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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복수는 나의 것 (10)
시청 역주행 차량 9명 사망 사고 ... 사망자 전원 남성 소식 나오자
입에 담기 힘든 악담 쏟아지기도 ... 심해지는 집단적ㆍ극단적인 증오

감독들은 대개 자신의 연출 의도나 메시지를 영화의 결말에 배치하는 듯하다. 콘서트에서도 대표곡은 대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곤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복수는 나의 것’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도 본인의 문제의식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배치했을 법하다.

 

 

영화는 류(신하균 역)와 동진(송강호 역)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극단적인 원한과 복수로 점철된다. 류는 자신의 신장을 털어가고 결국은 누나의 자살에 최소한 ‘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장기밀매업자 작업실에 쳐들어가 일당 4명을 머리통을 깨뜨려 죽이고 목에 드라이버를 꽂아 죽인다. 말 그대로 극한의 복수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그들의 신장을 집에 가져와 씹어 먹는다. 이쯤 되면 관념적으로나 가능했던 일까지 실행에 옮긴다. 류의 원한은 이해하겠지만 과도하게 극단적이다.

동진은 딸을 납치한 자칭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 소속이라는 영미를 붙잡아 전기고문으로 그야말로 ‘피오줌’ 싸며 죽게 만든다. 영미로서는 제발 ‘자비’를 베풀어 단번에 죽여달라고 애원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동진은 공범인 류도 붙잡아 결박한 채 강 속에 끌고 들어가 아킬레스건을 끊어 산 채로 피를 모두 뽑아 죽이고, 그것도 성에 안 찼는지 사체를 토막 내 여러 개의 비닐봉지에 담아놓는다. 류의 토막을 담은 검정 비닐봉지가 수북하게 쌓인다. 외동딸을 잃은 동진의 분노는 공감할 만하지만 이 역시 극단적으로 보인다. ‘작업’을 끝낸 동진은 십자가 앞에서 ‘다 이뤘도다(tetelestai)’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영원한 안식에 드는 예수님 표정으로 강가에 앉아 있다.

그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가 싶은 순간 영화의 마지막 변주(變奏)가 일어난다. 저 멀리서 웬 낡은 지프차 한대가 흙먼지를 날리면서 우당탕쿵탕 다가오고, 지프에서 내린 남루한 차림의 피곤에 절어 보이는 일단의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 단원들이 다짜고짜 동진의 가슴팍에 칼을 박아 영미의 원수를 처단하고 다시 강변 비포장도로에 흙먼지 날리면서 사라진다.

극단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사적(私的) 원한과 잔인한 복수도 두렵고 끔찍하지만, 정작 더욱 두려운 것은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과 같이 동진과 일면식도 없고 아무런 사적 원한관계도 없는 ‘극단주의적 집단’이 저지르는 무차별적인 폭력이다.

테러리스트에 가깝다. 이제까지의 공포를 압도해 버린다. 동진의 심장에 칼을 박는 그들의 표정이 마치 일상처럼 따분하고 권태롭기까지 해 보여서 더욱 공포감을 준다. 동진도 아마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자신에게 그렇게 ‘좌표’ 찍고 쫓아와 칼을 꽂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듯하다.
 

 

얼마 전 시청역 앞에서 역주행 차량에 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또 누군가에게는 아들이고 남편이기도 했던 세상 누구보다 소중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사망자 전원이 모두 남성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몇몇 ‘여초 커뮤니티’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악담들이 쏟아져 모두를 놀라게 한다. 가해자를 ‘한남 킬러’라 부르고 ‘열사’로 칭하기도 하고, 희생자들을 향해 ‘굿다이’ ‘축제’ ‘볼링절’ ‘개꿀’이라는 글까지 버젓이 올리는 모양이다. 정신이 이상하지 않고서야 이럴 수 있겠나 싶지만 냉정한 현실이다.

그에 앞서 훈련병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에도 ‘잘 죽었다’는 조롱 글들이 달렸다는 것을 보면 소위 여초 커뮤니티의 만행이 단발성은 아닌 듯하다. 이쯤 되면 영화 속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이 ‘아나키즘’의 탈을 쓴 반사회적 집단인 것처럼, 이들도 역시 ‘페미니즘’의 탈을 쓴 반사회세력에 불과하지 않을까.

일면식도 없고 아무런 사적 원한도 없는 희생자들에게 너무나 황당한 증오와 조롱이다. 희생자 가족들 역시 아무도 자신이 아무 관계없는 누군가로부터 이런 끔찍한 공격을 받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일부 여초 커뮤니티만의 문제가 아니라 몇몇 ‘남초 커뮤니티’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미국 최고의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라고 칭해지는 토마스 핀천(Thomas Pynchon)은 이미 1963년 그의 대표작 ‘V’에서 다음과 같은 섬뜩한 예언을 남겼다. “20세기의 윤리란 극단적인 2개의 잣대만 남았다. 한때 존경받았던 ‘중도’는 이미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양극단만 존재하는 서구세계에서는 머지않아 극도로 정신병적인 대중이 나타날 것이다.”

그의 예언이 2000년대 서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실현되는 모양이다. 정치가 양극단으로 나뉘어 증오하더니 몇몇 남자와 여자도 양쪽에 서서 증오의 눈길을 보낸다. 이런 불길한 예언은 좀 빗나가면 좋으련만 ‘머피의 법칙’처럼 들어맞는다.
 

 

집단심리학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영국 심리학자 마이클 호그(Michael Hogg)는 그것이 ‘혁명적 무정부주의’든 극단적인 우파나 좌파, ‘여초’나 ‘남초’ 커뮤니티에 빠져드는 현대인의 심리를 “극단적인 생각을 공유하는 집단일수록 개인이 고통받는 불확실성, 불안감, 뿌리 뽑힌 삶에서 기인하는 상실감을 덜어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소외되고 꿈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극단주의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다. 또한 이들은 극단적인 집단 내에서 존재감을 느끼고 인정받기 위해 더욱 더 극단적이고 과격한 주장과 언행을 서슴지 않는다.”

꽤나 그럴듯하다. 영화 속 극단적 무정부주의자 동맹에 가입한 영미의 평소의 행적이나, 영미의 무정부주의 동맹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 마이클 호그의 분석과 상당히 일치한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삶의 의미를 ‘반사회적인 그곳’에서라도 찾고 싶어 한다. 극우, 극좌, 여초, 남초들이 서로를 향해 퍼붓는 집단적이고 극단적인 증오를 보노라면 토마스 핀천이 두려워하며 예언한 ‘병적인 대중’이 정말 나타나긴 한 모양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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