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 상 먹거리와 관련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냉장고라고 답할 것이다. 냉장고의 발명으로 인류는 먹거리를 신선하게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었고 식중독의 위험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었다.
인류가 먹을 것을 사냥하고 채집하는 시기를 지나 가축을 사육하고 농사를 짓게 되면서 식량 확보가 잘 되던 때에도 가장 큰 고민거리는 먹거리를 어떻게 하면 오래 저장할 것 인가였다. 먹거리가 풍족한 때 모아두었다가 부족한 시기에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인류에게는 큰 숙제였다.
냉장고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식품을 오래 저장하기 위해 동굴이나 지하창고를 이용했는데 이 역시 장기간 저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힘들게 얻은 먹거리가 저장 과정에서 부패하여 먹을 수 없게 되는 일이 많았고, 버리기 아까워서 섭취하였다가 식중독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도 발생하였다.
이에 인류는 식품을 안전하게 오래 저장하기 위해 건조, 소금 처리, 발효 등의 방법을 찾아내었다.
식품을 상하게 하는 것이 미생물(세균, 곰팡이)이라는 것을 모르던 때에도 수분이 많으면 식품이 쉽게 부패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터득하였다. 미생물도 살아남으려면 사람처럼 물이 필요한데 건조를 통해 물을 제거함으로써 미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바람이 잘 드는 곳에 널어 놓거나 햇볕에 말리는 방법이 일반적이었고, 연기를 쬐어서 살균하면서 건조시키는 훈연법도 사용되었다. 채소를 말린 것에는 시래기, 우거지, 무말랭이 등이 있고, 고기를 말린 육포, 생선을 말린 굴비와 마른 멸치 등이 먹거리로 애용되어 왔다. 건조한 먹거리는 오래 저장할 수 있으나 신선도가 떨어지고 질감이 딱딱하다는 단점을 가진다.
따라서 수분은 유지하면서 유해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고 유용한 미생물을 이용하는 발효 식품이 만들어졌다. 수분이 충분하면 해로운 미생물도 잘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발효식품들은 소금을 넣어 발효를 한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면 배추에 있는 물이 빠져나가 숨이 죽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소금 농도가 높으면 삼투압 때문에 미생물로부터 물이 빠져나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자반고등어와 같이 소금 함량이 높으면 미생물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지만 적정량의 염분에서는 삼투압에 잘 견디는 미생물은 살아 남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발효 미생물에 비해 유해한 미생물들은 염분에 약하기 때문에 적정량의 소금을 넣어 발효시키면 식품을 오래 저장할 수 있고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유용한 물질까지도 섭취할 수 있다. 다만 김치, 된장, 젓갈과 같은 우리 전통의 발효 식품은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소금(나트륨) 함량이 높다는 단점도 가진다.
부드러운 질감은 유지하면서 소금을 과량 넣지 않는 장기 저장법으로 인류는 통조림을 발명하였다. 통조림은 식품을 장기간 보존할 수 있게 해주어 식량 낭비를 줄임은 물론 언제 어디서나 식품을 손쉽게 운송 및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통조림의 소비기한은 과일 통조림은 2~5년, 참치 통조림은 3~7년으로 매우 길다. 보존료라고 하는 방부제를 넣지 않고도 오래 저장할 수 있는데 제조 공정에서 공기를 제거하는 탈기와 밀봉 과정을 거쳐 살균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통조림은 원료를 익혀서 넣기 때문에 소화가 잘 되고, 살균으로 미생물을 죽이므로 살균 과정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식중독을 일으키지 않는다. 다만 통조림에 들어가는 화학 식품첨가물과 장기간 보관 시에 유출되는 환경호르몬에 대한 걱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통조림의 소비기한이 5년이라는 것은 밀봉한 상태일 때를 얘기하는 것이지 개봉한 통조림을 5년간 먹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개봉하면 그 즉시 외부에서 미생물이 유입되고 통조림에는 미생물이 좋아하는 영양성분과 수분이 충분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빨리 부패할 수 있다. 따라서 개봉한 통조림은 빨리 소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마트나 시장에서 구입하는 먹거리 중에 냉장이나 냉동 식품은 바로 냉장고로 들어간다. 채소, 육류, 어류, 달걀과 같은 신선 식품들은 대부분 구입 후에 냉장 보관한다. 이외에 보존료를 첨가한 가공 식품이나 건조 식품들은 실온에서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수분이 많지만 보존료를 넣지 않고도 실온에 보관 가능한 식품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살균 처리된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통조림과 레토르트 식품(특수 포장재로 만든 주머니에 식품을 넣고 밀봉한 후에 고온에서 살균한 식품)이 고압증기로 살균 처리된 것이다. 레토르트 식품은 소비기한이 보통 1년 정도로 길지만 살균 방법에 따라 냉장 보관해야 하는 제품도 있으니 표시된 보관 방법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유의 경우에는 주로 유해한 세균을 죽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선택적 살균 방법이 적용된다.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일반 우유는 130도 이상에서 2초 이상 살균한 것으로 유해한 미생물을 죽이지만 유산균 등의 일반 미생물은 일부 살아 있기 때문에 냉장 보관해야 한다. 저온장시간 살균 우유는 63도에서 30분간 살균한 것으로 유해 세균은 죽지만 유산균이 살아 남기 때문에 냉장 유통 및 보관해야 한다.
이 밖에 균이 유익한지 해로운지에 상관없이 모두 죽이는 것이 목표인 멸균 우유도 있다. 사각 팩에 들어 있는 멸균 우유는 135도 이상(또는 제조사에 따라 132~150도)에서 3초 이상 멸균한 것으로 실온에서 보관이 가능하고 유통기한도 10주 정도로 매우 긴 편이다. 우유의 살균 온도에 따라 영양 성분의 변화는 미미하지만 맛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선호도에 차이가 있다.
일반 우유 또는 저온살균우유와 같은 살균 제품은 유해 세균이 없더라도 일반 세균은 살아 있기 때문에 오래 두면 부패할 수 있어 소비기한 또는 유통기한 내에 제품을 먹어야 한다. 또한 완전 살균(멸균) 제품이라 하더라도 살균 과정에서 모든 미생물이 완벽하게 제거되지 않을 수도 있고, 제품의 성분이 변하거나 지방 성분이 산패되어 맛과 향 등의 품질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는 소비기한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냉장고가 더욱 편리해지고 기능도 좋아지다 보니 소비자들이 냉장고를 너무 믿는 경향이 있다.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두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종류의 유해 미생물들은 냉장고 안에서도 살아 남는다. 이미 식품에 미생물이 묻어 있다면 냉장고 안에 다른 먹거리까지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냉장고에 너무 오래 보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냉장고의 냉장 온도는 4도 이하, 냉동은 영하 18도 이하로 잘 유지되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하는데, 특히 여름철에 냉장고 안이 음식으로 가득 차있고 자주 열고 닫게 되면 냉장 기능이 떨어져서 유해 미생물이 증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생선이나 육류는 냉장에 이틀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고, 채소류도 일주일 안에 소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오염된 식품의 유해 미생물이 다른 식품으로 옮겨가는 교차오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냉장고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채소와 과일은 깨끗이 세척하여 냉장실 하단에, 육류와 어패류는 밀폐 용기에 넣어 냉장실 중간에, 자주 꺼내 먹는 반찬류는 잘 밀폐하여 냉장실 상단에 보관하는 것이 좋겠다. 교차오염의 위험성이 큰 달걀은 다른 먹거리와 분리하여 냉장고에 보관할 필요가 있다. 냉동실도 육류와 어류는 하단에 보관하고, 오래 보관할 식품은 냉동실 안쪽에 넣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겨울철에도 노로바이러스에 의한 식중독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으니 냉장고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고 미심쩍은 식품은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노로바이러스는 영하 20도에서도 살아남기 때문에 오염된 식품을 냉장이나 냉동했다 하더라도 없앨 수 없다.
따라서 식중독에 걸리지 않으려면 손을 잘 씻고, 오래된 식품은 먹지 않고, 물은 끓여먹고, 음식은 충분히 익혀먹는 일반적인 수칙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날로 먹는 음식이라면 원료를 위생적으로 처리하고, 오염원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며, 사용하는 도마나 칼이 오염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김동청 교수는?
=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 생화학과 이학석사 및 서울대 대학원 농화학과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상㈜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 순천제일대 조교수, 영국 캠브리지대 방문연구원, 성균관대 기초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청운대 인천캠퍼스 화학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식품기술사 자격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