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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맥그린치 신부 장례미사 ... 수백명 신자 마지막길 함께
강우일 제주교구장 "멋진 삶 사시며 많은 열매 ... 평안히 쉬길"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삼위일체 성당은 이른 아침부터 붐볐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몇몇 신도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제주 근대화의 기적'을 일궈낸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P. J. Mcglinchey) 신부가 영면에 들어갔다.

 

故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의 장례미사가 27일 오전 10시 강우일 제주교구장의 주례로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열렸다.

 

장례미사에는 문창우 주교와 천주교 제주교구 사제단, 맥그린치 신부가 속했던 성골롬반선교회 사제들, 6.13 지방선거 제주도지사에 출마한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와 무소속 원희룡 예비후보, 이석문 교육감 등이 참석했다. 아울러 수백명의 신자들이 맥그린치 신부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강우일 주교는 이날 강론을 통해 “제가 처음 임 신부님의 선종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게 슬픔에 젖지는 않았다”며 “임 신부님이 너무나 멋진 생애를 살다 가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주교는 “임 신부님은 사제로 평생 혼자 사셨지만 이 제주땅에서 줄줄이 포도알에 달린 포도송이처럼 엄청난 열매를 맺으셨다”며 “할 일을 다 하신 분이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임 신부님이 24살의 파란 청년의 나이에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 이 땅은 전쟁의 광풍 속에서 온 국민이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며 “임 신부님은 그런 황무지에서 시작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임 신부님은 오늘날 한림본당을 비롯, 성당과 수녀원, 요양원 등 이시돌의 여러 시설, 소들와 말들이 평화롭게 노니는 목장, 임 신부님의 지도와 도움을 받은 수많은 농민들, 신자들, 그렇게 어느 포도송이 보다 주렁주렁 포도알이 풍성한 열매를 가득히 맺어주셨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맥그린치 신부를 향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덩치 큰 불굴의 사나이”라며 “바위같은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일궈냈다. 임 신부님, 정말 수고 많으셨다. 멋지시고 부럽다. 감사하다. 다시 만날 때까지 편안히 쉬길 바란다”고 평안을 기원했다.

 

 

미사후 이어진 추도식에서는 양영철 맥그린치 신부 기념사업회 공동대표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양 공동대표는 맥그린치 신부를 향해 “사랑하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신부님”이라며 “신부님이 60년을 만들어놓은 사랑을 이어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부님이 이 유리관에서 깨어나서 1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저희에게 두 가지를 당부할 것”이라며 “첫번째는 제주를 제주답게 지켜달라는 것, 두 번째로는 이시돌의 호스피스 병동을 꼭 지켜달라고 하셨을 것이다. 이는 오늘 장례미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1928년 남아일랜드의 레터켄에서 태어났다. 성골룸반 외방선교회 사제로 1954년에 제주에 들어와 이후 선종하기까지 척박한 제주의 땅을 일구며 64년간 제주근대화 및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제주에 들어온 뒤 성당을 세우고 수직물 회사를 만들었다. 청년들에 대한 교육을 이어갔으며 신용협동조합을 창립, 경제적자립의 토대도 만들었다. 뭍지방을 다녀오는 길에는 돼지 한 마리를 안고 들어와 제주축산업의 기초를 세우기도 했다.

 

농업기술연수원을 설립하고 우유·치즈·배합사료공장을 처음 제주에 만든 것도 그다. 그 수익금으로는 양로원·요양원·병원·호스피스 복지원과 어린이집·유친원을 세워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그가 1970년 개원한 성이시돌 복지의원은 현재 호스피스 병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오갈 곳 없는 말기 암 환자의 안식처다. 이마저 무료로 운영되며 약자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맥그린치 신부는 이런 공로로 2014년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추천포상 수여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그의 본국인 아일랜드에서도 마이클 D. 히긴스(Michael Daniel Higgins) 대통령이 따로 대통령상을 보내기도 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이달 초 심근경색과 신 부전증세등으로 건강이 악화, 병원으로 향한 뒤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23일 오후 6시27분 운명을 달리했다.

 

맥그린치 신부의 시신은 이날 이시돌 글라라 수녀원 묘지에 안장됐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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