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보호를 요청했다 변을 당한 중학생 A군의 사연이 여전히 안타까움을 더하게 만들고 있다. 한 남성에게 협박을 받고 있는 그의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보호하려고 애썼던 게 그 아들이다.
A군 어머니는 22일 한 언론에 “B씨가 내 아들을 먼저 죽이고 나를 죽이겠다고 지속적으로 협박했다”면서 “아들이 걱정돼 늘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아들은 자기가 제압할 수 있다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고 눈물을 쏟았다.
이어 “가정폭력을 당할 때마다 아들이 나를 안심시키기 바빴다”면서 “피해자 진술을 하러 경찰서에 갈 때도 아들과 함께 갔다”고 말했다.
A군은 지난 5월 가정폭력이 일어났을 때도 부서진 TV와 컴퓨터 등을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부서진 유리조각까지 모아 비닐봉지에 담았다고 한다. 나중에 수사 기록용으로 제출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의젓했던 A군은 결국 자신의 집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 곳곳에 빈틈 보였던 신변보호 조치 ... 경찰의 대처 적절했나?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피해자 A(16)군의 어머니는 지난 2일 경찰에 전 애인이자 사실혼 관계였던 B(48)씨를 가정폭력범으로 신고하면서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경찰은 이에 3일 A군 어머니에게 긴급 임시조치를 취했다. 법원도 4일 주거지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화와 문자 등 전기통신 금치 처분 등 결정을 내렸다. 이 내용은 당시 잠적 중인 B씨에게도 문자메시지로 전해졌다.
B씨는 이미 과거 헤어진 애인들을 상대로 수차례 방화.폭력 등 보복 범죄를 저질러 10범의 전과를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A군의 어머니는 지난 3일과 5일 “주택 외부에 있는 가스밸브가 잘려 있다” “주택 옥상에 B씨가 와 있는 것 같다”며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B씨에게 두 차례 출석요구서만 보냈을 뿐 따로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 5일 신변보호심사위원회를 열고 A군 어머니 주거지 일대 순찰 강화, A군 어머니 주거지 CCTV 설치, 스마트 워치 지급 등의 신변보호 조치를 최종 의결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날 여분이 없다는 이유로 A군의 어머니에게 스마트 워치를 지급하지 않았다. 스마트워치는 신변보호 대상자가 위급할 때 응급버튼을 누르면 경찰 112 상황실과 담당경찰관에게 즉시 연락이 가는 손목시계형 기기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제주지역에서 보유하고 있는 스마트워치는 모두 38대다. 동부서는 이 중 14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다른 피해자들에게 지급돼 재고가 없는 상태였다.
동부서는 그 다음날인 6일 스마트워치 2대를 회수했다. 동부서는 6일부터 1대 이상의 스마트 워치 여분이 꾸준히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A군 어머니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지 않았다.
경찰은 8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A군의 집 앞뒤로 CCTV 2대를 설치했다. 하지만 녹화기능만 있을 뿐 이 CCTV는 경찰이 직접 실시간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없었다,
경찰은 이 때도 A군의 어머니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지 않았다. 여유분이 생겨 지급이 가능하다는 안내도 없었다.
B씨와 사회에서 만난 후배 C(46)씨는 결국 18일 오후 3시 16분께 제주시 조천읍 소재 A군의 집 다락방 창문을 통해 침입했다. A군은 현장에 있던 끈으로 결박 당하고 살해됐다.
그들이 집에 드나드는 모습은 경찰이 설치해둔 CCTV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숨진 A군은 이날 오후 10시 51분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그의 어머니에 의해 발견됐다.
피살사건이 일어난 주택과 조천파출소의 거리는 900여m로, 차로 2분 남짓한 거리다. 스마트워치만 있었어도 A군은 생명을 건졌을 가능성이 높다.
A군이 살해당한 다음날인 19일, 공범인 C씨는 경찰에 붙잡혔지만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한 B씨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A군의 어머니는 사건 이후에도 B씨가 잡히지 않자 경찰에 직접 스마트워치를 요청, 뒤늦게 지급받았다. 아울러 불안감을 호소한 A군의 삼촌과 그의 아내도 같은날 경찰에 스마트 워치를 직접 요청, 1대씩 지급받았다.
A군의 어머니가 신변보호를 신청한지 보름만이자 정작 아들이 살해를 당한 이후였다.
A군 어머니는 그의 아들이 살해당한 날 오후 2시께 아들과 마지막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18일 오후 4시쯤 아들에게 전화했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면서 “밥을 먹고 있다는 아들의 목소리가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 이어지는 경찰의 거짓말 ... 뒤늦게 "소홀한 부분 인정한다"고 밝혀
경찰은 B씨가 체포된 19일 “신변보호와 신변경호는 차원이 다르다” “신변보호 대상자는 A군 어머니이지 A군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날 20일 열린 기자 브리핑에서는 "(신변보호의 경우) 같은 가족 구성원이면 같은 보호를 받고, 임시조치도 접근금지가 이뤄지는 부분이라 A군도 (신변보호 조치에) 포함된다"면서 "제도권 내에서 최대한 노력했지만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고 유감을 표한 바 있다.
아울러 “최초 신고 당시 스마트워치 재고가 없어서 바로 지급하지 못했지만 곧바로 A군의 어머니에겐 지급했다”면서 "그 전엔 112 긴급 신변보호시스템에 연락처를 등록해 관리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22일 “스마트워치 재고에 여유분이 생겨 그 사실을 알리고 지급했어야 했는데 미흡했다. 소홀한 부분을 인정한다”고 밝히며 뒤늦게 잘못을 인정했다.
이어 “청문감사실 담당자가 여성청소년과에 스마트워치 여분이 생겼다는 것을 알리고, A군의 어머니에게 지급되도록 했어야 했다”면서 “사건 처리 담당자들은 CCTV 설치나 임시숙소 제공 등에만 신경쓰다보니 스마트 워치 지급에는 주의깊게 신경쓰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제주경찰청은 내부 회의 끝에 A씨 일당에 대한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 신상공개는 사회적 관심이 높고, 범행 수법이 잔혹하며, 피의자가 그 범행을 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국민의 알 권리와 강력범죄 예방을 위해 이뤄진다.
제주에서 신상이 공개된 범죄자는 모두 3명이다. 2016년 제주시 연동 소재 성당에서 새벽기도를 하고 있던 여성 신도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중국인 천궈루이와 2019년 5월 26일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잔혹한 방법으로 유기한 고유정, 수십여명의 청소년 성 착취물을 제작해 배포한 배준환 등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 사건을 검토할 결과 범행 수법의 잔인성과 공공의 이익 등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계획적 범행에 대낮 어린 중학생을 처형하듯 살해행각을 벌인데다 이미 수많은 범죄전력을 갖고 있고, 향후 재범가능성이 높은 범죄용의자에 대한 신상공개가 왜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지도 의문이다.
◆ 우발적인가, 계획적인가? ... 경찰 "A군 어머니도 범행 대상이었는지 조사 중"
B씨는 현재 경찰 조사에서 ‘우발적 살인’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혐의를 인정하긴 하지만 A군을 애초에 죽일 마음은 없었다는 것이다. B씨는 "A군과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숨지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반면 당초부터 B씨가 범행을 게획했다고 보고 있다. 현장을 사전 답사하는 정황 등 혐의 입증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B씨는 A군의 어머니에게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았겠다”는 등의 발언을 수 차례 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특히 A군을 살해한 후, 주택에 약 3시간 동안 머무르면서 집안 곳곳에 식용유를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이에 대해 “생각만 하다 나왔다”면서 모호하게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B씨가 A군 집에 불을 지르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구속된 B씨는 수감된 22일 유치장 벽에 머리를 박는 등 자해 시도를 하기도 했다.
공범인 C씨도 경찰 조사에서 “B씨와 함께 현장에 갔을 뿐 살인을 하지는 않았다”며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공범인 C씨는 침입 25분 뒤 주택을 먼저 빠져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C씨에게 “혼자 (피해자를) 제압하기는 힘드니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이에 "큰일이 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B씨를 따라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방조범은 주범에 비해 비해 보통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는다. 공동정범이 될 경우 무거운 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경찰은 이들이 A군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보고 범행동기 등을 추궁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한 가정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결말을 맞았다. 곳곳이 빈틈이었던 신변보호 조치와 정작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에 지급된 스마트워치, 게다가 범인을 잡고서도 이해할 수 없는 신상공개 불가조치 등.
경찰에 대한 불신이 제주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커져가고 있다. [제이누리=박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