복수를 해준 그들의 표정도 찝찝하기는 마찬가지다. 

“복수에 나서려거든 미리 무덤 2개를 파둬라”고 했던 공자의 말씀이 이곳에서도 실현된다. 복수란 그렇게 또다른 복수를 부른다. 동진은 복수를 완성했다고 믿는 순간 곧바로 자신의 무덤도 필요해진다. 

지금 세계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에 탄압당했다”는 복수심으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이스라엘도 다시 복수에 나섰다. 그 끝을 알 수 없다. 전쟁이 일상이던 중국의 춘추(春秋)시대를 살아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공자의 말씀을 아무도 새겨듣지 않은 듯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상대의 무덤과 자신들의 무덤을 파길 반복한다. 
 

 

역사란 웬만해서 발전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맴돌면서 끝없이 같은 짓을 반복한다. ‘복수는 나의 것’은 미국에서는 ‘Sympathy for Mr. Vengeance’라는 제목으로 상연했다고 하는데 꽤나 적절해 보인다. 우리말로 하면 ‘딱한 복수남(復讐男)’ 정도 될 듯하다. 복수의 정당한 사유를 인정받을 만한 이 ‘복수남’의 결말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복수심이란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가장 당연하고 강력한 욕구이지만 그 결과는 핵무기처럼 항상 상호파괴(Mutual Destruction)가 거의 확실해 문제적이다. 공자도 말씀하신 ‘복수’의 문제를 또 다른 경전인 성경이 빼놓을 리 없다. 박찬욱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 제목을 그 유명한 구약성서 신명기(申命記) 32장 35절에서 따온 것이라 밝혔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 그들이 실족(失足)할 그때에 내가 복수하리라.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To me belongeth vengeance and recompense: Their foot shall slide in due time; for the day of their calamity is at ahand, and the thing that shall come upon them make haste).” 

박 감독이 영화의 제목으로 신명기 복수를 선택한 것을 보면 영화를 통해 감독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복수’란 전지전능한 신만이 판단하고 행할 수 있는 영역이지, ‘하찮은’ 인간들에게 허용하면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거다.

아무리 함무라비 법전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자제력을 발휘해도 종국에는 세상 모든 사람이 애꾸가 되고 모두 틀니를 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복수다. 

우리는 많은 경우 ‘복수(avenge·vengeance)’와 ‘보복(revenge)’을 혼용한다. 그러나 둘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개념이다. ‘복수(avenge)’란 누군가 당한 부당한 피해와 고통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 응징해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신의 분노와 복수도 이에 해당하고, 검사가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를 응징해주는 형태다. 그렇듯 복수는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보복(revenge)’은 자기 자신이 받은 피해를 스스로 앙갚음하는 행위이다. 신명기에서도 신의 응징을 ‘복수(vengeance)’라고 표현하지 ‘보복(revenge)’이라고 쓰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동진 스스로는 자신의 행위를 정의로운 ‘복수’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개인적인 앙갚음인 ‘보복’이었던 셈이다. 신명기에서 분명히 하는 것처럼 ‘복수는 신의 것’이다. 신의 영역을 범하면 자기 무덤도 팔 수밖에 없게 된다. 
 


권력의 지형에 변화가 생기거나 아예 권력이 이동할 때마다 ‘정치보복’ ‘복수’ 혹은 ‘적폐청산’ ‘단죄’라는 말들이 횡행하는데, 모두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모두들 자신들이 하는 것은 정의로운 ‘복수’고, 상대가 자신을 공격하는 것은 모두 사사로운 원한에 사로잡힌 ‘보복’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들이 주고받는 공격은 대개 모두 ‘보복’이지 ‘복수’는 아닌 듯하다. 

복수는 신의 영역이 분명하지만,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 하니 온갖 정치인들의 원한과 억울함도 국민만이 신을 대신해 복수할 것은 복수해주고 갚을 것은 갚아주고, 정의를 회복시킬 수 있을 듯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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